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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게임광고] 헐벗음을 강요당했던 라라 크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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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툼 레이더 4'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PC파워진 1999년 11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툼 레이더 4'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PC파워진 1999년 11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툼 레이더’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는 강인한 여성의 대명사입니다. 쌍권총을 쥐고 악당을 해치우며 함정으로 가득한 유적을 탐사하는 모습은 게임계 대표 여전사 자리를 꿰차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안젤리나 졸리 주연 영화 등으로 리메이크 되며 이미지를 확장해 나갔죠. 2013년 ‘툼 레이더’ 시리즈가 전면 리부트 된 지금은 조금 미성숙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더욱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라라 크로프트도 과거엔 단순한 성상품화 모델로서 의미 없이 소모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리부트 직전까지 라라는 노출이 높은 핫팬츠와 민소매 티셔츠는 기본이고,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가슴이 점점 커지고 허리는 가는 비현실적인 체형이 되는 등 노골적인 섹스 어필에 이용됐습니다. 당시 게임 광고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게임성과는 전혀 상관 없는 라라 크로프트의 몸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광고들이 남발됐습니다.

게임성보다는 섹스어필과 선정성에 치중한 '툼레이더'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게임성보다는 섹스어필과 선정성에 치중한 '툼레이더'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제우미디어 PC파워진 1999년 11월호에 나온 ‘툼 레이더 4: 마지막 계시록’ 광고입니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으로, 당시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는 3D 모델링 기술과 함께 라라 역시 각진 폴리곤 덩어리에서 점차 사실적으로 바뀌어 가던 시기였죠. 초기 ‘툼 레이더’ 시리즈는 게임업계를 선도하는 고품질 그래픽으로도 유명했기에, 이런 비주얼 강조 광고가 나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주인공인 라라가 들어가는 것도 필연적이고요.

그런데, 정작 나온 광고를 보면 잠시 멍해집니다. 막 목욕을 하고 나온 듯 알몸의 라라가 샤워 타올 한 장으로 몸을 대충 가린 채 카메라에 등을 보이고 서 있습니다. 심지어 광고 문구는 “그녀는 당신을 향해 뒤돌아 설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문장입니다. 얼핏 보면 탈의 카지노 게임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노골적인 섹스어필 광고입니다. 전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걸 보고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떠올리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 페이지 광고도 만만치 않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다음 페이지 광고도 선정성은 만만치 않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다음 페이지에 있는 광고는 정도가 더합니다. 팬티만 입고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라라 크로프트가 배게 하나만으로 몸을 가린 채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시 아름다운 그녀, 라라 프라프트!”라는 문구는 덤이네요. 크라프트가 아니고 크로프트라고 정정해 주고 싶은데, 사소한 철자 오류가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광고 콘셉트 자체에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저희가 보여드리는 것이 국내 광고이긴 하지만, 해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아니, 더했습니다. 애초에 저 이미지 자체가 원 유통사인 에이도스에서 만든 것인데요. 심지어 서양에서는 비키니를 입은 라라가 나와 가슴골을 보여주거나, 아예 라라와 상관 없는 실사 여성이 나와 “라라 때문에 술집에 사람이 안 온다”는 TV 광고까지 방영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심지어 개발사 윗선에서 라라 크로프트를 누드로 만드는 치트 코드를 대놓고 요구할 정도였으니 당시 라라 크로프트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 만 합니다.

이런 광고는 순간적으로 ‘툼 레이더’ 시리즈 판매량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반대로 라라 크로프트의 이미지 자체는 한없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이머들은 밑도 끝도 없이 섹스어필만 하는 라라 크로프트에 정을 뗐고, 이는 판매량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2010년에 다다라선 ‘툼 레이더’ 시리즈 자체가 힘을 거의 잃어버렸고, 결국 당시 ‘툼 레이더’ 제작을 지휘하던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는 라라의 섹스어필 요소인 과도한 노출, 비현실적 몸매, 자극적 마케팅을 모두 버린 채 현실적인 라라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라라 크로프트는 새 생명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덤으로 보는 B급 광고

아무도 그 완성형 모습을 모른다는 '쉬리' 게임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아무도 그 완성형 모습을 모른다는 '쉬리' 게임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강제규 감독의 1999년 영화 ‘쉬리’는 한국 영화의 부흥기를 연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국내 최고 수치였던 전국 620만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등 명품 배우들의 연기와 헐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하는 스케일과 완성도 등으로 인해 ‘한국 영화는 쉬리 전과 후로 나뉜다’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의 족적을 남겼죠.

그 인기 덕분일까요, ‘쉬리’를 게임으로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위 광고에 보이는 ‘쉬리’ 게임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실 광고만 봐서는 딱히 무슨 게임인지 짐작하기 어려운데요, 일단은 공작원과 특공대의 전투를 다룬 원작 느낌을 살려 탑뷰 방식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개발이 진행됐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스타크래프트’를 통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붐이었던 현실도 꽤 반영됐을 겁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유는 모종의 이유로 게임 개발이 중간에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왜 취소됐는지는 개발사인 시리아 엔터테인먼트만 알 테지만, 영화 화제가 식기 전 제대로 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하나를 뚝딱 만들어낸다는 게 쉽진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결국 시리아 엔터테인먼트는 아동용 교육 게임과 올림픽 스포츠 게임, ‘짱구는 못말려 3’ 등을 제작하다 결국 게임사업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로써 쉬리 게임은 이렇게 광고로만 존재하는 고대 신화 속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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