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산업

게임 속 요상한 의상을 납득시키기 위한 세 가지 조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항상 옷을 과장되게 입는 경향이 있다. 대충 볼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게임 속에 등장하는 의상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어느 하나 평범하게 옷을 입는 캐릭터가 없다. 현실이었다면 공연음란죄로 잡혀가거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도 남을 법한 그런 의상들만 게임에 등장한다.

유저들이 그런 요상한 의상들을 게임 속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같은 궁금증을 풀어줄 강연이 GDC 2019에서 진행됐다. 키트폭스 게임즈에서 현직 캐릭터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빅토리아 트란이 '왜 게임 속 의상은 다 이상하며, 우리는 왜 그것을 허용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빅토리아 트란이 '게임 속 패션'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빅토리아 트란이 '게임 속 패션'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옷과 패션의 차이

어릴 때 옷 입히기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속옷만 입고 있는 캐릭터에게 스티커 모양의 의상을 입혀주는 플래시 게임 말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엔 문구점에서 해당 놀이가 가능한 종이 스티커를 팔았으며, 인터넷이 발달한 뒤로는 플래시 게임으로 많이 접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각종 게임의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통해서 대리 경험하게 되는 간단한 놀이다.

그러나 이런 게임들을 우리가 '패션 게임'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애초에 '패션 게임'이란 장르가 없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옷을 입히는 행위를 따로 떼어낸 게임이 없다시피 하며, 무엇보다 '옷'과 '패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잘 입지 않는 옷들을 입고 나오는게 오히려 일반적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현실에선 잘 입지 않는 옷들을 입고 나오는게 오히려 일반적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기본적으로 '패션'은 한 사람이나 캐릭터의 정보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저 사람 패션이 참 독특하네'라고 말할 때는 비단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고 있는 분위기와 외형에서 풍기는 성격 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 캐릭터의 패션을 만든다는 것은 그 캐릭터의 성격과 직업은 물론, 그 캐릭터와 관련된 스토리까지 고려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패션 게임'이란 장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작업인 셈이다.

정복과 통제를 넘어설 만큼의 힘

캐릭터의 의상이 잘 꾸며졌다고 할 때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조건이 조화롭게 어우러졌을 때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조건은 패션에 충분한 양의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야 하며, 미학적으로 인정할 만큼 재미가 있어야 한다.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의외로 대다수의 게임 캐릭터들이 이를 잘 만족하고 있다. 우리가 게임 속에서 과장된 의상 대부분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 가지 조건 중 정보량에 대한 조건은 충족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외적인 것으로 캐릭터의 객관적인 정보를 드러내는 기법은 게임 뿐만 아니라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자주 쓰이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여자 캐릭터가 안에는 몸에 탁 달라붙는 검은 색 드레스를 입고서 겉에는 의사 가운을 걸치고 있다면, 해당 캐릭터의 직업은 의사고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신입 인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수부란 직업을 전혀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의상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잠수부란 직업을 전혀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의상 (사진: 게임메카 촬영)

분명한 표현은 얼핏 들으면 정보량과 비슷한 듯 싶지만,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여기서 표현하는 것은 캐릭터와 관련된 감정이나 스토리 상의 복선 등을 이야기 한다. 이를테면, '데빌 메이 크라이'의 '네로' 의상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네로는 다른 색도 아닌 '파란색' 코트를 입고 있으며, 오른팔 소매는 데빌 브링어나 데빌 브레이커로 인해 항상 접혀 있다. 그가 '파란색' 코트를 입는 이유는 그의 태생과 관련된 복선을 담고 있는 것이며, 팔에 소매가 올라가 있다는 것으로 오른팔을 전투에 활용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식이다. 

마초 남성이라면 미국 국기가 형상화된 패션을 입어야 하는 법도 없을텐데...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마초 남성이라면 미국 국기가 형상화된 패션을 입어야 하는 법이 있는거 아닐까? (사진: 게임메카 촬영)

'재미'와 관련된 예시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칼리'가 입고 나온 '팝스타' 스킨의 의상은 기존 캐릭터의 개성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을 수 있지만, 걸그룹 멤버라는 인식을 줌과 동시에 마스크나 모자 같은 아이템은 실제 상품으로 만들어져 게임 수익에도 도움을 준다. '오버워치'의 이벤트 스킨 또한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 세가지 조건을 모두 어느 정도 충족하거나 사람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한 조건이 잘 구성돼 있다면 유저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캐릭터의 의상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과격하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너무 나서버린 패션에 대해선 유저들도 거부감을 느끼는 법이다.

세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세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다시 말해 터무니 없는 패션에 대해 유저로 하여금 게임적 허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생각보다 기민한 설계와 패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빅토리아 트란은 이를 '정복과 통제를 넘어선 미학과 표현의 힘'이라고 표현했다. '정복과 통제'란 표현을 쓸 만큼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 정복과 통제를 넘어선 표현과 미학의 힘 (사진: 게임메카 촬영)

당위와 의미, 멋이 모두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가 가벼이 여겼던 게임 속 패션에도 게임의 몰입과 평가를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냥 게임이라는 미명하에 아무 외형이나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캐릭터가 입는 옷의 디자인에도 당위와 의미, 멋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 게임 개발을 꿈꾸고 있거나 캐릭터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내용이다.

▲ 빅토리아 트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이재오 기자 기사 제보
페이스북에 달린 기사 '댓글 ' 입니다.
이벤트
게임일정
2019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