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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천만 제국 시대를 열다,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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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천만 제국을 이뤄낸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사진제공: 블리자드)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3가지 중 1,2개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블리자드는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름을 알린 대중적인 게임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그들의 노하우가 꽃을 피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유저 1,200만 명, 월 매출 1,300억원을 기록하며 흥행 신화를 써내려 갔다. 또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4번째 확장팩인 '대격변'은 출시 하루 만에 330만 장이 팔리며, 가장 빨리 팔린 PC 게임으로 기록됐다.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통해 천만 제국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이크 모하임이 있다. 직원의 월급을 주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을 넘어, 자사의 대표 프랜차이즈 3종을 마련하고 이후 이를 더 발전시켜 거대한 MMO 세계를 만들어낸 그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스스로 납득할만한 완성도를 우선시 삼아 왔다. 특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은 물론 이 게임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서비스와 운영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아가 이 게임을 만드는 사람도 즐겁게 작업에 임하는 환경을 구축하자가 그의 신조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우연한 장난이 만든 인연, 중소 게임업체를 설립하다 

마이크 모하임은 1966년에 태어났다. 그가 게임이라는 재미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카드게임을 즐기면서부터다. 경쟁, 전략, 도전 등을 즐기던 마이크 모하임에게 게임이란 ‘재미와 즐거움’ 그 자체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훗날 게임회사를 설립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재미있게 만들고 재미있게 즐기며, 그 자체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것이 그의 모토가 되었다.

그는 12살 때 게임 콘솔을 사기 위해 형제들과 함께 돈을 저축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마이크 모하임이 구입한 발리 프로페셔널 아케이드는 1978년에 출시되었으며,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기기였다. 이를 이용해 마이크 모하임은 간단한 게임을 개발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오는 게이밍 뉴스레터를 뒤지며 프로그래밍 코드를 짜는데 필요한 사례를 수집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는 우편함을 확인하고, 프로그래밍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읽는데 몰두했다.

마이크 모하임이 게임업계, 그것도 본인 스스로 회사를 설립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에 맺은 인연이 유효하게 작용했다. 마이크 모하임과 함께 블리자드의 전신, 실리콘 & 시냅스를 창립한 앨런 애덤스가 그 주인공이다. 마이크 모하임과 앨런 애덤스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동문이다. 졸업반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두 사람이 친해진 계기는 우연한 장난이었다. 학교 내 컴퓨터 연구실에서 작업 중이던 앨런 애덤스는 커피를 가져오기 위해 PC를 잠그고 자리를 비웠다. 이 때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마이크 모하임은 본인의 비밀번호 ‘Joe’로 앨런 애덤스의 PC 비밀번호를 바꿔놓는다.

그러나 앨런 애덤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PC 장금을 해제하고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마이크 모하임 입장에서는 앨런 애덤스가 바꿔놓은 비밀번호를 어떻게 풀었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앨런 애덤스가 본래 설정해둔 비밀번호 역시 'Joe'였으며, 우연히도 두 사람이 똑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한 것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서로를 알게 된 알렌 애덤스와 마이크 모하임은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특히 알렌 애덤스는 게임회사를 설립하는데 큰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그의 끈질긴 설득을 계기로 마이크 모하임 역시 함께 게임사를 꾸려보자는 판단이 섰다. 이후 둘은 같은 대학 출신의 프랭크 피어스와 함께 실리콘 & 시냅스를 설립했다. 1991년 2월 8일에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중소업체 실리콘 & 시냅스는 이미 발매된 게임의 컨버전을 담당하는 외주 업체로 시작했다. 동시에 'RPM 레이싱'과 '록큰롤 레이싱', '로스트 바이킹' 등 자체 게임 제작에도 동시에 힘을 기울였다. 


▲ 실리콘 & 시냅스 설립 초기 시절의 마이크 모하임 (사진제공: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은 1994년 '워크래프트 1'이 출시되기 전까지 프로젝트의 경중을 두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마이크 모하임이 실리콘 & 시냅스에서 맡은 첫 번째 프로젝트는 '로스트 바이킹' 개발에 사용된 셀 편집기 CED를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제작한 CED는 C++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으로, 훗날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에 사용된 지도 편집기의 시초가 되었다. 

마이크 모하임은 게임 제작은 몇 명의 천재가 아닌 팀 전체가 함께 완성도 있는 작품에 매진하는 것임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마이크 모하임이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고려한 점은 게임과 게임을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금적인 여유는 부족했으나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는데 힘을 썼다. 샘 와이즈 디디에나 조이레이 홀, 밥 피치, 크리스 멧젠 등 블리자드 프랜차이즈 3종의 주축 제작진은 모두 실리콘 & 시냅스 설립 초기에 입사한 직원들이다.

외주업체로 시작한 실리콘 & 시냅스는 '로스트 바이킹'과 '록큰롤 레이싱'을 토대로 개발사로서의 입지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게임 개발사로서의 입지는 높아졌으나 실리콘 & 시냅스는 자금난에 허덕였다. 정말 어려웠던 시절에는 마이크 모하임과 앨런 애드햄 등 임원진들이 개인 신용카드를 긁어 직원들 월급을 챙겨줘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 실리콘 & 시냅스의 초기작인 '로스트 바이킹'(상)과 '록큰롤 레이싱'(하)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이 와중에도 마이크 모하임은 직원들이 게임을 만드는 것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회사에 온 사람들을 다른 일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교육용 프로그램 제작사 데이비슨 앤 어소시에이츠에 67만 5000달러에 회사를 매각할 당시, 마이크 모하임은 게임 개발사로서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준 점을 우선시했다. 이 때, 실리콘 & 시냅스라는 회사명이 카오스 스튜디오를 거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확정된다. 

회사의 운명을 바꾼 3가지 선택, 워크-디아-스타 진영 구축

1994년 이후, 블리자드는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선다.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블리자드의 운명을 정한 마이크 모하임의 선택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스타크래프트'의 재개발을 결정한 것, 2번째는 '디아블로'를 턴제 RPG에서 액션 RPG로 전환한 것, 마지막은 '워크래프트'를 MMORPG로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블리자드의 핵심 프랜차이즈 3종의 공통점은 ‘진보’다. 즉, 기존 장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방법을 찾아 업계의 트랜드를 선도한 것이다. 그 동안 쌓인 유산을 토대로 소위 완성형 게임을 구축한 판단력이 지금의 블리자드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 워크-디아-스타는 블리자드의 탄탄한 자산이다 (사진제공: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1994년,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워크래프트: 오크 & 휴먼'을 출시하고 독자적인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에 나선다. 이후 1995년 출시된 '워크래프트 2: 어둠의 물결'은 전작보다 개선된 시스템과 그래픽을 선보이며 블리자드에게 최초로 올해의 게임 상을 받게 했으며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며 글로벌 게임회사로서의 초석을 다지게 했다.

1992년 출시된 웨스트우드의 '듄 2'를 보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가능성을 엿본 마이크 모하임은 본인의 전공을 살려 회사 경영과 개발을 병행하는 시기를 가졌다. '워크래프트 1'의 네트워크 프로그래머를 시작으로 '워크래프트 2'에서는 핵심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마이크 모하임은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확립하며 ‘쉬움’과 ‘비주얼’에 방점을 두었다. 또한 본인이 네트워크 프로그래머를 전담하며 구축한 '워크래프트 1'의 멀티플레이는 실시간으로 다른 유저와 맞붙는 온라인게임의 경험을 널리 전파하는데 유효하게 작용했다. 또한 이는 '디아블로'의 핵심 성공요인으로 자리한 '배틀넷'의 토대가 되었다. 


▲ 블리자드의 시작을 알린 '워크래프트'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훗날 블리자드의 강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시네마틱 부서의 토대 역시 '워크래프트 1'의 개발 도중에 마련했다. '워크래프트 1'에서 '듄 2'의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한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 2'를 만들며 가장 고심한 부분은 풍부한 스토리를 넣는 것이었다. 인간과 오크는 물론 드워프나 고블린, 엘프 등 다양한 종족을 넣고, 각각의 역사와 개성을 부여했다. '워크래프트 3'에 도달해서는 동영상을 통해 서사적인 매력을 전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선보였다.

워크래프트의 흥행에 힘입어 1997년에 출시된 '디아블로'의 성공에는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서비스인 배틀넷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워크래프트'의 성공 후 새로운 IP를 준비하던 블리자드는 '저스티스 리그 태스크포스'의 포팅 작업을 담당하던 콘도르 스튜디오가 제작하던 턴제 기반 RPG에 30만 달러를 지원하고 이 작품의 판권을 소유한다. 본래 턴제 시뮬레이션 RPG였던 게임을 빠르고 생동감 있는 실시간 RPG로 바꾸기로 결정한 점은 '디아블로'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마이크 모하임은 '디아블로'의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워크래프트'부터 네트워크 게이밍에 방점을 둔 방향성은 '디아블로'에서 더 진보됐다. '워크래프트' 때 구축된 네트워크 플레이는 '디아블로'에 이르러 '배틀넷'으로 새롭게 정립됐다. 이 때 마이크 모하임이 염두에 둔 점은 '편리함'이다. 기존처럼 IP주소를 일일이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클릭 한 번으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시스템을 원했던 것이다. '디아블로' 때 구축된 배틀넷은 블리자드의 네트워크 플레이의 기반을 이루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 RPG의 신세계를 연 '디아블로'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워크래프트 1'과 '워크래프트 2'는 블리자드의 이름을 알리는 주된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았으나 '듄 2' 이후 '커맨드 앤 퀀커'를 내놓은 웨스트우드의 명성을 따라잡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었다.이에 마이크 모하임이 대항마로 생각한 것이 바로 '스타크래프트' 였다. 특히 '스타크래프트'는 마이크 모하임이 직접 프로듀서 역을 맡으며 개발 과정을 총괄했다. '스타크래프트' 개발에 착수하며 마이크 모하임은 오크를 우주로 내보내, 인간과 오크의 우주 전쟁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실제로도 이 아이디어는 내부에서 심도 있게 고려된 부분이라 한다. 

초기 '스타크래프트'는 '워크래프트 2'에 우주 스킨을 입혀놓은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냉혹한 평가가 돌아왔다. CES를 통해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를 출품한 블리자드는 당시 출품된 크리스 테일러의 '토탈 어니힐레이션'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여기서 마이크 모하임은 중대 결정을 내린다.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개발팀은 8개월 동안 야근과 철야를 이어가며 '스타크래프트' 재개발에 나섰다. '스타크래프트' 전용 엔진을 다시 만들고, 2종족이 정석이었던 당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3종족 체제를 세로 도입하고 종족과 유닛 별로 강점과 약점을 부여해 전략성을 더했다.




▲ 블리자드식 RTS를 정립한 '스타크래프트'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디아블로 2'부터 마이크 모하임은 선임 프로듀서 역을 맡아 블리자드의 초기 히트작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그가 선임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은 '디아블로 2'와 '워크래프트 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다. 즉,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는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의 기반을 스스로 직접 닦은 셈이다. '디아블로 2'의 경우, 아이템의 세분화로 파밍의 재미를 더하고 플레이어가 입장할 때마다 맵의 구조가 바뀌는 '랜덤맵'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래더 게임을 도입해 유저들이 서로 경쟁하는 재미를 강화했다. 

마이크 모하임이 '워크래프트'를 MMORPG로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은 '워크래프트 3'가 제작되던 중이었다. 20주년 회고록을 통해 마이크 모하임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개발을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화했다. 언젠가 '워크래프트'의 세계를 현실로 불러오고 끊임없이 계속될 게임 세계 속에서 각자가 살아 숨쉬는 세계의 한 존재가 되는 그날을 꿈꿨다”라고 전하고 있다.




▲ 테마파크형 MMORPG를 정립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출시할 때 최대 접속자 수용치를 북미에서만 40만 명으로 잡았으나, 한 달 만에 이 수치를 경신한다. 늘어나는 사용자 수를 감당할 수 없었던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출시된 2004년에 수 차례 출고를 멈추고, 수용 인원 규모를 늘리는데 집중해야 했다. 마이크 모하임은 눈앞에 놓인 벽을 회사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기회로 삼았다. 기존까지는 한정된 인원이 구매하는 패키지 게임을 관리했다면, 이제부터는 수백 명이 플레이하는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즉, 게임 하나를 단기적인 측면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서비스할 시점부터 마이크 모하임은 게임의 미래는 온라인 게이밍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사의 프랜차이즈를 하나로 묶는 온라인 플랫폼인 '배틀넷 2.0' 역시 보다 향상된 온라인 게이밍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배틀넷 2,0'을 기반으로 한 '스타크래프트2'와 '디아블로3'는 배틀넷을 통한 네트워크 플레이가 게임의 중심 요소 중 하나로 떠올랐다.

내면의 끼를 발산하라, 자유로운 개발 환경 구축

4,000여명이 일하는 대형 기업을 운영하며 마이크 모하임이 강조한 부분은 직원들의 끼(GeeK)를 발산할 수 있는 개발 환경을 구축한 점이다. 회사 안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취미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거나, 자율적으로 출퇴근시간을 결정하도록 한 점, 본인의 취향을 반영해 꾸밀 수 있는 사무공간을 제공한 점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0년에 기자가 직접 블리자드 본사에 방문했을 때는 명상을 위해 사무실 조명을 끄고 촛불로 불을 밝혀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개발실 일부를 볼 수 있었다. 


▲ 영감을 자극하는 개발환경을 중시하는 블리자드 (사진제공: 블리자드)

블리자드의 사훈 중에는 '네 안의 끼를 수용하라'는 조항이 있다. 개발자라면 언제나 외부의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이크 모하임의 신조가 반영된 운영 방침이다. 유연한 사고를 강조한 마이크 모하임의 방침은 실제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블리자드의 초기작인 '로스트 바이킹'은 작은 캐릭터를 조정해 퍼즐을 푸는 '레밍즈'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당대 인기 있던 '스타워즈'와 같은 우주 대서사시를 다루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마이크 모하임 본인 스스로 역시 Geek한 것을 즐겼다. 마이크 모하임이 크리스 시거티와 샘 디디에, 데이브 베이그런, 알란 아비리와 함께 사내 밴드 '90레벨 타우렌 족장'의 멤버로 활동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포커나 TRPG 역시 즐겨 하는 취미로 알려져 있다. 특히 포커의 경우, 2006년에 DICE가 개최한 토너먼트에서 2위에 오른 바 있다.


▲ 블리자드의 사훈 중 하나인 '네 안의 끼를 수용하라' (사진제공: 블리자드)

꾸준한 AS를 통해 핵심 프랜차이즈의 완성도를 높이는 활동도 이어졌다. 블리자드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출시일 연기 역시 이를 위한 조치였다. 실제로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1'을 1996년 추수감사절에 출시하려 했으나, 발매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두 번째로 목표로 했던 크리스마스도 훌쩍 넘겨 '디아블로 1'은 12월 31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타크래프트 1' 역시 본래는 1997년 연말 시즌에 맞추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 그로부터 6개월 뒤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이러한 조치는 판매를 위해 억지로 시기를 맞추는 것은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 우러난 것이다. 게임이 완성될 적절한 때를 기다린 마이크 모하임의 결정은 주요 IP의 가치를 높였다. 이러한 행보는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블리자드 게임은 확장팩부터라는 문구 역시 자사의 IP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부분이다.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를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취소하는 경우 역시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Xbox360으로 개발 중이던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노바'를 주인공으로 한 3인칭 슈팅게임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는 결국 2006년 3월에 출시가 무기한 연기되어 버린다. '호드'의 영웅 '쓰랄'을 주인공으로 한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역시 도중에 중단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 완성도 문제로 프로젝트가 취소된 '스타크래프트: 고스트'

이와 같은 기조를 토대로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1' 이후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해왔다. 2004년 출시 후 총 4종의 확장팩이 출시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3번째 확장팩 '대격변'이 출시 하루 만에 33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가장 빨리 판매된 PC 게임'으로 기록됐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전세계 2,000만 장 이상 판매되었으며, '디아블로 2'는 출시 2주 만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8년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와 '브루드워'는 1,100만 장 팔렸다. 특히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는 한국에 블리자드라는 회사를 알린 주요한 타이틀로 작용했다.

마이크 모하임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성공과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프랜차이즈를 정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7년 아카데미 오브 인터랙티브 아츠 & 사이언스(AIAS)의 11번째 명예의 전당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AIAS의 명예의 전당은 게임업계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달성한 개발자를 위해 마련된 자리이며,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를 필두로 시드 마이어, 존 카멕, 윌 라이트 등이 자리해있다.

모방을 넘어선 창조, 한 장르의 완성형을 정립하다

자본금 2만 달러를 기반으로 3명이 시작한 실리콘 앤 시냅스는 20여 년 뒤 17억 달러의 매출, 세계 각국에 4,000명 이상의 직원을 둔 글로벌 게임회사 블리자드로 발전했다. 올해로 창립 23주년을 맞이한 블리자드는 여전히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과 4월에는 '하스스톤'의 PC 버전과 온라인 버전이 출시되었으며, 3월 25일에는 '디아블로3'의 첫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가 발매되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5번째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와 현재 알파 테스트 중인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역시 올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신규 IP 창출도 이어지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후 블리자드가 개발 중인 차기 MMO인 '프로젝트 타이탄'이 그 주인공이다. 


▲ 올해로 23년 째 블리자드를 이끌고 있는 마이크 모하임 (사진제공: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이 블리자드에서 이룩한 업적은 한 장르의 완성형을 정립한 것이다. '듄 2'에서 '워크래프트'를 '에버퀘스트'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이뤄낸 힘은 기존 장르를 완성해낼 요소를 찾아 잘 버무린 안목에 있었다. '디아블로' 역시 턴제 RPG를 실시간으로 바꾼다는 발상의 전환을 토대로 RPG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하스스톤'은 '매직: 더 개더링' 등 기존 TCG의 방식을 배우기 쉽고 간단하게 정립해 라이트 유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트랜드를 찾는 힘, 이것이 블리자드가 모방을 넘어선 창조가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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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블리자드
게임소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다섯 번째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는 신비한 드레나이 용사, 강대한 오크 부족과 함께 옛 호드의 막강한 세력을 막아낼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주둔...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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