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코에이(KOEI, 光榮). 게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있을 유명한 제작사이다. ‘삼국지’ 시리즈와 ‘대항해시대’, ‘진삼국무쌍’, ‘신장의 야망’ 등의 역사 소재 게임으로 국내외에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굴지의 게임개발사이기도 하다.(물론 그 전에 성인용 게임을 만들어내던 암흑의 역사가 있기도 하다)
▲ ‘네덜란드처는 전기뱀장어의 꿈을 꾸는가’ 작명센스 한번 기괴하다
코에이 프라이스니 사골본능이니 하는 비판도 많이 받고는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만드는 게임이 재미가 있다는 것, 재미가 있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지속적으로 발매가 되고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코에이에서 만들어 내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흥미를 일으키는 소재를 다룬데다 플레이 시간이 상당 시간 보장되고 빠져들게 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물론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흠이 있지만 코에이에서 제작한 웰메이드 게임이라면 그만한 상응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대항해시대3’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이러한 코에이가 국내외적으로 보수우익기업이란 오명을 쓰고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 날 같이 다문화를 존중하고 저마다 자신의 정치적 의견, 생각 등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사회에서 보수우파라는 것이 욕을 먹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진보좌파라고 해서 욕을 받을 이유도 없다. 그런데 왜 코에이는 (특히 한국 게이머들에게) 이다지도 욕을 먹고 있는 것일까.
코에이가 최근 저지른 가장 큰 실책(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은 흔히 아는 ‘우익교과서 후원’이다. 문제가 된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의 전쟁을 합리화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사의 기원을 무시하고 중국에 복속되어 있었던 나라로 폄하시켰으며 식민지배의 정당화를 통해 오히려 한국의 근대화를 일본이 도왔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우리 뿐 아니라 중국 역시 폄하 되어있으며 일본과 일본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진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를 만든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는 내노라하는 일본의 실력자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는 코에이뿐 아니라 여러 게임업체들도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 ‘후소샤 교과서’ 역사는 진실과 반성을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이유만으로 코에이가 이른바 ‘수구꼴통’이니까 그 들이 이렇게 욕을 먹는 걸까. 그렇지 않다. 다른 제작사들도 ‘새역모’에 지원을 했지만 그들에게는 이러한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코에이가 만들어낸 게임이다. 코에이의 게임을 살펴보자. 다들 알다시피 일단 게임의 질은 괜찮다는 것에 대다수의 의견이 모아진다. 만약 게임의 질이 도저히 못 봐줄 수준이거나 조잡하면 게임도 못 만드는 주제에 국수주의만 잔뜩 실어놓은 쓰레기라고 평할 수 있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역사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코에이는 특장점을 보이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봤을 PC 시뮬레이션의 명작 ‘삼국지’ 시리즈를 비롯해서 삼국지 파생상품인 ‘조조전’, ‘공명전’, ‘영걸전’ 등을 비롯하여 파생상품인 듯 하였으나 어느덧 메인의 자리를 꿰찬 ‘진삼국무쌍’에다 세계지리 공부를 절로 하게 되는 ‘대항해시대’. 몽고의 전설적 영웅 징기스칸을 그린 ‘징기스칸’ 시리즈, 지금은 찾기도 어렵지만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그린 숨겨진 수작 ‘랑펠로’ 뿐 아니라 일본 전국의 역사를 과감히 재구성한 ‘노부나가의 야망’, ‘태합입지전’ 등이 있다. 여기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그린 ‘블레이드스톰 : 백년전쟁’까지. 한마디로 코에이는 역사라는 팩트위에 그들의 상상력을 재구성한 팩션(faction)게임으로 오늘날의 명성을 얻어왔다.
▲ ‘삼국지’ 이들이 누군지 다 안다면 당신은 삼국지 매니아
필자 역시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대항해시대3’로 세계지리를 빠삭하게 익히고 상아해안이 왜 상아해안인지 향료제도가 어디인지, 왜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파야만 했는지 각 지역의 특산품은 무엇이었는지, 세계각지의 유적이 어디 있는지를 저절로 외웠던 기억이 있다. 필자와 같은 경험을 공유한 분들도 많으시리라.
앞서 여러 차례 밝혔듯이 코에이 역사 게임을 하다보면 역사적 지식들을 하나 둘씩 접하게 된다. 역사적 인물이라든지 사건 지리적 정보 등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기회가 되곤 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게이머들은 코에이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접하며 조금씩 코에이가 제공하는 정보에 경도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도냐 마리나’ 코르테스에게 아즈텍 왕국을 안내한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이런 토막적 상식을 알려주는 건 에듀테인먼트라고 쳐도 넘어가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 대항해시대4에는 서울의 지명을 ‘경성’이라고 표기해두고 있다. 경성은 일제강점기 시대 사용되던 지명으로 당시 조선의 지명인 한양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조선인 캐릭터인 ‘설이화’와 ‘강상현’의 복식은 도저히 조선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중국풍의 옷을 입고 있다. 이는 ‘후소샤’ 교과서에서 한국은 중국의 복속국가였다라고 주장한 사관과도 일맥상통한다.
▲ ‘이화 설’ 중국식 복식을 갖추고 있다
위의 언급한 정도는 사실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코에이 게임의 논란거리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삼국지 10’에 등장한 이순신 장군의 능력치는 상상이하이다. 무력 87, 지력 79, 정치 35, 매력 82라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데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낮은 능력치이다. 같은 스페셜 장군으로 등장한 일본무장 오다 노부나가, 우에스기 켄신의 능력치보다 낮은 수치이다. 의도적인 자국 영웅 높이기와 타국 영웅의 폄하가 작용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 ‘이순신’ 이순신 장군에게 패한 이들의 능력치보다도 낮다
사실 ‘삼국지 10’은 사상 최초로 게임 내 역사왜곡으로 영등위에서 철퇴를 맞은 첫 사례이다. 그 전에 KBS, SBS의 보도와 여기에 동조한 국회위원들의 국정감사와 언론의 협공에 맹폭당한 영등위는 한반도 영토 부근의 군사거점을 ‘낙랑’이라고 표현한 ‘삼국지 10’에 대해 등급보류를 내린다.
▲ ‘낙랑’ 수정본에선 동답으로 표기되고 위치도 이동하였다
이쯤 되면 코에이의 행위는 상당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자, 이쯤에서 코에이가 후원한 후소샤 교과서의 문제가 되는(그리고 게임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표현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570년 이후가 되자 동아시아 일대에 지금까지의 여러 국가의 움직임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사태가 일어났다. 고구려가 돌연 야마토 조정에 접근해와 조공한 것이다. 이어서 신라와 백제도 마찬가지로 일본에 조공을 했다. 삼국이 서로 견제한 결과였다.” 출처 - 후소샤 교과서 40쪽 야마토정권의 자신 |
고구려가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 조공했다는 매우 충격적인 이 서술의 근거로는 ‘일본서기’라는 책의 기록을 들고있는데 ‘일본서기’라는 책은 일본학자들까지 그 진위를 믿을 수 없다고 한 데다 한국과 중국의 사서에는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근거가 미약하다. 또한 6세기 이후 삼국이 일본보다 정치, 문화적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 한,일학계의 통설인 것을 감안할 때 매우 신빙성이 낮다. 실제 중국 사료를 보더라도 고구려가 조공을 바친 때는 소수림왕-북연, 영양왕 이후 수나라에게 바친 것이 전부로 밝혀졌다. ‘삼국지 6’에서 나오는 사신 조공 이벤트에서 고구려의 사신과 왜의 사신이 등장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서 이해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에는 조공을 바칠 수 있는 국가다운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 사신 등장 이벤트를 넣은 이유는 자신들의 고대사 기원을 보다 위로 높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인다. 코에이가 선택한 사관은 일반적인 통설과는 거리가 매우 먼 일본중심적 사관으로 일본을 높이고 한국을 낮췄다. 부지불식간에 그 이벤트를 본 유저들은 실제로 일본에 조공을 바칠만한 국가가 있으리라고 믿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서 고구려는 일본에 조공한 기록이 있고 일제는 조선을 병탄한 사실이 있으니 일본의 인물보다 한국 측 위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논리이다.
고려사가 담겨있는 ‘징기스칸’ 시리즈 역시 코에이의 사관이 드러난다. 고려의 무신정변과 삼별초에 대한 잘못된 설명과 더불어 대몽항쟁을 내란 정도로 치부해버린 부정적인 시각, 일본을 높이는 시각은 그 들의 정신상태를 잘 반영해준다.
▲ ‘징기스칸’ 고려는 참으로 약하게 묘사되어 있다
코에이 사고방식의 가장 위험한 단초가 드러난 게임은 바로 ‘제독의 결단’이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겠지만 일본 군국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게임이다. 사실 이전에도 일본에는 함대관련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군국주의나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79년에 등장한 ‘우주전함 야마토’는 함대라는 소재의 매력과 군국주의가 혼합될 때 얼마나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당시의 인기는 방영시간이면 택시기사마저 일을 접고 들어가서 만화를 볼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일본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던 전함 ‘야마토(大和)’의 부활과 미국의 일본폭격을 은유한 가밀러스의 유성 공격, 군가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음악, 태평양전쟁의 유명 전투를 재현한 듯한 전투장면은 일본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었다. 특히 이 애니메이션의 시청층이 비단 아동과 청소년층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장년 노년층까지 두루 미쳤다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의 함대 사랑과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이후에도 ‘침묵의 함대’, ‘감벽의 함대’ 등을 통해 일본인이 함대와 군사강국에 대해 큰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 ‘우주전함 야마토’ 85년에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다
다시 ‘제독의 결단’으로 돌아오면 이 게임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1개국을 선택하여 전쟁을 하는 게임이다.(버전에 따라 다르다) 당연히 일본으로 플레이하면 동아시아 일대를 다 손아귀에 넣고 세계를 노려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한다. 또한 일본의 해군력이 매우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변 국가로서는 매우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주전함 야마토’, ‘침묵의 함대’, ‘감벽의 함대’등을 통해 그려왔던 군국주의를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모아진다. 여기서 다시 후소샤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군사적으로는 불안정하였다. 영국, 미국, 러시아 3국 모두가 지배를 원했으나 실제로 통치를 유지하기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지배하고 싶지는 않지만 또 다른 나라가 차지하는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지역에 대하여 통치자로서 신흥국 일본의 등장은 3국에 있어 좋은 상황이었다. 일ㆍ러전쟁 후 일본은 한국에 한국통감부를 두고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을 병합하였다(한국병합). 이것은 동아시아를 안정시키는 정책으로서 구미열강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었다. 한국병합은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는데 필요하였으나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반드시 이익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실행된 당시로서는 국제관계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국 국내에는 당연히 병합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었고 반대파의 일부로부터는 심한 저항도 일어났다.” 출처-후소샤 교과서 242p 한국병합 |
후소샤 교과서처럼 코에이는 게임에서도 일본의 안전을 위해 전쟁을 합리화 하는 것이다. 이것이 코에이가 바로 비난받는 이유다. 단순히 우익교과서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짜 이유다. '자주국방을 하지 못하는 나라의 이지스함은 쓸모없다'는 메시지 하나로 제작된 ‘망국의 이지스’라는 게임에서는 적에게 당당히 맞서는 정의의 일본 함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후소샤 교과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뜻이 통한다.
▲ ‘제독의 결단’ 당연히 국내 발매는 될 수가 없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에이의 세뇌가 가장 극에 달하는 것이 바로 전국시대이다. 자국의 역사인 전국시대와 관련된 게임을 만들면서 캐릭터들의 모습은 가히 초현실화, 신격화 되어있다. 특히 그 중의 오다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데다 ‘전국무쌍’, ‘노부나가의 야망’ 등을 통해 절대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사실 노부나가가 매우 뛰어난 역량과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긴 하지만 잔혹함으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코에이는 이런 모습은 싹 지우고 지혜와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인물로 재구성해놓았다. 이런 모습은 ‘무쌍 오로치’에서 반오로치군의 맹주로 오다 노부나가가 설정되어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 ‘노부나가’ 카리스마의 상징
지금까지 코에이가 왜 비난을 받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게임을 통해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살펴보았다. 문제는 역사게임의 특장점을 지닌 코에이인만큼 그들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부지불식간에 코에이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그것을 진짜라고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특히 어린 게이머들일수록) 그 내용들을 믿지는 않더라도 역사책에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 나오면 캐릭터의 얼굴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이들의 영향은 크다. 코에이의 게임을 즐길 때는 일단 의심하는 마음으로 즐길 필요가 있으며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역사바로잡기 노력이 필요하다. 민간단체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게임유저들의 적극적인 신고 및 수정요구 역시 필요하다. 역사게임! 즐기긴 하되 믿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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