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전, 위대한 도서관에 모였던 열두 명의 친구들은
우연한 기회에 세계가 태어난 모든 모험이 시작된 첫 자리, 그곳에 전나무에 맺힌 서리처럼 강파른 소녀와 매처럼 빼어나지만 외로운 젊은이가 있었다. |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내가 처음으로 전민희의 책을 접한 곳은 집 앞에 있는 도서대여점이었다. 예쁘장한 점원이 일하던 것으로 기억하는, 만화책과 판타지소설이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그녀의 처녀작 `세월의 돌`을 만났다. 아마 처음엔 딱 한 권을 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운명의 여행을 떠난 소년 파비안의 이야기에 매료된 나는 다음 권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주말 모두를 그녀와의 데이트에 할애하고야 말았다.
그 이후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신작 `전나무와 매`가 출간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허, 이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신작을 본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이제 와서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 가능할까? 자칫, 이전까지의 소설을 답습하게 될 우려도 있다.
하지만, 어렵사리 책을 구해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모든 것은 나의 기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처녀작인 ‘세월의 돌’처럼, 변하지 않고 거기서 그렇게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향기에 취한 나는 오랜만에 첫 사랑을 만난 이처럼 설렘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2000년 여름, 파릇파릇한 대학생이었던 그 때처럼……
아이를 위한 눈물겨운 사투. 어머니는 역시 위대하다.
“저 여자는 나의 적이로구나. 나는 지고 있구나. 이대로라면 영영 지겠구나.”
- 사비나
전민희는 아룬드 연대기(세월의 돌, 태양의 탑)와 룬의 아이들(룬의 아이들 - 윈터러, 룬의 아이들 - 데모닉) 등으로 유명한,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소설 작가다. 그녀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전나무와 매`는 게임 아키에이지의 배경이 되는 원작소설이다. 소설은 젊은 왕자 ‘진 애버나이트’와 영주의 딸 ‘카프로사 데이어’의 과거라는, 두 가지의 이야기로 나뉘어 진다.
▲
소설의 두 주인공, 진 애버나이트와 키프로사 데이어
도입부에서 독자들은 갑자기 난입한 보석처럼 빛나는 여인 티나에게 이끌리며, 동시에 그녀의 백마 탄 왕자 라빈의 특이한 행동에 의문을 갖게 된다. 전민희는 이런 우리의 호기심을 부채질하며 독자들을 이들의 도피행각에 동참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긴박한 상황의 흐름을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때문에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주변인이 된 것처럼, 손에 땀을 쥐고 그들의 도피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 아름다운 여인, 티나는 놀랍게도 왕의 애첩이었고,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는 바로 왕자님이었다. 왕비는 자신이 갖지 못한 아이를 가진 티나를 증오했고 그녀와 아이를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살해되기 직전, 그녀는 이 음모를 눈치채고 궁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녀를 돕는 기사 라빈, 그는 왕비 사비나의 친 동생이다. 그는 어릴 적 사비나와 금지된 관계를 맺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녀와 불구지천의 원수가 된다. 그는 왕비의 표적이 된 티나와 아기에게 동정심과 진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도피를 돕는 수호자가 된다.
그들의 도피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데이어의 두 번째 수호자, 키프로사
“늑대를 사냥했는데 새끼가 있었어요. 제가 키우겠어요.”
- 키프로사 데이어
이번 편에는 나아가는 자와 지키는 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 나아가는 자는 바로 ‘전나무와 매’의 두 번째 주인공, 키프로사다.
그녀가 사는 곳은 변방의 작은 영지 데이어다. 이곳은 최강을 자랑하는 데이어 창병의 양성소이기도 하다. 변방의 거친 대지는 그들을 강력하게 연마시켰을 것이다.
▲
바람마저 얼음이 되는 곳, 변방의 데이어 영지
키프로사는 이 거친 대지에서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의 행적을 답보한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항상 늙은 마법사 데니가 함께한다. 그녀 곁에 일어날 사건들을 짐작이라도 하듯
그녀는 결국, 그녀 혼자 성의 강력한 마법사인 데니조차 하지 못한 일을 이루려 한다. 눈의 새에 대한 애정과 아이를 향한 그녀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를 위해 자신이 항상 꿈꿔왔던 가족애가 넘치는 공간마저 포기하는 그녀. 우리는 그녀에게서 소중함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매력적인 인물은 바로 지키는 자인 키프로사의 할머니 로지아다.
가녀린 숙녀였던 그녀는 남편과 아들들을 잃으며 강인한 철의 여인으로 탈바꿈한다. 그녀에게 키프로사는 이미 마음에서 지워버린 아들의 딸이자 부엌데기일 뿐…… 하지만 데이어의 수호자인 자신조차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키프로사를 보며, 강철같은 그녀의 마음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드디어 벌어진 치열한 전투, 그 속에서 일어나는 한편의 드라마
“태어나면서부터 왕자였다면 몰랐을 것들을 벼락부자가 된 기분 덕택에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진 애버나이트
진의 성장과 전투를 그린 소설의 후반부는 `전나무와 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어느새 처음의 이야기로부터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갓난아이였던 그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다시 왕자의 자리를 찾았다는 것,
그러나 사비나 왕비는 아직도 야심을 포기하지 않았고, 왕자를 없앨 묘책을 강구한다. 변방의 영주에서 이민족들에 둘러 쌓여 위기에 처한 진 … 드디어 변방에서 그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
소설은 아픔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진과 키프로사의 성장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겸손한 소년이었던 진은 어머니의 집착과 왕비의 질투, 그리고 치열한 사투에서 자신을 키워나가며 키프로사 역시 아픈 과거와 주위의 냉대를 이겨내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떠나길 원한다. 꿈과 매혹의 도서관이 있는 세계의 수도 `델피나드`로.
▲
꿈과 희망의 도시 델피나드, 그 곳에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
전민희... 무서운 사람
“백 살에도 제정신으로 뭔가 쓰고 싶습니다.”
- 전민희
정신 없이 `전나무의 매`을 완독했지만, 진정한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후속작은 없다. 언제였던가? 이렇게 아쉬웠던 적이...... 생각해보면 `세월의 돌` 마지막 편을 내려놓았을 때 이와 동일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세월의 돌’ 연재 당시, 주인공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던 이십 대의 그녀는 어느새 총 27권의 책을 퍼낸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의 장르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소설은 게임 '아키에이지'의 2,000년전 과거인 누아이와 하리하라 대륙이 나뉘기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독자는 진과 카프로사를 통해 게임의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당시 인물의 생활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수 있다. 또한 하우징과 조경, 그리고 격투장 등 아키에이지의 주요 시스템 역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기에, 게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 책은 놓쳐서는 안될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전나무와 매`에서 행복의 파랑새는 바로 수도 `델피나드`에 있다. 이곳은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의 안식처로서 바로 아키에이지의 본 무대이기도 하다. 게임에서 델피나드는, 아키에이지의 독창적인 요소가 접목된 아름다운 도시로 등장하게 될 예정이다.
어쩔 수 없다. 진과 키프로사의 후일담은 곧 오픈 될 게임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이렇게까지 게임을 기다려지게 하다니…… 전민희 이사람, 생각보다 무서운 작가다.
▲
소설은 끝났지만 아키에이지의 모험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