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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킬까지 감행` 게임업계 인사들의 2010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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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장 무서운 건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임에도 늘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올해 게임 업계에도 이 무서운 말들이 수도 없이 오갔다. 특히 각 업계를 대표하는 혹은 활동이 활발한 인사들의 말은 그 ‘영향력’ 때문에 유독 튀어 매체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게임메카는 연말을 맞이해 2010년 게임업계 인사들이 의미 있는 말을 모아 보았다.

김택진 대표 “내 미래의 모습은 미래소년 코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본인이 낭만적인 남자임을 스스로 ‘인증’했다. 그는 지난 10월 12일 이화여대 초청강연 중 “미래소년 코난이 내 미래의 모습일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 더불어 나의 여자도 구하고”란 멋들어진 해석까지 곁들이며 일부 여대생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아무리 이념적이라고 해도 매력적인 말임은 틀림없지 않는가. 이에 그치지 않고 김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밤하늘을 보며 으~악 소리 지르고 싶은데 잠자는 요정들이 깰까봐 조용히 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멀어 진다”는 글을 남기며 자신이 낭만적인 인물임을 다시 한번 ‘인증’했다. -12 방어구를 갖춘 채 몇 년 째 잠들어있는 ‘리니지’ 요정 캐릭터를 떠올린 당신, 으~악 너무 반갑다. 나도 그랬다.

◀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사실 김 대표의 강연은 참 괜찮았다. 그의 삶이야기와 인생철학 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깊이 있는 지식에 여러 번 감탄했다. ‘미래소년 코난’ 발언을 통해 사회적 위치를 제쳐두고 그를 인간적인 면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된 계기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난 현재 건축 중인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을 무대로 드라마 ‘시크릿 엔씨’를 만들고 싶어졌다. 당연히 똑똑한 주인공 김 대표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룰 작정이다.
 

김기영 대표 “나도 겪어봤는데 게임 중독이 나쁘지만은 않더라”

 

한빛소프트 대표이사이자 게임산업협회 회장인 김기영 대표가 한때 게임 중독자였다는 사실이 ‘썩 좋지 않은’ 장소에서 밝혀졌다. 김 대표는 지난 8월 17일 게임문화재단 제 2기 출범식에 참여해 “나도 한때 게임이 너무 좋아 중독돼 며칠 밤새본 적이 있다”면서 “게임 중독도 그리 나쁜 거 같지 않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과몰입을 포함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씻어내고 건강한 게임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재단 출범의 주 목적이었던 만큼 그의 말은 행사장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도를 지나친 농담이 결국 모두에게 실소를 안겨주는 이른바 ‘드립’으로 돌아온 셈. 아, 대표님 장소가 좋지 않았다고요.

◀ 한빛소프트 김기영 대표

한편, 이날 출범식에 참여한 한선교 의원은 김 대표를 꼬집으며 “사회에서 게임 중독이 문제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까지 중독될 정도니, 그래 뭐 아주 나쁘진 않은 거 같다”고 말해 관계자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비꼬는 것이 분명했으나 섬세한 억양 컨트롤은 이를 가볍게 무마시켰다. 역시 방송인 출신답다. 한 의원은 마지막에 한 마디 더 했다. “우리 김 대표님은 참 멋진 사람 같다. 귀걸이도 하고 말이야.” 또 한번 웃음보가 터졌고 김 대표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속였다. 순간 그의 귀에서 귀걸이가 빛났다. 다행히 왼쪽이었다.
 

곽병찬 이사 “파부침주 각오로 아르고 서비스할 것”

 

큰 무리수를 둔 것 같지만 각오 하나는 볼만했다. 지난 7월 20일 진행된 ‘아르고’ 기자간담회에서 엠게임 곽병찬 이사는 “파부침주 각오로 아르고 서비스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파부침주란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사자성어로 전쟁에서 살아 돌아올 생각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의미다. 다리부상으로 목발을 짚은 권이형 대표가 옆에 서 있으니 분위기는 더 비장해 보였다. 괴로운 기억을 더듬어 군가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엠게임 권이형 대표

이러한 임원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서비스가 시작된 ‘아르고’는 론칭 2주 만에 신규 서버를 오픈하는 등 초반 흥행에는 대성공했다. 다만 끗발을 받지 못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진 못했다. 지금은 인기순위에서 이름을 찾기도 힘들다. ‘아르고’보다 파부침주를 외치던 곽병찬 이사가 더 걱정되는 건 분명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분들도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걱정 마시라. 다행히 ‘아르고’는 일본에서 현재 ‘잘’ 나가고 있다고.
 

김형태 AD “뒤태 살리겠다”

 

뭘 좀 아는 분이다. 최초 ‘블소’가 공개됐을 때 게이머들은 언리얼 엔진3의 강력한 퍼포먼스보다 김형태 AD의 캐릭터 디자인에 더 환호했다. 게임성도 중요하지만 비주얼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김형태 AD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첫 연출 영상 공개 당시에도 게이머들은 풍성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에 열광했다. 누가 뭐래도 사실이다.

◀ 엔씨소프트 김형태 AD

뭘 좀 아는 분은 역시 다르다. 김형태 AD는 시그래프아시아2010에서 ‘블소의 시각화’란 주제 강연을 진행하며 “게임 중 유저들이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캐릭터의 뒷모습에 큰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뒤태를 살리겠다는 의미다. 지금의 ‘블소’ 캐릭터만 봐도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친히 뒤태까지 살려주시겠다니 게이머들은 “정말 훌륭한 기획 아니냐”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김형태 AD는 게임계에 ‘뒤태 종결자’로 낙인찍힐 기세다. 환영이다.


김학규 대표 “심의안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민 가겠다”

 

게임위가 자칫하면 IMC 김학규 대표를 저 먼 타지로 보낼 지도 모르겠다. 김 대표는 지난 9월 경 인디게임 관련 게임위의 사전 심의안이 문제가 되자 이를 문화인의 창작의 자유를 해치고 게임제작자의 동기부여를 해치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심의안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 아들, 딸을 전체주의 검열사회에 그냥 둘 수 없으니 국적을 포기하고 이민 가겠다”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덧붙였다. 개발자로써 그의 사상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기서 언급한 아들, 딸이란 비단 그의 자식뿐 아니라 분명 게임 제작을 꿈꾸며 지금도 사력을 다해 공부하고 있을 후배 개발자들까지도 함축된 의미이리라.

▲ IMC 게임즈 김학규 대표

하지만, 아쉽게도 게임위의 사전 심의안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며칠 전에는 심의 수수료가 오르고, 사전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업체에 대해 수사의뢰까지 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차라리 방법을 바꿔 이른바 ‘학규형’을 따르는 ‘동생’들을 푸는 방법을 동원해보는 건 어떨까. ‘그라나도 에스파다’ 론칭 당시 김 대표는 D모 사이트 갤러리에서 ‘동생’들과 어울리는 걸 즐겼다. ‘동생’들은 그를 ‘학규형’, 정확히 말해 ‘학규O’이라며 잘 따르지 않았나. “심의안이 바뀌지 않는다면 애들 풀겠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게임위 사이트는 365일 ‘털릴’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배재현 전무 “우리 스타일 게임? 부담되게 왜 이러시나”

지스타를 앞두고 업체 모두 분주한 가운데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새벽녘께 트위터에 흥미로운 글을 남겼다. “우리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보려 10년 넘게 서양 환타지로 경험을 쌓아왔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우리 스타일의 게임이 블소다. 동양의 자부심을 그리고 싶다” 뭐야 이거 ‘우리 스타일의 게임’이라니, 이거 정말 기대하게 만드신다.

며칠 뒤 엔씨소프트는 ‘지스타 프리미어’ 행사를 개최했다. 일정에는 배재현 전무가 직접 답변자로 나선 ‘블소’ Q/A 일정도 포함돼 있었다. 한 기자가 배 전무에게 앞선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해 물었다. ‘우리 스타일’이란 말이 부담되지 않느냐고. 열정적으로 답변에 임하던 배 전무는 순간 인상이 굳어지며 답변을 잠시 머뭇거렸다. 이윽고 그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당연히 부담 된다”면서 “경영진과 개발진이 블소에 대해 생각하는 게 조금 다른 거 같다”고 털어놨다. 또, 그는 “우리는 무협게임을 만드는 것이 맞는데 회사에서는 시그니처 이스턴 판타지란 단어를 쓰고 있다”며 아주 간접적으로 ‘우리 스타일’을 배격했다. 김 대표님 아무래도 ‘시그니처 이스턴 판타지’보다는 ‘배재현 스타일의 무협’이 더 좋을 거 같습니다만.

요컨대, 기자는 당당하면서 솔직한 배 전무의 스타일에 필이 꽂혔다. 블러드러스트 팀의 수장으로써 앞으로도 계속 활약해주길 바란다. 아무래도 ‘시크릿 엔씨’에 김 대표를 곤란하게 만드는 인물로 등장시키는 부분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 엔씨소프트 배재현 전무(오른쪽 두번째)와 블러드러스트 팀


김철학 사무기획국장 “e스포츠는 공공재로 인식돼야”

팬심이 완전 기울었다.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협회)의 김철학 사무기획총장은 지난 5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스타크래프트의 원 저작권은 인정하겠으나 e스포츠에 관한 2차 저작권은 공공재의 성격이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관련 내용이 보도되자 팬들은 “그럼 원 저작권자 허락도 없이 중계권은 왜 팔아먹었냐?”냐는 식으로 강력하게 비난했다. 흐릿하게 남아 있던 팬심이 완전히 떠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왜 ‘공공재’라는 단어를 썼는지가 지금도 의문이다. 하나 더, 기자회견 이후에도 블리자드가 “우리는 원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는 부분은 더 의문이다. 블리자드와 블리자드코리아 간 소통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나?

물론 현재 양 측의 이해관계가 너무 꼬인 상황이라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에 대한 부분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협회 최원재 사무총장은 사석에서 “꿈에 블리자드코리아 한정원 전 대표가 등장해 괴롭다”며 현재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양 측의 갈등이 얼마나 심한 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협회 측은 내년부터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으니 기대를 해본다. 부디 ‘공공재’같은 실수는 하지 말길.

▲ 한국e스포츠협회 최원재 사무총장(왼쪽 두번째), 김철학 사무총장(오른쪽 두번째)


김택진 대표 “블소는 키보드로만 동작 가능해”

이화여대 강연에서 김택진 대표가 낭만적인 말만 골라서 한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블소’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게임메카에도 보도돼 시끌벅적했던 이 말은 바로 “블소는 키보드 단추 몇 개만으로 동작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쉬운 게임을 이야기하다 튀어 나온 말이다.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 게임은 앞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키보드 블소’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청중 대부분이 여대생이다 보니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적당한 표현을 쓴 것 같다. 그렇지만 기자까지 속아 넘어간 데다 실제 ‘블소’도 키보드만으로 동작이 불가능하니 어떻게 보면 청중 모두에게 ‘깜짝 거짓말’을 선사한 셈이다. 블러드러스트 팀에서 잠깐 일을 했다는 여대생이 “키보드만으로 동작 불가능했고 어려웠다”고 묻자, 김 대표는 “그래서 지금 폴리싱 작업 중”이라고 답했다. 정말 그런 줄로 믿었던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대표님.

사실 기자는 위 내용이 게임메카에 보도됐을 때 배재현 전무의 반응이 어땠는지 가장 궁금하다. 프리미어 행사에서 개인적으로 살짝 물어볼 걸 그랬다.

 

김기영 대표 “패 온라인 봐라, 게임 서비스 쉽지 않거든”

한때 게임 중독에 빠졌던 김기영 대표가 은근 팀 킬에도 취미가 있었던 거 같다. 사실 이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성질 뻗치지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은근히 재밌지 않나.

때는 지난 6월 22일. YD온라인은 T3엔터테인먼트(한빛소프트)가 개발한 ‘오디션2’의 프리미엄 오픈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Q/A 일정에 한 기자가 개발 일정이 늘어지는 이유에 대해 묻자 우리의 김 대표님께서 직접 나서 한 마디 해주셨다. “전작의 엔진이 확장성이 떨어지다 보니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사실 게임서비스라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패 온라인을 봐라. 쉽지 않지 않나(웃음)”

 

김 대표의 위와 같은 폭탄 발언에 행사장이 순간 폭소탄에 휩싸였다. 론칭 며칠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패 온라인’은 YD온라인 입장에서 아픈 기억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그 아픈 부분을 몸소 가격해 주심으로써 팀 킬에 성공한 셈. YD 온라인 유현오 대표의 바로 옆에 앉아 이런 말을 했으니 배짱 한번 두둑하다. “그런 말을 왜 여기서!”라는 고함이 행사장에 울려 퍼졌지만 누가 한 말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팀 킬 이후 유 대표는 “주가 하락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씁쓸한 답변을 이어가야 했다. 그래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유 대표의 인격에 슬쩍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 YD온라인 유현오 대표

사실 기자는 간담회 시작 전 유 대표와 직접 인사를 나눈 바 있다. 그러나 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건방지게도 명함을 받기만 하고 건네주지 못하는 무례함을 저질러야 했다. 다음에 유 대표를 다시 만난다면 꼭 명함을 건넬 생각이다. 사랑스런 미소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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