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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게임 역사 `무협판 와우는 언제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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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언제 봐도 설레는 단어다. 요즘에는 그 인기가 다소 수그러들긴 했지만 80~90년대까지만 해도 무협은 당대 최고라 일컬어질 만큼 그 인기가 높았다. 특히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김용의 ‘영웅문’이나 ‘의천도룡기’는 무협소설의 대중화를 이끌어내며 국내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남자들은 차가운 새벽까지 촘촘해진 눈을 부비며 무협소설을 읽고 ‘영웅’이 되는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바야흐로 남자들의 로망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무협은 곧 ‘동양의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이에 소설뿐 아니라 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 산업에서도 그 위용을 떨쳤다.

무협게임의 역사는 기다면 긴, 짧다면 짧은데 국내의 경우 PC패키지보다 온라인 게임의 15년 발자취와 함께 해왔다고 보는 게 옳다. PC패키지로 출시된 무협게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보편적으로 알려진 게임이 온라인 플랫폼에 특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쌍끌이식으로 나란히 발전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무협게임이다. 2011년 현재, 무협게임은 ‘블레이드앤소울’과 ‘열혈강호2’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두 게임 모두 대작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유저들의 기대치가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무협게임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 많은 아픔이 있었다. 한때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무협게임은 어느 순간 왜 갑자기 추락했을까? 그리고 올해 나올 두 대작은 어떤 형태로 반전을 노릴까? 그 역사를 되짚어봤다.

▲ 2004년에 출시된 무협활극액션 `와호장룡`

 

# 1. 무협 온라인 게임의 시대를 열다 ‘영웅문’

국내에서 최초로 탄생한 온라인게임은 96년 ‘바람의나라’다. 머그게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머드류에서 최초로 그래픽을 도입한데다 여럿이 함께할 수 있으니 충분히 온라인 게임이라 불릴만하다. 기원전 30년 고구려와 부여의 서사를 무대로 한 ‘바람의나라’는 무협게임의 한 줄기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정통 무협과는 거리가 있어 시초가 되진 못했다.

진짜 시초는 따로 있다. 바로 태울 엔터테인먼트에서 97년 내놓은 ‘영웅문’이다.

▲ 태울 엔터테인먼트의 최초 무협 온라인게임 `영웅문`


김용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웅문’은 정통 무협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내면서 무협 온라인 게임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 무협소설이나 영화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였던 만큼, ‘영웅문’은 뭇 남성들에게 생소한 재미요소로 다가와 차근차근 유저 풀을 확보해 나가게 된다.

‘영웅문’은 무협이란 소재에 가장 순수하게 접근했던 게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 보면 아주 단순하지만 다양한 무공과 경공 시스템을 최초 도입했고, 세력과 파벌을 명확히 확립하기도 했다. 생명력은 HP가 아닌 내공과 외공으로, 공격력은 내력과 외력으로 표기하는 등 추후에 등장할 무협게임의 기본 베이스를 만들어주는 발판 역할을 했다.

수련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는 부분도 그 느낌을 잘 살렸다. 사냥을 하면 ‘수련치’라는 게 하나씩 쌓이는데, 이를 이용해 레벨을 올리거나 무공의 능력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영웅문’은 5일마다 한번(실제 시간으로 15분) 날이 반짝이는데, 이날 수련장으로 가 내공이나 외공 훈련을 하면 그 수치가 상승하고 수련치 1개가 감소한다. 그리고 내공과 외공의 합이 일정조건에 맞으면 레벨이 오르는 형태다. 수련치 모으는 건 쉽기 때문에 성장에 있어 큰 구애를 받거나 하진 않았다. 레벨이 오르면 무공을 배울 수 있는데, 역시 ‘수련치’를 하나씩 소모해 부지런히 수련하다보면 기예가 쌓이면서 능력이 상승한다. 퀘스트와 사냥, 그리고 아이템으로 일관된 게임과 비교해보면 참 신선하면서 특이한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영웅문’은 한계가 있었다. 몇 년 동안 서비스되다보니 이를 유지할 콘텐츠가 필요했는데, 이게 한계에 부딪친 거다. 5년 정도 서비스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최고 레벨이었던 1415를 달성하고 끙끙거려 결국 차츰 그 인기가 수그러들었다. 여러 아쉬움이 남지만, 무협의 특징을 잘 살려낸 최초의 온라인게임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하다.

▲ 한달 정액값이 무려 38,500원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본인은 점심을 굶고...

 

# 2. ‘리니지’도 떨었다! 무협게임의 상승세

2000년대로 넘어가던 무렵, 국내 시장은 두 게임의 등장으로 큰 변화가 일고 있었다. 우선 98년 출시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가공할만한 인기를 누리며 게임유저수를 급격히 늘려나갔고, 99년 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의 출시로 PC방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당시 무협게임도 차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우선 지금도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액토즈소프트의 ‘미르의전설1’이 있다. 98년도에 출시된 이 게임은 고대신화 요소를 버무리면서 일종의 모험요소를 가미한 정통 무협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리니지’가 꽃을 피우기 전 시점이었던 만큼, 당시 유저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2000년도에 들어서 등장한 액토즈소프트의 ‘천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 시스템은 ‘영웅문’을 많이 벤치마킹했지만, 여러 콘텐츠에 커스터마이징 개념을 도입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무공이나 기술, 혹은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을 직접 만들 수 있었고, 어떤 건 채팅창에 이름만 입력해도 생성되기도 했다. 쇼킹하지만 당시 게임은 이래서 재밌었다.

▲ 천년의 매력은 역시 `삿갓`, 현재 액토즈소프트는 `천년2`를 개발 중이라고...


‘천년’ 역시 정통 무협을 표방했던 만큼 수련을 통한 성장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전투 시스템이 가장 인기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PK 시스템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결국 게임의 균형이 무너졌다. 당시 PK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기 때문. 이에 인기가 식긴 했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도 서비스가 유지될 만큼 영향력이 대단한 게임 중 하나로 평가된다. 게다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으로도 수출돼 한류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01년도에 걸출한 무협게임 하나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위메이드에서 내놓은 ‘미르의전설2’다. 당시 위메이드는 ‘미르의전설1’을 만들었던 박관호 대표가 액토즈소프트를 나와 설립한 회사다. 덕분에 IP 문제로 양 사 간의 잡음이 있기도 했다.

‘미르의전설2’는 발전된 그래픽과 강화된 액션성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물론 2D이긴 하나, 아바타나 배경 등이 3D 렌더링을 거친 후 2D 그래픽으로 완성되는 2단계 작업을 거침으로써 한층 발전된 모습이 일품이었다. 게다가 그간 게임이 단순히 움직이며 너 한대 나 한대 쥐어박는 뻣뻣한 액션이었다면, ‘미르의전설2’는 여러 동작을 추가해 액션성을 강화했다. 당시 ‘리니지’의 자리까지 위협할 정도로 큰 이슈를 만들어냈던 게임으로 기억된다.

또한, ‘미르의전설2’는 중국에서도 거대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정통 무협을 표방한 만큼 현지 내에서도 큰 지지를 얻었기 때문. 중국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은 결국 위메이드와 중국 샨다 게임즈가 큰 성장을 이룩하는 데 발판이 됐다.

결과적으로 바로 이 시기가 무협게임이 가장 위력을 떨쳤던 시기다. 해외에서는 97년도에 ‘울티마 온라인’이 등장하면서 스탠다드가 명확히 확립됐지만, 국내는 산업 자체가 성숙단계에 돌입하지 않았음으로 굳이 장르가 인기에 영향을 주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 우려먹기로 아쉬움을 샀지만, 그래도 인기작품 중 하나인 `미르의전설2`

 

# 3. 으악! ‘뮤 온라인’과 ‘라그나로크’가 너무 미워!

01년도 웹젠에서 내놓은 ‘뮤 온라인’은 국내 최초 풀 3D로 제작돼 시장에 폭풍을 일으켰다. 조악한 2D 그래픽 위주로 돌아가던 당시 시장 상황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뮤 온라인’의 등장에 무협게임은 잠시 주춤하게 된다. 수많은 유저들이 ‘뮤 온라인’의 화려함에 넋이 나가 우르르 넘어가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김학규 사단의 대표작 ‘라그나로크’까지 등장해 이슈가 됐었다. 결국 시장은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 3강 체제로 분할됐다. 게다가 3종의 게임 모두 서양 판타지 기반의 게임이었던 만큼, 무협 게임이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름을 알린 몇몇 게임이 출시돼 완전한 하락세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 출시 이후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뮤 온라인`


이때 당시 태울 엔터테인먼트는 차기작 ‘신영웅문’을 공개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웅문’을 서비스한 경험이 있던 만큼, ‘신영웅문’에서는 더 발전된 2.5D 그래픽에 무협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콘텐츠가 기반이 되는 샌드박스 스타일의 게임진행 방식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물건’이었지만, 시장 상황과 맞물려 결과는 아쉽게 됐다.

같은 해 삼성전자를 통해 출시된 ‘천상비’도 ‘신영웅문’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천상비’는 캐릭터 성장요소로 자체 개발한 RTG(Real Time Growth)를 적용함으로써 자유도를 부여했다. 게다가 머드게임 ‘무림크래프트’를 통해 3년간 게이머들에게 검증 받은 시나리오를 퀘스트라는 껍질에 담아내면서 콘텐츠도 강화했다. ‘신영웅문’과 마찬가지로 ‘물건’이었지만 ‘뮤 온라인’의 아성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해가 지난 02년, 마침내 무협게임에서도 풀 3D로 제작된 게임이 공개된다. 바로 씨알스페이스의 ‘디오 온라인’이다. 지난 무협게임이 쿼터뷰 형태의 고정된 시점 위주로 제공됐다면 ‘디오 온라인’은 풀 3D의 장점을 살려내 카메라 각도를 자유롭게 돌릴 수 있는 현대 온라인 게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따라 뿔뿔이 흩어진 무협게임 유저들은 하나둘 모으며 인지도를 쌓았으나, 추후 밸런스 문제와 지나친 캐시 아이템 정책으로 무너지게 된다.

 

▲ 신영웅문, 확실히 당시의 태울은 게임제작에 감각이 있었다

 

▲ 씨알스페이스의 `디오 온라인`, 풋풋합니다~ 네 정말 풋풋하네요

 

# 4. 무협 게임의 몰락과 정체성의 혼란

무협게임은 03년~04년도에 접어들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당시 무협은 ‘동양 판타지’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문화적인 가치가 뛰어나긴 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에서 ‘서양 판타지’에 확실히 밀렸다. 당시 유저들은 ‘반지의제왕’과 ‘에버퀘스트’에서 확립된 ‘검과 마법’을 더 선호했기 때문. 국내 인기작품 대부분이 서양 판타지 기반으로 제작됐다는 점도 한몫했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협게임의 자리는 점점 더 위축돼갔다.

쐐기를 박은 건 04년도 출시된 블리자드의 ‘와우’다. 사실 ‘와우’는 무협게임에 타격을 입혔다기보다,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 전체를 뒤흔들었다고 보는 게 옳다. 소름끼칠 정도의 완벽한 완성도와 풍부한 콘텐츠, 그리고 서양 판타지 특유의 느낌이 잘 묻어나는 스토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저들을 열광시키기 충분했다. ‘급’이 다른 외산 온라인 게임의 등장은 결국 한국 시장을 완전히 정복하다시피하며 그야말로 폭풍을 일으키게 된다.

 

▲ '와우'의 등장으로 국내 유저들의 눈높이도 상당히 올라갔다


그렇다면 ‘와우’가 출시되기 이전 국내 시장 상황은 어땠을까? 말 그대로 ‘혼란’이었다. 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너도 나도 ‘게임 제작’에 참여하는 모양새였기 때문. 이른바 양산형이라 불리던 온라인 게임이 ‘아무개 온라인’이란 이름으로 유행 타듯 쏟아져 나왔다.

상황이 이랬던 만큼, 이때 당시 가장 많은 온라인 게임이 등장했다. 무협게임도 꽤 많이 등장했으나, 방향성과 콘텐츠 확장의 어려움이 있어 큰 성공작은 탄생하지 못했다.

확실히 방향성 문제는 곤욕이었다. 90년대 후반에는 헝그리 정신을 무기 삼아 ‘재미’만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산업의 발전과 맞물려 리스크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쉽지 않았다. 무협 매니아들의 요구도 날이 갈수록 전문화돼 전부 응해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콘텐츠를 짜 내기가 어려웠다. 무협은 서양 판타지와는 다르게 수련 과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생활 콘텐츠’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흥미롭게 연출하기 까다로웠다. 게다가 최종 콘텐츠도 집단으로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는 서양 판타지와 달리, PvP 외에는 그렇다할 소스가 없었으므로 유저를 확보하기도 무리가 있었다. 게임만 내놓으면 유저들이 알아서 웃고 떠들며 노는 ‘커뮤니티 콘텐츠’도 한계에 도달했던 시점이었다.

결국 이 시기부터 무협게임은 정체성을 잃고 서양 판타지의 모양새를 따라가는 방향으로 제작되기 시작한다. 퓨전 세계관을 차용한 게임도 점차 늘어갔다. 무엇보다 아이템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이는 ‘리니지’의 강화 시스템을 차용한 것으로 이른바 ‘닥사’를 통해 돈을 모으고, 더 좋은 아이템을 구입하거나 만들어 전쟁에 참여하는 그런 방식이다. 결국 무협의 본질이나 기조, 철학 따위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 05년 출시된 `구룡쟁패` 요금제 문제와 퍼블리셔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 출시 이후 갑자기 서비스를 닫아버린 `운 온라인`

 

▲ 애니메이션 풍의 무협게임으로 제작된 `무크(묵 온라인)`

 

# 5. 엠게임과 알트원, 무협게임의 돌파구를 찾다

‘와우’의 등장을 기점으로 한 우울한 시기는 2011년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수많은 무협 온라인게임이 시장에 공개됐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거나 금방 서비스가 종료됐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선방한 무협게임 몇 종이 있긴 했다. 비록 시장을 흔들만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뚜렷한 특징을 토대로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자리를 잡았던 것.

우선 엠게엠의 활약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04년도에 ‘열혈강호 온라인’과 ‘영웅’을 동시에 론칭했고, 05년도에는 ‘귀혼 온라인’까지 3종의 무협게임을 연거푸 내놓으며 저력을 과시했기 때문. ‘열혈강호 온라인’은 확실히 영리한 도전이었다.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열혈강호’는 당시 1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랑받는 무협만화였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해 게임을 제작했으니 서비스 이후 초기 반응은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열혈강호 온라인’의 인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그 감동까지 이어가진 못했고, 무엇보다 온라인 게임으로써 갖춰야 할 미덕이 부족했다. 다행히 ‘열혈강호 온라인’은 중화권에서 큰 지지를 받으며 나름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참고로 개발사인 KRG소프트는 지난 01년에도 패키지 ‘열혈강호’를 내놓은 적이 있다. 온라인의 초석이 된 작품으로, 솔직히 온라인 버전보다 더 재밌었다.

▲ 열혈강호 온라인(상)과 열혈강호 패키지(하), SD캐릭터도 제작돼 느낌이 비슷하다


‘귀혼’은 상식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무협게임은 무거운 MMORPG로 제작되는 게 대세였는데, ‘귀혼’은 이를 깨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캐주얼 횡스크롤 RPG로 승부수를 띄웠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적중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고, 모두에게 ‘무협은 MMORPG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 작품이 됐다.

알트원(전 기가스소프트)의 ‘십이지천’과 ‘십이지천2’도 명성을 날린 무협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특히 타겟층과 특징을 명확하게 구분했다는 점이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콘텐츠가 전쟁 외에 크게 도전할만한 게 없다고 본 나머지 아예 작정하고 전투를 부각시켜 ‘최고의 전쟁 무협 게임’으로 평가받았고, 성인층을 메인 타겟으로 잡았던 만큼 고어 시스템이나 옷이 벗겨지는 스트립시스템도 적용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별히 그래픽이 뛰어나지도, 게임성이 출중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확실히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지난 해 씨알스페이스를 통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세블소울즈’도 선전했다. ‘디오 온라인’ 이후 깨달음이 있었는지, ‘세븐소울즈’는 정통 무협이 아닌 서양 판타지와 퓨전된 형태로 제작돼 눈길을 끌었고, 게임 기본흐름도 ‘와우’의 방식을 채택하고 완성도를 끌어올린 덕분에 큰 지지를 받았다. `십이지천`과 마찬가지로 ‘잭팟’ 등의 도박적인 요소를 담아내 완전히 성인층을 겨냥한 것도 흥행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 십이지천 시리즈의 또 하나의 인기비결은 `속도감` 특히 레벨업 속도가 빨랐다

 

# 5. ‘블레이드앤소울’과 ‘열혈강호2’에 기대를 건다

앞서 밝혔지만 올해에는 두 기대작 ‘블레이드앤소울’과 ‘열혈강호2’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과연 두 대작은 성공을 거두면서 시장에서 다시 ‘무협 바람’을 몰고 올 수 있을까?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무협 유저들을 움직이게 할 만큼, 무협게임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을까?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은 충분히 기대를 해봐도 된다. 한 차례 테스트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로 게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 '블레이드앤소울'은 시나리오와 관련된 인물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우선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퀘스트 진행 방식이긴 하지만, 다양한 컷 씬과 환경변화(퀘스트를 마무리했을 경우 주변 환경이 변하는) 시스템을 적용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였다. 게다가 인물에 포커싱을 둠으로써 한편의 무협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살렸다. 실제로 게임을 하다 보면, 절벽에서 떨어진 후 이상한 동굴에서 기연을 만나 성장하는 컷 씬도 준비돼 있다. 살짝 유치하지만 무협 매니아라면 ‘그래 바로 이거지!’라며 무릎을 칠만한 대목 아닌가. ‘내가 중요한’ 방향으로 게임이 흐르는 만큼, 최소한 실망은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무협 세계에서는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줄 아리따운 여성의 등장은 불가피하다. 영리한 엔씨소프트는 이를 알고 일찌감치 김형태 AD를 섭외했다. 우리 모두 서비스가 시작되면 고민하지 말고 남성 캐릭터를 선택하자. 월드 내에 수많은 여성 캐릭터가 엉덩이를 살랑이며 당신을 반겨줄 테니까. 그래 뭐, 이것도 나쁘지 않지.

전투도 기존과는 다른 느낌이다. 15레벨을 갓 넘겼을 때 한 유저와 PvP 전투를 한 적이 있는데, 막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눈치만 보며 막기 버튼만 다다다 누른 기억이 있다. 막기 성공 이후 발동되는 스킬이 좋기 때문이다. 원래 무림고수라는 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 수련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쪼렙 시절의 우물쭈물한 전투 과정은 하나의 수련이자, 무협의 백미인 성장 과정을 다룬 하나의 ‘생활 콘텐츠’로 각인될 수도 있을 거다.

▲ NPC와의 전투로 수련한 뒤, 플레이어와의 전투를 대비해야 한다


조작법은 큰 화두였다. 정면에 위치한 대상이 자동으로 타겟이 잡히기 때문에, 상대가 움직이면 그만큼 맞추는 것도 어렵기 때문. 다수의 대상과 전투를 벌이면 더 곤욕스럽다. 스킬 버튼은 A, B, C, D 정도로 심플하게 구성되지만, 모든 버튼은 전투상황에 맞춰 기능이 변하기 때문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A만 연타해 전투할 수도 있지만, 순서를 바꿔 A-C-D나 B-A-C-D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적응하고 버튼만 잘 눌러주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무협전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느끼는 유저도 많겠으나, 무협이란 기본 근간을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한 도전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퓨전 세계관. 확실히 정통 무협으로만 가기에 콘텐츠의 영역을 확장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이에 ‘블레이드앤소울’은 스스로를 `시그니저 이스턴 판타지`라 칭하고, 더 다양한 볼거리기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대형 몬스터도 나오니 PvP 외에도 다양한 엔드 콘텐츠를 짐작해볼 수 있다.

▲ 님 이거 게임 맞아요? 그렇답니다


‘열혈강호2’는 세부 정보가 하나도 공개되지 않은 만큼, 언급할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지스타에서 공개된 영상을 보면 손에 힘이 들어가며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 특히 전작의 SD캐릭터가 아닌 실사와 같은 느낌의 그래픽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경공술로 빠르게 달리며 중간 중간 터져주는 액션의 묘미가 가히 일품이다. ‘진짜 플레이 영상이 맞는가?’를 두고 논란이 됐지만, 연출된 영상은 아니라고 하니 마음껏 기대를 해봐도 된다.

그리고 엠게임이 가진 서비스 경험과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다. ‘열혈강호’나 ‘영웅’ 이후 무협게임으로 재미를 본 나머지 ‘열혈강호 사커’나 ‘풍림화산’ 등의 망작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이를 서비스하며 얻은 교훈, 그리고 취할 것과 버릴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는 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사실. 게다가 ‘열혈강호’는 01년 패키지부터 온라인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이 노력을 쏟아 부은 만큼, 이번 ‘열혈강호2’는 분명 다른 게임이 될 것이다.

무협게임의 15년 역사를 들춰보니, 확실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초기에 잠깐 빛을 발했을 뿐, 그 이후부터는 서양 판타지에 늘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협은 여전히 문화적인 가치로써 그 가능성이나 힘이 무궁무진하다. ‘블레이드앤소울’이 됐든, ‘열혈강호2’가 됐든 무협게임의 스탠다드라 불릴만한 AAA급 게임이 하나 탄생해주고, 이 외에 국내에서 준비 중인 다수의 무협게임이 뒤를 받쳐준다면 시장의 ‘대세’는 충분히 바뀔 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한민국을 통째로 뒤흔들 그런 매끈한 무협게임 하나가 이젠 나와 줄 때가 됐다. 당신이 만약 무협 매니아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운기조식을 시전하며 몇 개월 후의 폭풍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열혈강호2 플레이 영상, 볼 때마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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