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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장관님 타이밍이 심히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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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게임업계는 집집마다 무분별하게 땔감으로 쓰고 있던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불씨가 화재로 번져 활활 타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가만 놔두면 불길이 커져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될 모양새다. 마을에는 여러 주민과 단체들이 있다. 대부분은 이 불을 한시라도 빨리 꺼야 한다며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물을 얼마나 뿌릴 지부터, 더 이상 불씨를 숨겨놓지 못하게 하는 규칙을 만들자는 이야기, 불을 쓸 때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쓰는지 알리라는 규범 제정까지 왁자지껄하다. 물론 그 중에는 불씨를 사용하는 집들의 자율에 맡기자는 자치회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 와중, 마을을 넘어 고을 전체를 관할하는 새 원님이 부임해 마을을 방문하셨다. 한창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임마을에 원님이 방문하자 많은 주민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불을 어떻게 끌 건지, 어떤 식으로 지휘할 것인지, 이를 위해 얼마만큼 투자할 것인지… 과연 어떤 얘기가 나올 지 모두가 궁금해했다. 그리고 원님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 테마파크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게임업계 간담회에서 게임 테마파크 건설 추진 TF를 만들고 싶다고 발언한 황희 장관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게임업계 간담회에서 게임 테마파크 건설 추진 TF를 만들고 싶다고 발언한 황희 장관 (사진: 게임메카 촬영)

22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신임 장관과 게임업계 관계자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비유하면 대략 이런 상황이다. 물론 간담회에서 오로지 테마파크 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문체부가 발표한 간담회 주요 내용부터 '게임 테마파크 조성 추진 관련 논의 등' 이라 표기돼 있었고, 실제 현장에서 나온 얘기도 테마파크가 메인이다. 실제로 황 장관은 TF라도 구성해서 게임 테마파크를 만들고 싶다며 열정을 드러냈다.

반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원론적 이야기만 했다. 정리하면 ‘자율규제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고 있고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국내 게임산업 전반으로 확산될까 우려스러우니, 지금이라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정화를 통해 이용자의 불신을 해소하고 게임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도다. 규제에 대한 의도는 전달됐으나, 해당 간담회를 취재한 기자들도 다소 맥이 빠질 정도로 형식적인 답변이었다.

지금 같은 시국에 문체부 장관이 주요 게임사 대표들을 모아서 간담회를 열었다면, 주요 내용은 테마파크가 아닌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정 차원에서의 해결책 제시가 되었어야 한다. "TF라도 구성해서 추진하고 싶다"의 주체도 테마파크가 아니라 확률형 아이템이었어야 했다. 황 장관의 말처럼 국내 게임산업 전반에 부정적 인식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만 테마파크건 뭐건 논의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확률 테마파크를 만들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황 장관은 자타공인 부동산 전문가다. 도시공학 박사 출신이고, 20대 총선 국회의원 당선 후에는 지역구 재건축 문제 해결과 종부세 인하 등을 추진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부동산 관련 직책을 역임했으며, 국토교통귀원회와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이쪽 분야에서 많은 행보를 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 관련 경력이 없는 비전문가 출신인 셈인데, 이는 취임 전부터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던 황 장관의 아킬레스건이다. 지금은 이러한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현안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그에 맞춘 방향 제시가 필요한 타이밍인데, 가지고 나온 것은 본인의 전문분야인 부동산과 연관된 테마파크였다.

물론,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체부 수장으로서 시야를 넓게 가지는 것은 좋다. 테마파크 역시 찬반은 있지만, 게임업계에 필요한 것 중 하나이긴 하다. 그 외에 이 날 간담회에서 짧게나마 언급한 중국 판호 문제나 게임 질병코드 관련 대처, 주 52시간 근무제 관련 내용들도 우선순위에서 약간은 밀리지만 확실히 중요한 사안들이긴 하다. 그러나, 일단 불 먼저 꺼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안들에 중점을 맞추는 것은 미스 타이밍이다. 슬슬 이쯤에서 주변인 중 누가 황 장관에게 귀뜸해 줘야 하지 않을까. 

"장관님, 그 얘기 꺼내시기엔 타이밍이 심히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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