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는 역사가 짧고 평균연력이 비교적 젊기에, 타 업계에 비해 당사자 부고를 접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1일 저녁 들려온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이사의 부고 소식은 너무나도 급작스러웠다. 김 이사와 개인적 친분이나 추억이 있었던 이들의 충격은 훨씬 더했을 것이다.
김정주 이사는 1968년생으로, 1986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 당시 일본항공(JAL) 장학 프로그램으로 일본에서 몇 달간 연수를 하며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일본 게임산업을 직접 마주했으며, 이는 향후 넥슨의 일본 상장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송재경과 함께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밟았으며, 1996년에는 박사 과정을 중퇴하고 송재경 등과 함께 넥슨을 공동 창업해 바람의 나라 개발을 시작했다.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2013년, 게임메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온라인게임 개발을 위해 한글과컴퓨터를 퇴직한 후 정주와 만났어요. 옛날부터 손발이 잘 맞았고, 창업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히 꺼내며 언젠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세계를 주름잡을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했었거든요. 당시 저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학생들이었는데, 정주가 발로 뛰며 SCSC(서울대 컴퓨터 스터디 클럽)을 통해 5,000만 원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고 이를 발판 삼아 역삼동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렸어요. 그게 바로 넥슨의 시작이었죠. 이후에도 정주가 창업과 사업 운영에 필요한 행정업무를 도맡고 고가의 외주 작업까지 유치해 와서 저는 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고, 바람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어요"
바람의 나라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그래픽 MMORPG'라는 설명처럼 온라인게임 시대의 막을 열었다. 이후 김정주는 넥슨을 이끌며 어둠의 전설, 퀴즈퀴즈, 일랜시아, 크레이지 아케이드,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히트작을 연이어 내놨다. 여기서 퀴즈퀴즈는 세계 최초로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해 성공시키며 시간제와 정액제 뿐이던 온라인게임 시장에 새로운 모멘텀을 부여했다.
넥슨이 앞서 닦은 길을 통해 국내 게임업계는 눈부신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한계에 부딪혀 있던 PC패키지를 벗어나 온라인게임에 집중하면서, 2000년 2조 9,682억 원이었던 게임시장 규모는 불과 5년 만인 2005년 8조 6,798억 원 규모로 3배 가량 급성장했다. 수많은 온라인게임이 출시됐고, 게임업계에서 변방의 조그마한 시장이었던 한국은 온라인게임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이후 2011년에는 넥슨을 동경 증시 1부에 상장시켰다. 국내가 아닌 일본에 상장한 이유는 학창시절 다녀온 일본 연수부터 국제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 세계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김 이사의 생각 등이 더해진 결과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2년, 대구에서 열린 KOG 아카데미에서 김 이사가 직접 일본 상장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은 바 있다.
"도쿄, 나스닥, 뉴욕 시장은 (협소한 국내 시장에 비해)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큰 시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고민하고 있으며, 안정적이고 큰 시장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최근(2010년 전후) 닌텐도, 소니, 코나미와 같은 일본 게임사들의 상황이 힘들다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IP를 보면 훌륭한 것들이 많이 있고 이에 비하면 넥슨의 IP는 아직도 미약한 편이라고 느꼈다. 이런 부분이 결합되어 일본 상장의 계기가 됐다. 일본 상장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한 단계일 뿐이며, 향후 넥슨코리아, 넥슨차이나, 넥슨아메리카 등 꾸준히 전세계 곳곳에 각 지역 사용자를 위한 지역 법인을 설립하는 꿈을 꾸고 있다"
김 이사는 일본으로 본사 이전을 단행하기 전인 2006년부터 넥슨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 지주회사인 넥슨홀딩스(NXC) 대표로 재임했다. 2013년에는 NXC 본사를 제주로 이전하고, 넥슨컴퓨터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16년 만에 NXC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사내이사로 재임해 왔다.
얼핏 게임 개발과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지주회사로 물러난 것처럼 보였지만, 다양한 관계자 발언과 공개 행사를 보면 김 이사는 지속적으로 넥슨의 신작 개발을 촉구하고 뒤에서 응원해 왔다. 실제로 2014년, 김 이사는 NDC 14 토크쇼 섹션에 올라 넥슨 일본법인 오웬 마호니 대표와 당시 넥슨코리아 박지원 대표에게 "넥슨은 지난 10년 간 게임이 없다"라며 재미있는 게임 개발에 대해 공개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넥슨코리아 이정헌 대표 역시 1일, '김정주 사장님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사내 공지를 통해 "이 사회에서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도 고인의 생각이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여정에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고 밝히며 넥슨 대표로서의 여정에 김 이사가 멘토 역할을 했음을 밝혔다. 이정헌 대표는 넥슨 공채 출신 CEO로, 김정주 이사가 넥슨 대표를 맡고 있던 2003년 넥슨에 입사했다.
넥슨을 창업하고 한국 게임업계의 성장을 이끈 김정주 이사의 급작스러운 비보는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국내외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넥슨 게임을 즐겨 온 게이머, 정치권과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애도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본 기자 역시 그가 문을 연 온라인게임 시대에서 약 25년 간 즐거워했던 한 명의 게이머로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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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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