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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가 한 달에 한 번 보드게임 개발사 포푸리의 우치 대표와 함께 좋은 보드게임을 소개하는 새로운 코너를 시작합니다. 보드게임 개발자이자 보드게임 회사 대표가 보여주는 보드게임', 일명 [보보보보] 입니다.

로그라이크 덱 빌딩 게임 중 인기 타이틀로 손꼽히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는 이를 기반으로 한 보드게임도 있습니다. 디지털 게임인 원작에서 화면을 보며 즐겼던 카드 전략을, 이제는 실물 카드를 손으로 만지며 테이블 위에서 펼칠 수 있는데요, 실물로도 원작처럼 수백 시간을 푹 빠져 즐길만한 매력을 살렸는지, 디지털 방식인 원작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 요소를 갖췄는지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는 디지털 방식으로 먼저 접해봤는데요, 이때도 ‘이건 보드게임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턴제 기반의 카드 전투, 덱 구성의 중요성은 보드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들이죠. 그래서 보드게임으로 나온다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드게임으로 완성된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직접 플레이 해본 결과 제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보드게임 개발자로서 덱 빌딩과 로그라이크라는 원작의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실물로는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실물 카드 게임에서 로그라이크를 살린 비결은?
우선 구성품부터 살펴봅시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보드게임은 압도적인 박스 크기만큼 구성이 풍성합니다. 수백 장에 달하는 카드에는 원작 게임에 등장했던 캐릭터 특성과 기술이 상세히 구현되어 있습니다. 디지털 게임에서는 자동으로 처리되던 부분을 실물에서는 직접 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전략적인 결정에 대한 무게감이 커집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원작 특징인 로그라이크 요소를 실물로 구현해 낸 방식입니다. 로그라이크의 가장 큰 특징은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맵이나 등장하는 몬스터가 달라지는 것인데요, 보드게임은 제작되는 즉시 구성품이 고정되어 매번 구조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보드게임을 만든 제작자들은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개발자들이 낸 해답은 이렇습니다. 지도 사이사이에 빈칸을 만들고 그 위에 무작위로 맵 토큰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배치된 토큰에 따라 플레이어는 매번 다른 경로와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죠. 몬스터 역시 각 챕터마다 준비된 몬스터 카드를 섞어 무작위로 등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더 나아가 1막, 2막에서 각각 다르게 마련된 몬스터와 지도는 플레이를 진행할수록 난이도가 점차 상승하며 도전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 경우 구성물이 늘어나며 제작 비용이 증가하지만, 그런데도 비디오 게임에서 느꼈던 재미를 실제 환경에서도 유사하게 구현하려 노력한 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원작 자체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 아닐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제작자로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특히 컬렉터스 에디션에는 금속 코인도 포함되어 있어 몰입감이 한층 더 높아집니다. 네오플랜으로 제작된 플레이어 판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해주며, 이런 구성품들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 원작 팬이라면 하나쯤 갖고 싶을 만한 하나의 컬렉션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습니다.

원작 게임성, 보드게임에서도 비슷하게 살렸다
이어서 살펴볼 부분은 플레이입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보드게임은 디지털 버전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맵을 따라 이동하며, 도착한 칸에 따라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주로 전투가 많은데요, 각 캐릭터는 고유한 시작 덱을 가지고 시작하며 전투가 끝날 때마다 보상으로 카드와 금화를 얻어 덱을 쌓아갈 수 있습니다.


적의 공격 패턴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주사위를 통해 결정됩니다. 플레이어 행동 턴 전에 주사위를 굴리기 때문에 다음 공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데요, 이는 원작에서 적의 다음 행동을 미리 보여주는 부분과 유사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방어를 강화할지, 공격에 집중할지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카드 조합과 유물, 포션 시스템까지 보드게임에서도 원작 특성을 대부분 구현해냈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만 디지털이 아닌 실물 카드게임이기에 모든 계산을 직접 해야 한다는 부분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이 점은 보드게임 경험이 많지 않다면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2인 플레이 체험: 함께하는 재미와 도전적인 난이도
플레이 방법을 익힌 후 본격적으로 진득하게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보드게임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슬레이 더 스파이어 원작을 500시간 넘게 즐긴 플레이어와 2인으로 해봤습니다.
게임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피해를 계산하거나 공격을 받았을 때 처리할 방법을 파악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게임에서는 모든 계산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과정이 간편했지만, 보드게임에서는 자동으로 처리되는 부분이 없어 손수 해야 한다는 점이 초반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때론 수고로움이 오히려 보드게임의 중요한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고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임에 집중하게 됩니다. 특히 보드게임에서는 이런 계산 과정을 추상화된 토큰이나 미플을 직접 움직이며 진행하는데, 실물을 만지는 촉각적 경험이 디지털 게임과는 다른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다른 유저와 현실에서 만나 카드를 직접 만지며 함께 플레이한다는 경험 자체는 새로웠습니다. 다만 플레이어 수에 맞춰 몬스터 라인이 열리는 구조 때문에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아진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첫 번째 게임에서는 보스를 만나기도 전에 엘리트 몬스터에게 사망했습니다.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보스에게 패배했죠. 생각보다 게임이 어려웠습니다.


1인 플레이: 진정한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맛
2인 플레이를 해본 후 혼자서 클리어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에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쾌적했습니다.
1인 플레이의 가장 큰 장점은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몬스터 라인이 하나만 열리기 때문에 전략 설계가 간단해지고, 원작 경험과도 가장 유사했습니다. 라인 하나만 신경 쓰면 되니 게임이 상대적으로 쉬워졌고, 엘리트 몬스터나 보스 전투도 난이도가 적절해서 시간만 충분하다면 마지막 보스까지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1인 플레이용으로 제공되는 특별 주사위 아이템이 난이도를 적절히 조정해줍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게임 초반에 '황금티켓'을 획득해 희귀 보상 카드를 얻은 것입니다. 또 중반에 '텅스텐 막대'를 얻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조작된 주사위'의 방어력이 거의 두 배가 되었던 적도 있는데요, 덕분에 엘리트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와 싸울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혼자서 즐길 때는 본인의 페이스에 맞춰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각 카드의 효과를 살펴보며 천천히 고민하고, 이를 기반으로 덱 구성에 대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여유로운 플레이는 보드게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디지털 게임과 달리 보드게임은 모든 구성품과 정보가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습니다. 각 캐릭터의 특성과 기술 카드를 미리 살펴볼 수 있어 전략을 세우기에 유리합니다. 전략 구상을 즐기는 플레이어라면 게임 시작 전 카드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죠.
혼자 플레이할 때의 또 다른 장점은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몇 단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도해 볼 수 있고, 심지어 패배했더라도 혼자라면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다시 도전하는 가능합니다.
원작 팬이 홀로 즐기기 딱 좋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보드게임은 게임 굿즈로서도, 실제 게임으로서도 준수한 완성도를 지녔습니다.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원작을 좋아하는 팬들이 즐길 때, 그리고 1인 플레이로 도전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구성품의 디테일, 원작 시스템을 충실히 반영한 메커니즘을 보면 이 게임은 팬들을 위한 ‘플레이 가능한 굿즈’로 기획된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몬스터와 기술 카드, 피규어 등 원작 세계관을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팬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나 이 게임은 1인 플레이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인 플레이에서는 한 명이라도 사망하면 게임이 종료되는 규칙 때문에 변수 관리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또한 깊은 전략 고민이 필요한 게임 특성상 여러 명이 플레이하면 시간적으로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플레이어 본인 뿐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유롭게 나만의 페이스로 즐기고 싶다면 1인플을 추천합니다.
여러 계산을 손수 해야 하기에 보드게임에 익숙하지 않다면 진입장벽이 다소 높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보드게임을 자주 즐기는 플레이어라면 시스템의 완성도와 전략적 깊이에 충분히 만족할 만합니다. 실제로 제가 자주 만나는 그룹의 '유로게임(운보다 전략적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식 보드게임 장르)' 플레이어들은 원작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대체로 만족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슬레이 더 스파이어 보드게임은 원작의 핵심을 잘 담아내면서도, 보드게임만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성공적인 사례라 평가합니다. 원작 게임의 팬이라면, 전략적인 보드게임을 즐긴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합니다.
우치평범한 보드게임 개발자.보드게임 회사 '포푸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보드게임 플레이로그로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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