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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게임광고] YS는 잘맞춰? 정치풍자 황금기 명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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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YS는 잘맞춰'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5년 1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YS는 잘맞춰'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5년 1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우리는 예로부터 해학의 민족으로 유명했습니다. 해학의 꽃은 역시 정치풍자가 아닐까 싶은데요, 사회적 문제와 이슈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사실을 지적하고 관심을 환기시키는 정치풍자는 시대 흐름과 당시 민심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남기는 기록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몇 년 새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으로 국내에서 이런 정치풍자 문화가 사라지면서,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런 국내 정치풍자 문화의 황금기는 90년대가 아닐까 합니다. 독재 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함에 따라 신문과 방송, 도서 등 각종 매체들은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호쾌한 정치풍자를 여과 없이 다루기 시작했죠. 당시 정치풍자 희극의 1인자였던 코미디언 김형곤 씨를 비롯해, 명작이라 불리는 신문 만평들이 물 만난 듯 활약했습니다. 게임도 예외는 아니었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기로 여겨졌던 대통령과 거물 정치인들을 코믹하게 등장시킨 90년대 정치 풍자게임 광고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YS는 잘맞춰'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YS는 잘맞춰'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첫 번째 광고는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5년 1월호에 실린 ‘YS는 잘맞춰’ 입니다.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인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대통령 각하를 희화화해서 아이들의 놀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게임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꽤나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참고로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도가 굉장히 높던 시기였죠.

일단 광고를 살펴보겠습니다. 도복을 입고 야구빠따(;;)를 든 김영삼이 손으로 ‘03’을 그리고 있고, 그 주변으로 덩샤오핑으로 보이는 중국 캐릭터와 빌 클린턴으로 보이는 미국 캐릭터가 겁을 내며 쫒겨가고 있습니다. 광고에서 보이다시피, 이 게임은 90년대 초중반 세계 정세를 배경으로 한 게임입니다. 한국의 김영삼을 비롯, 일본의 호소카와 총리, 미국의 빌 클린턴, 중국의 덩샤오핑, 프랑스의 미테랑,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러시아 보리스 옐친 등 다양한 세계 정상들이 등장하죠. 어디까지나 풍자 게임이기 때문에 실명 언급은 없습니다만, 누구나 알아볼 법한 모습들입니다.

퍼즐과 격투(;;)로 각국 정상들을 깨부수는 게임이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퍼즐과 격투(;;)로 각국 정상들을 깨부수는 게임이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참고로 이 게임은 꽤나 독특합니다. 광고에는 ‘종합 액션 RPG 게임’ 이라고 쓰여 있는데, 실제로는 특정 캐릭터를 선택한 후 각 국가를 돌며 퍼즐이나 격투(!?) 등으로 승부를 내는 대전 게임입니다. 게임 내에서는 외교전이라고 표현됐는데요, ‘03파’ 라고 명명된 장풍을 쏘며 레슬러 클린턴을 쥐어패는 YS를 보고 있자면 꽤나 파격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5.25인치 디스크 시대에도 이런 게임이 있었다는 것이 꽤나 놀랍기도 하고요.

국내 정치판을 그대로 담아낸 '헬로우 대통령'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국내 정치판을 그대로 담아낸 '헬로우 대통령'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두 번째 광고는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7월호에 실린 ‘헬로우 대통령’ 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가 거의 끝나가고,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선거의 윤곽이 드러날 때 나온 본격 선거 게임이죠. 일단은 풍자 게임이기에 2001년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가상의 후보들이 나오지만, 역시나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1997년 당시 대선 후보 혹은 국내 거물 정치인으로 평가받던 이들이 가득합니다.

광고에는 총 7명의 캐릭터가 보이는데요, 그 중 ‘???’로 표현된 창작 캐릭터를 제외한 7명은 딱 봐도 현실 정치인을 베이스로 제작됐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 개혁을 완성시키기 위해 재출마했다는 김영웅은 아무리 봐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그 옆의 한국 야당의 산 증인인 김대운은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김대중이죠. 그 밖에도 김종필 전 총리를 쏙 빼닮은 김필승,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과 경합을 벌인 이회창을 연상시키는 이창조, 민주당과 신민당 총재였던 박찬종에서 한 글자만 바꾼 박찬성, 이홍구 전 총리를 그대로 캐리커쳐 한 것 같은 이홍익, 이한동 전 총리의 특징을 그대로 가진 이한국까지. 그야말로 당시 거물 정치인이 총 출동했습니다.

캐릭터 소개를 확대해서 잘 보면 더욱 풍자적이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캐릭터 소개를 확대해서 잘 보면 더욱 풍자적이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캐릭터 소개를 보면 더욱 풍자적 요소가 강합니다. 이창조 후보는 ‘대쪽 판사’라는 별명을 가진 이회창의 특징을 반영해 ‘일찍이 대나무 농사를 짓다가 뜻한 바 있어 법조계에 투신’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고,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우유 CF에 출연한 박찬종 총재의 특징을 반영한 박찬성은 ‘날리던 CF 모델 출신’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실세 김종필을 풍자한 김필승은 ‘5.16 혁명 때 정치에 입문’했다고 되어 있군요. 배경을 알고 본다면 꽤나 재밌는 문구들입니다.

이러한 정치 게임들은 당시 우리나라와 그 주변 정세 및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위에 소개된 대부분의 국내/외 정치인들은 2019년 현재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그 중 일부는 교과서에 실리는 역사 속 인물이 됐습니다. 그런 정치인들을 담은 당시 게임들은 그 어느 책보다 실감나는 교육 자료이자 역사 사료입니다. 풍자 게임이 전멸하다시피 한 지금, 2019년 정세를 담은 정치풍자 게임이 하나쯤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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