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영웅전설 시리즈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1~2편을 포함하는 이셀하사, 3~5편 트릴로지인 가가브, 그리고 현재까지 총 9편이 나오며 현재진행형인 궤적 시리즈죠. 그 중 국내 올드 게이머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은 가가브 트릴로지 가 아닐까 합니다. 궤적 시리즈 역시 나름 탄탄한 세계관과 팬층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한동안 한국어판이 발매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거든요.
게임메카 기자들 사이에서도 '영웅전설은 가가브까지!'라는 의견과 '궤적 시리즈의 매력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라는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90년대 게임잡지에 실린 이셀하사와 가가브 트릴로지 5작품 광고를 살펴보겠습니다. 궤적 시리즈 광고를 다루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 시절 궤적 시리즈가 국내 정식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이니 오해 없으시길!
첫 번째는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6년 1월호에 실린 영웅전설 1 광고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에서 분리 독립한 지 얼마 안 돼서,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여전히 드래곤 슬레이어 취급을 받기도 했죠. 광고 1면에 쓰여진 '드래곤 슬레이어 영웅전설'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듯 말이죠. 다만, 국내는 일본에 비해 6년, 북미에 비해서도 4년이 지난 후 출시됐기에 영웅전설이라는 시리즈가 완벽히 정립된 상태였습니다. 이미 일본에선 영웅전설 4 발매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으니까요.
당시 광고를 보면 주인공인 세리오스와 디나를 비롯해 게일, 소니아, 로우, 류난 등 동료들이 나옵니다. 반갑다면 꽤나 반가운 얼굴들이죠. 용량이 3.5인치 디스켓 3장이라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인데요, 당시 디스켓 1장이 1.44MB였으니 전체 용량은 4.3MB 정도였습니다. 2020년작 RPG인 발더스 게이트 3 앞서 해보기 버전이 저장 용량 150GB를 요구하니, 약 24년 만에 RPG 설치용량이 3만 배 넘게 상승했네요. 출시연도로 정확히 따지면 30년만이긴 하지만요.
두 번째 광고는 1편으로부터 7개월 후, 1996년 8월호 잡지에 실렸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에선 영웅전설 시리즈가 꽤 많이 출시된 터라, 첫 소개가 조금 늦은 한국에선 꽤 빠르게 시리즈를 전개해 나갔습니다. 세리오스와 디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트라스가 메인에 서 있고, 그 외에 란도, 플로라, 신디 등 주인공 일행이 보입니다. 전작에 비해 광고 지면이 조금 줄어들었는데, 아무래도 영웅전설이라는 브랜드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광고에서는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단어가 없어짐과 동시에 전작과의 연계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전작의 친숙한 캐릭터들이 나타난다는 점과 '전편에서 활약한 영웅들의 후손'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듯 말이죠. 그 외에 몬스터, 인공지능, 주문 시스템 등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으며, 저장 매체 역시 플로피 디스크에서 CD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가가브 트릴로지의 첫 작품인 영웅전설 3 하얀마녀가 국내 발매됐습니다. PC챔프 1997년 2월호 광고에는 영웅전설 시리즈를 상징하는 두 주인공인 크리스와 쥬리오가 보입니다. 게임에 대한 소개도 간략하게 나와 있는데요, '전 9장으로 구성되며, 서장과 1장만으로도 영웅전설 2를 능가하는 데이터량', '세련된 시나리오와 풍부한 이벤트' 등이 보이네요.
이번 작품부터 무슨 왕국이니 왕자니 하는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의 흔적을 100% 벗어나, 영웅전설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전작들과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판타지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어 큰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캐릭터성은 한층 강화되어, 이 때부터 본격적인 영웅전설 팬들이 무수히 생기기 시작했죠.
아쉽게도 영웅전설 4 주홍물방울 광고는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PC챔프 1997년 9월호 게임 공략 표지를 소개합니다. 게임 메인 이미지가 뒷편에 보이는데, 주인공 어빈을 중심으로 여동생 아이멜, 친구 마일, 조력자인 가웨인, 나름 여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큰 존재감이 없는 루티스 등이 보입니다. 참고로 이 멤버가 모두 갖추어진 파티는... 적어도 게임 내에 등장하진 않습니다. 스토리는 물론, 시스템적으로도 불가능한 꿈의 파티네요.
영웅전설 4는 당시 유행하던 높은 자유도를 구현해 화제를 모은 게임입니다. 주요 스토리를 따라가며 알선소 의뢰를 받아 수많은 서브 퀘스트를 수행하고, 그에 맞춰 동료를 자유자재로 영입하거나 방출하는 등의 행위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3편 이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시리즈 최고 명작으로 꼽고 있습니다.
마지막 광고는 PC파워진 2000년 7월호에 실린 영웅전설 5 바다의 함가입니다. 앞서 게임들이 2년 6개월 사이에 줄지어 출시된 데 반해, 영웅전설 5는 꽤 간극이 있죠. 사실 이전까지의 출시 간격은 영웅전설 시리즈가 국내 소개된 시기가 상당히 늦다 보니 발생한 특이사항인데요, 5편에 와서 비로소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역시 광고에는 게임 주인공 3인방인 폴트, 우나, 맥베인이 보입니다. 폴트와 우나는 얼핏 3편의 두 주인공 크리스와 쥬리오처럼 보이는데요, 캐릭터성이나 둘 사이 관계는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대외적인 인기는 크리스&쥬리오가 훨씬 높은 것 같네요. 2면에는 일반판/한정판 구성품과 함께 '음악여행'이라는 독특한 게임 특징이 소개돼 있습니다. 참고로 1~4편을 국내 발매한 만트라의 부도 이후 둘리소프트라는 곳에서 발매한 것도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JRPG 대중화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영웅전설 시리즈 1~5편 광고를 살펴봤습니다. 확실히 게임 하나하나가 올드 게이머들의 감성을 흔들어 놓은 대작들이었는데요, 이후 하늘의 궤적 시리즈가 국내에서 아루온을 통해 꽤나 지지부진하게 서비스되고 제로의 궤적에 다다라서는 현지화가 되지 않아 국내 팬 다수가 이탈했습니다. 최근 다시 인기가 부활하긴 했습니다만, 아직 많은 이들이 가가브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과연 모든 것이 마무리된 후, 궤적 시리즈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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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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