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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게임광고] 비운의 국산 명작, 일렉트로닉 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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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퍼플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7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일렉트로닉 퍼플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7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1990년대 중후반, 국내 PC 패키지 게임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수많은 국산게임들이 나왔죠. 대부분이 일본이나 서양 게임에서 영향을 짙게 받은 작품들이었지만, 나름 오리지널리티를 띈 게임도 많았습니다. 그중 일부는 흥행에도 성공하고 후속작도 나오는 등 꽤나 인기를 끌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게임도 많았죠.

오늘 소개할 일렉트로닉 퍼플 역시 그런 숨겨진 명작 중 하나입니다. 대학생들이 뭉쳐 만든 바이트쇼크라는 제작사에서 야심차게 개발한 벨트스크롤 액션 장르 게임으로, 2인 동시 플레이와 RPG식 구성, 부드러운 3D 그래픽을 통해 꽤나 호평을 받았죠. 그러나 출시 당시 흥행에 실패하며 개발팀은 공중분해됐고, 결국 훗날 잡지 부록으로 제공되며 재조명을 받은 슬픈 역사를 지닌 게임입니다. 발매 당시 잡지 광고들을 보시죠.

어두운 컴퓨터 본체 속에서 부품들이 싸우는 느낌을 표현한 첫 광고
▲ 어두운 컴퓨터 본체 속에서 부품들이 싸우는 느낌을 표현한 첫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7월호에 실린 일렉트로닉 퍼플 첫 광고입니다. 간혹 몇몇 분들이 일렉트로닉 '피플'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 파동/흐름'이라는 뜻의 퍼플이 맞습니다. 게임 내에서는 바이러스의 일환으로 쓰이죠.

광고에는 뭔가 하드웨어 부품 같은 캐릭터들이 글러브를 끼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게임은 컴퓨터 속 부품들의 이야기를 다뤘거든요. '오버클럭 킹'이라는 악당이 '퍼플'을 이용해 컴퓨터 세상의 부품들을 세뇌시켜 악으로 만들고, 그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CPU인 민(MINimum)과 맥스(MAXimum)가 그를 처치하러 떠난다는 스토리입니다. 그림이 살짝 어둡긴 한데, 가운데 있는 두 명이 주인공들입니다. 왼쪽이 맥스, 오른쪽이 민이네요.

신인 개발사의 완전 신작 IP다 보니 이미지와 함께 게임 소개도 적혀 있습니다. RPG형 파워 액션 게임, 완벽한 2인 동시 플레이 지원, 3억여원이 넘는 총 제작비 등이 보이네요. 사실 2020년 기준에서 제작비 3억 원이면 소규모 인디게임 수준이지만, 당시엔 나름 마케팅 수단으로 쓰일 만큼 큰 돈이었습니다. 화폐 가치 자체도 지금과 달랐고 말이죠.

조금 더 밝은 배경에서 촬영된 두 번째 광고 이미지
▲ 조금 더 밝은 배경에서 촬영된 두 번째 광고 이미지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다음달인 8월호에는 조금 더 밝아진 이미지의 광고가 실렸습니다. 맥스와 민의 모습이 조금 더 상세하게 나와 있군요. 게임 설명은 전달 광고와 동일하고 배경 이미지만 변경됐는데, 개인적으로 전달 일러스트가 더 마음에 듭니다. 아래쪽에는 인게임 스크린샷이 있는데요, 3차원 구조의 벨트스크롤 맵에서 펼쳐지는 액션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게임 발매와 함께
▲ 게임 발매와 함께 익숙한 메인 이미지가 광고에 등장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그리고 마침내, 9월 잡지에는 게임 발매 광고가 실렸습니다. 일렉트로닉 퍼플을 상징하는 폭파 이미지와 함께, 주인공 민과 맥스, 그리고 갖가지 적 유닛들이 튀어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네요. 참고로 배경이 컴퓨터 세계인 만큼 등장 캐릭터들도 컴퓨터 안에 있는 부품들인데, 볼트나 너트, 콘덴서, 저항, 변압기 등 기초적인 부품부터 당시 이동식 저장 매체였던 플로피 디스크, CRT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 같은 주변기기까지 꽤 다양한 부품이 나옵니다. 보스로는 파워 서플라이, CPU, 하드디스크, 모터 같은 친구들이 나오고요. 참고로 중간 스테이지에서는 무려 바퀴벌레(!!)도 등장하는데, 나름 치밀한 현실 고증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게임 소개가 담겨 있는 2면, 영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 게임 소개가 담겨 있는 2면, 영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광고 2면을 보면 게임 배경을 소개해 주는 민과 맥스 캐릭터와 함께, 게임과 영어공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이 게임은 철저히 RPG 요소와 액션성에 집중한 게임인데, 영어공부라는 단어 때문에 왠지 모르게 재미보다는 기능성에 치중한 학습용 게임 같은 분위기가 흐르네요. 게임성만 강조해도 충분히 흥행할 수 있었을텐데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어쨌든 일렉트로닉 퍼플은 상업적 흥행에 실패했고, 개발팀은 뿔뿔이 해체됐습니다. 게임은 1년 후 게임잡지 번들로 제공됐는데, 당시 게임을 처음 접하고 게임성에 감동받아 개발사 차기작을 뒤늦게 기다렸던 팬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광고를 다시 한 번 보니, 이 게임이 출시와 함께 제대로 빛을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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