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게임을 뜻하는 ‘시뮬레이터’는 지난 2014년 4월, 염소 시뮬레이터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괴상해졌다. 개발진 스스로 ‘멍청한 게임’이자, “이걸 사느니 훌라후프, 벽돌 몇 장, 또는 진짜 염소나 사라”고 했지만,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며 ‘깽판 시뮬레이터’ 시대 개막에 초석이 됐다. 그야말로 시뮬레이션 게임 역사를 다시 쓴 셈.
지난 21일 정식 발매된 노인 샌드박스 ‘저스트 다이 얼레디’는 염소 시뮬레이터 개발자들이 초심(?)을 잃고 멀쩡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커피 스테인 스튜디오를 나와 설립한 더블무스라는 곳에서 만든 게임이다. 굳이 염소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는 전력을 강조하는 것만 봐도 절대 멀쩡한 게임이 아니라는 냄새를 폴폴 풍긴다. 게임메카는 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봤는데, 빈약한 게임 볼륨은 아쉽지만 곳곳에 새겨진 뚜렷한 염소 DNA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양로원 탈출부터 ‘약 기운’이 느껴진다
저스트 다이 얼레디는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플레이어는 총 4인의 노인 중 한 명을 고를 수 있는데, 능력 차이는 없으므로 아무거나 선택해도 게임 진행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선택한 캐릭터가 양로원 침대 위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본격 ‘노인 반란’이 시작된다.
이 게임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 스팀 게임 소개란에도 “일보다 비디오게임을 좋아하는 배은망덕한 밀레니얼 세대 때문에 연금이 고갈됐다”라고 쓰여있다. 일보다 취미를 좋아하는 것은 모든 세대 공통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지만, 어쨌든 노인인 플레이어는 젊은 것들이 돼먹지 못했기에 양로원에서 죽을 날만 세고 있다고 여긴다. 게다가 이 양로원, 간호사가 노인을 대뜸 후려갈기는 악덕업체다.
일단 양로원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침대에서 ‘멀쩡히’ 일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몸이 침대와 옷장 사이에 껴 본의 아니게 요가를 한다거나, 딱히 위험한 짓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방 안의 가구/집기에 의해 뼈가 부러지거나 팔다리가 신체에서 분리되기도 한다. 도대체 양로원 방 안에 도끼랑 칼, 맹수용 덫 따위가 왜 있는 것인가?
이처럼 지옥 같은 양로원을 탈출하려면 ‘깽판’을 쳐야 한다. 음료를 마셔 오줌을 갈기고, 동료 노인들을 겁먹게 하거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다니는 등 크고 작은 장난을 치다 보면 간호사가 플레이어 캐릭터를 양로원 밖으로 내동댕이친다. 수중에 가진 돈은 없지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이 넘치는 기쁨을 래그돌(ragdoll, 봉제인형) 모드로 표현해보도록 하자. 사람 몸이 봉제인형처럼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데, 노인의 빼어난 유연성에 10점 만점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도시는 내가 접수한다! 어라? 더 할게 없다고?!
“자유를 얻은 노인이 태만하기 짝이 없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여정을 시작한다!”는 거창한 명분 따위는 없다. 그저 도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뿐. 근데 이 도시, 기본적으로 멀쩡한 곳이 아니다. 노인이 아무런 행패도 부리지 않았는데도 괴상한 물리효과로 인해 거리의 차들은 알아서 추돌사고를 내고, 주민들은 공중부양을 한다. 한 덩치 하는 녀석들은 주변에만 가도 폭력을 휘두르는데, 플레이어 캐릭터를 냅다 집어 던지는 모습에서 노인 공경은커녕 치안조차 엉망인 곳임을 알 수 있다.
사람 뿐 아니라 시설물도 이상하긴 매한가지. 축구장에는 커다란 사냥용 덫이 깔려있고, DMZ 뺨치는 지뢰지대도 존재한다. 여기에 베네치아풍 수상도시 지구에는 식인상어가 있어 멋모르고 입수하는 순간 곧바로 목숨을 다하게 된다. 심지어 가게에서 살아있는 거대한 사마귀와 게 등을 철창에 가둔 채 팔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몸과 신체가 분리되기까지 한다. 기본값이 혼돈 그 자체인 장소인 셈.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이러한 혼란의 도가니에 숟가락을 얹는 것이다. 언제든 부활할 수 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에 맞서보자. 앞서 언급한 독특한 물리효과 덕분에 조작에 여러 애로사항이 꽃피지만, 스쿠터나 자전거를 몰고 신묘한 운전기술을 뽐내거나, 칼, 화룡출수(중국 명나라 시대 로켓무기), 권총, 샷건 등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다. 음식을 먹고 살을 찌우거나, 스테로이드를 섭취해 3대 500은 너끈할 정도로 몸집을 키울 수도 있다. ‘선빵’을 날린 젊은 녀석들에게 ‘연륜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보여주자.
게임 전반에 걸쳐 흐르는 ‘약 기운(게임 아이템 중 스테로이드가 있기도 하다)’은 제작진이 염소 시뮬레이터 개발자임을 웅변하는 듯 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콘셉트에 비해 길게 즐길만한 게임은 아닌 점이 아쉽다. 다양한 방법으로 ‘깽판’을 칠 수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하다. 타 게임의 미션과 같은 ‘버킷리스트’가 있지만, 내용 대부분이 특정 행동 반복이기에 금새 질린다. 혼자서 플레이할 경우 2~3시간 정도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유혈이 낭자한 잔인한 표현은 호불호가 갈릴 요소.
친구와 함께 ‘노인정’을 꾸릴 수 있는 멀티플레이 요소와 1만 5,500원이라는 가격을 고려하면 평균 이상은 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염소 시뮬레이터의 DNA는 잘 계승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염소 시뮬레이터가 나온 7년 전과 달리 ‘약빤 시뮬레이터’ 경쟁자들이 득실대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조금 미묘한 완성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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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애정과 흥미를 기사에 담아내고 싶습니다.laridae@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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