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9일 있었던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마침내 마무리됐다. 이번 대선은 헌정 사상 최소 격차라는 분석처럼 유난히 치열했는데, 이전 대선까진 자정 전후로 확정되던 당선인이 새벽 3시까지도 나오지 않는 초박빙 승부였다. 아마 기자를 포함한 많은 유권자들이 개표 방송에서 눈을 못 떼며 잠을 설쳤을 것이다.
간만에 손에 땀을 쥐고 나니, 문득 게임 속에서 겪은 초박빙 승부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누가 이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치열한 승부 말이다. 보통은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주인공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나 주인공 사망/공멸이라는 배드엔딩도 있기에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한다. 오늘은 20대 대선 개표를 연상시키는, 게임 속 초박빙 승부 TOP 5를 꼽아 보았다.
TOP 5. 메탈기어 라이징 리벤전스, 라이덴 vs 스티븐 암스트롱
메탈기어 라이징 리벤전스의 최종보스인 스티븐 암스트롱은 주인공 라이덴을 초죽음까지 몰고 간 인물이다. 무엇보다 정치인 출신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이번 [순정남]과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 수 없는데, 정치인답지 않은 절대적 무력과 굳센 정치관, 약육강식을 모티브로 한 '얼핏 사이다' 이념 등 여러 모로 파격적인 모습으로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라이덴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긴 했지만, 암스트롱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맨몸(+나노머신)과 격투기술로 라이덴을 거의 사망 직전까지 몰고 가는 장면에서는 이대로 게임이 끝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실제로 메탈기어 시리즈 특성 상 주인공이라고 안 죽는다는 보장도 없는 데다, 시간대상 그가 멀쩡히 등장하는 후속작도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더욱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뭐, 주인공 버프를 받아 최종적으로는 라이덴이 승리하지만, 대선 후보 암스트롱의 이름은 게이머 사이에서 길이길이 추앙받고 있으니, 나름 해피 엔딩일 지도 모르겠다.
TOP 4. KOF 95, 쿠사나기 쿄 vs 야가미 이오리
스트리트 파이터를 시작으로, 대전격투게임엔 라이벌 격 캐릭터들이 무조건 하나 이상 등장하는 묘한 법칙이 생겼다. 초기에만 해도 류/켄, 테리/앤디, 료/로버트 등 선의의 경쟁자에 가까운 기믹이던 이 라이벌 구도는, 사무라이 스피리츠 2의 겐쥬로를 시작으로 조금씩 비틀려 갔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선 존재가 KOF 주인공 쿠사나기 쿄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광기의 라이벌, 야가미 이오리다.
이오리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KOF 95에 처음 등장했는데, 결승전에서 쿄가 속한 일본팀에게 아슬아슬하게 패하고 말았다. 심지어 쿄와의 1 대 1 접전은 타임 오버로 무승부였지만, 뒤에 남은 선수 유무 차이로 졌다고 하니 이오리로서는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 그 이후에도 계속 쿄와의 승부를 원하지만, 더 강한 적이 나와서 일시적으로 손을 잡거나, 공멸하거나, 만나지도 못하거나, 팀원들과 싸우거나, 불 찾기 모험을 떠나는 등 딱히 제대로 된 승부가 나질 않는다. 마지막 1승이 진정한 승자라는 인터넷 속담이 눈에 아른거리는 느낌이다.
TOP 3. 다크 소울 3, 재의 귀인 vs 선택받은 불사자(왕들의 화신)
다크 소울 3, 나아가 다크 소울 시리즈의 최종 보스인 '왕들의 화신'은 꽤 독특한 존재다. 화톳불 앞에 앉아 있다 별다른 컷신이나 동작도 없이 곧바로 전투를 시작하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데, 플레이어와 비슷한 패턴을 변칙적으로 바꿔 가며 사용하는 모습과 극악한 난이도를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다크 소울 시리즈의 정수를 담은 마지막 전투라는 점이 팍팍 전해져 온다.
특히, 이 전투가 초접전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항목은 얼핏 비추는 '왕들의 화신'의 정체다. 다크 소울 1편에서 봤던 약간 투박하면서도 특징적인 공격 모션만 봐도, 플레이어인 나와 생사를 함께 했던 1편 주인공 '선택받은 불사자'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결국 이 전투는 3편의 나와 1편의 내가 싸우는 셈인지라, 초접전 끝에 어찌저찌 이겨도 과거의 내가 패배하는 가슴 아픈 상황이 닥쳐오는 것이다. 뭐, 다크 소울 시리즈 세계관 상 어찌됐건 세계는 돌아가니까 큰 걱정 말고 패하도록 하자. 그리고 스스로 세뇌하자. 어려워서 패하는 게 아니라 1편 주인공이 좋아서 패하는 거다!
TOP 2. 철권 7, 미시마 헤이하치 vs 미시마 카즈야
철권 1편부터 쭉 숙적 관계였던 카즈야와 헤이하치. 이미 그 둘의 사이는 부자(父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 지 오래다. 이 둘의 승부는 몇 번인가 결착을 맞이했는데, 진정한 결착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1편은 카즈야가 헤이하치를 꺾고 절벽에 던지는 엔딩으로 마무리되고, 2편에서는 되살아난 헤이하치가 카즈야를 꺾고 화산 분화구에 던진다. 하지만 카즈야는 4편에서 또 살아돌아오고, 결국 7편 말미에 이르러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그 동안 워낙 사투를 여러 번 벌여 온 터라, 철권 7의 승부도 어느 한 쪽의 승리를 점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철권 시리즈는 뚜렷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1인 캐릭터가 없기에, 어느 한 쪽이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헤이하치는 인간의 한계까지 초월해 가며 싸웠지만 간발의 차로 카즈야에게 패배하며, 현실 시간으로 23년에 걸친 승부가 끝났다. 아마도 헤이하치 성우 두 분의 사망으로 어쩔 수 없는 퇴장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헤이하치를 지지해 왔기에 마냥 아쉽기만 할 뿐이다.
TOP 1. 갓 오브 워 3, 크레토스 vs 제우스
갓 오브 워 그리스 신화 3부작을 한 마디로 말하면, '크레토스가 그리스 신들 때려잡는 게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력한 신과 괴물들이 크레토스 손에 걸리면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우수수 쓸려 나간다. 그런 크레토스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며 접전을 벌인 상대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버지이기도 한 제우스다. 누굴 만나도 압도적인 정신력과 강력함으로 때려부수던 크레토스를 죽음 일보직전까지 끌고 간 유일한 인물이니까.
실제로 크레토스는 대 제우스 전에서 그간 획득한 모든 무기를 잃고, 패배 일보직전까지 가는 처절한 싸움 끝에 '희망'을 붙잡고 최종 승리를 거뒀다. 크레토스가 싸울 수록 강해지는 전쟁의 신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가로쉬가 되었을 법한 초박빙 승부였다. 참고로 부자지간의 결전이라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헤이하치 대 카즈야와 구도가 비슷하지만, 격투 스케일이나 처절함 측면에서는 반인반수를 넘어선 신들의 싸움인 갓 오브 워가 더욱 농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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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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