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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것까지?" 전공자가 본 VR 그림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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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 최근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최근 주변을 둘러보면 여러 개의 취미를 가지는, 일명 ‘취미 부자’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취미 부자들 중 꽤 자주 보이는 취미 중 하나가 바로 ‘그림 그리기’입니다. 얼핏 쉬워 보이지만, 연필이나 색연필을 넘어 수채화나 유화 등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면 재료와 공간이라는 장벽이 의외로 높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미술학원을 등록하거나, 최근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드로잉 카페’까지 나오고 있는 추세입니다.

만약 집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일단 작업실 용도로 활용할 전용 공간이 필요합니다. 재료나 작품 보관 등으로 인해 일상 생활 공간과는 분리되어야 하죠. 여기에 물감이나 촉매제, 이젤이나 캔버스 등 다양한 재료도 직접 구매해야 합니다. 이러한 재료 역시 값이 만만치 않기에 결국에는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취미가 계속 유지되지 않는 한 구매했던 재료들은 방치되기 일쑤입니다.

그렇다면 가상세계에서 재료나 공간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VR을 활용하면 현실 공간보다 더 아늑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값비싼 재료들을 재료비 걱정 없이 마음껏 써 가며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VR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앱 중 작년과 재작년에 출시된 페인팅 VR(Painting VR)과 버밀리언(Vermillion)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붓 사용과 그라피티가 가능한 페인팅 VR

먼저 페인팅 VR입니다. 앱에 접속하면 거대한 창고를 스케이트 보드장으로 개조한 것 같은 공간이 펼쳐집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젤 및 그림 도구들을 마음대로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어디든 원하는 장소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캔버스도 원하는 크기로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죠. 캔버스 옆에 있는 옵션 중 모양의 아이콘은 ‘Play intro video’로, 페인팅 VR의 전반적인 가이드 영상을 총 10단계로 나뉘어 보여줍니다.

페인팅 VR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소
▲ 페인팅 VR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소

 페인팅 VR의 가이드 영상
▲ 페인팅 VR의 가이드 영상

오큘러스 기준 왼쪽 조이스틱 메뉴 버튼을 누르면, 손에 조그마한 원 모양 메뉴창이 뜹니다. 여기에는 디지털 기기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버튼인 ‘전 단계로 돌아가기’와 설정 버튼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정에서는 들고 있는 붓에 대한 옵션을 설정할 수 있으며, 메뉴창 외에도 왼쪽 손을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도록 뒤집으면 자동으로 뜨는 옵션 창에서 페인팅 VR의 전반적인 설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왼쪽 조이스틱 메뉴 버튼으로 불러올 수 있는 설정 버튼
▲ 왼쪽 조이스틱 메뉴 버튼으로 불러올 수 있는 설정 버튼

페인팅 VR에서 사용 가능한 도구로는 크기 별로 여섯 종이 마련된 붓, 페인트를 바르는 롤러 한 개, 사인펜 두 개, 스프레이 하나, 틀린 부분을 닦아낼 수 있는 스펀지, 붓에 묻은 물감을 세척할 수 있는 양동이 한 개, 끝에 자석이 달린 드릴이 한 개 있습니다. 참고로 드릴은 자석 부분에 붓을 달아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도구들 외에 그냥 손에 물감을 묻혀 문지르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양한 물감을 묻혀 사용할 수 있는 팔레트
▲ 다양한 물감을 묻혀 사용할 수 있는 팔레트

마음대로 유화 물감을 바를 수 있다
▲ 마음대로 유화 물감을 바를 수 있다

어때요, 참 쉽죠?
▲ 어때요, 참 쉽죠?

필자가 생각하는 페인팅 VR의 가장 큰 특징은 캔버스를 이젤 위에서만 두고 쓰는 게 아니라, 바닥이나 벽 등 원하는 위치에 둘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도구가 놓인 선반 등 드로잉과 관련된 모든 사물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도도 높은 편입니다. 팔레트의 물감을 섞어 캔버스에 바르면 사실적인 시각적 효과와 사운드로 마치 실제 유화물감을 바르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현실에서 은근 해보기 힘든 그라피티도 마음대로 그려볼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흔히 해볼 수 없는 취미 중 하나인 그라피티도 할 수 있다
▲ 흔히 해볼 수 없는 취미 중 하나인 그라피티도 할 수 있다
마음대로 섞을 수 있는 페인트 통
▲ 마음대로 섞을 수 있는 페인트 통

하지만, 아무래도 실제 붓을 쥐고 그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마치 뼈가 없는 손으로 붓을 들고 작업하는 기분도 듭니다. 때문에 원하는 곳으로 붓 끝을 향하게 하기가 힘들어서 디테일한 작업이 어렵습니다. 여기에 기본 제공되는 팔레트나 페인트 색 개수가 적어, 직접 색상표를 찍어 가며 작업하거나 페인트를 섞으며 원하는 색을 만들어 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습니다. 

또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 단계로 돌아가기 버튼이 옵션 창 안으로 들어가야 있기 하며, 붓의 크기, 투명도, 혼합 정도 옵션의 경우는 한 단계 더 들어가야 있기 때문에 은근히 조작 피로도가 높습니다. 그라피티도 스프레이가 하나기 때문에 위의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계속 변경해줘야 하는 브러쉬 옵션
▲ 계속 변경해줘야 하는 브러쉬 옵션

사실적인 유화 드로잉에 집중한 버밀리언

다음은 버밀리언입니다. 처음 접속하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가이드에 따라 환경 설정 및 도구 사용법을 익히게 됩니다. 버밀리언은 한 자리에서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대신, 다양한 작업실 공간과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선택하여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의 ASMR이 잔잔하게 들려와서 작업 환경이 상당히 아늑합니다. 

배경과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다
▲ 배경과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다

정면에 보이는 이젤은 높낮이와 위치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데, 이젤을 밀거나 당길 때 마치 실제 바퀴 달린 이젤을 움직이는 기분이 듭니다. 이젤 위 캔버스 사이즈는 마음대로 지정할 수 있으며, 이젤 오른쪽에 있는 붓 받침대와 왼쪽에 있는 팔레트 받침대 역시 이젤 기준으로 당기거나 밀 수 있습니다. 팔레트에는 13개의 물감이 직접 짠 것처럼 배치되어 있어서 마음대로 찍어서 사용하거나 섞을 수 있습니다. 

버밀리온의 팔레트
▲ 버밀리언의 팔레트

자세한 설정은 오큘러스 기준 왼쪽 조이스틱을 누르면 나오는 설정 창에서 할 수 있는데, 설정 창에는 실제 작가들이 버밀리언을 이용해서 드로잉 하는 영상들과 “참 쉽죠?”로 유명한 밥 로스의 영상들이 즐겨찾기 되어 있어 편하게 보면서 따라 그릴 수 있습니다. 이 옵션 창은 원하는 위치에 켜둘 수 있어 따라 그리기 쉬운 환경을 제공합니다.

버밀리언의 그림 도구로는 10개의 붓, 물감을 섞거나 바를 때 사용하는 나이프, 붓에 묻은 물감을 닦을 수 있는 수건, 유화 물감을 녹이거나 물감을 불투명하게 사용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페인트 시너가 든 조그만 통을 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도 시청할 수 있는 옵션창
▲ 동영상도 시청할 수 있는 옵션창

버밀리온의 이젤과 작업대
▲ 버밀리언의 이젤과 작업대

필자가 생각하는 버밀리언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어를 정식 지원한다는 점, 편하고 간결한 UI, 전 단계로 돌아가기 버튼이 조이스틱 버튼에 지정되어 있어 사용이 편리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붓 자체의 시스템이 매우 훌륭합니다. 오큘러스 기준 조이스틱의 오른쪽 방향 키를 위, 아래로 움직이면 붓의 크기가 바뀌며, 좌우로 움직이면 붓의 길이가 달라집니다. 조이스틱 뒤쪽 버튼을 누르면 손에 쥐고 있는 붓이 불투명해지는데, 이 때 손을 붓의 원하는 위치에 가져다 놓으면 해당 위치로 붓을 옮겨 잡게 됩니다. 때문에 실제 붓을 쥐고 있지 않아서 오는 이질감 밑 떨림이 맨 앞쪽을 잡을 경우 꽤나 보정되어 세밀한 작업이 가능합니다.

마음대로 유화 물감을 바를 수 있다
▲ 마음대로 유화 물감을 바를 수 있다

붓 활용도가 더 뛰어나다
▲ 붓 활용도가 더 뛰어나다

하지만 버밀리언 내에서 제공되는 영상들은 옵션 창 안에서만 볼 수 있어, 영상을 보고 있는 중에 옵션을 변경해야 한다면 해당 영상을 끄고 설정을 해야 하므로 다시 돌아가면 보고 있던 곳을 기억해서 직접 재생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페인팅 VR과 버밀리언을 비교해 보자

이제 두 앱을 비교해 봅시다. 둘 다 공통적으로 유화 드로잉을 할 수 있지만, 페인팅 VR은 좀 더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위치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라피티를 지원한다는 장점이, 버밀리언은 유화 하나에 집중해 더욱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재료로 시범적인 그림을 그리기에 관심이 있다면 페인팅 VR을, 유화 한 가지를 디테일하게 파고 싶다면 버밀리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둘 다 현실에서 비슷한 환경과 재료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재료비만 최소 수십만 원 이상은 들며, 작업이 끝나고 치우는 것 또한 일입니다. 따라서 가상세계에서의 작업은 정말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과물을 방에 장식하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하긴 어렵지만, 여기서 그림을 맘껏 연습한 후 실제 유화를 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두 앱 모두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필자에게는 원하는 크기대로 만든 캔버스에 손 가는 대로 물감을 바른다는 것 자체가 정말 매력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앱마다 단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둘 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하면서 편의성과 사실성을 높이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실제 그림 그리기와 비슷해질 정도로 개선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 페인팅 VR과 버밀리언 상세 리뷰 영상 (영상제작: 흑임자XR)

가상세계에서 예술 활동, 더욱 사실적이고 다양하게 할 수 있어요

페인팅 VR과 버밀리언이 그림 그리기에 관련한 앱이었다면, 더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VR 앱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메타, 바이브, PS VR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틸트 브러시(Tilt Brush)입니다. 3D 공간, 즉 허공에 조소를 하듯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앱이죠. 마치 찰흙 놀이를 하는 것처럼 직접 드로잉으로 건물을 올리고 산을 지으며 나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참고로 틸트 브러시에서는 애니메이션 작업도 가능한데, 실제로 VR에서 보는 VR 애니메이션들의 상당수가 이 앱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3D 공간에서 스케치 및 3D 모델링을 할 수 있는 그래비티 스케치(Gravity Sketch), 점토를 이용하여 원하는 모양의 그릇을 굽고 원하는 색상, 패턴을 입혀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렛츠 크리에이트! 포터리 VR(Let's create! Pottery VR) 등도 있습니다. 이렇게 가상세계에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 활동이 가능합니다. 여러분도 새로운 취미를 가상세계에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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