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첫 돌쯤 되면 걸음마를 합니다. 그리고 만 5세 정도 되면 초등학교 입학이 얼마 안 남은 어린이가 됩니다. 그런데 2019년에 태어나 만 5세가 됐는데 걸음마 단계를 못 벗어난 아기가 있습니다.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 여부를 논의 중인 민관협의체입니다. WHO가 ICD-11(국제질병분류)에 게임 이용장애를 등재한 후 국내 도입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자, 국무조정실에서 민간 전문가와 정부 부처 관계자 22명을 모아 민관협의체를 꾸렸습니다. 5년이 흐른 현재 민관협의체 논의는 걸음마 단계입니다.
기자가 현장을 직접 취재하며 느끼기에도,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대한 논의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진전된 부분이 없습니다. 국내 도입 찬성과 반대 모두 동일한 논리를 앞세워 팽팽하게 맞서고 있고, 서로 협의하며 합의점을 찾아간다기보다는 각자 앞만 보고 평행선을 달리는 듯합니다. 그 이유가 실체가 모호하다고 평가되는 게임 이용장애를 논의 대상으로 삼아서인지, 쌍방이 협의할 의사가 부족해서인지는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국무조정실은 ICD-11 기준을 반영하는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안은 2031년에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통계청은 내년 10월에 초안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입니다. 초안에 게임 질병코드가 담길 경우 최종안에도 그대로 남을 우려가 높습니다. 찬성과 반대 모두 올해를 주요 승부처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민관협의체에는 결정권은 없지만 핵심 자문기구이기에, 내년 10월에 초안이 나온다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납득할 만한 합의안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결정 과정에 국민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합니다. 지난 16일에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박종현 교수는 치료부담금이나 자유권 침해 외에도,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공적∙사적 의료보험 적용 문제, 게임 이용장애를 형법의 형사책임조각사유로 볼 수 있는지 등 법적 쟁점을 짚은 바 있습니다. 게임이 대중적인 취미가 된 현재,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도 없애는 데 10년이 걸린 강제적 셧다운제와 같은 사례를 반복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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