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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뜻인데, 누구나 이 버킷리스트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기자 역시 많은 버킷리스트를 차곡차곡 쌓아왔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건 다름 아닌 '지스타 구경 가기'였다.
신입이지만 게임 기자가 아직까지 지스타를 못 가봤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달고 살았던 기자에게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는 그야말로 꿈의 공간이었고, 때문에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매년 지스타 방문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히 일정이 안 맞거나 사정이 생겨 불발되기 일쑤였고, 매년 유튜브나 매체에 올라오는 지스타 현장을 보며 대리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방구석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은 게임 기자가 되어 마침내 지스타에 가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업무 때문에 가는 것이니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지만, 이유를 떠나 오랜 기간 꿈꿔왔던 지스타에 간다는 사실은 기자를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 걱정과 설렘이 교차한다
입사 초반부터 지스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스타에는 무조건 큰 가방을 가져와라'였다. 1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수없이 들었던 얘기인 만큼, 지스타 출발 전 날 집에 있는 가장 큰 캐리어와 백팩을 챙겼다. ‘이 정도면 됐겠지’라는 생각에 안심하며 다음 날 집합 장소인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먼저 도착해 있던 선배 기자들의 캐리어는 그보다도 컸다. 대체 저 정도 사이즈는 어디서 사는 걸까.
아무튼 그렇게 부산역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싣자 묘한 감정이 맴돌았다. 그토록 바라던 지스타에 간다는 생각에 설레긴 했지만, 평소에 실수가 많은 편이라 '지스타에서도 사고 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도 상당했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차는 어느새 부산역에 도착해 있었다.
지스타가 열리는 벡스코에 도착하자, 걱정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자 출입증 발급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현장 여기저기를 둘러봤는데, 행사 시작을 하루 앞둔 벡스코 전경을 보고 있자니 ‘내가 진짜 지스타에 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걱정보다는 설렘을 안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게 많았던, 우당탕탕 지스타 취재 시작
그렇게 날이 밝고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다. 눈을 뜬 순간부터 행사 시작 전까지 일정표를 끊임없이 확인했고, 동선 파악부터 시간 분배까지 해놨다. 그대로만 하면 큰 문제 없이 지스타 취재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세상만사 생각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했던가, 첫 취재부터 시간이 밀리며 그 동안 짜놓았던 일정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시간은 없고 쓸 기사는 많다 보니,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행사장을 숨 가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수많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기도 하고, 편도로 10분 걸리는 취재 장소까지 3분 만에 주파하기도 했다. 여기에 다음 날 기사를 당일 기사로 착각해 작성하는 대환장 파티까지 선보이다 보니, 아직 써야 할 기사가 한참 남았음에도 어느새 시계는 프레스룸이 닫는 오후 5시 30분을 가리켰다. 덕분에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남은 기사를 작성하느라 한밤중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다.
지스타 2일차에는 인터뷰 기사를 주로 작성했다. 전날 의도치 않게 기사를 땡겨 쓴 덕분에, 작성해야 될 기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다만 첫 날에 너무 체력을 몰아 썼던 걸까, 오히려 전보다 집중도 안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업무량은 분명 첫 날에 비해 3분의 1밖에 안되는데, 결국 그 날도 프레스룸이 닫힐 때까지 기사 작성을 끝내지 못하고 숙소에 와서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어진 3일차는 포토 기사를 위해 광장에 모인 코스플레이어와 코스프레 어워즈를 촬영했다. 웃음을 자아내는 독특한 코스프레부터, 보기만해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완성도 높은 코스프레 덕분에 취재 내내 즐거웠다. 다만 그 중 몇몇 코스어는 노출도가 상당히 높아 제 2의 지스타 코스프레 퇴장 사태가 걱정되기도 했다. 아직 지스타 코스프레 사태가 뭔지 모른다면, 2009년 지스타 기사를 검색해보시길.
대신 사진 촬영 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오전 중에는 못해본 게임 시연을 다니거나 인디게임 부스를 돌았다. 특히 인디게임 부스는 무속 신앙을 결합한 액션 RPG나 시각 장애인을 위한 청각형 게임 등 독특한 아이디어가 가득했고, 옆에서 게임을 설명해주시는 개발자분들의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면 기자까지 덩달아 힘이 났다. 평소에도 인디게임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개발자들을 실제로 만나니 한국 게임 산업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잘 먹어야 일도 잘하지, 빠질 수 없는 부산 먹거리
부산에 왔다면 다양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평소 먹는 양이 적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지스타 출장 기간 내내 ‘내가 이 정도로 먹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을 입에 집어 넣었다. 첫 날 도착하자마자 수육백반을 해치웠고, 저녁으로는 치킨과 떡볶이, 튀김 세트를 배달시켜 먹었다. 분명 평소보다 많이 먹었는데도 매번 남은 음식을 보면 넉넉한 부산 인심도 느껴졌다.
둘째 날은 남자들의 소울푸드,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평소에도 자주 먹던 메뉴인데 그 날은 어찌나 그렇게 맛있던지, 순식간에 밥 두 공기를 해치웠다. 셋째 날에는 슬슬 제철이 다가오는 방어회를 먹었는데, 붐비는 손님으로 인해 원격 줄서기를 했음에도 식당 앞에서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아마 날씨가 5도 정도만 낮았어도 게임메카 취재팀은 모두 동상이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기다림이 길어지다보니 팀장님이 “사실 취재팀에는 막내 기자를 해운대 바다에 빠뜨리는 전통이 있어”라는 농담까지 하셨다. 하하하, 정말 재밌…왜 표정이 진지하시죠?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온갖 유혹을 견디며 겨우 식당에 입성했는데, 방어회는 물론 오징어 가라아게와 물회, 빈대떡까지 기다림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상차림이 정말 풍성하고 맛있었다. 조개구이와 양꼬치의 유혹에도 방어회를 고집하셨던 팀장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날은 업무가 모두 끝난 기념으로 삼겹살을 1차로 해치운 뒤, 치킨을 포장해 숙소에서 2차를 즐겼다. 맛있는 안주와 술을 곁들이며 선배들의 신입 시절 경험담을 들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었다. 선배들이 이 글을 보실까 봐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성공적 버킷리스트, 내년에는 더 발전한 모습으로
그렇게 4박 5일 간의 지스타 출장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아침부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나왔던 터라 몰려오는 피곤함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앞에서 “으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몽사몽 무슨 일인가 싶어 앞 좌석을 보니, 선배 한 분이 팀장님 바지에 커피를 쏟은 것이었다. ‘하극상은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걸 몸소 보여주시다니, 정말이지 복귀 날까지 배울 점 투성이다.
아무튼 그렇게 4박 5일 간의 지스타 출장이 막을 내렸다. 취재 기간 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사실 고단함보다 즐거움이 더 컸다. 우선 그 동안 가고 싶었던 지스타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어느 곳을 들여다봐도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행사 현장은 묘한 충족감을 선사했고, 관계자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보람 있었다.
기사 작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짧은 시간에 핵심 내용을 뽑아내는 방법부터 음성 녹음과 카메라 활용법, 인터뷰와 리뷰 기사 작성 요령 등 평소보다 한층 심화적인 내용을 배웠다. 어느덧 입사 1년이 다 되어감에도 부족함이 너무 많다고 느끼는데, 여전히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지스타를 계기로 어엿한 기자가 된 느낌이다.
보통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이유는 단순히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가 크다. 기자 역시 그랬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거나 혹은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기자의 ‘지스타’라는 버킷리스트는 꽤 만족스러웠고, 성공적이었다. 게이머로써는 다양한 게임을 보고 체험할 수 있었고, 게임 기자로써는 견문을 넓히고 기술적으로도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지스타를 다녀오기 전과 비교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래도 이번 지스타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더 나은 기자 ‘이우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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