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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言] 시작하자마자 횡령범 됐습니다, 파멸의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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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오타쿠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파멸의 오타쿠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게임 속에서 언제부턴가 착하고 준수한 외모를 가진 주인공은 점차 사라지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성격이나 외형 측면에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진 주인공이 늘어나고, 그들로 인해 전개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다 보면 전혀 생각한 적 없던 세상을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현실을 그린 게임들을 즐기다 보면 내 세계가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어 그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자에게도 오늘 소개할 ‘파멸의 오타쿠’는 여러 의미로 충격을 남긴 게임이다. 아이돌이며 드라마 오타쿠로 살아온 것이 이십여 년, 게이머로서도 비슷한 세월을 보냈지만 이런 주인공은 게임뿐만 아니라 웬만한 창작물에서도 보기 어려운 인물상이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사회성, 상습적 자기비하, 과장된 표현과 범상치 않은 주변 환경까지. 누구도 조망하지 않았지만 어떤 커뮤니티에서든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음침한 오타쿠의 교과서적인 인물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심지어 주인공의 행동이며 스토리 전개도 범상치 않다. 게임을 시작하고 플레이어가 머잖아 만나는 모습은 주인공의 ‘공동구매 금액’ 횡령이고, 거짓말과 자기 합리화가 이어진다. 마치 오타쿠 사회 고발물을 보는 것 같은 전개를 지켜보다 보면 ‘이 인물이 정말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진짜 친구가 있다고!”라는 말을 게임 메인 슬로건으로 내세운 개발사 키위사우루스 대표 이차영 개발자를 만나 ‘파멸의 오타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 파멸의 오타쿠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영상출처: 키위사우루스 공식 유튜브 채널)

파멸의 오타쿠, 14일간 500만 원을 모아라

파멸의 오타쿠는 개발사 키위사우루스가 개발 중인 텍스트 어드벤처다. 일견 단순한 서브컬처 배경의 게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개발사가 공식적으로 칭하는 장르에 블랙 코미디 스릴러가 포함된 점부터가 이목을 끈다. 플레이어는 화려하고 과장된 색감의 메타버스 속 온라인과 칙칙하고 우울한 흑백의 현실을 오가며, 도태빌라 주민인 주인공 ‘진다연’의 행보에 함께 한다.

파멸의 오타쿠의 핵심은 이 게임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해외 장르를 좋아하는 한국의 오타쿠들은 ‘덕질’을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몇 겪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정식 발매 굿즈 구매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팬 커뮤니티에서는 해외 배송비를 낮추려 공동구매 형식으로 대량 구매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공동구매를 총괄하는 사람을 ‘총대’라 부르는데, 파멸의 오타쿠는 쓰레기집에서 사는 주인공 ‘진다연’이자 커뮤니티 네임드 유저 ‘진다’가 이 ‘총대’가 된 이후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게임 캐릭터 테마 굿즈의 공동구매가 모든 사건의 촉발점이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게임 캐릭터 테마 굿즈인 '캐릭터 향수' 공동구매가 모든 사건의 촉발점이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게임 속에서는 네임드 유저지만, 현실은 1년치 집세를 밀린 은둔형 인물인 진다연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파멸의 오타쿠는 총대가 된 주인공이 통장에 들어온 공동구매 금액 500만 원을 모조리 사적으로 써버린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굿즈 주문 마감 전까지 파멸 직전의 오타쿠 진다연이 써버린 500만 원을 다시 채우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끌어 모아야 한다. 파멸의 오타쿠가 가지고 있는 현실성은 여기에도 반영됐다.

예를 들어 진다연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현실을 도피하다 파멸에 이를 수도, 다른 이웃 NPC와의 호감도를 높여 돈을 빌려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흔히 ‘쌀먹’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게임 내 콘텐츠의 현금화도 가능하다. 착실하게 아르바이트로 어떻게든 돈을 모을 수도, 다소 좋지 않은 곳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수단도 선택할 수 있다. 목표는 500만 원을 모으는 것이지만, 핵심은 그를 위해 어떤 방식을 선택하고, 어떤 인물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살아가느냐다.


▲ 화려한 메타버스 게임 속 세상과 칙칙한 흑백의 현실을 오가며 여러 방법으로 돈을 모아야 한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돈을 벌기 위해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물론 오타쿠가 게임의 핵심인 만큼 커뮤니티 생활을 완전히 빼놓을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 커뮤니티 생활 콘텐츠가 일반 게이머들에게 다소 낯선 장벽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키위사우루스는 이를 스토리 진행에 튜토리얼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타개했다. 이 대표는 “아이돌스타를 플레이하다 보면 ‘공론화를 하겠어요’라는 말이 나온다. 이 공론화라는 문화를 오타쿠들은 알지만 일반 게이머들은 잘 모를 수가 있다. 그래서 튜토리얼 제공으로 콘텐츠 목적을 안내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며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음을 강조했다.

키위사우르스는 파멸의 오타쿠 정식 출시 버전에 약 20개의 엔딩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엔딩을 가지고 있는 만큼 반복 플레이 난도를 낮추고, 어떤 망하는 엔딩을 봐도 문제가 없도록 시스템적 지원도 준비 중이다. 일례로 특정 엔딩을 보고 난 뒤에는 능력치가 높아지거나, 주인공의 소지금이 초반부에 소폭 늘어나 모아야만 하는 돈이 줄어드는 혜택 등이 추가될 예정이다.

특정 인물의 잘못을 고발하는 '공론화'라는 커뮤니티 문화도 게임 내 콘텐츠로 구현됐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특정 인물의 잘못을 고발하는 '공론화'라는 어두운 커뮤니티 문화도 게임 내 콘텐츠로 구현됐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게임 속 게임인 리듬게임과 같은 여러 미니게임도 준비돼 있다고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아이돌스타에 등장하는 미니게임인 리듬게임 등 가상의 세상 또한 현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콘텐츠를 구비했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야기를 게임으로, 키위사우르스

2023년 말부터 시작된 인디게임 개발팀 ‘키위사우루스’는 대표이자 기획과 픽셀 아트를 맡은 이차영 개발자와 프로그래머 ‘곤밀’, 아트 및 스토리를 맡은 ‘하보’까지 3인 메인 개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이후 합류한 모든 사운드를 담당 중인 외주 개발자 ‘현석’까지 포함해 총 4명이 파멸의 오타쿠를 개발 중이다. 키위사우루스는 귀여우면서도 강한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지은 이름으로, 키위라는 새콤하면서도 짜릿한 이미지와 사우루스라는 거대한 공룡을 합친 말이다.

키위사우루스는 전원이 ‘오타쿠’로 구성된 개발사다. 이에 게임에는 자연히 이들이 자라면서 경험한 문화와 커뮤니티 경험이 반영됐다. 게임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은 이들이 오타쿠 문화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보고 들은 간접적 경험이 크게 반영됐다. 파멸의 오타쿠에 등장하는 현실적 묘사들이 깊은 공감대를 끌어낸 것도 바로 이 경력과 경험에 기인한다.

네 명의 개발자이자 오타쿠로 구성된 키위사우루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네 명의 개발자이자 오타쿠로 구성된 키위사우루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부스 방문객들에게 제공하는 게임 굿즈 또한 '오타쿠'의 특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 부스 방문객들에게 제공하는 게임 굿즈 또한 '오타쿠'의 특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파멸의 오타쿠는 온라인과 현실의 간극이 핵심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또한 결국 현대 청년들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주인공에 대해 “현실에서는 사회성이 낮고, 눈치 없고 약간 미운 성격의 캐릭터지만, 커뮤니티에서는 기가 막히게 인기가 많다. 썰을 잘 푸는 존잘(기자 주. 퀄리티 높은 2차 창작물로 인기를 끄는 커뮤니티 네임드)이라서다.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좋아하니, 사이버 세상에서 좀 더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콜 포비아나 토크 포비아 같이 비대면 소통 방식을 선호하는 태세가 반영된 신조어도 있다. 진다연의 낮은 사회성은 요즘 청년들이 많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 말하는 것이 어려워, 차라리 인스타그램이나 X 같은 SNS로 말하는 게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다”며 주인공 진다연의 핵심은 ‘오타쿠’지만, 자신감을 잃고 숨어가는 요즘 청년들의 모습도 공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람을 만나기
▲ 주변과 단절된 환경이나 지나치게 낮은 사회성의 근원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사진제공: 키위사우루스)

물론 스토리의 제반이 되는 오타쿠 경력이 풍부하고, 목적이 뚜렷하다 해서 개발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마땅히 사무실로 쓸만한 공간이 없어 결국 재택근무로 진행해서다. 한 공간에 모여 개발을 하는 것과 달리, 이는 상대적으로 작업 진행도 파악이 어렵고 작업에 집중할 환경도 조성되지 않아 아쉬운 점이 많다고.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기 오프라인 회의를 통해 서로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상호 배려하며 팀원들 간의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주인공 진다연은 오타쿠이기 전 '흔한 청년'이다

키위사우루스는 버닝비버 등의 국내 인디게임쇼 외에도 차이나조이, 비트서밋 등 다양한 국가를 돌며 마케팅과 함께 유저 피드백 취합에 힘썼다. 각 국가별로 오타쿠들의 문화에 조금씩 차이가 있기도 하고, 번역이 이루어졌다 한들 국가별 문화의 차이나 언어의 뉘앙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이 대표는 “다행스럽게도 중국과 일본의 게이머들이 오타쿠는 어떤 국가에서든 똑같다는 등 여러 호평을 남겨주었다. 원래 오타쿠였던 분들은 횡령 소재에 몹시 괴로워하며 게임에 깊이 몰입하시는 모습을 봤다”라며, “만국의 오타쿠는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키위사우루스는 자체 연재 중인 개발일지를 통해 일본 오타쿠들의 반응을 전한 바 있다 (사진출처: 키위스튜디오 포스타입)
▲ 키위사우루스는 자체 연재 중인 개발일지를 통해 일본 오타쿠들의 반응을 전한 바 있다 (사진출처: 키위스튜디오 포스타입)

차기작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오타쿠의 감정과 관계에 집중하는 스토리 중심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 아직 차기작으로 확정한 것은 없지만, 파멸의 오타쿠만큼 독특한 후보들이 이미 몇 개 준비돼 있다. 우선 파멸의 오타쿠를 먼저 출시하고 차기작을 빠르게 선보이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키위사우르스는 연내 여러 게임쇼에 출전해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선보인 후, 내년에는 개발 마무리 단계에 박차를 가하며 출시 준비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파멸의 오타쿠는 키위사우루스의 모든 생명력과 정성을 담은 작품이다. 정식 출시까지 많은 관심과 꾸준한 사랑을 부탁드린다”며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더불어 연내 최대한 많은 홍보를 위해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BIC 2025 참가나 오는 9월 도쿄게임쇼 2025 출전으로 유저와의 소통에도 박차를 가한다. 오타쿠 ‘진다’이자 평범한 청년 ‘진다연’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곧 다가올 파멸의 오타쿠의 정식 출시 소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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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사우루스
게임소개
파멸의 오타쿠는 오타쿠 향수 공동구매 총대를 맡은 히키코모리 오타쿠가 주인공으로, 실수로 공금을 사적인 용도로 모두 써버려 이를 다시 모으는 이야기를 그린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다시 모으게...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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