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인물열전] 세상을 바꾼 '디지털장난감'의 아버지, 윌 라이트

/ 4
세상의 모든 것에는 기원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원은 대부분 인간의 손을 거쳤다. 게임도 마찬가지. 누군가는 게임을 정의 내렸고 누군가는 게임의 문법을 썼고, 또 누군가는 게임의 특정 장르를 확립했다.

오늘 소개할 윌 라이트 역시 게임의 어떤 부분을 창조한 인물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시티]와 [심즈]는 바로 윌 라이트의 작은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윌 라이트는 단순히 두 게임을 만든 게임 개발자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시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식 안에서 끝없이 도전했고, 벼랑 끝까지 몰린 인생에서 겨우 탈출구를 찾아 두 게임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온 그의 게임은 세상을 변화시켰고, 지금도 프랜차이즈 형태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심(SIM)의 아버지 윌 라이트.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꿨을까?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 심(SIM)의 아버지 윌 라이트


몬테소리 학교 다니던 '괴짜'

윌 라이트는 1960년 미국 아틀랜타 조지아주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이 되던 해 부친을 잃으면서 시골로 내려가 살았는데, 이런 과정의 영향 때문인지 그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조용히 구석에서 책만 읽고 있어 주변에서는 ‘괴짜’ 혹은 ‘기인’ 정도로 불렸다. 그만큼 윌 라이트는 ‘이상한 소년’이었다.

그는 유년시절 몬테소리 학교에 다녔다. 몬테소리 교육은 훗날 그가 [심시티]와 [심즈] 그리고 [스포어]를 창조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힘이 됐다. 학교에서 그는 나뭇가지와 생활도구, 갖가지 장난감을 통해 교육을 받았는데, 바로 여기서 사물의 원리를 탐구하고 발견하는데 흥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장난감 교육’은 훗날 윌 라이트의 개발철학에 큰 영향을 준다.

이후 그는 교육 자체를 자신의 취미생활로 삼았다. 특히 프라모델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이후 자신의 낡은 꿈이 ‘사이보그’ 였다고 밝혔던 윌 라이트인 만큼, 그는 로봇이나 배 등을 만들어 방에 장식하는 것을 좋아했다. 프라모델 경연대회서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흠뻑 빠져들었는지 알 수 있다.

컴퓨터와의 첫 만남은 윌 라이트를 한 번 더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프라모델 등을 방에 장식하며 ‘모형 세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컴퓨터는 이런 형태의 가상현실을 더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윌 라이트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길러주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윌 라이트는 루이지내아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주로 혼자 뭐든지 해결했던 만큼, 누군가와 어울리는 게 낯설었기 때문이다. 공부 역시 컴퓨터와 기계공학에만 관심이 있었지, 나머지는 관심 자체를 두지 않으려 했다. 남들이 공부할 시간에 그는 자신의 관심분야에만 매진했고, 각종 전자기기 판매장에서 하루하루 관찰하며 노는 게 일상이었다. 두 번이나 학교를 옮겼지만, 결국 어디에서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컴퓨터와 로봇, 기계 등의 전문지식을 쌓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훗날 명성을 얻은 윌 라이트는 TED 강연에서 자신의 옛이야기와 함께 사이보그 이야기를 꺼냈다


헬기 위에서 첫 번째 '장난감'을 떠올리다

청년이 된 윌 라이트는 유년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자신이 생각하고 꿈꿔왔던 '하고 싶은 일'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윌 라이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이디어는 솟아나는데 이것을 구체화하고 하나로 응집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바로 게임이다. 윌 라이트는 8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경험하게 되는데, 여기서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 게임은 이름 그대로 비행기 조종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시뮬레이터인데, 컴퓨터와 공학에 미쳐있었던 그에게는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이 게임에 푹 빠지게 됐고, 동시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정체가 게임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윌 라이트는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서 착안한 첫 게임 [반겔링만의 습격]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 게임은 헬기로 섬 위의 적을 섬멸하는 전형적인 슈팅 장르 형태를 띠고 있었다. 윌 라이트는 여기에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를 넣는다기보다 일단 '게임의 완성'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게임개발에 대한 윌 라이트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현실성을 반영하기 위해 헬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취득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래픽과 프로그래밍을 해치우며 게임의 형체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윌 라이트가 가장 좋아했던 게임,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상),
윌 라이트가 처음 개발한 게임 반겔링만의 습격(하)

그렇게 1984년, 윌 라이트의 처녀작인 [반겔링만의 습격]이 완성됐다. 이 게임은 유통업체 브로더번드를 통해 출시되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무려 750,000장이나 판매되며 히트를 쳤다.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셈이다.

윌 라이트 역시 [반겔링만의 습격]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보게 됐다. 장난감, 컴퓨터, 로봇, 기계 등에 미쳐 살았던 자신의 과거가 문득 생각났다. 이런 과정에서의 경험이나 즐거움을 혼자가 아닌 여럿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미 첫 게임으로 자신감을 얻었던 윌 라이트였던 만큼, 게임을 활용하면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 내다봤다. 덕분에 그에게는 당시에 어떤 게임이 유행이었고, 또 어떤 문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세상과 공유하고 싶었고, 여기에 적합한 게임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에 대한 첫 번째 아이디어는 [반겔링만의 습격]을 제작할 당시 이미 잡혀 있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의 배경을 위해 직접 헬기를 타고 섬을 돌았는데, 하늘에서 바라본 지상의 전경은 마치 장난감 같았다. 손으로 만지면 잡힐 거 같은 느낌. 바로 여기서 윌 라이트는 '이걸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없을까?'라는 기발한 상상을 했다.

세상을 바꾼 그의 첫 번째 디지털 장난감 [심시티]는 바로 이런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윌 라이트가 하늘에서 본 세상은 곧 심시티 아이디어의 기반이 됐다


장난감 같은 게임 [심시티] 세상을 바꾸다

헬기로 아이디어를 얻은 윌 라이트는 이후 바로 ‘도시계획 게임’ 하나를 구상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탑 뷰 시점까지는 괜찮겠는데, 전반적인 인터페이스와 게임 내용 설계가 어려웠다. 이에 윌 라이트는 갖가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여기서 인생을 바꿀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MIT 공대의 제이 포레스터 교수가 제창한 '도시계획 이론'이었다. 이 책은 출생률, 인구, 부동산, 공해, 범죄 등 여러 요인으로 도시가 어떻게 바뀌는지 시뮬레이팅한 내용으로 채워졌는데, 윌 라이트가 생각한 게임의 모든 것이 바로 이 안에 담겨 있었다.

책을 접한 윌 라이트는 ‘이거다!’ 싶은 심정과 함께 바로 프로토타입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 [반겔링만의 습격]에 사용한 맵 에디터를 통해 게임 골격을 만들었고, 맥 페인트브러시에서 착안해 인터페이스를 구성했다. ‘도시계획 이론’을 기반으로 게임 내용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플레이어는 시장의 입장에서 게임을 즐기고, 주어진 예산으로 도로, 인구 상업, 공업 등 도시 계획을 세우며 차츰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게임은 첫 프로토타입이 나오기까지 6개월 정도가 소요됐으며, 모니터 안에 작은 도시라는 의미의 [마이크로 폴리스]로 이름이 붙었다.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윌 라이트는 [반겔링만의 습격]을 출시했던 브로더번드를 찾아가 직접 게임을 시연해 보였다. 너무 멋진 아이디어라 여겼던 윌 라이트 입장에서는 당연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관계자들은 “게임이 대체 언제 끝나느냐?”고 되물었다. 윌 라이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당시 게임은 결과에 상관없이 명확한 ‘끝’이 있었다. 대부분 ‘게임’의 정체성을 그렇게 여겼으니, [마이크로 폴리스]는 아무런 목적이나 목표 없이 도시에 필요한 건물만 짓다가 어설프게 끝나는 것이 전부로 보였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시뮬레이터에 가깝다. 이렇게 판단한 브로더번드는 ‘엔딩을 넣을 것’이란 계약조건을 달았다. 윌 라이트는 이를 거부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유통사를 찾아야만 했다.

시대의 선입견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윌 라이트는 [마이크로 폴리스]를 들고 수많은 유통사를 찾아갔지만, 푸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반응은 더 차갑고 매서웠다. 어떤 때는 비웃음을 사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윌 라이트의 열정은 이런 굴육의 아픔보다 훨씬 크고 강렬했다. 유통사를 구하지 못한 그는 포기를 선택하기보다, 다시 홀로 남아 [마이크로 폴리스] 개발에 매진했다. 암울한 시기였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됐다. [반겔링만의 습격]으로 모은 돈은 바닥을 드러냈고, 혼자 모든 것을 하기에도 벅찬 극한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윌 라이트가 5년에 걸쳐 온 힘을 기울인 심시티

그러던 어느 날. 윌 라이트는 어떤 프로그래머 파티 하나에 참여하게 됐는데, 여기서 한 남자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제프 브라운이다. 평소 사교성이 부족했던 윌 라이트는 파티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제프 브라운은 이상하리만치 친숙했다. 이에 윌 라이트는 마음을 열고 현재 만들고 있는 [마이크로 폴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윌 라이트의 직감이 통했는지, 제프 브라운은 이 게임에 큰 관심을 보였다.

결국 두 남자는 [마이크로 폴리스]를 함께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당장 상황이 나아지지는 못했지만, 윌 라이트 입장에서는 든든한 아군 한 명을 얻은 셈이다. 이후 윌 라이트와 제프 브라운은 공동으로 게임개발사 맥시스를 창업하고, 소규모 팀 단위로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 어셈블리로 제작됐던 [마이크로 폴리스]는 이후 C로 컨버전 됐고, 프로그래머의 추가 영입으로 인해 게임 세부 내용도 더 알차게 채워졌다.

게임 이름도 [마이크로 폴리스]에서 [심시티]로 바뀌었다. 여기서 ‘심(SIM)’은 게임 내에 시민을 의미하는데, 이는 맥시스의 마이클 브래머(프로그래머)가 부르던 애칭이었다. 게임은 시장(플레이어)이 도시 운영으로 시민에게 행복을 주는 게 중요했던 만큼, 맥시스는 결국 ‘심들의 도시’라는 의미를 담아 게임명을 [심시티]로 확정하기에 이른다.

[심시티]가 완성 궤도에 오를 무렵, 자금이 없었던 윌 라이트와 제프 브라운은 한 번 더 브로더번드를 찾아갔다. 어떻게든 유통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다행히 브로더번드는 조건 하나만 달았을 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조건은 [심시티]의 포장비용 등 제반 경비에 대해서는 모두 맥시스가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게임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지만, 게임 내용 수정항목은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맥시스는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1989년. 천신만고 끝에 완성된 [심시티]가 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심시티]는 1989년 한 해 동안만 무려 3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각종 게임시상식에서도 24가지 부문의 상을 받았다. 시사잡지 <뉴스위크>에서도 [심시티]를 집중조명하며 찬사를 보냈다. 교육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무려 만 개가 넘는 교육기관에서 [심시티]를 교재로 활용하겠다고 나섰다. 더는 게임이 ‘폭력적’인 게 아니라 ‘교육적’일 수도 있다는 평이 쏟아졌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심시티]를 업무에 활용하기도 했다. 시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식 안에서 탄생한 괴상한 게임 하나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셈이다,

또, 이 게임은 세계 게임사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우뚝 섰다. [심시티]를 토대로 도시건설/경영 시뮬레이션이란 장르가 확립됐고, 이후 [문명] [레일로드타이쿤] [블랙앤화이트] 등이 탄생할 수 있게 한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윌 라이트를 비롯한 맥시스도 세간에 알려지면서, 부와 명성을 동시에 손에 쥐게 됐다.

훗날 윌 라이트는 [심시티]의 성공비결을 두고 ‘장난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당시 시대에는 장난감처럼 계속 가지고 놀 수 있는 게임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심심할 때 언제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우리도 언제든 ‘게임’을 꺼내서 편하게 놀 수 있는 그런 형태를 구현한 것이 바로 경쟁력이었다는 것이다. 윌 라이트는 이를 가리켜 ‘디지털 장난감’이라고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심시티]는 그의 첫 번째 ‘디지털 장난감’인 셈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심시티3000(좌), 2013년에 출시된 심시티(우)


가족과의 행복한 삶에서 두 번째 장난감을 구상하다

[심시티]로 성공을 거둔 윌 라이트는 이후에도 행성 시뮬레이션 [심어스]와 곤충 시뮬레이션 [심앤트] 등을 내놓으며 두루 활약했다. 두 게임은 [심시티] 정도의 파급력은 없었지만 나름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기반이 됐던 게임으로 평가 받았다. 다만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자, 윌 라이트는 재정 회복을 위한 목적을 담아 [심시티2000]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심시티2000]은 쿼터뷰 시점을 적용해 비주얼을 깔끔히 정리했고, 지형과 고도 개념을 도입해 내용까지 알차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심시티2000]은 게이머들의 큰 지지를 얻었고 그 해(1993년)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됐다. 이 게임은 국내에도 처음 소개돼 역시 큰 인기를 누렸다.

[심시티2000]으로 재정을 회복한 맥시스는 1995년, 투자자들의 요청으로 기업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당시 맥시스의 기업가치는 3,800만 달러, 직원 수는 300명 정도의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기업공개는 안타깝게도 맥시스를 다시 나락으로 빠뜨리는 악재가 되기도 했다. 순수한 게임개발자로 이루어진 맥시스가 당시 주주들의 지나친 간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수룩하게 대응한 끝에, 결국 맥시스는 1996년 한 해 동안 총 4종의 게임을 완성해 내놓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다. 윌 라이트를 비롯한 맥시스 소속 개발자들이 얼마나 압박을 받았을지는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될 정도다. 결국 그 해에 나온 4종의 게임 [심콥터] [심파크] [심튜스] [풀 틸프! 핀볼]은 완성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쓰라린 실패를 맛봐야 했다. 특히 [심콥터]는 치명적인 버그가 그대로 남아 있어, 윌 라이트의 명성에 칼질한 가장 불명예스런 게임으로 남기도 했다.

이후 맥시스는 [심시티3000]을 개발하며 다시 회복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크게 떨어진 기업 가치는 회복하기 어려웠다. 결국 맥시스는 당시 미국 최대 규모의 게임유통업체인 EA로부터 인수합병 제의를 받아 1억 2천5백만 달러에 회사를 합병하기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맥시스는 인력 40%가 감축되는 상황도 감수해야 했다.

윌 라이트는 회사가 EA의 품에 안기기까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4종의 게임을 내놔야 했던 1996년은 악몽과 같은 해다. 다행히 윌 라이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그는 대학시절 만난 12살 연상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외동딸 캐시 라이트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사실 윌 라이트는 사랑하는 사람과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넘어왔고, 거기서 [심시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가족과의 사랑으로 치유하고는 했다. 그 스스로도 집에서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바로 이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윌 라이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 아이디어의 정체는 인간을 주제로 한 시뮬레이션이었다. 확신에 사로잡힌 윌 라이트는 이후 구체적인 내용을 차근차근 그려냈다. 특히 그는 버클리 대학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교수가 집필한 ‘패턴 랭귀지’라는 도시건축시공 책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은 건축이 인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356가의 사례로 설명돼 있다. 이에 윌 라이트는 해당 아이디어의 본질을 건축에 두고, 이러한 갖가지 물리적인 환경이 인간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로 게임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소꿉놀이하던 딸의 말을 듣고 방향을 선회하기로 한다. 윌 라이트는 딸인 캐시 라이트로부터 “소꿉놀이도 재미있지만 더 행복한 것은 엄마아빠와 떨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윌 라이트는 딸의 말에 행복함을 느끼면서 해당 아이디어의 본질을 건축이 아닌 ‘인간’에 두기로 마음을 바꾼다. 실제 인간의 삶을 게임 내에 표현하고, 그 안에서 가족이나 동료, 친구 들과 상호작용하는 형태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런 관계에 기반을 두고 심(SIM)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는(돕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내놓는다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으리란 확신이 섰다. 이렇게 윌 라이트는 조용히 ‘인생 시뮬레이션’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딸의 소꿉놀이를 인용해 [인형의 집]으로 지었다.


 윌 라이트의 심즈,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인생 시뮬레이션이다


인생 시뮬레이션, 전 세계에 ‘공감’과 ‘행복’을 이끌어내다

사실 윌 라이트는 맥시스가 EA에 넘어갈 무렵까지 가슴에 품고 있던 [인형의 집]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못했다. 회사 사정이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에 [인형의 집] 프로젝트를 이야기하자,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심시티]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인정하지만, 인간을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인형의 집]은 시작부터 난관을 겪어야 했다.

윌 라이트는 다소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심시티]로 힘든 상황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만큼, 인내심을 갖고 나아가기로 했다. 윌 라이트는 회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프로토타입 개발을 명분으로 단 한 명의 프로그래머를 지원받기에 이른다. [심시티]를 창조한 개발자치고, 그 대우가 너무 초라했다.

그러나 기적은 역시 극한의 상황에서 나오는 법. 매우 다행히 윌 라이트와 함께하게 된 프로그래머 한 명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제이미 둔보스였다. 그는 훗날 천재 프로그래머란 명성과 함께 [심즈]의 핵심 프로그래머로 활약하게 된다. 어찌 됐든, 윌 라이트는 과거 [심시티]를 개발하던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며 단둘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나갔다. 제이미 둔보스는 윌 라이트와 궁합이 잘 맞아 어렵지 않게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인형의 집] 프로토타입은 맥시스가 EA에 인수된 이후에 완성된다. 윌 라이트는 완성된 프로토타입을 들고 EA에 가져갔지만, 역시 반응은 맥시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EA는 모험적인 것보다 검증된 IP를 기반으로 안정적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다 보니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매우 다행히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기적이 펼쳐졌다. EA는 [인형의 집]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EA에서 파견된 맥시스의 책임자 뤽 베테렉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뤽 베테렉은 EA가 맥시스를 인수한 배경이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심시티]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 수립 측면에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결국 뤽 베테렉은 EA 경영진을 설득했고 개발 승인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심시티] 버금가는 역경의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윌 라이트는 [인형의 집]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인형의집]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EA의 지원 속에 개발팀 규모도 30명으로 늘어났다. 정식 게임 명도 심(SIM) 자체에 무게중심을 둔 [심즈]로 확정됐다. 1999년, EA를 통해 발매된 [심즈]는 또 한 번 ‘혁신적인 게임’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 해에만 천 만장이 판매됐고, 5년 동안 5천 만장이 판매됐다. 2008년에는 PC게임 사상 최초로 누적 판매량 1억 만장을 돌파할 만큼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말 그대로 [심즈] 신드롬이었다.

[심즈]의 힘은 윌 라이트가 예측한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직접 만든 심(SIM)이 게임 내에서 더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 행복을 위해 게임을 플레이했다. ‘패턴 랭귀지’ 기반으로 설계된 시뮬레이션은 심들이 생활하는 것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갓 태어난 심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인이 되고 노년이 되는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완벽한 ‘인생 시뮬레이션’이었다.

보통 인간이 누가 쥐여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어떤 것에 대해서는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심즈]는 바로 이 인간의 특수성을 다시 인간이라는 본질에 맞춰 인생 시뮬레이션을 구축했다. 정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파격적인 발상이라 할만하다. [심즈]를 계기로 윌 라이터는 혁신성을 갖춘 세계 최고의 개발자 반열에 오르게 됐다. 더불어 [심즈] 역시 EA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로 거듭나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윌 라이트가 만든 두 번째 ‘디지털 장난감’ [심즈]는 또 한 번 세상을 바꿔버렸다.


  심즈의 이후 온라인 버전으로 서비스되지만,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좌)
심즈는 이후에도 확장팩과 자유롭게 제작하는 UCC 콘텐츠가 롱런의 발판이 됐다(우)


생명과 진화의 원리를 다룬다, 세 번째 장난감 [스포어]

[심즈]로 성공을 거둔 윌 라이트는 그 명성이 세계 곳곳에 퍼졌다. [심즈]가 한창 잘 나갈 무렵에도, 이미 그의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지 기대하는 분위기가 커질 정도였다. 그러나 [심즈] 이후 윌 라이트는 잠시 공백기를 가진다. EA와 맥시스는 [심시티]와 [심즈] 새로운 시리즈와 확장팩을 내놓는데, 유독 윌 라이트는 조용했다.

윌 라이트가 다시 돌아온 것은 5년 정도가 흐른 뒤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할 게임이 쥐어져 있었다. 바로 생명과 진화의 원리를 다룬 시뮬레이션 [스포어]였다.

[스포어]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게임 중 하나였다. 이 게임은 세포에서 시작해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행성을 만들고 더 나아가 은하계까지 창조할 수 있는 초거대 스케일과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게임은 기존 [심시티]와 [심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각종 ‘재미요소’까지 모두 안고 있었다.

이 게임은 앞서 언급했듯 세포로 게임을 시작한다. 플레이어가 있는 행성에는 곧 운석이 떨어지고 거기에 물이 생기고 풀과 생명체가 자라난다. 이후 세포는 생명체로 진화하고, 물 밖으로 나와 다른 생명체를 먹으면서 진화한다. 진화한 생명체는 짝짓기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갈 수 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진 생명체는 플레이어가 직접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고, 여러 속성을 가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체는 점차 지능을 얻게 되고, 이후부터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다. 문명이 발전하면 [심시티]처럼 행성을 키울 수 있고, 마치 신처럼 행성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플레이어는 다른 행성으로 여행해 여러 플레이어가 만든 생명체와 [심즈]처럼 교류도 가능하다. 이런 교류가 이어지면서 각 행성은 태양계를 이루게 되고, 여기 더 나아가 은하수까지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세간에 [스포어]가 공개되자 게이머들은 그의 명성을 추켜세우며 엄청나게 환호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라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포어]는 [심즈]나 [심시티] 정도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실제 게임은 윌 라이트가 언급한 생명과 진화의 원리는 잘 작동했지만, 생각보다 깊이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만큼은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게이머들은 [스포어]를 가리켜 ‘시대를 앞서 간 게임’으로 평가했다. 그만큼 [스포어]는 윌 라이터를 통해서만 태어날 수 있는 고유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스포어]의 진정한 의미는 윌 라이트가 늘 강조한 ‘디지털 장난감’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윌 라이트는 이 게임을 개발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몬테소리 교육이 가장 혁신적인 교육이었다고 여겼다. [스포어]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윌 라이트는 아이들이 이 게임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진화 원리를 ‘재미있게’ 깨달을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게임을 자유롭게 플레이 하면서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하고, 또 어떻게 진화를 거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스포어]는 이에 대한 역할을 충분히 했다. 그만큼 이 게임은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대단한 게임이라 할만하다.


 스포어는 세포부터 우주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게임으로 윌 라이트의 게임관이 모두 담겨 있다


마치 장난감을 만지듯이

윌 라이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많은 부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그는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나이다. 윌 라이트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무렵까지 어떠한 ‘목표’를 위해 무엇이든 열정을 쏟았다. 프라모델을 조립한 것도 단순한 취미에서 끝낸 것이 아니라 경연대회서 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푹 빠졌고, 컴퓨터 역시 프로그래밍에 깊은 관심을 보여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다. 첫 게임인 [반겔링만의 습격]을 만들기 위해 헬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따낼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또, 윌 라이트는 [심시티]와 [심즈] 그리고 [스포어]를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지식을 흡수했다. 주 경로는 책이었다. 그는 과학, 심리학, 역사학, 공학, 건축학, 철학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지식을 흡수해 나갔다. 이러한 지식은 곧 하나의 힘으로 묶여 남들이 흉내내지 못할 보다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

두 번째는 인내다. 훗날 윌 라이트는 후배 개발자들에게 ‘명작은 인내심에서 출발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가 [심시티]를 개발하다 좌절을 겪고 금방 포기했더라면? 만약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심즈] 프로젝트를 철회했더라면?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게임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 돼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윌 라이트의 게임철학이다. 그는 무수히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고, 또 그만한 전문성도 가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만든 게임은 대부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도시 생성 과정을 그린 [심시티]도,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심즈]도, 생명의 근원을 다룬 [스포어도] 모두 주제는 심오하지만, 하나같이 어린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의 쉬운 형태로 설계돼 있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인 인물이면, 그걸 더 포장해 보여주려고 애를 쓸만한데 윌 라이트는 절대 그런 법이 없다.

윌 라이트는 어린 시절 일찍 부친을 잃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 ‘이상한 아이’라며 손가락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몬테소리 학교를 다니며 창의적인 교육을 배웠고, 바로 여기서 즐거움을 느꼈다. 또, 대학시절 12살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리면서 누구보다 큰 행복을 느꼈다. 맞다. 윌 라이트는 게임을 통해 뭔가 대단한 것을 한다기보다, 자신이 삶을 통해 얻은 ‘행복’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게 자신의 개발철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일본의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와 닮은 구석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바람은 통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을 만들어 내놓는 것보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는 걸 강조하는데, 여기서 착안해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심시티]에 더 매진한 이유는 사람들이 허허벌판에서 빌딩을 세우고 큰 도시를 만들어가는 ‘제작 과정’ 속에서 큰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부분은 [심시티]의 성공의 근원이 됐다. 몬테소리 교육이 그 어떤 교육보다 창의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윌 라이트는 [스포어]를 통해 여기에 보답했다. 그는 어린 아이들이 [스포어]를 즐기면서 단기적 사고가 아닌 장기적 사고를 기르게 됐고, 무엇보다 즐거운 과학수업을 체감했다. 또,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경험은 [심즈]로 이어져 많은 사람이 이를 공감하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게임은 잠깐 플레이해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고 평가해도 충분할 거 같다.

그가 자신의 게임을 ‘디지털 장난감’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순수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만큼 행복한 경험도 없다. [심시티] [심즈] [스포어] 모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물론 특별히 정해진 엔딩도 없다. 그냥 심심할 때 잠깐 들어가서 만지고 놀고 오면 된다. 마치 장난감처럼 말이다. 가끔 [심시티]나 [심즈]가 생각나는 것도 그리고 계속 시리즈가 등장하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그 순수함과 궤를 함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윌 라이트는 ‘디지털 장난감’으로 세상을 바꿔버렸다.


▲ 윌 라이트는 꼭 게임이 폭력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여겼다


윌 라이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윌 라이트의 최근 근황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 없다. 익히 알려진 대로 [스포어] 출시 이후 2009년 맥시스를 떠났고, 스투피드 펀 클럽(Stupid Fun Club)이라는 게임, 영화, TV 등의 플랫폼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하는 싱크탱크에서 활약했다. 이후 윌 라이트는 TV 버라이어티 쇼 [바 카르마]를 제작하며 활동했고, 가장 최근에는 현실과 플레이어의 일상을 게임을 즐기는 프로젝트 [하이브마인드]를 개발 중에 있다고만 알려진다.

사실 윌 라이트라는 이름에서 오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최근 그의 활동 영역만 봐도, 전혀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책을 읽거나 하는 등 필사적으로 무엇인가에 매진하고 있을 거 같다. 그 결과물이 무엇이든 간에, 한 번 더 윌 라이트가 만든 ‘디지털 장난감’을 보고 싶다. 아니, 만지고 놀고 싶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6년 8월호
2006년 7월호
2005년 8월호
2004년 10월호
2004년 4월호
게임일정
2024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