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당신에게 ‘시작’인가 ‘끝’인가?”
싸늘하다… 두 가지 선택지를 바라보는 당신의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당장 회피하고 싶은 물음이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은 무조건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게임 속 주인공은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 밖 플레이어는 다음 스테이지를 넘어가기 위해 그래야 한다.
지구를 떠받치는 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을 딴 개발사 ‘아틀라스’가 이번에는 인생의 무게가 가득 담긴 주제를 게이머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신작 ‘캐서린’으로 돌아왔다. 대표작 ‘페르소나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내면 심리를 발가벗기는데 성공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곡괭이로 후벼 파는 듯한 날카로움과 파괴력이 느껴진다. 장르가 퍼즐이라 기대를 안 했는데 이 게임 생각보다 속이 깊다.
시놉시스, 결혼을 회피하고 싶은 30대 초식남의 대범한 일탈
"좋은 결혼은 있어도 즐거운 결혼은 좀처럼 없다"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작가 ‘라 로슈푸코’의 이 의미심장한 말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남자들에게 ‘결혼’이란 연애 끝에서 오는 달콤한 ‘열매’라고 하기보다는 독이든 ‘성배’이자 야생마에게 채워진 ‘족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남자들은 의례 자유와 해방보다 속박과 구속에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렇다면 대체 행복하지 않은 결혼은 왜 해야하는 것인가? 어차피 한줌 행복을 위해 뛰어드는 것이 인생이라면 평생 연애만 하면서 삶을 즐길 순 없는 것일까? 영리한 아틀라스는 캐서린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통해 이 금기된 질문을 게임으로 풀어나간다.
▲32세
A형 빈센트 브룩스
▲빈센트의
여자친구 캐서린 맥브라이드(Katherine mcbride)
▲그리고
모든 문제의 근원인 의문의 여인
여기 32세 총각 샐러리맨 ‘빈센트 브룩스’라는 남자가 있다. 결혼 적령기의 이 남자에게는 마침 사귄지 5년 차 된 동갑내기 ‘캐서린(Katherine)’이라는 여자친구도 있다. 빈센트의 여자친구 캐서린은 요즘 자주 결혼에 대해 입에 담는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둔한 빈센트도 눈치 챌 수 있는 수준이다. 명명백백한 사실 한가지. 여자친구는 지금 결혼을 원한다는 것. 그러나 이 남자에게 ‘결혼’이란 시시각각 다가오는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그녀와 결혼은 또 다른 인생의 즐거움을 주겠지만 반대로 지금까지 누려왔던 행복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피할 수 도 그렇다고 돌파할 수도 없는 현실 속에 빈센트는 목이 조여오는 듯한 갑갑함을 느끼고 그날 밤 모든 문제의 발단인 ‘악몽’을 꾸게 된다.
▲술로
생긴 문제는 술로 푼다
마치 현실처럼 생생한 꿈을 꾼 주인공. 빈센트는 생생한 악몽의 정체와 현재 직면한 고민의 무게를 조금 덜어보고자 단골 술집 ‘스트레이 시프(Stray sheep)’에 모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에 취해 잠이 든다. 잠에서 깬 ‘빈센트’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낯선 여자를 발견하게 되고 술김에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이날 자신의 여자친구 캐서린에게 ‘임신’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사건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고 만다. 캐서린과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남자 ‘빈센트’ 그러나 이미 다른 여자와 몸을 섞은 이 남자. 빈센트는 악몽은 현실과 꿈을 오가며 소용돌이 친다. 이 게임 정말 잔인하다.
▲아뿔사
술이... 왠수다
잠이들면 ‘악몽 스테이지’로 빠져든다
어드벤쳐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흥미만점의 스토리지만 이 게임의 장르는 놀랍게도 ‘퍼즐’이다. 주인공 빈센트는 매일 밤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네모난 블록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최상층에 도달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빈센트를 쫓는 괴물의 정체다. 현실세계에서 주인공을 괴롭혔던 생각들이 괴기스럽게 변형되어 빈센트를 반긴다. 결혼에 대한 압박, 임신에 대한 공포 등이 악몽 속에서 괴기스럽게 실체화 되면서 플레이어를 더욱 공포에 몰아 넣는다.
▲원래
이런 퍼즐이지만
▲이런
애들이 나와서 빈센트를 괴롭힌다
▲게임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꿈을 꾸고 있는 대상이 ‘빈센트’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 자신과 마찬가지의 고통을 겪고 있는 남자들과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퍼즐을 풀어 나가야 한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는 등장하는 양(남자)들은 플레이어와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경쟁을 펼치지만 ‘층계참’이라고 하는 중간 지점에 도착하면 빈센트에게 스테이지 공략에 꼭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층계참 안쪽에는 ‘고해실’이라고 불리는 스테이지 이동용 엘리베이터가 준비되어 있는데 이 고해실에서 캐릭터의 가치관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도입부에서 언급한 “결혼은 인생의 시작이다? 끝이다?” 문제도 여기서 등장한다. 만약 온라인에 접속한 상태에서 게임에 접속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회답 경향을 그래프로 볼 수 있어 마치 게임 속 주인공처럼 플레이어도 다른 게이머들과 함께 악몽에 빠져든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혼이나
기혼이나 고민되긴 매한가지
그래서일까? 플레이어가 주인공 빈센트와 감정이입되는 순간 심리적인 압박이
서로 공유되면서 퍼즐의 난이도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단순한 퍼즐게임의 느낌으로
즐긴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칼을 들고 달려오는 캐서린이 게임 밖 플레이어의
부인이나 여자친구라고 느끼는 순간 게임과 현실의 구분이 깨져버리는 것이다. 쓰고
보니 좀 무섭다.
단골 술집 ‘스트레이 시프(Stray sheep)’에서 즐기는 다양한 즐길거리
악몽 속 ‘빈센트’가 생존을 위해 퍼즐을 풀었다면 현실로 돌아온 ‘빈센트’는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다시 이런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답을 찾아야 한다. 퍼즐게임으로 구성된 악몽스테이지와 달리 현실 스테이지에서는 어드벤쳐 형태로 게임이 진행된다. 주인공 빈센트는 단골 술집 ‘스트레이 시프’에서 친구이나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악몽에 대한 힌트를 찾고 또 풀어나가야 한다.
▲게임하면서
묘하게 공감되었던 핸드폰 문자
두 명의 여자친구(?)한테 오는 문자도 빼놓을 수 없는 힌트 중 하나다. 게임 캐서린의 문자 시스템은 단순히 메시지를 받는 형태가 아니라 직접 문자를 편집해서 상대방에 답장으로 보낼 수 있어 어떤 문장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게임의 결말이 달라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답게 가끔 야한 사진이 들어있는 문자도 오긴 하는데 친구들 앞에서는 볼 수 없으니 화장실에서 몰래 확인하도록 하자.
이밖에 술집에 배치된 오락기에서 즐길 수 있는 미니게임 ‘라푼젤’이나 바의 BGM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주크박스’, 술을 대한 유래를 들을 수 있는 ‘술 마시기’ 시스템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준비되어 있어 퍼즐에 지친 플레이어의 눈과 귀를 달랜다.
▲의외로
상당한 퀄리티의 미니게임 '라푼젤'
오랜만에 등장한 명품 퍼즐게임
게임 캐서린은 성인 남성이라면 한번쯤 겪거나 들어봤을 만한 ‘결혼’에 대한 소재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퍼즐게임’ 특유의 가벼움을 날려버리는 절묘한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이라는 주제가 주는 무거움처럼 게임 난이도가 상당해졌다는 것이 문제다. 캐서린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풀리는 시점부터 게임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두뇌 회전보다는 손가락이 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절망적인 수준을 보여준다. ‘이지(easy)’ 모드가 이 정도니 ‘노멀’과 ‘하드’는 말할 것도 없다. 다행히 개발사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난이도 패치 및 가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를 해보자.
게임의 유일한 단점인 난이도를 제외한다면 시나리오, 연출력, 캐릭터, 성우까지 흠잡을 때 없는 구성을 보여준다. 역시 ‘아틀라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훌륭하다.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여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니겠느냐고 되묻는 유저들에게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힘들겠지만 없으면 또 어떠한가. 미리 예습하는 셈 치고 게임을 즐겨보자.
▲당신의
선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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