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이에 공포게임 하나가 대만과 중국 양안 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만 개발사 레드캔들게임즈가 지난 19일 공개한 신작 ‘환원: 디보션’이 그 주인공이다. 게임 내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풍자하는 요소가 있어 중국인들의 ‘비추천’ 테러가 대대적으로 이뤄졌고, 이와 같은 테러에 반발한 일반 유저들이 레드캔들게임즈와 ‘환원: 디보션’을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환원: 디보션’ 개발사 레드캔들게임즈는 전작 ‘반교: 디텐션’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반교: 디텐션’은 괴기스러운 연출 없이 탄탄한 스토리와 치밀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풍부한 은유로 공포를 자극했다. 게임 외적인 이슈로 의도치 않은 홍역을 앓긴 했지만 전작의 훌륭한 게임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출시 전부터 '환원: 디보션'에 대해 큰 기대를 보였다. 전작과는 달리 출시 당일부터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기에, 과연 전작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공포 게임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해 보았다.
단란했던 가족을 파괴한 광신에 의한 광기
전작인 ‘반교: 디텐션’은 국민당 장제스 치하에 있었던 1960년대 대만의 한 고급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를 배경으로 한 반면, 본작 ‘환원: 디보션’은 1980년대 단란했던 한 가정을 배경으로 한다. 전작이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본작은 종교, 더 구체적으로는 미신에 대한 광신이 부른 비극을 다루고 있다.
‘환원: 디보션’의 주요 등장인물은 4명이다. 한때 잘나가던 극작가인 남편 ‘두펑위’는 국민스타였던 아내 ‘궁리팡’과 결혼하여 딸 ‘두메이신’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만, 허영으로 가득 찬 남편 ‘두펑위’의 사치와 딸 ‘두메이신’의 이름 모를 호흡곤란 증세로 가정에 불화가 자라게 된다. 게다가 무당인 ‘허 선생’이 딸 ‘두메이신’의 증세를 완화시키자 남편 ‘두펑위’는 ‘허 선생’을 맹신하게 되고, 결국 한 가정이 파국을 맞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탄탄한 서사가 핵심인 작품이기에 스토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다. 다만 기억의 ‘재생’ 또는 ‘복원’이라는 큰 주제는 전작 ‘반교: 디텐션’과 일맥상통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여러 문서들과 도구들을 이용해 광신에 의한 광기로부터 일어난 비극적 사건의 전후 사정을 복원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들은 내면에서부터 조금씩 조여오는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탄탄한 서사와 분위기로 내면의 공포를 자극하다.
‘환원: 디보션’은 ‘반교: 디텐션’ 이후 약 2년 만에 나온 신작이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 발전하거나 특징적인 면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D 1인칭 시점에서 게임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전작 ‘반교: 디텐션’의 2D 사이드뷰 방식은 현장감이 살아있는 공포를 주기에는 분명 아쉬움이 있다. 이에 비해 3D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환원: 디보션’에서는 플레이어가 실제로 주인공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레드캔들게임즈의 새로운 시도는 기존 장점들과 결합하여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플레이어는 주인공 심리에 한층 더 가까워졌으며, 게임 내 공간과 소리가 주는 분위기는 한층 더 현장감이 느껴졌다.
‘환원: 디보션’은 플레이어에게 사실적인 현장감을 주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단적으로 주인공의 걸음을 실제 사람 걸음걸이와 유사하게 묘사했다. 게임은 별도 스테이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걷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시선높이, 걷는 속도 등이 실제와 가까워 게임을 진행할수록 주인공과 일체감을 느꼈고, 실제로 게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러티브 호러 어드밴처를 표방하는 게임들은 많지만 본작은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대부분 게임들이 기괴한 좀비, 귀신 등을 피해 정신 없이 도망치거나 싸우는 액션이 강조돼 ‘내러티브’, 즉 ‘서사’가 훌륭함에도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환원: 디보션’은 훌륭한 서사에 방점이 찍혀 있다.
플레이어인 주인공의 무기는 오직 선물 받은 ‘라이터’ 하나뿐이다. 이 라이터도 귀신을 불태우거나 빛을 밝혀 무찌르는 것이 아닌,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으스스함을 조금이나마 가시게 만들고 자료들을 잘 찾을 수 있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다양한 문서와 도구들 역시 퍼즐을 맞추기 위한 조각일 뿐이다.
허름하고 작은 아파트, 스산한 조명, 적절한 사운드 역시 ‘환원: 디보션’의 탄탄한 서사를 즐기는데 최적화돼 있다. 벽면을 장식한 단순한 전단지 하나, 그림 하나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플레이어는 은유로 가득한 모든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완전한 이야기의 퍼즐을 맞출 수 있다. 서사와 공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환원: 디보션’이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여 돋보일 수 있는 특징이다.
전작에 비해서 적은 콘텐츠는 아쉬움
전작 ‘반교: 디텐션’의 강점을 계승하면서 발전된 그래픽과 게임진행방식으로 완벽할 것 같이 보이지만, ‘환원: 디보션’ 역시 아쉬운 점이 있다. 탄탄한 서사는 여전하지만, 콘텐츠가 전작에 비해 줄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선택지 제시를 통해 멀티엔딩을 제공했던 ‘반교: 디텐션’에 비해 ‘환원: 디보션’은 하나의 엔딩으로 귀결된다. 물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 플레이어를 오랫동안 붙잡을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서움이 많아 매우 더디게 게임을 진행한 기자도 4시간 남짓 플레이하자 엔딩을 보게 됐고, 스팀 도전과제마저도 대부분 완료했다. 만약 공포게임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라면 더욱 짧은 시간 내에 게임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가 중심이 되는 공포게임은 스토리를 알고 나면 재미가 반감된다. 결국 ‘환원: 디보션’을 100% 즐길 수 있는 시간은 3~4시간 남짓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꼭 해보길
이처럼 다소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느껴져 아쉬움을 주지만 잘 만든 공포영화 한 편을 본다는 생각으로 플레이 한다면 1만 7,500원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제로 ‘환원: 디보션’을 플레이 하면서 한때 이슈가 됐던 ‘곡성’과 최근 개봉한 ‘사바하’가 생각났다.
도교와 불교 등 동양적 신앙들이 큰 맥락으로 흐르며, 광신에 의한 광기로부터 발현되는 내면의 공포가 탄탄한 서사를 통해 제시된다는 점에서 기존 공포게임들과 다른 신선함을 느꼈다. 더욱이 서구적이고 기괴한 괴물들에 질린 공포게임 마니아들에게는 이 게임이 분명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환원: 디보션’은 레드캔들게임즈만의 특색을 잘 살리면서 전작에 비해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환원: 디보션’을 플레이하면서 전작인 ‘반교: 디텐션’과 개발사 레드캔들게임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생기게 됐다. 뜻하지 않은 정치적인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꼭 한번쯤은 플레이 해볼 만 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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