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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리,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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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리 게임 시작 화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오모리 게임 시작 화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트라우마'는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겪은 뒤, 비슷한 경험만 해도(혹은 아무 때라도) 당시의 감정과 기억 때문에 정신적인 불안을 겪는 것을 말한다. 퇴역군인이 겪는 PTSD도 큰 범위에선 이에 속하며, 트라우마가 심각해지면 우울증이나 사회부적응, 회피성 성격장애(일명 히키코모리) 등이 따라오기도 한다. 다만, 단어 자체가 다소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데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 사회 특성 상 이를 가볍게 여기고 정신력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스팀에 2020년 출시된 ‘오모리(Omori)’는 트라우마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정면으로 다룬 게임이다. 우울한 소재와 아기자기한 그래픽으로 인기를 모았지만, 일본어와 영어만 지원해 언어장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18일 한국어 패치가 적용됐고, 드디어 게임을 편히 즐길 수 있게 됐다. 과연 오모리는 어떻게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다뤘을까?
 
※ 이 리뷰는 '오모리'의 전개와 결말, 반전과 관련해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트라우마를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어놓으려 하는 주인공
 
게임의 주인공은 '써니'다. 그는 사회와 고립되어 살아가는 전형적인 ‘히키코모리’로, 지난 4년 간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4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진 않았지만,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써니가 지금처럼 사회와 단절된 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게임 후반에 밝혀진다. 바로 과거에 있었던 사고 때문이다. 그는 누나 ‘마리’를 자신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써니는 친구 ‘바질’과 함께 그 사고를 수습했다. 써니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마리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그녀를 줄넘기로 나무에 매다는 끔찍한 작업을 통해 마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세간에 알려졌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는 써니와 바질에게 이는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다. 결국 써니는 언제나 현실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로부터 달아나, 또 다른 인격인 ‘오모리’로 변해 꿈 속으로 도망가곤 한다. 오모리는 써니의 우울함과 죄책감 등 트라우마가 형상화된 자아며, 게임에서 처음 마주하는 하얀 방은 써니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서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이다. 게임이 펼쳐지는 주 무대인 꿈 속 세계는 써니의 과거 행복했던 기억들을 모아 구현화한 세상이다. 써니는 이와 같은 꿈 속 세계에서 떠돌며,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깊은 지하 속에 묻어 버린 것이다. 이는 괴로운 것을 피하고 외면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하얀 방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하얀 방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써니가 만들어낸 꿈 속 세계에서 친구들이 모여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써니가 만들어낸 꿈 속 세계에서 친구들이 모여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러나, 트라우마는 아무리 깊은 곳에 묻어 둬도 다시 올라와 꿈 속 세계 곳곳에서 써니를 괴롭힌다. 실제로 꿈 속의 광대한 숲에는 숨겨진 장소가 있는데, 이곳으로 가면 나무에 기다란 줄이 묶여 있고 거기에 매달린 타이어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나무에 매달아버린 마리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공포적 장치다. 뿐만 아니라 사건 위장에 사용됐던 나무 한 그루와 줄넘기, 동그란 밧줄까지 종종 목격된다. 마리의 죽음이 써니의 무의식에 남아 꿈 속 세계에 투영된 것으로, 줄곧 감추고 싶어했지만 새어 나온 트라우마의 조각이다.

꿈 속 세계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도서관'도 비슷하다. 이 곳은 찾아가기 힘든 곳에 숨겨져 있는 공간으로, 총 6권의 책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어린 시절의 써니가 마리와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추억들이다. 마리와 함께 놀던 추억들이 '잃어버린 도서관'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마리의 죽음을 더 이상 떠올리기 싫어한 나머지 친구들과의 소중했던 추억들까지 깊은 곳에 함께 숨겨버린 써니의 무의식을 대변한다.

트라우마는 꿈이 아닌 현실세계에서도 써니를 괴롭힌다. 게임 진행 중 현실로 돌아온 써니는 정문에서 누군가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서 문을 열면 기괴하게 뒤틀린 모습의 마리의 환각을 마주치게 된다. 문을 열지 않으면 마리가 “써니 아직 있니? 나 추워”라고 말하는 다른 형태의 환각을 경험한다. 꿈 속이든, 현실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트라우마는 써니를 더욱 고통 속에 빠트린다.

게임에는 특성에 따라 서로 상성이 존재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게임에는 특성에 따라 서로 상성이 존재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꿈 속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찔러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꿈 속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찔러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정면에서 마주하는 트라우마, 도망칠까? 극복할까?

그렇다면, 트라우마에서 계속 도망치며 사는 것은 어떨까? 적어도 게임 속에선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다. 트라우마는 내면에 있기 때문에, 써니가 어디를 가든 따라온다. 이는 히든 스토리인 '히키코모리 루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루트에서 써니는 자신이 만든 꿈 속 세계로 도망가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마지막에 엄마와 차를 타고 끔찍한 기억이 담겨있는 집을 벗어나 이사를 간다. 그러나 이사를 가는 그의 뒤로 트라우마가 형상화된 검은 물체가 함께 따라오며 게임이 끝이 난다. 도망간 곳에서도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트라우마를 마주하자니 계속해서 정신적 고통과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또 다른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친구 바질이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친구 바질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드는데, 이를 말릴 지 그대로 둘 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만약 그대로 둘 경우 막다른 길에 몰린 바질 역시 극단적 선택을 해 주변 친구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와 절망을 안긴다. 트라우마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다 패배하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꿈 속 세계에서 주인공 일행이 영화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꿈 속 세계에서 주인공 일행이 영화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써니가 숨기고 싶었던 끔찍한 진실이 그림으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써니가 숨기고 싶었던 끔찍한 진실이 그림으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러한 좌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질의 죽음을 막은 후, 써니는 자신의 우울함과 죄책감 등이 형상화된 꿈 속의 또 다른 자신인 오모리와 마지막 전투를 하게 된다. 오모리와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트라우마를 없애고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모리는 너무 강해졌고, 결국 써니는 필연적으로 오모리에게 패하게 된다.

게임은 여기서 또 선택지를 제시한다. 오모리라는 트라우마에게 패배한 채로 굴복하면, 써니는 바질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의지를 가지고 맞서 싸우기로 결심할 경우, 마리와 함께 했던 듀엣 노래와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린 채 오모리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그를 꼭 안아준다. 오모리로 대표되는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없애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짊어진 채 꿋꿋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직후 오모리는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써니는 하얀 방과 작별 인사를 한 뒤 꿈 속 세계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다.

이후 써니는 그동안의 감정을 모두 쏟아내며 울음을 터트린 뒤,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걸음을 내딛는다. 친구들에게 도착해 자신이 4년 전 마리를 사망케 했다는 사실을 토해내며 게임은 끝이 나고, 쿠키 영상을 통해 써니와 바질이 둘러싼 죄책감들로부터 해방되는 모습이 비춰진다.
 
써니는 트라우마가 형상화 된 오모리와 맞서 싸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써니는 트라우마가 형상화 된 오모리와 맞서 싸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써니가 친구들에게 과거 끔찍했던 사고의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써니가 친구들에게 과거 끔찍했던 사고의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사실, 써니가 가진 트라우마와 우울증은 너무 극단적이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순 없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든 어떤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고 써니와 비슷한 수준의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게임 '오모리'는 이러한 트라우마에 대해 묻어버릴수록 더욱 끈질기게 버티고 조금씩 새어 나오는 존재이며, 우울증이나 환각 등으로 변해 당사자를 고통에 빠트리는 과정을 1인칭 시점에서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더불어, 트라우마로부터 무작정 도망가는 것은 능사가 아니며 트라우마를 이기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멀티 엔딩을 통해 그려준다. 트라우마는 아무리 멀리 가도 마음 속 깊은 곳에 거머리같이 붙어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남겨진 주변인에게도 새로운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고통의 연쇄로 이어진다. 트라우마와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하더라도, 의지대로 되지 않는 배드 엔딩들을 통해 그 고통을 실감시켜 준다.

분명 이 게임엔 진 엔딩 처럼 보이는 결말이 존재한다. 써니가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모두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 말이다. 얼핏 이 게임이 전하는 최종 메시지는 '트라우마에 맞선다는 것은 힘들지만, 이를 품고 받아들여야 트라우마 극복의 출발선상에 설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더 중요한 메시지는 수많은 배드 엔딩에 숨겨져 있다.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다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는 배드 엔딩, 그에게 맞서다 친구와 자신의 목숨을 잃는 베드 엔딩 등이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이러한 베드 엔딩 직전에서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다. 게임 '오모리'의 진가는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데 있다. 

부디 많은 이들이 이 게임을 통해 트라우마와 우울증의 무서움에 대해 느꼈으면 한다.

오모리는 엔딩에 따라 시작화면이 처음과 달라진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오모리는 엔딩에 따라 시작화면이 처음과 달라진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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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리 2020년 12월 25일
플랫폼
PC
장르
롤플레잉
제작사
게임소개
미국 개발자 OMOCAT이 개발한 오모리는 게임 주인공 오모리가 여러 친구와 적으로 가득한 이상한 세계를 탐험하며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RPG다. 주인공 오모리를 포함해 여러 캐릭터를 성장시켜 게임...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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