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장비에 LED만 달면 ‘게이밍’이 붙던 때가 있었다. 게이밍 데스크, 게이밍 램, 게이밍 그래픽카드, 게이밍 스피커 등등... 한결같이 ‘게이밍’을 붙이고 번쩍이는 기기를 보고 있자면 ‘장비만 바꾸면 당신도 페이커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하드웨어 회사 상술에 넘어갈 것만 같았다. 누구나 "불 좀 꺼줄래?"라고 한 마디쯤 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휘황찬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게이밍 기어’ 추세는 LED 장칙 여부보다는 인체에 얼마나 부담을 덜 주며 최상의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느냐로 달라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디자인이 도출됐는데, 그 중에도 두각을 드러낸 분야가 '게이밍 의자'다. 이에 2022년 현재 게이밍 의자는 과연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어떠한 디자인이 나오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바닥에 앉아서 하는 게이머도 있습니다
우선 ‘의자’라고 한다면 대부분 의자 다리가 있는 입식 의자를 생각하지만, 좌식 생활에 익숙한 사람을 위한 좌식형 게이밍 의자도 출시되고 있다. 좌식형 게이밍 의자는 의자로서의 의자라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좌식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다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비교적 쿠션이 높다. 아울러 모양도 둥글어 바닥 손상을 최대한 줄였다.
그 중 호평을 받은 XRocker 게이밍 체어 'Pro Series SE+ 2.1 듀얼 게이밍 의자’'는 의자로서 편의성과 함께 게이밍 경험을 풍부하게 할 기능을 갖췄다. LED처럼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기능을 배제한 대신 머리받침 부분에 블루투스로 연결할 수 있는 2.1채널 오디오 스피커를 장착해 헤드셋 없이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에 진동 모터가 달려 있어 오디오에 맞춰 게이머에게 진동을 주며 촉각을 만족시킨다. 크기도 크기에 연령과 체격에 불문하고 편하게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손꼽힌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기울기 조정에 한계가 있다는 점 정도다.
AI가 만드는 인체 친화 디자인, 그걸 BMW가 해냅니다
게이밍 의자 중 편의성을 극대화 한 제품은 무엇일까. 최근 게이밍 기어가 인체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향하고 있지만, 사실 편의성을 중시하는 의자는 사무용 의자로 시선을 돌리면 선택지가 더 많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는 시국에 맞춰 게임과 업무를 겸해 스틸케이스, 허먼 밀러 같은 하이엔드 사무용 의자로 시선을 돌린 게이머도 있다.
그런데 지난 해, 하이엔드 사무용 의자도 범접하기 힘든 성능과 디자인을 앞세운 게이밍 의자가 발표됐다. 의자 시트에 장착된 자체 냉/난방 시스템에, 이용자 체형과 자세에 따라 인공지능이 의자 쿠션을 조정해주는 기술도 탑재됐다. 제조사는 모두가 다 아는 그 BMW로, 의자 제작에는 F1 차량 좌석에 사용되는 기술도 도입했다고 전해진다. 게이밍을 넘어 가장 편안한 의자에 등극하지 않을까?
편안한 착석? 무중력이면 되는데 뭘 AI까지
하지만, 인공지능 도움 없이 신체에 가해지는 중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면 어떨까? 일부 회사들은 자체적인 기능을 이용해 인체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사람에 움직임에 맞춰 조정되는 워크스테이션을 고안했다. SNS에서 '스콜피온 게이밍 체어'라 불리던 의자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워크스테이션'은 의자를 눕히면 모니터도 따라 눕고 키보드 받침도 각도에 맞춰 기울어져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특히 '무중력'을 내세운 '에르고퀘스트 제로 그래비티 워크스테이션'의 경우 완벽한 인체 친화형 디자인과 편의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의자가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이유에는 가격이 있는데, 이는 한화 약 2,000만 원 선이다.
의자 하나에 2,000만 원을 들일 수 있는 게이머가 몇이나 될까?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프리미엄 게이밍 의자 제작사는 워크스테이션과 게이밍 체어 간 간극을 조절해가며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내놨다. 개중에는 의자에 '마개조'를 더하기도 했는데, 그 중 가장 독보적 의자로 알려진 것이 '임퍼레이터워크스 IW-J20 Pro 개틀링 건 버전'이다. 앞서 설명한 워크스테이션 기능을 대부분 가졌고, 팔걸이 아래에는 개틀링 건 장식, 의자 받침에는 체인을 달아 SF 게임에 나올 법한 디자인을 앞세웠다. 가격도 앞서 설명한 제로 그래비티보다 낮은 850만 원 정도다.
인간은 스스로 가장 편한 상태를 찾는다
하지만, 역시 심리적, 자본적, 인체 친화적까지 삼위일체를 갖춘 게이밍 의자는 결국 침대가 아닐까 한다. 침대 매트리에 빈백을 올려놓고 기대어 게임을 즐긴다던가, 대충 손에 패드를 쥐고 침대에 옆으로 누운 자세만큼 편안한 자세는 드물다. 무엇보다 포근한 이불과 손 닿는 곳에 놓인 간식까지 있으면 무중력 워크스테이션 부럽지 않은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일본 바우휘테가 내놓은 게이밍 침대도 바로 이런 점에 집중한 제품이다. 말 그대로 누워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고, 침대 각도를 조절해 비스듬하게 기대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듯 인간은 어떻게든 스스로 가장 편한 상태를 찾으며, 이러한 수요에 의해 게이밍 의자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기존에 많은 게이밍 의자는 착석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쿠션감과 각도 조절, 큰 사이즈에 초점을 맞췄고, 최근에는 통풍을 위한 그물망 형태의 천인 매시나 발받침 등을 더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편안한 게이밍 생활을 각 제조사가 어떠한 디자인을 보여줄까. 언젠가는 게임을 하며 건강도 챙기고, 비용 걱정도 덜어낸 게이밍 의자가 나와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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