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게임을 넘어 유명세 탄 헤어스타일 TOP 5

게임 캐릭터들의 헤어스타일은 실로 다양하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머리색,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전위적 형태, 무게 따위 무시하는 커다란 액세서리, 세팅하는 데만 10시간은 걸릴 듯한 왁스칠 등, 그야말로 '헤어 디자인의 레드오션'이다. 너무 독특한 스타일이 많다 보니 웬만한 머리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상향 평준화가 일어날 정도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헤어스타일을 꿋꿋이 밀고나가 게임계를 넘어 일반인들도 알 법한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있다. 원작 게임이나 캐릭터는 잘 모르지만, 헤어스타일을 보면 '아, 그거'라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헤어의 아이콘들을 모아봤다.

게임계에는 중력을 거스르는 머리들이 많다. KOF 시리즈의 니카이도 베니마루, 철권 시리즈의 폴 피닉스 등, 하나같이 경이로운 공중부양 기술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런 '중력 거스르기 머리'의 원조는 단연 1991년 스트리트 파이터 2에서 처음 등장한 가일이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만한 '빗자루 머리'는 가일의 상징으로, 빗으로 자주 머리를 빗는 모션을 보면 뭔가를 발라 띄운 것이 아니라 그냥 모발 자체의 힘이 무지무지 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옆머리를 대각선으로 뻗치게 자르는 스타일을 '가일컷'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현실의 가일컷은 게임처럼 비현실적으로 뻗치진 않고, 가르마를 내서 한쪽 앞머리를 들어 올리고 포마드를 바르는 다소 얌전한 형태로 재해석된다.

아무튼, 이 머리가 등장한 이후부터 이렇게 뻗친 머리를 '빗자루 머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이미 헤어 용어 사전에 이름 석 자를 새겨 넣은 셈이다. 다만, 가일 역시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듯하다. 스트리트 파이터 6에 와서는 머리의 힘이 다소 약해졌는지 머리를 뒤로 묶은 코스튬이 등장하는 등 예전만큼의 강력한 공중부양력이 느껴지진 않는다. 노화로 인한 모발 힘 약화는 슈퍼 군인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슬픈 부분인가 보다. 그래도 탈모가 오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겠다.

토벤머리는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생성 시 기본적으로 고를 수 있는 남성 헤어스타일 중 하나다. 초기에는 누가 봐도 초보 티가 나고 약해 보이는 디자인 때문에 인기가 없는 편이었고, 많은 유저가 빡빡머리나 더벅머리를 선호했다. 그러나 바로 그 '초보티' 나는 느낌이 역설적으로 화제가 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게임 내 유행을 넘어, 관련 NPC가 등장하고 카트라이더 등 다른 게임에 컬래버 수출까지 되는 등 패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토벤머리는 옆머리를 짧게 민 투블럭 스타일에 앞머리를 자연스레 가르마 탄 형태로, 일부에서는 과거 거북이 '귀'에 머리 '두'를 합친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머리스타일이 왜 '토벤머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자는 '(베)토벤 머리 아니냐', '톱으로 벤 머리인가' 같은 추측을 내놓지만, 심지어 운영자조차 그 어원을 알지 못한다고 답변할 정도로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초기 메이플 개발진들이 대부분 현업을 떠난 가운데, 토벤머리의 탄생 비화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듯하다. 다만, 이 헤어스타일이 현실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스타일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2000년대 초, 국내 남성 패션계를 휩쓸었던 스타일이 있다. 바로 샤기컷이다. 머리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왁스를 발라 뾰족한 느낌을 살린 이 스타일은 한때 국내 남성 연예인의 표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유행은 빠르게 식었고, 2025년 현재 샤기컷을 고수하는 유명인은 일본인 콘셉트의 '다나카상' 정도가 전부다. 그렇게 유행이 지나기 시작한 샤기컷을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비현실적인 비주얼로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파이널 판타지(FF) 시리즈다. 클라우드 스트라이프로 대표되는 삐죽삐죽하고 섬세한 머리는 샤기컷 대신 '파판컷'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제는 이 파판컷의 현실적인 애로사항이다. 파이널 판타지 15의 주인공 녹티스 루시스 카일룸은 나라를 빼앗기고 도망쳐 다니며 복수를 다짐하는 왕자인데, 그의 헤어스타일은 세팅하는 데만 거울 앞에서 한두 시간은 족히 싸워야 것 같은 섬세함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파판컷 캐릭터들이 이런 '절대 풀리지 않는 세팅력'을 자랑하다 보니, 유저들 사이에서는 '저러고 어떻게 싸우냐'며 약간은 비꼬는 듯한 느낌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미모를 극대화하는 파판컷은 게임 캐릭터가 지켜내야 할 '로망'이자, 드래곤볼 손오공 머리처럼 '원래 저렇게 뻗친다'고 믿게 만드는 초월적 스타일링이다.

앞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의 가일을 소개했지만, 사실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가장 유명한 머리스타일을 꼽으라면 단연 춘리다. 춘리는 헤어스타일뿐 아니라 옆이 길게 찢어진 치파오, 전투용 장화, 징 박힌 팔찌 등 모든 면에서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스타일링에 하이라이트를 찍는 것이 바로 만두머리다. 본래 만두머리는 중국 전통 스타일이었지만, 정작 현지에서는 오래된 머리 취급을 받아 성인 여성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춘리가 이 만두머리를 하고 덮개까지 쓰고 나오면서 그야말로 만두머리의 부흥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만두머리 캐릭터가 나왔지만, 만두머리의 대명사는 아직도 춘리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스트리트 파이터 6에서도 이 머리스타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이덴티티다. 저 머리를 풀어헤치는 순간, 춘리의 가장 큰 상징성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녀는 만두머리를 통해 '중국풍 머리'라는 이미지를 '스트리트 파이터의 상징'이자 '액션 히로인의 스타일'로 완전히 바꿔 놓았다.

철권 시리즈에는 폴 피닉스처럼 중력을 거부하는 머리가 많지만, 그중 가장 유명하고 독보적인 개성을 가진 것은 아무래도 미시마 헤이하치일 것이다. 탈모로 인해 옆머리만 남은 상황에, 그 옆머리를 길게 기른 후 위쪽으로 길게 뻗쳐낸 스타일. 단언컨대 현실에선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을 그 헤어를 헤이하치는 당당하고 폼나게 소화해낸다. 여기에 짙은 수염과 눈썹이 더해져야 진정한 '헤이하치 컷'이 완성된다. 실제로 보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스타일이지만, 일반적인 탈모인들이 옆머리로 윗머리를 덮으려 하는 것과 달리 헤이하치는 굳이 머리를 띄워낸다는 점에서 그의 비범함이 드러난다. 

이 헤어스타일이 게임계를 넘어 패션 아이콘이 된 경로는 다름아닌 개그계다. 무한도전에서 당시 일반인이었던 신동훈(딕헌터)이 이 머리를 하고 나온 것을 시작으로, 김용명, 문세윤, 양배차 등 개그맨들이 웃기기 위한 용도로 헤이하치 컷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등장만 해도 빵 터지는 비주얼에 뻔뻔한 연기가 더해지니, 한 컷 한 컷이 레전드로 꼽혔다. 이 덕분에 철권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저 신기한 머리가 대체 뭘까"라며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헤이하치 컷의 존재가 자연스레 전국에 알려졌다. 코미디의 정수를 상징하는 유쾌한 아이콘으로 재탄생한 헤이하치에게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