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위 정하는 남자]는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초의 FPS라 평가 받는 ‘호버탱크 3D’가 출시된 지 올해로 꼭 25주년이 됩니다. FPS(First Person Shooter, 1인칭 슈팅게임)란 말 그대로 실감나는 ‘1인칭’ 시점으로 무언가를 ‘쏘아’ 즐거움을 얻는 장르죠. 그간 ‘울펜슈타인’, ‘둠’에서부터 ‘헤일로’, ‘콜 오브 듀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FPS가 이 두 가지 명제를 준수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오늘날 여러 국산 FPS가 이러한 전통적인 장르 구분법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온라인 PvP를 중심으로 장기간 서비스되는 국산 FPS의 특성상, 수명 연장을 위해 지속적인 콘텐츠 확충이 불가결하죠. 단순히 새로운 전장과 총기 추가만으론 한계가 명확하니 결국 총을 쏘는 것 이상의 이색적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테러리스트 대신 공룡을 소탕하고, 수류탄 대신 눈뭉치가 날아다니며, 아예 캐릭터가 사람이길 포기(?)하더라도 그리 낯설지 않죠. 정통 FPS 마니아에겐 안됐지만, 덕분에 더 많은 라이트유저가 스스럼없이 게임에 빠져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샷발’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색적인 룰에선 충분히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과연 국산 FPS 사상 가장 황당한 모드는 무엇일까요?
5위 유령잡기(서든어택), 어서 와~ 엑소시즘은 처음이지?
▲ 유령보다 더 위험해보이는 이 호박이 바로 헌터 (사진제공: 넥슨)
5위는 ‘서든어택’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령잡기’입니다. 좀비, 외계인, 로봇으로도 모자라 귀신이랑 싸우는 것은 아니고, 집안에 숨은 유령을 찾아내는 일종의 술래잡기죠. 말이 ‘유령잡기’지 조금도 무섭진 않으니 혹여 담이 약하더라도 걱정 마시길. 참고로 진짜로 귀신이랑 죽자고 총격전을 벌이는 모드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있답니다.
‘유령잡기’를 시작하면 플레이어 가운데 한 명이 헌터로 선정되고 나머지는 전부 유령이 됩니다. 유령들은 스텔스 능력을 기본 장착한 대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헌터에게 위해를 가할 수가 없죠. 반면에 헌터는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영감을 받은 게 분명한 청소기와 빗자루, 페인트 수류탄 등으로 유령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합니다. 도대체 유령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 봉변(…)을 당하는지는 개발자밖에 모를 겁니다.
기존 ‘스텔스’ 모드는 투명화한 강자가 다수의 약자를 사냥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선 반대로 보이지 않는 유령을 중무장한 헌터가 잡으러 다닙니다. 거기다 무슨 좀비마냥 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유령은 몇 초 후 헌터로 부활해요. 왜 죽은 자가 되살아나느냐면…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시간 내에 유령을 모두 잡아내면 헌터측 승리, 실패하면 유령측 승리입니다. 장르명은 역시 FPE(First Person Exorcism)가 좋겠네요.
▲ 유령들은 되살려 준다는데 왜 도망치는 걸까요 (영상출처: 게임 공식유튜브)
4위 건볼(카스 온라인 2), 총잡이 지성팍이 되어보자
▲ 지금 총구가 공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거 같은데… (사진제공: 넥슨)
4위는 최근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2’에 도입된 ‘건볼’입니다. 제목이 꽤 직관적인데, ‘총(Gun)’으로 ‘공(Ball)’을 쏘아 진행하는 축구거든요. 과거에도 FPS에 축구를 접목한 사례가 없진 않지만, 그건 공이 있던 말던 그냥 적을 쏘고 그어버릴 수 있었던 반면 여기선 정말로 스포츠가 중심입니다. 상대를 쏘아 넘어트릴 순 있지만 죽이는 건 불가능하죠.
‘건볼’ 경기는 보기만해도 눈이 피로한 푸르스름한 전용구장에서 진행됩니다. 실제 축구장처럼 네모 반듯한 직사각형에 좌우 끝에는 골대가 놓여있죠. 양팀 선수들은 중앙에 놓여진 공을 총으로 쏘아 반대편 골대로 몰아가야 하는데, 산탄총으로 힘있게 공을 날려보내고 기관단총이 재빠르게 볼컨트롤, 저격총은 멀리서 어시스트를 하는 등 무장에 따라 포지션 차이를 뒀습니다. 특히 수류탄이 굉장히 강력해서 공을 걷어내거나 급습에 활용하기 좋죠.
확실히 이만하면 스포츠게임다운 구색은 어느 정도 갖춘 셈입니다. 왜 멀쩡한 발을 놔두고 총으로 공을 모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남자의 로망을 실천하는데 이유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옛말에 소개팅에 나가거들랑 군대서 총 쏜 얘기랑 공 찬 얘기는 하지 말랬는데… 총으로 공을 찬 얘기는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군요.
▲ 저격왕 호날두, 폭탄마 메시가 등판할 날이 멀지 않군요 (영상출처: 게임 공식유튜브)
3위 런런런(서든어택), 이쯤 되면 그야말로 극한직업 테러리스트
▲ 다들 해탈의 경지인지 표정만은 해맑습니다 (사진제공: 넥슨)
3위는 이번에도 ‘서든어택’에서 즐길 수 있는 ‘런런런’입니다. 앞서 소개한 두 모드는 최소한 무언가를 쏘긴 하는데, 여기에 이르러선 정말로 슈팅게임이라는 정체성을 내버렸죠. 대신 제목이 말해주듯 신이 주신 튼튼한 두 다리로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릴 뿐입니다. 다만 극한의 속도를 겨루는 레이싱게임보단 누가 더 장애물을 잘 피하냐 보는 플랫포머에 가깝겠네요.
‘런런런’의 무대는 이글거리는 용암 던전과 뼛속까지 시린 얼음 던전입니다. 플레이어는 평소처럼 두 팀으로 나뉘어 골인 지점까지 진행해야 하는데, 길목 여기 저기에 위협적인 살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죠. 움직이는 벽면은 기본이고 허공에 떠있는 발판, 떨어지는 고드름, 덮쳐오는 지붕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애물이 다 나옵니다. 테러리스트랑 특수부대원도 참 별의별 고생을 하는군요.
여기까지 보면 순발력으로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각 트랙에는 상대편 함정을 불시에 작동시킬 수 있는 버튼이 있어 그것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경로 여기 저기에 위치한 아이템으로 적을 무력화시켜야 하죠. 즉 달리고 피하고 상대편 눈치 보며 아이템도 사용해야 하는데, 이쯤 되면 차라리 총싸움이 그리울 지경이네요.
▲ 일단은 FPS 맞습니다, '서든어택' 런런런 (영상출처: 게임 공식유튜브)
2위 스포츠(아바), 건전하게 즐기는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혈투
▲ 건전한 스포츠 스타디움인 '척' 하는 중입니다 (사진제공: 네오위즈게임즈)
2위는 ‘아바’ 이색 모드 모음집 ‘스포츠’입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2’의 ‘건볼’이 구기종목이었다면 이쪽은 높이뛰기, 단체 줄넘기, 클레이 사격, 디펜스, 미션까지 총 다섯 가지가 혼합된 종합 스포츠죠. 여기서 미션이란 폭탄 해체, 권총 사격, 수류탄 투척 능력을 연달아 겨루는 겁니다. 애초에 사격이 메인 콘텐츠인 FPS에 ‘스포츠’ 모드로 다시 클레이 사격이 들어가다니 무어라 형언하기 어렵네요.
엄밀히 따지면 디펜스랑 미션은 운동이랄 수도 없지만, 어쨌든 ‘스포츠’에 포함됩니다. 원하는 게임 방식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모드 한 판에 다섯 종목이 연달아 진행되거든요. 우선 트램폴린처럼 캐릭터를 튕겨 올리는 발판 위에서 높이뛰기를 했다가 정확히 안착해야 하며, 일정 주기마다 지나가는 레이저를 피하고, 무작위로 등장하는 과녁판을 쏘고, 미끄럼틀을 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수류탄을 던지는 등 완전 유격훈련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모드 이름부터 ‘스포츠’임에도 정작 게임 내에선 스포츠 정신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입니다. 사실 이건 유저들 탓만은 아닌 게, 시스템적으로 ‘스포츠’ 모드에서 무기 소지 및 사용을 허용하고 있거든요. 덕분에 모든 종목이 서로를 향한 무수한 폭탄 세례와 칼질로 얼룩져버렸고, 특히나 클레이 사격에선 과녁이 아니라 상대팀 머리를 노리는 불상사가…
▲ 그 진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배틀로얄의 현장 (영상출처: 게임 공식유튜브)
1위 숨바꼭질(카스 온라인 2), 내가 아직도 아스나쨩 피규어로 보이니
▲ 공식이미지부터 이미 숨바꼭질이 아니라 술래잡기인데!? (사진제공: 넥슨)
마지막 1위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2’ 속 ‘숨바꼭질’입니다. 이 모드는 여러 말이 필요 없는 숨바꼭질 그 자체인데, 재미있게도 사람이 숨는 게 아니에요. 대신 술래 외에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사물로 변해서 맵에 배치됩니다. 나무상자, 드럼통, 사다리는 물론 원한다면 맛있어 보이는 닭으로도 변할 수 있죠. 그야말로 궁극의 숨바꼭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눈에 띄는 물체를 모조리 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요? 문제는 술래가 변장한 사람을 맞추지 못할 때마다 체력을 잃는다는 겁니다. 대신 제대로 맞출 경우 체력이 상승하므로 위화감을 풍기는 사물을 잘 식별해서 사격하는 것이 요령이죠. 만약 보도 위에 놓인 화분이나 지붕 위에 거북이처럼 엄한 위치에서 사물을 발견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가가 총알을 먹여주시길.
다만 술래에게 적발된다고 무조건 죽은 목숨은 아닙니다. 그냥 체면치레(…)는 관두고 내빼면 그만이죠. 생긴 건 물건이지만 실제로는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한시간 내에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OK입니다. 이 점을 이용해 일부러 닭이나 전화기처럼 회피에 유리한 작은 사물을 골라 게임 내내 도망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면 더 이상 숨바꼭질이 아니지 않나요?
▲ 정신 없는 숨바꼭질의 향연을 감상하시라 (영상출처: 게임 공식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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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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