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게임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총기 보유가 허가되는 나라이다. 국토가 워낙 넓어서 비상사태 시 공권력의 도움을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도 있지만, 서부 개척시대에는 넘쳐나는 무법자 때문에 총기를 소유하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총기 소지를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총기 소지 허용에는 그러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서부 개척시대’ 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카우보이 복장을 한 터프가이들이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며 총을 쏘고, 술집에 들어가면 한 쪽에선 도박판이, 바깥에서는 싸움이 벌어진다. 가끔은 현상금 사냥꾼과 현상범의 결투가 벌어지고, 보안관이 출동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상당히 낭만적이다. 그러나, 락스타가 제작한 ‘레드 데드 리뎀션’은 이 모든 것에 더하여 개척시대의 어두운 이면까지 재현해냈다. 낭만과 처절함이 살아 숨쉬는 서부 개척시대를 ‘레드 데드 리뎀션’을 통해 온 몸으로 느껴보았다.
▲ 나와 함께 서부 개척시대를 여행해보자!
넓다! 진짜 넓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레드 데드 리뎀션’의 배경은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의 후반부다. 게임 시작 전부터 넓게 펼쳐진 황야를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느껴 보니 외로운 느낌까지 더해져 더 넓다고 느껴졌다. 중소형 마을이나 캠프 몇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래, 바위, 선인장, 야생 동물, 호수, 계곡 등으로 둘러싸인 대자연이다.
▲ 선인장 투성이!
개발되지 않은 자연 풍경은 얼핏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이동 시간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특히 시간대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풍경 덕분에 게임 내내 눈이 즐거웠다.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과 노을이 지는 저녁, 달빛에 의지해야 하는 심야, 비 오는 날, 안개 낀 날 등 다양한 환경에 따라 변하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이런 아름답고 탁 트인 자연에서 말을 타고 달리니 그야말로 신세계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에서 차를 타고 백날 달려 봤자 이런 느낌은 느끼지 못 할 것이다.
▲ 이 멋진 경치를 보라!
▲ 'GTA3: 산안드레스'를 해 본 사람은 왠지 익숙한 경치일 거다!
필드는 광활한 반면 사람은 비교적 적다. 마을을 벗어나면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진다. 간혹 마차나 말을 타고 달리는 여행자들이 보일 뿐이다. 마을 내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닌지라 간혹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며 사람들을 죽이다 보면 어느 새 마을 전체가 텅 비어버리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보안관도 적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안 유지가 어렵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범죄는 엄청나게 일어난다. 젊은 여자나 아이의 납치, 행인의 돈을 뺏고 괴롭히다 죽이는 등의 강력범죄는 이 세계에선 일상에 불과하다. 마을 전체가 전멸당하거나 열차가 습격 당할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신문에 실릴 정도랄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일반인들도 권총이나 라이플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된다.
▲ 아이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사건은 약과다!
▲ 이 정도쯤 되어야 조간 신문 2면에 실린다!
차 뺏어 타는 GTA, 말 뺏어 타는 레드 데드 리뎀션
‘레드 데드 리뎀션’에 항상 뒤따라오는 수식어, ‘서부 개척시대 버전 GTA’ 라는 별명답게 ‘레드 데드 리뎀션’의 자유도는 매우 높다. 시민들을 학살할 수도, 시체를 뒤져서 돈을 훔칠 수도, 남의 탈 것을 빼았아 탈 수도 있다. 단지, 자동차가 아닌 말이나 마차를 뺏어 탄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같은 탈 것이라고 해도 말은 엄연한 생명체다. 비록 여물을 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지 만, 엑셀을 밟으면 나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는 자동차와 달리 말은 고속으로 달리면 지친다. 말을 재촉하면 스피드가 빨라지지만, 계속해서 재촉만 하면 말이 고통스러워하며 플레이어를 낙마시켜 버린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면 말이 죽어버리는 불상사까지 생긴다. 사극이나 서부극에서 말에 채찍질을 하며 ‘이랴~ 달려라~’ 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필자는 ‘왜 이 말이 날 거부하지?’ 하며 계속 말을 닥달하다 결국 말을 죽여버리고 씁쓸한 기분에 잠겼었다.
▲ 전진 버튼을 연타하면 빨라진다! 계속 연타해볼까?
▲ 이런 젠장! 말이 죽었다! 약해 빠진 놈 같으니라구!
▲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말은 죽으면 뭘 남기는줄 아나?
▲ 바로 말가죽! 고기는 부피가 너무 크니 놔두고 가지만 사실 말고기는 꽤 맛있다
얼핏 보면 자동차보다 훨씬 불편해 보이지만, 말은 자동차로 할 수 없는 많은 행동을 할 수 있다. 고속으로 달리면서도 웬만한 장애물은 죄다 뛰어넘거나 피해가는 판단력, 멀리 있더라도 휘파람 몇 번이면 쪼르르 달려오는 충성심,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말의 외관 등 자동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말을 탄 채로 벌이는 총격전도 손 쉽게 즐길 수 있고, 퀘스트시 동료를 따라갈 때에도 ‘X’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말이 자동으로 동료를 따라가는 등 편리한 기능이 많다. 말에 한 번 익숙해지고 나면 자동차가 어색할 지경이다.
▲ 점프, 높이 올라 멀리 뛰어보자
▲ 다른 말을 잡아탄 후 휘파람을 불면 내 충성스런 애마는 뒤를 졸졸 따라온다!
더 좋은 말을 수집하는 재미도 있다. 필드에는 상당수의 야생마가 돌아다니는데, 그 중에는 특별히 체격이 좋고 멋있는 말도 있다. 대체로 근육이 튼튼하고 다리가 굵으며 꼬리와 갈기 털이 진하고 예쁜 색을 띈 말들이 속도도 빠르고 스테미너도 좋다. 이런 말들을 로프로 잡은 후 로데오를 통해 길들여 집이나 여관 등에 묶어 놓으면 내 소유의 말로 만들 수 있다. 특히 게임 후반부에 가면 버팔로, 줄무늬당나귀, 투우소 등 다양한 동물을 길들여서 타고 다니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 저 백마 마음에 드는데?
▲ 아핫 이 놈 거친데?
▲ 너 좋은 놈이구나!
▲ 나와 같이 살자꾸나 아하하하하
▲ 'X'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퀘스트 중에도 동료를 쉽게 따라갈 수 있지!
무질서한 사회,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위에 언급했듯, 사람들이 총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온갖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환경 때문이다. 때문에 가족들을 살해당하고 흐느끼는 할머니, 도적들에게 몰살당한 마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울분을 터뜨리는 여성들, 갱단에서 탈퇴한 후 가족들과 새로운 삶을 살려 하지만 가족을 인질로 잡힌 후 전 동료들을 없애기 위해 고생하는 주인공까지. 현대 사회에 비하면 너무나도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 무질서한 사회 탓이다.
▲ 나도 최선을 다했다구!
▲ 오, 그랜마
▲ 설득하고 있는데 갑자기 총을 쏴?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마을을 부흥시키려고 하거나 보물을 찾는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 범죄자를 i거나 도박장을 꾸려가는 등 직업에 충실한 사람들, 혹은 이른 아침 광장에서 수프를 끓이거나 집 수리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 각지에서 강도살인이 벌어지고 마을이 습격받는 다소 어두운 사회지만 그 속에도 사람들은 적응하며 살아간다.
▲ 못을 박는 거냐, 손에 망치를 내려치는거냐?
▲ 한뚝배기 주세예
▲ 모두가 각자의 직업에 충실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GTA’ 시리즈에서는 심심풀이로 행인을 쏴 죽여도 별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 에서는 그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밥을 먹는 모습들을 보면 모형이나 NPC가 아니라 진짜 사람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간혹 죽은 연인이나 가족의 시체를 보고 망연자실해 있다가 끝내 자살을 택하는 행동 등을 목격하면 가슴이 저려오기도 한다. ‘얼마든지 생명을 학살할 수 있는 오픈 월드형 게임에서 이런 기분이 들게 하다니 역시 락스타!’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죽이면 벌 받지!
다양한 퀘스트, 아르바이트, 현상금사냥, 도박 등
‘레드 데드 리뎀션’은 ‘GTA’ 시리즈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오픈 월드형 게임이다. 지도 내에 표시된 아이콘을 따라 가면 사람을 만나고, 임무를 받고 수행하던 중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방식은 ‘GTA’ 시리즈와 판박이다. 때문에 초반엔 ‘이거 단순히 GTA 서부판 아니야?’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레드 데드 리뎀션’ 에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퀘스트를 접하다 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 왠지 저 표식으로 가야 할 것 같다
▲ 누구 닮았는데 말이지...
▲ 좋아 이 놈은 내가 잡는다
일반적 퀘스트인 ‘토벌’, ‘체포’ 등 총싸움 미션의 경우 각종 엄폐물을 이용하여 적을 조준한 후 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간혹 인질을 잡고 있다거나, 도망치는 적을 잡는 등 많은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돌격하는 것은 금물이다. 또한, 말 생포하기, 동물 사냥하기, 소나 말 떼 몰기 등 다양한 퀘스트는 게임의 이해를 도움과 동시에 서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 또한 순찰견과 함께 마을을 순찰하거나,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 악인을 심판할 수도, 포커나 블랙잭, 손가락 사이를 칼로 찍기 등의 도박을 하는 등 서부극에서나 나올 만한 많은 즐길 거리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카드 도박에서는 ‘타짜’ 에서나 나올 법 한 속임수도 쓸 수 있는데다 상대방의 표정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리얼리티의 극치다.
▲ 조준이 어렵거든 옵션에서 쉽게 조절해라! 그냥 자동으로 조준된다!
▲ 밑장 정도는 쉽게 뺄 수 있지
▲ 난 개패, 저놈은... 개패
살인은 자유지만, 이래도 할 거에요?
‘레드 데드 리뎀션’에는 명예 수치가 있다. 많은 사건을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 명예 수치가 올라가고 다양한 칭호를 수여받게 된다. 명예가 올라가면 많은 사람들이 호감적으로 다가오고, 선물을 받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민간인을 학살하고 무자비한 행각을 일삼는다면 명예 수치가 떨어지고 적대적으로 변한 마을사람들을 볼 수 있다. 상점에서도 물건 값을 비싸게 부르고, 몇몇 퀘스트는 수행하지 못 하는 경우도 생긴다. 비록 말의 외모가 사악해지는 등 부가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 이런 변태가 있나!
▲ 고맙긴요 아하하하하하하
‘GTA’ 시리즈에선 한 번 죽거나 사로잡히면 무기를 몰수당하고 돈을 약간 지불할 뿐 그대로 재시작 할 수 있었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 에서는 명예 수치가 계속해서 적용되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한편 마을에서 난동을 벌이면 현상금이 걸리고 보안관과 현상금 사냥꾼들이 i아오는데, 이 때 자신의 현상금을 스스로 지불하면 수배가 풀린다. 게임 시스템적으로 살인을 권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아마도 황금 만능주의를 풍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이런! 나에게 현상금이 걸렸다!
▲ 으어어.. 반성하자!
뭔가 어설픈 PS3 이식
PS3로 ‘레드 데드 리뎀션’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필자는 살짝 당황했다. 싱글플레이를 시작하려면 ‘X’ 버튼을 누르라는데 아무리 눌러도 게임이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 버튼은 멀티 플레이, ‘△‘ 버튼은 다운로드 컨텐츠 메뉴로 제대로 넘어가는데 오직 ‘X’ 버튼만 무반응인 것이다. 이상하다 싶어 나머지 ‘○’ 버튼을 눌러 봤다. 그러자 싱글 플레이가 시작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 처음 시작할 때 X를 눌러야 할 것 같지? 속임수다!
이러한 버튼 오류는 여기 뿐만이 아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시키는 대로 ‘X’ 버튼을 누르면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없으며, 도박 시에는 아예 ‘나가기’ 버튼과 ‘베팅’ 버튼이 ‘X’ 버튼 하나에 섞여 있어서 베팅을 할 때마다 ‘도박에서 나가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 창으로 넘어간다. 어째 PS3로의 이식 작업을 성의없게 진행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픽적 완성도는 둘째 치더라도 버튼 지정이 이상하게 꼬여 있는건 성의가 없어 보였다. 패치를 통해 속히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 X를 눌렀는데 왜 사질 못하니!
▲ 저기, 여기 미국 맞죠? 근데 개고기 매입하나요?
‘레드 데드 리뎀션’은 상당한 수작이다. 특히 실제로 서부 시대에서 살아가는 듯 한 자유도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정말 잘 했다’ 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서부의 무법자’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그려 왔던 서부극의 이미지가 정돈된 느낌이다. 비록 사소한 부분에서 신경을 덜 쓴 느낌이 들긴 하지만 패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게임에서 사회 질서와 폭력의 불합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게임은 충분히 플레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세상에 가치없는 사람은 하나도.. 몇명 있긴 하지만 거의 없다! 정의롭게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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