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다룬 '검은 사막' 세계관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게임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바로 적절한 스토리와 설정으로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게임 세계관은 유저의 게임 내 행위에 적절한 맥락을 제공하고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훌륭한 필치로 써 내린 설정이라도 게임 체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결코 좋은 게임 세계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유독 국내 MMORPG 중에는 세계관과 실제 게임이 따로 노는 일이 자주 보인다. 이는 펄어비스의 MMORPG 대작 ‘검은 사막’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검은 사막’은 나름대로 복잡하고 방대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직접 게임을 하는 유저 중에도 이 게임의 세계관을 제대로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게임 내에서도 동영상을 통해 계속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그렇게 애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알고 보면 ‘검은 사막’의 세계관은 최근의 획일화된 중세 유럽 풍 판타지 게임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독특한 주제를 갖추고 있다. 제대로 스토리텔링만 됐다면 이 세계관은 어두운 광맥 속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보석처럼,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검은 사막’ 세계관은 실제 게임 내에서 유저에게 제대로 보여지지 못했고, 그 진가는 제대로 개발되지 못한 원석처럼 여전히 감추어진 채 남아있다.
과연 ‘검은 사막’이 보여주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리고 왜 그토록 독특한 세계관임에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것일까? 이번 주 [세계기행]에서는 ‘검은 사막’의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자.
‘중세 판타지 느와르’를 다루다, 위험과 악의로 가득 찬 ‘검은 사막’의 세계
▲ '검은 사막'에서 누명 씌우기와 배신은 기본이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검은 사막’의 세계관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중세 판타지 느와르’라 할 수 있다. ‘검은 사막’은 기본적으로 어둡고 척박한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비정한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다른 게임에서 흔히 등장하는 ‘선과 악의 대립’은 이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검은 사막’에는 오직 서로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과 배신을 일삼는 암울한 사회만 존재한다.
‘검은 사막’의 이야기는 정체불명의 역병인 ‘검은 죽음’이 대륙을 휩쓸며 시작된다. 역병으로 인해 대륙의 인구는 기존의 절반 정도로 크게 축소됐으며, 여러 국가가 근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역병에 이어 거대한 모래폭풍, 해일, 태풍 등의 재해까지 몰아친 것이다. 이러한 재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깊은 불안과 회의로 동요하고 있다. 아직도 게임 곳곳에서는 병들고 굶주린 난민의 비참한 삶, 초자연적인 질병과 재해의 여파를 볼 수 있다.
▲ 삶이 파탄 난 사람들은 점점 비열하고 잔인하게 변해간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모든 재앙이 끝난 후에도 ‘검은 사막’의 세상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제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부족한 자원을 쟁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렇기에 이곳의 사람들은 대체로 비정하고 각박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개인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과 배신을 서슴지 않고, 국가와 신분은 사분오열하며, 종족 사이에도 깊은 앙심의 골이 존재한다. ‘검은 사막’ 어디를 가든 불화가 도사린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사막화로 고향 습지대를 잃은 '포건족'은 피에 굶주린 침략자로 변모했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러한 예를 가장 잘 보여주는 종족이 바로 '포건족'이다. 이족보행 개구리 인간 포건족은 본디 순하고 얌전한 종족이었다. 그러나 재해가 닥치며 포건족의 고향인 습지대가 말라붙어 사막으로 변했고, 산란처를 잃은 포건족은 새로 정착할 장소를 찾아 떠돌며 점점 흉포한 종족으로 변해갔다. 그러다 도착했던 곳이 바로 '나가족'이 사는 늪지대였는데, 다시 한 번 습기가 가득한 땅을 발견한 포건족은 거의 광포하여 뱀 인간인 나가족을 몰아내고 늪지를 빼앗았다. 개구리가 뱀을 쫓아낼 정도로 독기를 품고 싸움을 걸었던 셈이다. 그 후로도 포건족과 나가족은 더 많은 습기 찬 땅을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러한 침략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을 대상으로까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 알 룬디는 높은 세율에 분노해 반군을 이끌고 파괴행위를 자행한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어둡고 무자비한 세계관 분위기는 국가나 종족처럼 큰 단위의 분쟁뿐 아니라, 개인간 관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유명한 퀘스트 ‘포상금 사냥’은 영주의 과도한 세금징수를 두고 갈라선 두 친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중 한 명인 ‘알 룬디’는 봉기를 일으킨 반군 지도자인 반면, 동향에서 자란 친구 ‘에르바노 티토’는 출세를 위해서 영주의 경비병이 됐다. 이러한 관계라면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반대되는 입장임에도 서로를 걱정하는 친구들’ 같은 미담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검은 사막’의 티토는 공훈을 쌓기 위해 주인공을 고용하여 알 룬디를 암살하는 가차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검은 사막'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서울 정도로 악착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주인공 자신도 어둡고 끈적한 스토리에 머리 끝까지 파묻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검은 사막’은 ‘분기 의뢰’라는 선택지 덕분에 유저가 퀘스트를 어떻게 끝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지 중에는 더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짓을 해야 하는 내용도 있는데, 이는 곧 유저 자신도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손을 더럽힐 것인지 선택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크고 작은 분기들은 양심과 탐욕 사이의 도덕적 딜레마를 자극해 찝찝한 여운을 남긴다.
‘검은 사막’은 어둡고 우울하며, 도덕적 모호함으로 가득 찬, 희망이 없는 세계를 그린다. ‘검은 사막’ 음향을 담당한 류휘만 감독은 모든 배경음악을 ‘중세 느와르’라는 콘셉트로 제작했다 전한 바 있는데, 세계관에서 보여주는 내용 또한 ‘중세 느와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검은 사막’의 세계관은 그야말로 어둠의 도가니로, 기존의 MMORPG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독특한 세계관임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검은 사막’의 첫 모습은 더욱 신선했다.
욕망의 응집체 '검은 돌', 그리고 욕망을 속삭이는 존재 '흑정령'
그러면 '검은 사막'의 세계는 왜 이리 황폐해진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원인의 큰 부분은 소위 '검은 돌'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광물에 있다고 여겨진다. 작중에서 '검은 돌'은 신비한 힘을 지닌 자원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광물은 불 피우는 연료를 비롯하여 다양한 공업 재료로 활용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사실 '검은 돌'은 본디 이 세계에 처음부터 존재한 광물이 아니다. 아주 먼 옛날, 외계로부터 날아온 거대한 운석이 지상과 충돌했다. 당시에 이 운석은 산산히 부서지며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는데, 이 조각이 바로 오늘날 곳곳에 퍼진 '검은 돌'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운석은 단순히 광물 덩어리가 아니었다. 여기에는 어떤 사악한 영적 존재가 깃들어 있었다.
이 영적 존재는 운석과 함께 쪼개지며 여러 조각이 되었다.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따르면 이 쪼개진 존재는 혼자 있으면 붉은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차츰 소멸해 사라지지만, 근처에 다른 생물이 있으면 재빨리 깃들어 정신에 기생해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생물의 정신을 빨아먹어 어느 정도 힘을 갖춘 것이 바로 소위 '흑정령'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고대인'으로 불리는 먼 옛날의 존재들은 '검은 돌'의 힘을 이용해 뛰어난 문명을 이룩했지만, 결국 검은 돌'에 깃들어 있던 존재들의 영향 탓인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멸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검은 사막'이 진행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인류가 '검은 돌'의 효과를 알아냈다는 점이다. '검은 돌'이 지닌 가치를 깨달은 각 왕국들은 저마다 이 자원을 채취하여 공업을 진흥시키고자 하며, 백성들에게 '검은 돌'을 채취하도록 노역을 부과한다.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왕국들은 서로 '검은 돌'을 차지하기 위한 군사적 대치 상태에 들어가고, 백성들은 고된 노동으로 인해 신음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검은 돌' 결정을 추출하는 시설인 '추출장'에서는 사람이 돌처럼 굳어버리거나 미치는 등의 초자연적인 질병이 돌고 있지만, 지배계층은 노동자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더 많은 '검은 돌'을 모아올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검은 사막'의 세계는 '검은 돌'로 상징되는 물질적 욕망에 깊게 물들어버린 상태다.
또한 '검은 돌'이 재발견됨에 따라 다시 한 번 '흑정령'도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을 인도하는 '흑정령'도 바로 이러한 존재다. 게임을 조금만 진행해도 알 수 있듯이, '흑정령'은 지속적으로 주인공에게 살육과 배신을 종용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령은 점차 강해지고, 그에 따라 주인공에게도 일부 힘을 나누어준다. 따라서 처음에는 '흑정령'과 함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주인공에게도 이득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흑정령'은 점차 뚜렷한 형태를 지닌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해가며, 나중에는 주인공의 자아를 지배해 꼭두각시로 삼고자 한다.
이러한 '검은 돌'과 '흑정령'의 존재는 '검은 사막' 세계관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검은 돌'이 지닌 힘을 탐내 더욱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가 되어가지만, 욕심을 부린 끝에 기다리는 것은 번영이 아닌 '흑정령'의 지배 뿐이다. 결국 탐욕으로 인해 자아를 잃고 파멸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검은 돌'이 재발견되기 시작한 시점을 전후로 모든 국가들은 전에 없던 혼란과 몰락을 겪고 있다. '검은 사막'의 세계관은 이처럼 물질에 대한 어두운 욕망을 중심으로 한 냉소적인 세상을 그리고 있다.
독특한 주제의식 못 살린 게임 시스템, 스토리텔링에 한계로 작용
그러나 ‘검은 사막’은 상술한 깊고 어두운 감수성의 세계관을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지는 못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느와르라는 ‘세계관의 장르’와 자유도 높은 오픈 월드 MMORPG라는 ‘게임상의 장르’가 잘 부합하지 않았던 데 있다.
느와르는 기본적으로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들의 사회에 대한 불신과 욕망을 내용으로 다룬다. 그렇기에 느와르의 핵심적인 재미는 인물간의 드라마에서 나온다. 인물들의 뒤틀린 이해관계가 부딪치다 점점 대립구도로 발전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이내 절정단계에서 전투 등 극적 방식으로 해소된다. 이처럼 긴장된 드라마가 해소되는 순간의 쾌감, 즉 ‘카타르시스’야 말로 느와르 장르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검은 사막’은 애초에 유저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에 집중할 수 없는 게임으로 기획됐다. ‘검은 사막’은 개발초기부터 다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게임 방식을 내세웠다. 그런데 높은 자유도는 불가피하게 드라마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다. 동시에 여러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다 보니, 한 가지 이야기의 맥락 흐름에 깊게 몰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도가 넓은 만큼 유저의 집중도도 흩어지게 된다.
특히 이 문제는 ‘검은 사막’ 특유의 복잡한 퀘스트 동선과 맞물리며 더욱 심화된다. ‘검은 사막’의 퀘스트는 방대한 심리스(seamless) 월드를 끊임없이 오가며 진행되는데,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만 해도 상당하다 보니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 깊어지기 힘들다.
▲ 게임 중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게 아니라, 파편화된 설정을 따로 수집해야 한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거기에 더해 ‘지식’ 시스템도 유저가 스토리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지식’ 시스템은 플레이 중 접하게 되는 세계관 설정 자료를 하나씩 모아주는 ‘도감’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러한 기능을 통해 플레이어는 플레이를 통해 직접 게임 세계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가는 ‘발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보면 ‘지식’을 수집하는 별도의 번거로운 과정 없이는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처럼 ‘검은 사막’은 느와르 풍의 어둡고 메마른 세계관과 스토리를 유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적절한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반대로 게임을 이루는 대부분의 특징은 세계관의 분위기를 느끼는 데 방해로 작용했고, 그 탓에 많은 유저가 게임 플레이만으로는 스토리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게임성과 서사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 스토리텔링이 약하되고 말았다.
떨어지는 디테일, 세계관 작위적으로 느껴지게 해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앞서 이야기한 내용이 세계관을 제대로 게임에 반영시키지 못한 ‘디지털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문제’라면, 다음 문제는 바로 ‘디테일’의 문제다.
‘검은 사막’은 말세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세계관의 세부적인 측면을 짜임새 있게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일부 ‘검은 사막’ 스토리는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작위적이 됐다. 그 탓에 ‘검은 사막’ 세계관은 훌륭한 주제와 소재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부실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 역병으로 인구 절반이 죽었는데 대규모 원정을 감행한다는 황당한 설정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우선 르네상스 서유럽을 모티프로 삼은 ‘칼페온’ 스토리를 보자. ‘칼페온’은 왕을 위시한 귀족 신분 및 사제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닥친 ‘검은 죽음’이라는 질병으로 ‘칼페온’은 인구가 절반으로 축소되는 재앙을 겪었고, 백성들은 수많은 죽음 속에서 신분제에 대한 불만과 신앙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황당한 점은 바로 그 다음 부분이다. 위기감을 느낀 귀족과 사제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강대한 이교도 국가 발렌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끔찍한 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데 더해, 위정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백성을 선동하기까지 하는 부패한 사회상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는 물론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이 설정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신분을 막론하고 인구의 절반이 죽는다면, 신분비율상 가장 크게 축소되는 것은 사회 하부를 지탱하는 일반 백성들이다. 또한 이들은 노동을 담당하는 신분이기도 하므로, 백성의 죽음은 곧 생산량의 감소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심한 질병으로 인구가 크게 감소된 전근대 사회는 경제적으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과연 이처럼 경제기반이 파괴된 국가가 대규모 원정을 조직하고 지속할 여유가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당장 농사짓고 가축 키울 사람이 없는데 대규모 원정을 준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사막’ 세계관에서 각국은 내란, 자원 부족, 괴물의 침략 등에 시달리면서도 계속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 공식 세계관 소개 페이지에는 ‘검은 죽음’으로 인구가 반감된 ‘칼페온’이 30년 동안이나 ‘발렌시아’와 싸웠다고 쓰여 있다. 그 외에도 ‘검은 사막’ 세계관과 스토리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다.
▲ 사회상을 중요하게 다루는 데 비해 설정 디테일은 떨어진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물론 게임이 모든 면에서 엄밀하고 사실적일 필요는 없다. 허구적 체험을 통해 쾌감을 주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우선 유저가 허구를 ‘납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저는 게임을 즐기기에 앞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검은 사막’은 스스로 “16세기 말 유럽을 기반으로 한 사실적인 판타지 세계”를 표방했고, 실제로 역사적인 사건들을 게임의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봉건제도의 몰락, 하층민의 지위 상승, 왕권의 약화 등, 근세사회로의 전환과정은 게임 내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조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적 사건들이 허술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게임적 허용’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세계관의 디테일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인상만 준다.
흥미로운 소재, 조금 더 잘 살릴 수는 없었을까?
독특한 분위기와 소재를 갖춘 ‘검은 사막’의 세계관의 첫 인상은 확실히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이 이색적인 세계관은 게임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세계관에서 파생된 여러 스토리도 유저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도 없었다. 특별한 주제와 소재로 큰 가능성을 갖추고 있었던 만큼, ‘검은 사막’ 세계관의 스토리텔링 실패는 큰 안타까움을 남긴다.
이러한 ‘검은 사막’의 세계관은 한 가지 큰 가르침을 남긴다. 어떠한 스토리든 그에 맞는 전달수단이 있는 법이며, 양자가 잘 맞물리지 않으면 큰 성공은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만약 ‘검은 사막’이 ‘방대한 오픈 월드’와 ‘심도 깊은 세계관’ 둘 중 하나에만 치중했다면 그 결과물은 지금보다 뛰어났을지도 모른다. 간단한 세계관을 지닌 오픈 월드 게임이나, 독특하고 치밀한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압축된 게임이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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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 기자 이새벽입니다. 게임 배경에 깔린 스토리와 설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단지 잠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dawnlee12@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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