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디게임에는 ‘임팩트 게임’으로 불리는 장르가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임팩트 게임이란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 사회적 영향력)에 게임이 더해진 말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며 선한, 혹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게임이라는 의미다. 이들은 책이나 영화 등, 매체를 통해 보고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보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메시지를 더욱 깊게 전달 가능하다.
이런 흐름은 최근 국내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바다. 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을 다룬 ‘MazM: 페치카’, 위안부 문제를 다룬 ‘웬즈데이’, 정부의 규제, 사찰, 감시의 문제점을 다룬 ‘레플리카’ 등은 게임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플레이를 통해 느낀 점으로 하여금 유저들이 게임 속 메시지를 반추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30일 어나더(이하 30일)’또한 그런 임팩트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살’이라는 무거운 사회문제를 다룬 게임이지만, 독특한 접근법으로 ‘힐링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감한 문제인 만큼 더욱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욱 세밀하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게임은 절대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주변인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행위의 소중함을 전한다. ‘30일’의 이런 접근 방식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게임메카는 30일 개발사 '더 브릭스'의 이혜린 대표와 함께 대화를 나눠보았다.
내 작은 도움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토리 어드벤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임팩트 게임 '30일'은 플레이어가 낯선 누군가의 사망진단서를 받게 되며 시작한다. 게임의 주 무대가 되는 ‘로얄고시원’의 총무가 된 플레이어는 이 사망진단서의 주인이 같은 고시원에 살고 있는 '최설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또한 이 진단서가 현재의 것이 아닌 미래의 것임을 알게 된 뒤 입주민의 자살을 막기 위해 분투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이 과정에서 '최설아'의 선택과 관련된 단서를 찾고 다양한 선택지를 마주하게 된다. 이 선택은 때로는 ‘최설아’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끊어주는 외부적인 자극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항상 느껴오던 감정을 이어가게 만드는 일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30일 간 ‘최설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택을 반복하며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사망진단서에 예정된 설아의 죽음을 바꿀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투두리스트, 메모장, 아보카톡, 인물프로필, 아보카스토리' 등의 게임 내 어플리케이션으로 주변인들의 상황과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간결한 정보로 정돈돼 있어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깊지 않은 묘사로 전달하는 깊은 메시지
‘30일’ 개발사 더 브릭스는 이 대표가 대학을 졸업하고 만든 동아리에서 시작됐다. 8명으로 시작된 동아리는 시간이 지나며 게임 디렉터 및 개발을 맡고 있는 이 대표를 포함, 총 네 명의 제작자가 함께하고 있다.
원래 ‘30일’은 모바일을 통해 우선 출시된 제품으로, 약 2년 반 가량의 개발기간을 거쳐 양대 마켓 총 17만 다운로드로 선전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 차례의 거대한 개선을 거쳐 PC판이 출시된 이유는 모바일판 유저들의 니즈에 긍정적인 내부 의견이 더해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점을 더욱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이윽고 지난 19일 정식 출시를 진행할 수 있었다.
게임의 무대 ‘로얄고시원’은 고시원 답사와 다양한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거쳐가며 정립됐다. 창문이 없는 좁은 방 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층간 소음, 도난 사건, 입주민 간의 민원 등, 그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단절된 분위기 등은 개발진이 고시원에 거주했던 경험이나 수험생이었던 경험 등에서 많이 투영됐다. 이렇듯 경험이 포함된 일상은 몰입감을 살리는 요소가 되어주었으며, 또한 ‘30일’에서 그려지는 일들이 ‘내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또한 함께 전달한다.
이렇게 더 브릭스는 플레이타임을 알차게 만들 수 있도록 ‘매커니즘은 간결하게, 내러티브는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에 힘썼다. 모바일 기준으로 약 5만 6천 자의 분량의 텍스트는 한 차례의 보강을 거쳐 그 양이 더욱 늘어났다. 이는 한 회차 기준으로 약 6시간 가량의 플레이타임을 보여주며, 유저들에게 더욱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때로는 사소한 일상이기에 소중한 것이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30일’은 일부 엔딩에 있어 조금은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울러 일견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모습만 비추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그래서 더욱 고독을 낳을 지도 모르는 세상을 덤덤하게 비춘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이 덤덤한 세상에서 누군가가 내미는 작은 손길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 대표는 ‘30일’을 개발하며 무엇을 느꼈냐는 질문에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과정과 시간도 중요한 요소지만,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 과정을 경시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과정 또한 현재를 만들어나가는 일부가 되는 것인데, 이 과정이 결과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과정에 위치한 이들이 자신의 과정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환경 보호 소재의 차기작을 고려중이다. ‘임팩트 게임’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결심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30일’ OST 판매나, 일본어 지원 추가 등 게임을 아껴주는 유저들에게 추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쪼록, 더 브릭스의 ‘30일’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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