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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세계에서 골판지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를 꼽자면 단연 일본일 것이다. 일본의 골판지 사랑은 유명 건축가 반 시게루가 90년대부터 골판지를 활용해 수많은 예술적이고 실용적인 건축물을 만들며 시작됐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들 사이엔 골판지라는 재료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 생겼고, 아베 신조 내각 당시 친환경적이고 재활용 가능한 골판지를 더욱 널리 쓰자는 운동을 벌이며 본격적으로 유행을 탔다. 도쿄 올림픽의 최고 스타였던 골판지 침대, 지진 대피소에 마련된 골판지 집, 최근 공개돼 여러모로 화제가 된 골판지 책상까지. 그야말로 골판지 사랑이 하늘을 뚫을 정도다.
이러한 일본인의 골판지 사랑은 게임에서도 구현됐다. 골판지를 직접 활용해 게임에 사용한다던지, 게임 내에 골판지 재료를 구현하는 등이다. 골판지 하면 택배박스 정도로만 생각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것도 하나의 문화라면 문화겠다. 오늘은 일본에서 탄생한 '게임과 골판지의 만남' TOP 5를 뽑아 보았다. 참고로 블루 아카이브의 골판지 로봇 KAITEN FX Mk.0은 일단 한국 게임으로 봐서 안 넣었다.
TOP 5. 골판지는 미래의 핵심 신소재, 골판지 전기
골판지 전기(골판지 전사)는 아예 골판지를 테마로 시리즈화 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만화, 소설, 완구를 어우르는 미디어믹스지만, 처음 공개된 정보가 PSP용 게임이므로 여기서는 게임으로 분류한다. 얼핏 제목만 보면 골판지로 만들어진 전사나 로봇들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게임의 주무대가 강화 골판지 상자라는 점 정도만 골판지와 직접 연관된다.
이 강화 골판지 상자라는 것은, 거의 신의 자재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80%까지 흡수해 내용물을 안전하게 지켜주는데, 이를 활용해 경기장을 만들었다. 세계관 내에서 소형 메카닉을 활용한 배틀인 LBX는 원래 조종하는 사람까지 부상당할 위험이 높은 경기였는데, 이 강화 골판지 상자 경기장 덕분에 부상율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시속 500km를 넘나드는 신칸센 급 열차나 음속으로 비행하는 LBX 기체들이 부딪혀도 충격을 흡수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골판지 초고층 건물 정도는 나와줘도 되지 않을까?
TOP 4. 골판지로 주요 부위를 가려라! 상자뿐인 블루스
인디게임 업계에서도 골판지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올해 5월 닌텐도 e숍에 등록된 게임 '상자뿐인 블루스'는 골판지를 활용한 게임이다. 주인공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하나씩 옷을 벗는 놀이인 ‘야구권’을 하다가 모든 옷을 잃어버린 채, 골판지 상자로 몸을 가리고 행인에게 들키지 않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다룬다. 설정만으로도 정신이 어질어질한데, 이 과정을 게이머가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실제로 플레이어는 몸을 가릴 수 있을 만한 골판지 상자에 들어가, 직접 상자를 움직여 가며 플레이 해야 한다. 행인이 오면 상자를 내리고 몸을 숙여 모습을 감춰야 하며, 상자 위치에 따라 캐릭터가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지기에 빨리 가고 싶다면 상자를 높이 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제작진은 '주인공은 옷을 벗고 잇지만, 플레이어까지 벗을 필요는 없다'라고 했지만, 왠지 이 말이 '벗고 플레이하세요'로 들리는 것은 환청인가? 실제로 유튜브 등지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게임 플레이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니, 환청은 아닌가 보다.
TOP 3. 골판지로 만든 방음 게임 부스, 게임 기지
지난 2022년, 일본에 특이한 게이밍 가구(?)가 등장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극한의 몰입감을 느낄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소음이나 빛으로 인한 방해를 최소화하는 일명 게이밍 부스다. JOW 라는 브랜드와 '게임 기지'라는 제품명을 가진 이 물건은 방 안에 설치하는 부스 형태로, 프로 e스포츠팀 'DetonatioN FocusMe'의 감수를 받았다고. 공부/독서용 부스, 음악작업용 부스도 존재하는 판에 게이밍 부스의 등장 자체가 아주 특이하지 않지만, 소재가 골판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제작사 월드 카세이는 경량인 골판지 소재를 통해 조립과 이동이 간편하며, 흡읍&방음 효과가 뛰어나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만 방음재가 포함된 부스 가격이 51만 2,000엔, 방음재를 뺀 부스조차 32만 2,000엔이라는 점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다시 말하지만 원이 아니고 엔이며, 같은 크기의 음향 부스는 보통 100~200만원 선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심지어 기기가 포함된 코인노래방 부스조차도 300만원 가량이기에, 골판지로 만들었으면서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비싸냐는 비판을 받았다. 뭐, 기존의 골판지 가구들을 보면 딱히 싸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긴 하다.
TOP 2. 내가 직접 조립하는 골판지, 닌텐도 라보
게임에서 골판지를 활용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한 닌텐도의 라보. 완제품이 아니라 평평한 골판지를 직접 접어 자신만의 스위치 컨트롤러를 만든다는 콘셉트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높은 인기를 모았다. 조립할 수 있는 것도 단순한 총 정도가 아니라 피아노, 로봇, 낚싯대, 카메라 등 꽤나 복잡한 형태도 많으며, 소프트웨어를 제외하면 가격도 골판지답게 저렴하다. 어린 아이들의 창의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어, 실제 부모와 아이들을 위한 창작 교실이 일본과 북미 등에서 열리기도 한다.
골판지로 만든 기기임에도 힘을 많이 받는 부위엔 골판지를 겹쳐 단단한 프레임을 넣는 등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들어갔으며, 인기를 등에 업고 수많은 후속작이 나왔다. 다만 골판지답게 습기에 약하고 내구성이 약하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았다. 실제 판매량도 예상보다 높진 않았고, 후속작으로 갈수록 관심이 점차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2019년 VR 키트를 마지막으로 후속작이 나오지 않으며 사실상 시리즈가 끝난 분위기지만, 그래도 골판지와 스위치를 접목시켜 페이퍼 크래프트라는 새로운 취미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의미가 큰 제품이다.
TOP 1. 골판지 상자에 대한 비정상적인 애정, 메탈기어 시리즈
메탈기어 시리즈는 잠입 액션의 장을 연 게임이다. 어찌됐건 적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고 전진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은신, 변장, 속임수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 최고봉이 바로 골판지 상자다. 무려 적 기지 한복판에서도 상자만 뒤집어 쓰고 있으면 절대 들키지 않는 사기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나중엔 아예 메탈기어 시리즈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하드보일드한 게임에서 가장 애용되는 장비가 골판지 상자라는 아이러니함이 묘한 조화를 이룬 것인데, 실제로 스네이크의 최애템이라는 설정까지 붙었다. 이러한 스네이크의 골판지 사랑은 유전자 레벨에까지 작용해, 훗날 솔리드 스네이크가 상자만 보면 뒤집어써야 한다는 사명감을 들게끔 만들기까지 한다.
물론 적들도 영영 바보는 아니다. 골판지 상자가 왜 이상한 곳에 놓여 있고, 조금씩 이동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적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이를 보고하면 상부가 '정신차려라', '나중에 검사라도 받아라'라며 무시하는 것이 클리셰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메탈기어 시리즈의 골판지 사랑은 게임계 전체에 영향을 미쳐,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중에는 데스 스트랜딩 시리즈에서 호모 데멘스 무리를 통과할 방도를 찾던 샘이 골판지 상자를 유심히 보다가 '이건 아니지' 싶은 표정을 짓는 셀프 패러디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골판지에 진심인 게임이 아닐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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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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