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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임에 있어 버그는 유저 몰입도를 깨는 일등공신이다. 캐릭터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사라진다던지, T자 형태로 계단에 박혀 있는 정도는 양반이다. NPC가 대사를 잊고 멈춰 있거나, 대사 일부가 뭉개지거나 스킵돼 전개를 따라갈 수 없게 하거나, 벽을 뚫고 가니 한참 후에 등장해야 할 곳에 가 있다거나 하는 치명적 버그들은 플레이를 직접적으로 방해한다. 더 심해지면 특정 지역에서 게임이 강제 종료되거나 멈춰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고, 심지어 세이브 데이터까지 날려먹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게임성이 어찌됐건 '올해 최악의 게임'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만한 치명적 버그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심연이 있다. 단순히 게임 데이터 손상을 넘어 그 이상. OS를 망가뜨리거나 기기 자체를 고장내는 경우다. 그야말로 악성 버그 끝판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기 소유자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할 뿐 아니라, 이를 악용한 이들에 의해 타인의 기기까지 해를 입기도 한다. 등장할 때마다 게임업계를 한바탕 들끓게 한 치명적인 버그들을 모아 보았다.
TOP 5. 스트리트 파이터 2 - 가일의 '기기 끄기' 버그
대전격투 장르 틀을 정립한 스트리트 파이터 2. 여러모로 교과서적인 게임이지만, 첫 게임이다 보니 버그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 중에서도 '대기군인' 가일의 경우 수많은 버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림자 던지기, 학다리, 접착제 버그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버그 플레이는 악용 시 상대방의 오프라인 체어샷을 불러올 수 있었지만, 아래 소개할 버그는 상대방 뿐 아니라 오락실 아저씨의 체어샷을 불러오곤 했다. 바로 기기 강제공료 버그다.
특정 커맨드를 조건에 맞춰 입력할 시 이러한 버그가 발생하며 기기가 강제로 꺼지는데, 어떤 기기든 간에 강제로 끄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고장이 발생하기 마련. 이로 인해 오락실에서는 일명 '딱딱이'로 불리는 라이터 압전기와 함께 금기사항 중 하나로 취급됐다. 물론 지는 상황에서 이걸 사용해 자폭한다면 상대방 역시 가만 있지는 않았기에, 이 비기(?)를 쓰려고 하는 자는 슬그머니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도망갈 만반의 준비를 하곤 했다. 아케이드 게임에서 기기를 강제 종료시키는 버그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가장 유명하고 많이 배포된 게임이기에 대표격으로 선정하겠다.
TOP 4. 파이널 판타지 13 - PS3 고장내는 버그로 단체 소송까지
라이트닝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파이널 판타지 13은 2009년 작품으로, PS3(2006~2013) 초중반에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3의 성능을 최고한도로 활용하며 고품질 그래픽을 구현했는데, 로딩 속도가 느리지도 않았고 프레임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현상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넘버링 시리즈 최초로 한국어를 공식 지원해(X-2 제외) 더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다른 문제로 더 화제가 됐다. 바로 PS3 고장 버그다.
조건이나 상황이 특정되진 않았지만, 일부 유저들은 게임 세이브 도중 PS3가 멈춰버리고 이후 재시작해도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고장나는 현상을 겪었다. 당시 499달러였던 나름 신형 기기를 날려먹은 셈이다. 해당 버그는 국내판이나 일본판 등에서는 발생하지 않았기에 국내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관련해서 500만 달러짜리 단체 소송이 걸리기도 했다. 이를 모르고 있다가 훗날 고전게임으로 PS3에서 파이널 판타지 13을 돌리다 게임기가 고장나는 사례도 종종 관찰되고 있다.
TOP 3. 포켓몬스터 금 - 게임보이 화면 색깔이 이상해졌어요
게임보이 컬러와 게임보이로 나온 포켓몬스터 금(골드) 버전에는 몇 가지 심각한 버그가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버그가 있으니, 벽을 넘어 지정된 게임 플레이 구간을 강제로 벗어나면 게임이 다운되고 재시작 시 게임의 색이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화면 전체 색감이 바뀌거나, 땅따먹기 판처럼 구역별로 색이 달라지기도 하고, 화면 중간중간에 어두운 부분이 나오거나 게임이 툭툭 끊기는 등의 현상이다. 이로 인해 게임팩을 고장내는 버그라며 악명이 자자했다.
사실 이는 게임팩 자체가 고장나는 것이 아니라 세이브 데이터 문제다. 따라서 세이브를 초기화한다면 소중한 내 데이터는 사라지겠지만, 어쨌든 게임팩은 살릴 수 있다. 다만 버그가 심각하게 일어날 경우 세이브 파일 삭제가 되지 않는데, 이럴 경우 게임팩 안의 배터리를 뜯어서 강제 초기화시킨 후 재조립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이런 방법을 몰랐던 2000년대 포켓몬 보이들은 이를 게임팩 고장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는데, 요즘 세상 같았으면 유튜브 보며 자체 수리 가능한 부분이었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TOP 2. 레인보우 식스: 시즈 - 메시지 하나 받았는데 기기가 벽돌 됨
PC와 콘솔로 즐길 수 있는 인기 FPS 레인보우 식스: 시즈. PvP 게임이기에 한 명이 게임 도중 나가면 상대팀이 훨씬 유리해진다. 2018년, 이러한 의도로 악용된 버그가 있었다. PS4로 플레이하고 있는 상대에게 PS4 메신저 앱을 이용해 특정 문자(PS4에서 읽지 못하는 특수문자 포함)를 전송하면 시스템 충돌이 일어나며 게임이 다운되고, 재시작한 후에도 기기가 고장나 정상적인 실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삼류 SF 영화나 마법 같은 일인데,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특정 플레이어들이 이러한 버그를 악용해 자신의 랭크를 올리는 동안, 게임에서 내쫒긴 수많은 사람들은 단순 이탈 불이익 뿐 아니라 PS4 기기를 수리해야 하는 금전적 부담까지 지게 됐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모바일 앱에서 해당 메시지를 삭제한 후 안전 모드로 진입해 특정 과정을 거치면 공장 초기화 후 정상화 됐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공식·비공식 A/S 서비스를 받은 상황이었다. 이에 소니 측은 메세지 수신 기능을 당분간 막아 놓으라는 공지와 함께 해당 버그를 빠르게 수정했다. 단순히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동작 하나만으로 기기가 망가질 정도의 부하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사건이다.
TOP 1. 앤썸 - 이게 게임이야 랜섬웨어야?
'랜섬웨어'는 사용자 몰래 컴퓨터에 설치돼 무단으로 컴퓨터를 망쳐놓는 악성코드다. 당연히 이를 제 의지로 설치하는 사람은 없으며, 보통은 정상적인 파일이나 프로그램으로 위장하거나 악성 사이트에서 스리슬쩍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악질적인 프로그램이 정식 게임, 특히 AAA급 게임의 별명으로 붙는 경우는 없다시피하다. 없다고 단정짓지 않은 건, 한 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바이오웨어의 야심작이었던 앤썸이다.
앤썸은 출시 당시 PS4와 Xbox One을 고장내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워낙 출시 전 언론을 통해 기대감을 북돋았던 게임이기에 수많은 콘솔 유저들이 출시 당일부터 게임을 즐겼는데, 많은 이들이 앤썸의 실체를 만나기 전 게임 다운과 함께 콘솔 기기가 고장나는 현상을 겪었다. 버그를 쓴 것도 아니고, 이상한 메시지를 받은 것도 아니고, 강제로 이상한 플레이를 한 것도 아니었다. AAA급 게임을 구매하고 실행했을 뿐인데 기기가 고장난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앤썸은 '앤썸웨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고, 그 외 수많은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1년 만에 사실상 연명치료가 중단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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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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