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는 게이머들에게 낯선 장르가 아니다. 소녀전선과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부터, 국내에는 블루 아카이브, 승리의 여신: 니케가 대표적이다. 다만 처음부터 서브컬처가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장르였던 것은 아니다. 완성도 높은 게임들이 등장하며 해당 장르를 정착시킨 것인데, 그 필두에는 붕괴 3rd, 원신, 붕괴: 스타레일을 개발한 호요버스가 서 있다.
그런 호요버스가 지난 4일, 액션 RPG 신작 젠레스 존 제로(이하 ZZZ)로 돌아왔다. ZZZ는 출시 전부터 도시 판타지를 테마로 한 친숙한 세계관, 간편한 조작만으로도 할 수 있는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본 결과 간편하고 호쾌한 액션은 물론, 다양한 PvE 콘텐츠로 풍섬함을 더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다,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세계
ZZZ는 공동이라는 의문의 재해로 멸망한 세상 속 최후의 도시 ‘뉴에리두’를 배경으로 한다. 공동은 주변 공간을 집어 삼키는 천재지변임과 동시에 ‘에테르’라는 유용한 자원이 생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공동에 진입하는데, 이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일명 ‘로프꾼’이 존재한다. ZZZ는 로프꾼으로 활동하는 남매 ‘벨’과 ‘와이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 사이 일어나는 각양각색 스토리를 그려나간다.
기자는 서브컬처 장르를 꽤 선호하지만, 지금까지의 호요버스 작품들은 길게 즐기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에는 어려운 세계관이 컸다. 이전 작품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선보였기에 신선함이 컸지만, 그만큼 수많은 고유 명사가 쏟아졌다. 하나를 이해하기도 전에 신규 요소가 쏟아지다 보니 몰입하기가 힘들었고, 금방 지루해지기 마련이었다.
반면 ZZZ에서는 고유 명사 등장 비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중반까지 진행하며 등장한 고유 명사는 10개가 채 되지 않으며, 직관적인 단어 덕분에 이해하기도 쉬웠다. 덕분에 이전과 달리 큰 거부감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일상을 담은 친숙한 세계 외관이 몰입감을 강화한다. 인류가 멸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임에도, 게임을 진행하며 암울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라면 가게, 가판대, 카페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호작용 요소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실제 일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여기에 호요버스 특유의 영상미가 더해지며 플레이어를 ZZZ의 세계에 강렬히 끌어들인다.
다만 아무리 매력적인 세계라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이를 돌아다녀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호요버스는 이를 ‘커뮤니티 기여도’라는 일종의 도전과제로 해결했다. 커뮤니티 기여도에는 적 몇 마리 처치 같은 전투형 과제 대신, 길가에 있는 고양이와 사진찍기나 분실물 찾기 등 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소소한 목표가 제시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세계를 탐방하도록 유도하고, 자신들이 만든 세계의 매력을 전달한다.
전작에서의 노하우는 살리고, 진입 장벽은 낮췄다
ZZZ의 스테이지형 전투는 전작 붕괴 3rd가 연상된다. 특히 기본 공격, 특수 공격, 궁극기를 중심으로 한 전투와, 최대 3인으로 구성된 파티 등 전작에서 호평받은 간결한 구조를 유지했다.
다만 세부적으로 파고들수록 차이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파티 시너지가 강조됐던 붕괴 3rd와 달리, ZZZ는 파티원 개개인의 전투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파티 시너지가 이전처럼 특정 컨트롤을 해야 효과가 발동되는 방식이 아닌 대미지 증가와 같은 단순 능력치 강화로 바뀌며, 전투 진입 후에도 캐릭터 개인 스킬 운용에만 신경쓰면 된다. 때문에 캐릭터 성능을 온전히 끌어내기 위해 높은 숙련도가 필요했던 붕괴 3rd에 비해 ZZZ는 확연히 낮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패링과 회피에서도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가 보였다. 전작에 비해 적들의 공격 전조가 한층 직관적으로 변화했으며, 저스트 패링과 회피 가능 시간도 한층 널널해졌다. 여기에 강렬한 사운드와 시간이 정지되는 듯한 연출이 더해지며, 스타일리쉬한 전투의 매력을 한층 살렸다.
호요버스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인 궁극기 컷씬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연출이 돋보이는 컷씬은 이번 작품에서도 건재하다. 다만 컷씬의 길이를 이전 작들보다 비교적 짧게 설정함으로써, 전투 템포가 늘어지는 것을 최소화한 요소가 돋보였다.
전작 콘텐츠 구조는 유지하되, 완성도는 높였다
전작부터 가지고 있던 메인 임무와 서브 퀘스트로 이분화된 콘텐츠 구조는 ZZZ에서도 동일하다.아울러 매 작품마다 등장했던 로그라이크식 콘텐츠 역시 마련되어 있다. 퀘스트에 대해서는 특별한 새로움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ZZZ의 로그라이크 콘텐츠 ‘제로 공동’에서는 이전보다 로그라이크적 성향이 강하게 묻어났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등장하는 버프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다키스트 던전의 ‘스트레스’와 유사한 ‘침식’이라는 디버프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설정은 콘텐츠적으로도 풍성함을 더할 뿐만 아니라, 세계관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로 작용한다. 그 동안 이전 작품들이 선보인 로그라이크 콘텐츠는 주어지는 버프나 적 등 약간의 랜덤성을 부여한 정도에 그쳤다. 반면 ZZZ는 스테이지를 진행할수록 ‘침식’이 쌓이며, 수치가 가득 찰 경우 쿨타임 증가나 회복 불가 등 여러 패널티가 부여된다.
이를 통해 ZZZ는 언제 상황이 급변할지 모르는 긴장감에서 오는 로그라이크의 재미를 챙겼다. 동시에 공동 안에서는 에테르에 침식당한다는 세계관 설정에 힘을 더하며 한층 게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ZZZ는 PvP가 없음에도 방대한 콘텐츠를 자랑하며, 호쾌함을 살린 매력적인 전투를 선보였다. 원신에서 정립한 UI와 붕괴 3rd 전투 구조 등 장점은 답습하고, ZZZ만의 강점을 더해 새로운 매력을 전달한다.
물론 아직 활동 가능한 맵 범위가 많지 않다는 점과, 수집형 게임임에도 아직 캐릭터가 16명 밖에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만 운영진이 추후 새로운 맵을 계획 중에 있으며, 신규 캐릭터도 꾸준히 추가한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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