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PC, PS3, Xbox360으로 발매된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
고작 명작 ‘엑스컴’을 ‘문명’의 파이락시스게임즈가 리메이크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이하 엑스컴: EU)’이 지난 12일 PC, PS3, Xbox360으로 한글화 정식 발매됐다. 게임에서 게이머는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엑스컴 본부의 사령관이 되어 턴제 기반 전투에서 전략의 재미를, 한정된 예산에서 본부를 효율적으로 경영해야 하는 시뮬레이션 요소까지 맛볼 수 있다.
과거, 호평받은 명작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구(올드) 게이머의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발매 전부터 많은 팬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완성도가 만족도에 이르지 못할 시 그만큼 혹평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 부담도 뒤따른다. 악마의 게임으로 불리며 굳건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문명’의 개발사 파이락시스 게임즈의 리메이크는 성공일까 아니면 실패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엑스컴: EU’를 직접 플레이해봤다.
▲ 파이락시스 게임즈의 리메이크는 성공일까 아니면 실패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플레이해봤다
대뇌의 전두엽까지 전해지는 위원회의 압박, 그게 또 재미
‘엑스컴: EU’의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로, 엑스컴 본부를 경영하는 시뮬레이션과 외계인과의 전투 파트로 분류된다. 경영 파트에서는 예산을 토대로 외계인의 장비를 분석하거나 무기 개발, 그리고 다양한 시설을 늘려가며 외계인과 동등한 또는 그 이상의 설비를 갖추는 것이 목적이다. 전투 파트는 6인 1개조 소대 규모의 병사를 운용, 게임 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외계인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
엑스컴 본부 경영은 힘든 만큼 게임의 재미도 높인다. 전투 이외 사령관은 엑스컴 본부에서 크게 과학 기술과 무기 개발 그리고 시설 관리에 힘쓰게 된다. 여기에 매달 엑스컴 프로젝트를 운용하는 위원회의 깐깐한 평가와 랜덤하게 주어지는 임무를 (강제로) 수행할 때도 있다. 이 수행 또는 무시 등의 모든 판단은 사령관에 의해 결정되고 그 결과도 천차만별이다. 지금 내 판단으로 무엇을 잃고 얻을 수 있는지, 하나의 공동체를 책임지는 사령관의 고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 엑스컴 본부에서는 크게 과학 기술과 무기 개발 그리고 시설 관리에 힘쓰게 된다
과학 기술은 외계인 제압 과정에서 특정 아이템을 사용해 적을 생포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가 있다. 포획 실패는 곧 병사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지만, 이야기 진행을 위해서 감수해야 하며, 또 화력이 강한 무기로 적을 제압하려고 하면 연구에 필요한 외계인 파편을 구할 수 없다는 까칠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뿐이랴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과학자 수가 부족할 때도 잦아 정기적으로 영입해주는 씀씀이도 보여야 한다.
▲ 외계인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들과 동등한 과학 기술과
기술실은 무기 개발(병사, 항공기, 무인병기 포함)과 방어구를 대량 생산해주는 곳으로, 엑스컴 본부에서 운용 중인 시설 중 관리비와 함께 예산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다. 또한, 외계인의 침공으로 전 세계의 패닉 레벨이 증가하지 않도록 지속해서 위성을 띄워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혼란이 가중되면 가입국이 탈퇴하고, 받을 수 있는 예산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 무기 개발은 필수다,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나 빨리 도달하는가도 사령관의 능력에 달렸다
이처럼 사령관 스스로가 병사를 더 양성하고 싶다거나 무기 개발에 더 힘을 쏟고 싶어도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외계인의 침공 못지않게 나라별 혼란을 낮춰 의원회 평가도 긍정적으로 받아야 하는 등 밸런스 조절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양미간을 누르는 일이 잦았고, 나름 기르고 있던 손톱도 자주 깨물게 되는 버릇이 생길 정도였다. 이는 비단 기자만이 겪고 있는 습관은 아닐 것이다.
▲ 외계인의 출몰로 국가별 패닉 레벨이 상승하지 않도록 위성 설치와 병력 파견에도 신경써야 한다
외계인과의 전투, 수많은 생각을 거쳐 마우스를 클릭하는 재미
‘엑스컴: EU’에서 게이머는 시시각각 발생하는 외계인 침공 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제압 및 인질 구출 등의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앞서 잠깐 밝혔듯이 전투는 턴 제 방식으로, 병사 한 명당 총 두 턴이 주어진다. 이 두 턴 동안 이동과 공격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엑스컴: EU’의 재미이며, 또 몸을 보호하면서 적에게 반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엄폐물)를 찾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유인즉슨 게임 내 적의 공격 혹은 폭발에 휘말려 체력이 다해 사망한 병사는 부활 없이 게임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엑스컴’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으로, 최근 발매되는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별함이기도 하다.
▲ 병사의 체력이 다하면 부활 없이 곧장 사망처리, 최근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혹한 난이도가 특징
여기에 캐릭터 사망에 대한 경각심을 항시 불러일으키는 적의 뛰어난 인공지능도 게임의 재미를 더한다. 단순히 쏘고 숨는 것은 약과다. 아군 시야에 잡히지 않게 뒤로 사라졌다 예상치도 못한 위치에서 등장하거나 특정 지역에 아군이 몰려 있으면 수류탄을 투척하기도 한다. 가령 안전한 엄폐물에 숨어 있다고 해도 주변에 독가스를 살포해 아군을 강제로 이동시키는 등, 게임 속 AI가 상황을 조정하는데 능하다.
게다가, 방금 설명한 모든 패턴은 어디까지나 전투 난이도 쉬움에 해당한다. 설정을 통해 보통과 어려움 이상으로 전환하면 마치 한 명의 게이머를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만큼 인공지능은 더욱 노련해진다. 무엇보다 어떤 명령이든 수행하게 되면 다시는 철회할 수 없고, 또 공격 성공은 확률로 적용된다는 점까지 전투 중 발생하는 변수가 무궁무진하다. 전략 시뮬레이션은 어려울수록 재미있다는 성향의 게이머가 가장 반길 것이다.
또한, 기계 혹은 생물체로 분류된 적 타입에 따라 공략 방법도 각기 다르며, 미션 맵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연출된다. 예를 들어 교전 중 차량에 불이 붙으면서 폭발할 시 근처에 아군 병사(적도 해당)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고, 적에게 정신을 지배당해 아군이 조종당할 수도 있다. 즉 같은 적과의 전투라도 매번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등장하는 외계인의 종류와 그 수가 다르다, 같은 장소라도 전혀 다른 플레이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교전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거나, 위험 상황 발생을 방지하는 것이 전투의 재미이자 전략의 핵심이다. 단순한 이동에도 이 장소가 정말 안전한지 만약 공격 당한다면 추가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지 등, 전적으로 사령관(게이머) 판단으로 병사의 생존과 죽음 그리고 미션의 승패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결정되는 만큼, 매 순간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언리얼 엔진으로 표현한 뛰어난 물리 효과, 전투의 재미를 높인다
‘엑스컴: EU’는 과거 ‘엑스컴’과 마찬가지로 피가 말리는 듯한 전투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시각적인 재미도 챙겼다. 바로 언리얼 엔진의 사실적인 물리 효과 덕분으로, 외계인과의 전투에서는 건물이나 지형지물이 갈라지거나 점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부서지는 등의 섬세한 물리 엔진이 적용됐다. 예를 들어, 차량을 사이에 두고 교전이 오가면 차량에 불이 붙어 폭발한다거나 레이저 무기를 사용하면 주변에 엄폐물이 형체를 잃고 녹아 내리는 등의 사실적인 묘사를 볼 수 있다. 이는 맞으면 사망이라는 전투의 긴장감을 한층 배가시키기 충분했다.
▲ 교전 중에는 위 이미지처럼 부서지나 갈라지는 등의 물리 효과가 적용돼 게임의 재미를 더한다
▲ 임팩트 있는 연출로 외계인을 제압하면 희열을, 반대로 제압 당하면...!
여기에 라이브 액션 연출이 추가돼 과거 ‘엑스컴’에는 없는 액션성의 강화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이동 중에 건물 입구(문)를 박차거나 창문을 깨면서 진입하는 모습, 적을 쓰러트리는 연출에서 화면이 느려지면서 외계인이 쓰러져가는 모습 등, 전략적인 전투와 더불어 시각적인 즐거움도 선사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엑스컴’과 같은 단순한 전개, 하지만 감동은 없다
‘엑스컴: EU’에서 구 게이머의 향수를 크게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는 이야기 전개다. 어느 날,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몰아내는 것으로 지극히 단순 명쾌하다. 이는 과거 ‘엑스컴’과 같은 방식의 전개로, 눈앞에 적이 나타나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제압하면 된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구 게이머 입장에서는 과거 ‘엑스컴’을 떠올리며 어렵지 않게 신작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무런 감동이 없는 단순 명쾌한 이야기, 딱히 기억에 남는 장면도 없다
반면, 이번 타이틀을 통해 처음으로 ‘엑스컴’을 접한 신규 게이머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의 인과관계에서 전개되는 최근 게임의 스토리텔링과 비교해서 말이다. 여기에 주요 장면에서는 CG로 제작된 이벤트 영상을 삽입해 극적인 인상을 심고자 했지만, 그 수가 적고 또 짧다. 더욱이 인상 깊은 연출도 없어 플레이를 앞두고 이야기의 재미를 기대하는 게이머가 있다면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좋다.
차라리 넣지 말지, 어설퍼 더욱 실망스러운 몇몇 시스템
‘엑스컴: EU’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캐릭터 모델링이다. 최근 발매된 게임 같지 않은, 심하게 말해 옛날 게임 속 캐릭터가 따로 없다. 특히 캐릭터 얼굴에서 눈, 코, 입만 구분했을 뿐 표정에 변화가 거의 없어 솔직히 머리 색깔만 다른 등신대 인형을 보는 것 같다. 주름과 땀, 표정 변화와 같은 섬세한 묘사가 가능한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앞서 건물이 녹아내리거나 차량의 불이 붙다 폭발하는 등의 사실적인 물리 엔진 효과에 공을 들인 것과 너무나도 비교된다.
▲ 언리얼 엔진이라고 믿기 힘든 캐릭터 모델링, 물리 효과와 너무나도 비교된다
또한,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구현한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어설프게 제공해 실망감만 키웠다. 커스터마이징 콘텐츠는 보유 중인 병사의 외형을 꾸미는 데 활용된다. 아무래도 병사가 같은 갑옷을 착용하는 만큼 누가 누구인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함과 더불어 개성도 표출하고자 구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병사마다 병과가 구분돼 휴대하고 있는 무기(샷건, 스나이퍼 라이플, 중화기)만 봐도 캐릭터가 혼동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커스터마이징으로 꾸밀 수 있는 외형이 제한적으로, 기껏해야 얼굴형, 목소리, 머리 모양 정도다. 특히 병사마다 아시아/북미/유럽 국가로 출신을 분류했지만, 인종까지는 구현되지 않아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누가 봐도 전형적인 서양 사람의 외모다. 또 흔한 신장(키) 설정도 없어 엑스컴 본부에서는 같은 체격의 병사만 즐비하다. 난쟁이나 비만의 재미난 신체의 병사로 꾸밀 수 없다. 기왕 구현한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라면 보다 완성도를 높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 솔직히 스킬 찍는거 외에 꾸미기에는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주요 이벤트를 제외하고 모든 캐릭터의 대사는 게임 화면 오른쪽 아래 혹은 위에 위치한 작은 창(고정)에서만 진행돼 읽기 불편하다. 텍스트 비중이 높은 게임은 아니지만, 게임 중간 중요한 내용을 파악할 때가 있는데, 글자 크기가 너무 작고 또 촘촘히 붙어 있어 내용 파악에 혼란을 겪는다. 기자처럼 스토리나 캐릭터의 대사를 즐겨보는 게이머로서는 아쉬움이 클 것이다.
▲ 글자 크기가 너무 작고 또 촘촘히 붙어 있어 내용 파악에 혼란을 겪는다
장고하는 사이 손톱을 다 깨물어 버릴지도…!
‘엑스컴: EU’는 과거 명작의 특징을 유지하면서 신규 시스템을 더해 ‘문명’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즉 파이락시스 게임즈의 ‘엑스컴’ 리메이크는 성공적이다. 대신 쉬운 게임에 익숙한 현대 게이머가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남는다. 최근 2회 차를 시작한 기자는 불러오기가 불가능한 ‘철인 모드’로 또 한 번의 침공을 대비하려 한다. 당분간은 손톱이 없어 캔 음료 하나 따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괜찮다. 이게 다 지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함이니 말이다.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