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스포츠라도 응원하는 `내 팀`이 있어야 즐거운 법! 자랑스런 우리나라, 내 팀 선수들. |
3년 전에 단 한 번 5월에 뜨거운 햇살 아래 처음으로 외야석에서 경기를 본 적이 있다. 도대체 야구의 매력은 뭘까? 당시 못 말리는 축구마니아였던 기자는 진심으로 골똘히 생각했다. 저 멀리서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경기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력은 흐트러졌고, 마음은 심란해졌다.
타임아웃이 없는 게임의 매력, 이번에는 야구장이다!
유명한 야구만화(를 빙자한 연애만화) ‘H2’를 무려 두 번이나 정독했는데도 야구는 모르겠다. ‘타임아웃이 없는 스포츠의 매력’이라더니, 도대체 언제 끝날 줄도 모르는 이 지루한(!) 경기의 매력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외야석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치어리더는 어디 있지. 간식으로 가져온 과자만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2008년 8월, 올림픽을 앞두고 야구 국가대표팀의 쿠바 평가전을 보러 갈 기회가 생겼다. 온라인 캐주얼 야구게임 ‘마구마구’의 개발사 애니파크 김홍규 대표와의 인터뷰였다. `남한산성 다음에는 어디냐? 계속 이어가야지.` 김태곤 이사와의 남한산성 인터뷰 이후에 ‘산성시리즈’ 인터뷰를 이어가라는 이야기부터 여러 가지 회유와 압박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인터뷰를 잡기 전에는 정말 야구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막연하게 올림픽 때문에 프로경기가 쉬고 있다,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또 산성을 가야 하나? 김홍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홍규 대표님, 인터뷰 한 번 하시면 어떨까요? 야구장이나 공원에서요.”
“아, 그렇지 않아도 마구마구가 이번에 국가대표팀 평가전 메인스폰서를 해요. 저희가 내일 모레 직접 경기장으로 응원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와, 정말 잘 됐네요. 하하하, 이렇게 운이 맞을 수가! 그럼, 경기장에서 뵙겠습니다.”
화살처럼 내리 꽂는 햇빛에 눈도 뜨기 힘든 8월 6일, 쿠바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잠실 야구장을 찾았다. 오후 4시 50분,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 10분 전이었다. 이미 경기장 주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징어부터 각종 주전부리, 하얗게 얼어붙은 물병들, 아주머니들의 살벌한 호객행위 속에 나도 하나 집어 값을 치러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겨우 3루 내야석 출입구 앞에서 김홍규 대표와 만날 수 있었다. 30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 좌석을 찾았으나 앉아있기는 어려웠다. 경기장 출입구 근처 그늘 속에서 선 체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경기장 주변의 모습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야구장이나 축구장이나 모두 비슷하다. |
야구 마니아가 곧 마구마구 마니아
“야구 좋아하세요?”
“좋아해요, 직접 하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하죠.”
“어느 팀 응원하세요?”
“기아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팀이라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됐어요.”
김홍규 대표 역시 여느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야구장을 가게 되었다. 실제로 야구장에는 그런 소년들이 많이 보였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야구장을 찾거나 야구공과 배트를 얻은 소년들. 텔레비전을 보는 아버지의 옆에서 야구규칙을 배우고 자신만의 팀을 얻게 된 소년들. 다시 그들이 아버지가 되어, 가족들과 자식들을 데려갈 것이다.
“마구마구가 잘 되어서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진짜 마구마구는 일반 게임유저가 아니라 야구팬들이 그대로 마구마구의 매니아가 되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저희도 야구팬들이 우리 게임을 더 좋아해주시는 걸 알고 있어요. 일부러 마케팅도 오프라인 야구장 근처에서 하고, 반응도 그 쪽이 훨씬 좋아요. 그래서 그런지 야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경기 보시느라 오히려 ‘동접’이 더 안 나오죠(웃음).”
“홈페이지에도 시대별로 유명한 야구 선수들 정리하면서 선수카드 늘어놓고 이야기하시는 분들 보면 열정이 대단한 것 같아요.”
“마구마구의 흥행코드가 실제 야구팬들의 감성하고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애니파크와 CJ인터넷은 ‘마구마구’로 받은 성원을 야구팬들에게 돌려주는 차원에서 유소년야구 지원사업과 함께 한국티볼협회를 후원하고 있다. ‘티볼’이라 도대체 어떤 스포츠일까? 기자도 보도자료를 통해 처음 접한 스포츠 종목이라 무척 의아했다.
“티볼은 이른바 약식야구로 생각하시면 되요. 야구가 공을 띄워서 하는 방식이라면, 티볼은 공을 굴려서 하는 방식이에요.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고 덜 격렬하죠. 장비부터 공격이나 수비 교체 룰도 다르고, 저도 이번에 KBO를 통해서 지원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조금씩 저변이 넓어져가는 스포츠라고 하네요.”
▲ 사진 오른쪽이 김홍규 대표, 그리고 옆이 애니파크 직원들. 경기 시작후에야 모두 도착할 수 있었다. |
까칠하고 수다스러운 한국 야구? 아니 마구마구 인터뷰!
경기 시작 즈음하여 3루 내야석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보는 야외경기라 상당히 들뜬 상황에서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야구 선진국이라는 쿠바선수들의 유니폼이 마치 ‘츄리닝’ 스타일 같다는 잡담부터, 야구 규칙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갔다. 야구에 관해서는 약간의 소설과 영화, 만화가 얻은 지식의 거의 전부인 ‘문외한’ 기자의 거의 일방적인 질문공세였다.
“볼이 네 개가 나와서 1루로 진출하면 나머지 선수들도 한 칸씩 다 옮겨가나요? 만약에 2루만 비어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내야석과 외야석 경계를 나누는 깃대에 공이 맞으면 그건 어떻게 처리하나요? 파울볼은 선수들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되나요? 축구는 관중석으로 날아온 공도 무조건 돌려주어야 하는데, 야구는 굉장히 ‘팬서비스’가 좋은 스포츠이군요? 악, 공(파울볼)이 마치 눈앞으로 달려드는 것 같아요.”
끊임없는 질문과 수다스러운 감탄사가 연발로 터져 나왔다. 뜨거운 저녁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 땀이 줄줄 흐르는 와중에도 김홍규 대표는 연신 친절하게 질문에 답해주었다. 인터뷰가 아니라 야구에 관한 질문, 답변 시간에 가까웠다. 오프사이드에 관한 룰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간단한 축구에 비해 야구는 어려운 규칙이 많아 보였다.
“볼이 네 개가 나오면 무조건 진루합니다. 하지만, 2루만 비어있으면 3루 선수는 제자리에 있어야 하죠. 만루 상황에서만 점수가 나요. ‘밀어내기’라고 하죠. 깃대에 공이 맞으면 심판 재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파울은 아니죠. ‘파울불’은 가져도 됩니다. 앗, 조심하세요! 내야석 덕아웃(벤치) 근처에는 공이 많이 날아오기 때문에 안전망이 처져있어요. 그물망 앞에서 오랫동안 경기를 보고 나면 나중에 시야에 모자이크 현상이 생기죠(웃음). 그래도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파울볼은 매우 위험합니다.”
메인 스폰서라더니, 아니나 다를까 경기장에서는 ‘마구마구’ 홍보 영상이 공수 교대마다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MLB 측과 공식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선수카드를 업데이트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식 스폰서를 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 유니폼과 장비는 물론이고 교대시간마다 흘러나온 마구마구 홍보 영상, 메인스폰서의 힘! |
“계속 메이저리그 선수 이야기만 나와서 우리 선수들이 좀 아쉽겠어요. 이런 건 좀 더 신경 썼으면 좋았을 텐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온 이야기였다. ‘마구마구’ 홍보 영상이 나오자 주위에 앉아있던 젊은 야구팬들이 한마디씩 이야기를 던졌다. 이번에 나온 선수 카드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선수 카드를 가지고 있고, ‘마구마구’가 이렇고 ‘슬러거’는 저렇고.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두 사람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나도, 김홍규 대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바싹 뒤를 쫓아온 ‘슬러거’와 ‘마구마구’는 서로에게 긴장감 넘치는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같은 긴장관계는 게임 밖 스포츠마케팅에서도 뜨거운 접전을 연출하고 있었다. 각각 롯데자이언츠와 두산베어스로 공식스폰서를 맺은 양팀의 성적과 인기는 자연스럽게 게임과 연결이 되었다. 어떤 온라인 게임이 이토록 현실세계의 스포츠와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가 있을까? 야구 게임의 인기요인과 그 현실성을 피부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마구마구의 퀄리티 스타트, 경기는 뛰어봐야 아는 것
선발로 나온 봉중근 선수와 잇단 한국의 점수내기로 경기는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걸 ‘퀄리티 스타트(quality start)’라고 하는가! 배운 것은 바로 써먹어야지. 내야석 가까이에서 경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 김 대표의 친절한 해설덕분인지, 야구경기가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경기 중간에는 저녁 대신에 햄버거도 배급 받았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읽혀졌고, 큰 점수는 내지 못했지만 진루할 때마다 빠르게 달려나가는 쿠바선수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만약에, 마구마구의 현재 레이스를 야구경기에 비유한다면 얼마나 온 것 같으세요?”
“음, 4회 정도요? 아주 시작은 아닌 것 같고, 중반 정도 온 것 같아요. 마구마구를 처음 개발했을 때는 서비스를 하고 난 다음에도 이렇게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처음에 경기를 시작할 때는 내 능력도, 이 경기가 어디까지 갈 지도 모르잖아요. 실제로 뛰어봐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마구마구도 마찬가지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요.”
“어떤 일이 하고 싶으신데요?”
“마구마구의 캐릭터 자체가 리얼하지는 않지만, 캐릭터의 능력이나 게임의 룰은 리얼하잖아요. 그런 리얼한 특성을 더 살리고 싶어요. 선수들 능력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내야안타가 나오는 상황도 다양하게 반영하고, 좀 더 리얼한 게임으로 만들고 싶어요. 직원들에게도 ‘우리는 세계 최고의 야구게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해요. ”
2006년 3월, 오픈베타테스트를 시작했던 ‘마구마구’, 이미 서비스 횟수로만 3년이 넘어간다. 야구경기로 치면 4회에 해당한다는 김홍규 대표의 비유도 타당하게 들린다.
경기가 4회를 넘어가면서 김홍규 대표에게 스스로 애니파크의 야구 감독이라면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현재는 우리 히어로즈의 감독을 맡고 계신 前 엘지트윈스 이광환 감독처럼 되고 싶어요. 신바람 야구, 자율 야구를 중시한 분인데, 카리스마와 명령 위주의 당시 팀 운영 방식에서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어요. 애니파크가 오랜 자회사 생활을 통해 얻은 거라면 우리가 가진 것은 ‘합리성’ 밖에 없다는 생각이에요. 협상을 하면, 우리는 힘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직원들에게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기회를 고루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이 가진 능력은 결국 비슷하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도 정보에 소외되지 않고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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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파크 김홍규 대표이사 |
애니파크 경영은 ‘신바람 야구’로 통한다
야구경기는 축구경기의 2배, 3배의 시간을 훌쩍 넘기며 이어진다. 경기장 바깥으로 하얗게 떠있던 저녁 달도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게임 개발사 경영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개발자 출신의 경영자가 많은 게임업계에서 최근 ‘전문 경영인’이나 ‘회사 경영’은 일종의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경영이요? 게임 개발사의 경영은 게임을 잘 만들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홍규 대표는 애니파크를 설립하고, `A3`를 내놓으면서 9년째 여름 휴가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게임 개발사 어디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름은 이른바 게임업계의 ‘대목’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마구마구’뿐만 아니라 ‘오즈 크로니클’의 업데이트, 신작 개발까지 정신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6회부터는 다른 스포츠 인터뷰를 통해서 ‘마구마구’를 즐긴다고 고백한 윤석민 투수가 등장했다. 자신의 특기인 ‘너클컵’이 선수카드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회사 측에 ‘귀여운 탄원’을 한 선수였기 때문에 김 대표가 특히 보고 싶어한 선수였다. 아쉽게도 8시를 넘어가면서 급한 호출로 인해 김홍규 대표는 윤석민 선수를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라, 김 대표를 보낸 다음에도 기자는 마음 놓고 경기를 즐겼다.
플라스틱 의자가 녹아 내릴 것 같은 열대야 때문에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연신 땀을 훔쳐야 했다. 때때로 불어오는 한 줌 바람이 더위를 식히고, 파란 어둠 속에서도 하얀색 조명이 경기장을 대낮보다 밝게 비춘다. 한가로운 여름 밤, 야간경기의 매력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마음은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경기는 즐거웠다. 15:3으로 싱겁게 이긴 경기라는 사실도 상관없다. 우리 팀이 이기고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징크스는 사라졌다. 게임이 다시 시작되면, 우리는 또 이길 테니까.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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