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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내려 앉은 도시: 서장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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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미스 페란-12살

그날 아침은 소녀에게 있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12살이 된 마을의 모든 애들이 신전으로 모이는 것이었다. 애들 곁에 있는 부모들은 우리애가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는지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녀의 옆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병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신전으로 가는 길고 긴 계단을 걸어가고 있었다. 소녀와 어머니의 앞에는 아버지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 넓은 등을 바라보며 소녀는.

(셉터가 될래요 꼭 나 셉터가 될래요)

소녀는 그렇게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안아주기를 바랬다.

소녀의 “시험”을 위해 잠시 귀국한 아버지는 언제나 처럼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아버지가 자기처럼 긴장하고 있는 것 일거라고 믿었다.

“괜찮아요 아빠. 저는요 괜찮아요-엄마도 그런 표정 안 지어도 되요”

소녀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비밀”을 소녀는 가지고 있었다. 자신해도 좋았다. 소녀만이 이 마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힘이자 자신들 가족을 이어주는 고리가 되어줄 것이다.

“셉터로서 명성이 자자한 다이온 페란공의 따님이 아닌가. 결국……여기까지 왔구나”

턱수염을 길게 기른 신전장이 가만히 소녀를 바라보았다.

바람의 신전 라한-그것이 바로 신전의 이름이었다. 바람의 여신 테레스 신을 섬기는 곳이다.

거실에 신전장과 소녀만이 있었다.

소녀의 눈앞에는 테이블에 펼쳐진 12장의 컬드가 있었다.

“각각 나눠져 있는 석판을 읽어보렴. 그곳에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다오”

장방형으로 펼쳐진 ‘컬드’라고 불리는 카드 -

두꺼운 종이 정도의 두께에 크기는 소녀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석판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신비로운 도구로 어떠한 금속보다도 가볍고 아무리 강한 불로 태워도 전혀 타지 않는다고 한다.

안에는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마치 정밀한 공예품 같기도 했다.

그리고 표면은 마치 거울처럼 바라보는 자의 얼굴이 비춰질 뿐이었다.

“석판의 상을 보기 위해서는 오감을 뛰어넘은 감각이 필요하단다. 눌(미각), 듀얼(취각), 트라이(촉각), 스퀘어(청각), 펜타(시각)─각각 모든 것을 뛰어넘은 셉트(제 6감)을 느끼지 못하면 석판은 열리지 않는단다”

그 제 6감을 가져 석판의 거울 부분에 숨겨져 있는 힘의 상을 바라보는 자야말로 힘을 구사하는 자-셉터인 것이다. 소녀는 열심히 셉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만져도 되나요……?”

신전장이 끄덕였다. 소녀는 셉트를 손에 들고 앞면과 뒷면을 비교하면서 머릿속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가만히 살펴보았다.

소녀에게 있어서 해답의 열쇠는 셉트 뒷면에 있었다. 틀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 말로 소녀와 소녀의 가족에 대한 시련인 것이었다. 자신이 셉터로서 인정받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소녀는 어린 자신을 세상 모든 것에 바칠 수 있었다.

 “셉트에 숨겨진 심연을 보거라……그러면 심연 속에서 또 무엇인가가 보일 것이다”

신전장이 말했다. 소녀는 드디어 셉트의 거울 부분에 나타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은……등에 나비날개를 가진 인형 같은 것이 보여요”

강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대답했다.

잠시 신전장이 놀라면서 숨을 들이쉬었다.

“그것은 ‘스프라이트’ 라고 불리는 석판이란다……. 나는 희미하게 밖에 안 보이는데 너에게는 그렇게 까지 확실하게 보이는 거냐?”

“인형이 손에 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여요. 민들레 꽃 인가요?”

대답한 다음에 소녀는 침을 삼켰다. 신전장은 놀랐다는 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러면 이 석판을 봐보렴”

소녀는 이번에는 물어보지도 않고 다음 석판을 집었다. 장방형을 한 두터우면서도 무엇보다도 가벼운 석판을 손에 들고 열심히 뒷면과 비교하면서

“커다란 파란 뱀이 보여요. 호수에서 약간 고개를 들고 있어요”

“자이언트 레틀러…. 뱀의 뒤에는 뭐가 보이지?”

“요새 같은……건물……하고 달이 보여요”

“달은? 초승달이니? 보름달이니? 그렇지 않으면 반달?”

“옅은 노란빛을 띈 초승달이에요”

신전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말투가 어린애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책 같은 것에 쓰여 있는 것을 소녀가 읽고 있는 듯한…….

하지만 소녀는 가만히 신전장의 눈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다른 것도 봐도 되죠?”

두 장의 컬드를 확실하게 대답해서 인지 자신감이 솟았다. 신전장은 끄덕였다. 소녀는 계속 대답하기 시작했다. 신전장의 의심도 그것으로 약간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조심해야지…….)

결국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소녀는 12장의 석판을 모두 맞추었다.

신전장은 놀라는 정도를 뛰어넘어 아연해 있는 것 같았다.

“설마……12장을 모두 맞출 줄이야……이 신전이 세워진 이래 처음 보는 놀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구나”

그리고 잠시 재단 쪽으로 향해가더니 그곳에서 다시 또 한 장의 석판을 꺼내었다.

“그러면 이게 마지막 컬드다. 자……한번 봐보렴”

소녀는 움찔했다. 설마 14장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컬드를 손에 들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이 떨렸다.

동요하고 있는 얼굴을 컬드의 뒷면으로 숨기듯이 거울부분을 바라보았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것만 대답하면 내가 인정받을 수 있어. 가족하고 함께 지낼 수 있어. 그런데-긴박하게 된 소녀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울보 아티.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소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울보. 영웅의 딸이면서 언제나 금방 우는 울보. 그건 사실이었다. 언제나 소녀의 가슴속은 슬픔으로 가득 차 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거나 괴롭힘을 당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그게 자신도 분해서 참을 수 없었지만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그래서 더 분해져서 눈물이 계속 늘어가기만 했다.

 아버지가 여행을 떠날 때에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슬프고 괴로워서 우는 것 만으로 자기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도 소녀처럼 슬픈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며 결국 등을 돌리더니 아무런 말도 하질 않고 여행을 떠났다. 눈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아무것도 바꿀수 없어. 그것이 소녀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몸으로 배운 세상의 법칙이었다(울보─).

소녀는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를 악물었다. 지금도 쏟아지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삼켰다. 여기에서 울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거야. 눈물이 모든 것을 바꾸어 주지는 않아.

보자. 보자. 석판을 보자. 울면 아무것도 안 보일 거야. 뭔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렇게 대답하면 되는 거야. 환상이라도 좋아. 거짓말이라도 좋아. 뭔가 보이기만 한다면─

그때. 가만히 뭔가가 석판을 휘저었다.

거울 같은 표면의 저 안쪽에서 우주에 곧장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어둠이 보였다. 심연 속을 바라보았을 때 또 그 안을 보렴. 신전장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어둠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깊은 심연 속에서 뭔가가 소녀의 시야에 퍼졌다. 마치 거대한 뱀이 입을 펼치고 삼켜들 듯이.

어둠이 소녀를 단숨에 삼켜버렸다.

소녀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론 엘라이-12세

한 순간이었다. 섬광이 천지를 뒤덮고 강한 벼락이 주위를 둘러쌌다.

잠시 후에 소년은 자신이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황해서 일어나 겁에 질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놀랍게도 하늘에서 그리멀킨-그리가 빛의 화살을 양손으로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한테 스펠 계에 속하는 컬드를 사용하다니 완전 초자아냐”

싱긋 하고 그리가 웃었다. 소년이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호전적인 표정이었다.

빵하고 그리가 양손을 부딪히자 ‘매직볼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하늘을 날고 있던 그리가 휙 하더니 소년의 어깨에 내려앉아 소리쳤다.

“뭘 그렇게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어. 어서 성으로 돌아가자!”

그리가 소리치는 것을 들으면서 소년은 당황해서 몇 장인가 스케치를 손에 들고 뛰기 시작했다. 캔버스도 그림도구도 그냥 내팽개쳐두었다. 어째서 이런 때에 - 소년은 마음 속에서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반대로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원망으로 되돌아왔다.

자신이 행복에 겨워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성에서는 아버지도 누나도 병사들도 적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후회와 자기혐오가 부풀어 올랐다.

“위험해 멈춰!”

그리가 소리쳤다. 소년은 깜짝 놀라면서 멈췄다.

그곳에서 소년은 또다시 경악에 질린 눈으로 앞을 보았다.

놀랍게도 눈앞에 있던 숲이 얼어가는 것이었다. 나뭇잎이 마르고 나무에 서리가 서리더니 땅 이곳저곳에서 거대한 얼음으로 된 창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월 오브 아이스! 그런 여기는 미라 님이 데리고 있는 ‘가고일’이 있었을 텐데…”

그리의 말이 뭔가 다른 소리에 끊어지고 말았다. 소년도 놀라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몇 번인가 소년도 본적이 있었다. 누나가 자주 사용하는 컬드 중 하나인 ‘가고일’-

독수리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한 움직이는 석상으로 등에 달린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돌로 된 발톱은 갑옷을 입은 인간을 단숨에 두 조각으로 찢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크리처였다.

 “와, 와아악! 아아아악!”

소년이 소리쳤다. 완전히 공포에 질려 부끄러움조차 잊어버렸다.

그 때 쿵 하고 소년의 발밑에 있던 땅이 꺼졌다. 마치 강 같았다. 숲 이였을 땅이 잠시 따뜻해지더니 강으로 변한 것이었다.

“미라 님이 지키고 있던 지속성의 숲이 수속성으로 변화하고 있어. 적 셉터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거야”

그리가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주위를 냉정하게 둘러보더니.

“저기야 아직 적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이 있어. 자! 뛰어 너도 남자잖아!”

소년은 이를 악물며 뛰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하나하나 마르면서 이곳저곳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언제 얼어붙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뛰면서 소년은 드디어 언덕에 올라서서 성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성 이곳저곳에 얼음벽이 생겨서 성벽을 부수고 있는 것이었다.

먼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쿵. 묘하게 길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성 한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 안에서 거대한 7색깔의 비늘을 가진 용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아닌가.

“리바이어선! 저 녀석이 대지의 마나를 지배해서 주변을 수속성으로 바꾸는 거였구나!”

그리가 소리쳤다. 소년은 몸이 떨렸다. 무서워서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앞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저런 괴물과 모두들 싸우고 있을 때 자신의 세계는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되먹지도 않은 소리를 했었던 것이다. 한심해서 눈물이 났다.

언덕을 내려와 성에 나있는 다리를 건넜다. 언덕은 완전히 얼어 거대한 얼음 속에서 몇 명인가 병사들이 눈을 부릅뜬 채로 죽어 있었다.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소년은 발을 멈추질 않았다.

나도 죽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죄였다. 그전에 아버지와 누나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나서 빌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리를 다 건너 성안에 있는 광장에 들어가기 직전 뭔가가 나타났다.

손에 검과 화살을 든 도마뱀 같은 모습을 한 인간처럼 생긴 크리처였다.

“리저드맨! 도망쳐!”

소년이 당황해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도마뱀이 달려오더니 소년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피로 물든 칼이 내려치는 순간 그리가 소년을 밀쳤다.

‘파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년은 땅바닥에 쓰러졌다. 갑자기 눈앞이 빨갛게 물들었다. 얼굴이 리저드맨의 칼에 스친 것이다.

피로 물든 시야 속에서 리저드맨이 갑자기 화살을 그리에게 쏘는 것이 보였다. 소년이 자신도 알 수 없는 말로 소리친 순간 그리의 눈앞에 커다란 방패가 나타나더니 화살을 받아 치는 것이 아닌가.

“……워터실드! 수속성 공격을 모두 되받아 치는 컬드다”

그렇게 말한 것은 다름 아닌 소년의 아버지였다.

“엘라이 공작님! 무사하셨군요!”

방패로 공격을 막으면서 그리가 소리쳤다.

아버지는 대답하지도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석판들 중에서 한 장을 골라 공중으로 던졌다.

 “엘라이 공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오거라 ‘글라디에이터’ 여!”

빛이 날아들더니 석판에서 나타난 것은 강철 같은 체구를 가진 남자의 모습을 한 크리처였다.

소년은 놀라면서 엘라이 가에 전해지는 최강의 공격수의 모습을 보았다.

글라디에이터가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보기 좋게 리저드맨의 몸이 두 조각이 났다. 압도적인 파워였다. 도마뱀들이 종이조각처럼 하나하나 날려 보내지더니 흔적도 없이 석판의 형태로 돌아가 가벼운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위험은 단숨에 사라지고 소년은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님……”

“레론이냐……또 그림 따위에 정신을 팔려가지고 놀고 있었던 게냐”

아버지가 심하게 꾸중했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 때는 벌써 때렸을 텐데.

갑자기 아버지의 발밑에 뭔가가 떠올랐다. 피였다. 엄청난 피가 아버지의 몸에서 흐르고 있었다.

풀썩 하고 아버지의 몸이 흔들리더니 쓰러졌다. 그 등에는 엄청나게 많은 화살이 꼽혀있었다.

“네가 무사하다니. 불행 중 다행이구나”

아버지가 눈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그 눈에는 이제 이미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도망치거라…엘라이의 가문의 피를 후손에 전하거라…”

소년이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의 몸을 껴안았다. 아버지는 피에 젖은 손으로 소년의 손을 꼬옥 잡았다.

“파괴된 컬드를……다시 받아서……언젠가 이 성을 다시 엘라이가의……손에”

그러더니 다른 한 손으로 컬드 뭉치를 소년의 손에 밀듯이 전했다.

“부탁한다……내 아들아……”

소년의 목이 꿀꺽하고 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아들에게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생각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완전히 다른 아버지가 이렇게 까지 나를 바라보고 아들이라고 부르다니…….

“아버님……?”

아버지는 대답하질 않았다. 다시 보니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부탁한다"

라고 말했을 때처럼 그대로 눈을 하늘로 향한 채였다.

난 그 쪽에 없어요. 난 여기 있는데.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아버지는 자신과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 한 것이다. 그런 게 더욱 아버지다웠다.

그때 머리 위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레론! 위에!”

그리가 소리쳤다. 그러자 거대한 눈알에 검은 촉수를 가진 것이 하늘에서 이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데스 게이즈다. 이런‘글라디에이터’에게 명령해서 빨리 싸우게 해! 어서!”

“그런…내가…”

소년은 소리쳤다. 컬드에서 소환시키는 크리처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을 조종하는 자에게는 강력한 마나가 필요한 것이었다.

 엘라이가에 전해지는 수많은 공격수중에서 글라디에이터는 소년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압도적인 존재였다. 도저히 자신이 마력을 주어 조종할 자신이 없었다.

하늘에 있던 거대한 눈알이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눈에 빛이 모이는 것이 아닌가-

“어서! 저 녀석의 빛에 당하면 컬드는”

한줄기의 섬광이 거대한 눈알에서 뿜어져 나왔다.

소년의 눈앞에 섬광이 글라디에이터의 가슴을 꿰뚫었다. 글라디에이터가 비명소리를 내더니 컬드로 변했다. 소년이 당황해서 컬드를 잡으려고 하자 손에 닿기도 전에 강한 소리를 내더니 컬드 자체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물질보다도 강하고 전혀 부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컬드가.

“이제 다시 고칠 수 없어……”

그리가 말했다. 컬드의 파편이 소년의 손가락 사이에서 쏟아졌다.

“그런…”

바로 방금 전에 엘라이 가를 부탁한다고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는가. 컬드를 방금 전에 받았는데. 그런데 이렇게도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하고 최강의 전사를 잃어버리다니-

소년이 이렇게 생각하기도 전에

“레론!”

그리가 소리쳤다. 소년은 겁에 질려 천정에 떠있는 거대한 눈알을 바라보았다.

“안 돼…나…나가지고는…안 돼…”

소년은 소리치며 울었다.

거대한 눈동자가 소년을 바라본 채로 다시 그 눈동자에 파괴의 빛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티미스 페란 12세

어둠 속에서 소녀는 희미하게 뭔가를 보았다.

그것은 커다란 강철 같은 몸에 검을 가진 남자였다.

갑자기 소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강해 보였고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떠한 적이라도 이 존재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소녀 따위-아니 아버지라도 이 존재의 강력함은 이길 수가 없지 않을까.

그 존재가 갑자기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이곳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슴에 상처를 입고 떨어진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올라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비명을 소녀는 아버지의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싸움에서 도망칠 수 없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소녀는 갑자기 공포를 잊고 열심히 그 존재에게 손을 뻗더니.

“아빠! 여기에요 아빠!”

그렇게 소리쳤다.

그 존재가 소녀를 바라보았다, 반대편에서 손을 뻗어왔다. 소녀가 그 손을 잡았다. 그러자 너무나도 무거운 나머지 반대로 어둠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소녀가 다시 강한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에 손을 대고 말은 것이다. 그런 후회가 소녀의 몸에 퍼졌다.

소녀의 몸도 마음도 어둠의 저편으로 빠져들려는 순간-

“아티미스! 정신차리거라!”

따뜻한 손이 소녀의 어깨를 잡더니 흔들었다.

소녀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희미하게 눈앞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어째서 여기 아빠가 있는 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둠도 어둠 밑에서 고통에 겨워하는 존재도 사라졌다.

주변에는 신전이 보였다. 그곳에 신전장과 어머니가 있었다.

소녀의 비명을 듣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신전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갑자기 소녀는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그 13장 째의 컬드-

그렇게 느낀 순간 그 입에서 높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반사적으로 컬드를 던졌다. 온몸에 공포가 전해져 몸이 덜덜 떨렸다. 도대체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이었는지 잘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래-내가 시험을 받고 있던 도중이었다는 것을.

“어……어두운 곳에 남자가 있었어요”

소녀는 이를 악물며 신전장에게 말했다. 신전장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소녀를 뒤에서 안더니.

“그래……이제 됐다. 아티미스”

하지만 소녀는 열심히 눈물을 멈추고 말했다.

“커다란 칼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 손을 붙잡고 어둠 속에서 꺼내달라고……”

마치 아버지처럼-소녀는 그렇게 마음속에서 중얼거렸다.

그 때 소녀는 완전히 눈물을 그쳤다.

울보인 자기 자신은 그 어두운 어둠 저편에 놓아두고 온 거야. 소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신전장은 소녀가 던진 컬드를 집더니 아버지를 보고

“다이온이여…그대의 딸은 이 13장 째의 컬드 안에서 뭔가를 본 것 같네…”

“시험의 13장 째를…아티미스가?”

신전장이 끄덕였다.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가운데 소녀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신전장님 저 셉터가 될 수 있나요”

“그건 아무도 모른단다…너의 노력과 창조의 여신의 가호에 달린 거란다……”

가만히 신전장이 대답하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너에게는 가능성이 있구나. 셉터 후보로서 이 신전에서 수행을 하도록 하거라”

소녀가 눈을 휘둥그래 떴다. 어머니가 숨이 멈추는 듯 놀란다. 아버지는 얼어붙은 듯이 그저 소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예”

큰 소리로 소녀가 대답했다. 역시 울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바꿀 수 있는 것은 강한 나야. 울보인 자신은 영원히 어둠 저편에서 잠들고 있으면 되는 거야.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절대로 안 울 거에요”

소녀가 말했다. 그 말에 신전장은 가볍게 끄덕였다.

“신이여……어째서……”

아버지가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가만히 어머니가 다가섰다.

그 두 사람의 모습에 소녀는 만족했다. 가족을 이어주는 고리를 만드는 것- 그건 셉터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소녀는 그날 눈물을 영원히 봉인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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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야소프트
게임소개
게임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부루마블은 정해진 맵 위를 주사위를 굴리며 이동하다가 빈 땅이 있으면 거기에 건물을 짓는데, 컬드셉트는 건물 대신 자기 카드에 있는 몬스터를 배치한다. 만약 상대편 땅에 멈추면 정해...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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