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브로맨스(Bromance)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로운 필수요소로 뜨고 있다. 브라더와 로맨스를 합쳐 놓으니 동성애라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그보다는 남성 간의 끈끈한 유대감에 가깝다. 잘 모르겠다면 ‘스타 트렉’ 커크 함장과 스팍, ‘셜록’ 홈즈와 왓슨, ‘반지의 제왕’ 프로도와 샘와이즈의 관계를 떠올려 보라. 이들의 깊디깊은 우정과 서로를 향한 각별한 마음은 연인조차 시샘할 지경이다. 그렇다면 이런 달큰한 남자들이 게임에도 있을까? 어쩌면 벌써 독자 여러분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면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게임 속 브로맨스 TOP5로 함께 두근거려보자.
5위. 나루호도 류이치 X 미츠루기 레이지 (역전재판)
▲ 뇌섹남들의 브로맨스 법정 공방 (출처: ‘역전재판’ 공식 홈페이지)
피고인을 고발하고 유죄를 입증하려는 검사와 이를 저지하는 변호사의 법정 공방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역전재판’ 주인공 나루호도 류이치와 라이벌 미츠루기 레이지 또한 변호사와 검사로서 사건의 진위를 놓고 줄곧 대립하는 관계. 다소 어설프고 막무가내인 나루호도와 냉정하고 엄격한 미츠루기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 보이지만, 불의를 외면하지 못하는 올곧은 성품만큼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정장을 빼입은 모습도 하나같이 훈훈하고.
당초 나루호도는 차가운 표정으로 독설이나 날리는 미츠루기를 좋게 보지 않았으나, 몇차례 공방을 거치며 그가 여느 부패 검사와는 다른 진짜배기임을 깨닫는다. 진심을 표현하는데 서툴 뿐이지 생각보다 상냥한 일면이 있다는 것도. 그렇게 점차 가까워진 둘은 서로의 입장도 잊고 의기투합해 범인을 추궁하는가 하면, 에피소드 4 ‘역전 그리고 안녕’에서 나루호도가 미츠루기를 변호해준 뒤로는 대놓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이가 됐다. 이 브로맨스에 이의 없소!
4위. 레드 X 그린 (포켓몬스터)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출처: ‘포켓몬스터 더 오리진’ 영상 갈무리)
‘포켓몬스터’ 세계관의 청소년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포켓몬이라 불리는 각양각색 생명체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현실과 비교하면 상당히 개방적인 문화가 아닐 수 없는데, 아이들끼리 산이며 들에서 야영하고 전국을 주유하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본편의 주인공인 태초마을 출신 레드와 그린 역시 전통에 따라 모험을 떠난 당찬 소년들. 서로 포켓몬 리그 챔피언이 되겠다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귀엽달까.
레드의 라이벌을 자처하는 그린은 스타팅 포켓몬을 받을 때부터 얌체짓을 하는지라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다. 이후로도 여행 도중 뜬금없이 나타나 이쪽을 깔보며 자기 자랑만 늘어놓기 일쑤인데, 그러면서도 아이템을 챙겨주거나 조언을 남기는 등 은근히 친구 노릇을 한다. 이윽고 포켓몬 리그에서 마주쳤을 때도 “하하~ 기쁘구나! 라이벌인 네가 약해서야 싸울 맛이 안 나니까”라며 에둘러 반가움을 표현하질 않나. 이래저래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소년이로군.
3위. 제로 X 엑스 (록맨 제로)
▲ 100년을 넘어 이어지는 전우애 (출처: ‘록맨 제로’ 공식 홈페이지)
사랑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듯 브로맨스도 마찬가지다. ‘록맨 제로’ 주인공 제로와 그의 오랜 전우인 엑스는 로봇임에도 두터운 신뢰와 친애로 묶여 있다. 둘은 수많은 전장에서 등을 맞대고 싸웠으나, 제로가 모종의 이유로 기능 정지되며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만다. 남겨진 엑스는 이후 100년간 홀로 고군분투하며 언젠가 깨어날 제로를 위해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이상향 네오 아르카디아를 건설한다. 이거 무슨 헤어진 연인보다 더 애절하구만.
하지만 네오 아르카디아의 꿈은 초장부터 뒤틀리고 말았으니, 갑작스레 나타난 파괴적인 사고 프로그램 다크 엘프를 잠재우는 과정에서 엑스 자신의 신체를 봉인구로 희생하고 만 것이다. 창졸간 지도자를 잃어버린 네오 아르카디아는 인간지상주의 독재국가로 변질되었고 뒤늦게 깨어난 제로와 적대하기에 이른다. 결국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최악의 결과로 치달은 셈. 이 와중에 엑스는 정신체만 남아서도 제로를 챙겨주고 다니니 참 애틋하다, 애틋해.
2위. 이스칸다르 X 웨이버 벨벳 (페이트/그랜드 오더)
▲ 사나이의 길은 패도, 거침없어라 (출처: ‘페이트/제로’ 영상 갈무리)
흔히 브로맨스는 비슷한 연배끼리 맺어지곤 하지만, 가끔은 원숙한 성인과 설익었지만 순수한 미소년의 조합이 좋을 때도 있다. ‘페이트/제로’ 배경인 제4차 성배전쟁에서 라이더 조로 활약한 웨이버 벨벳과 이스칸다르가 대표적인 사례. 저 옛날 정복왕 알렉산더로 명성을 드높인 이스칸다르는 견습 마술사 웨이버의 부름에 응하여 수천년이 지난 현대에 강림했다. 본래라면 마스터가 영령를 부려야 맞겠지만 어쩐지 반대가 되어버린 주종 관계가 은근히 재미있다.
신화적인 카리스마로 셀 수 없이 많은 장병을 통솔해온 이스칸다르에게 있어 웨이버는 아무리 마스터라 해도 따라주기 힘든 상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유약할지언정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마스터를 인정하고, 한 사람의 어엿한 사나이가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웨이버 역시 지나치게 호탕한 이스칸다르에게 휘둘리면서도 가늠할 수 없는 배포에 감화돼 점차 내적 성숙을 이룬다. 고대 그리스에서 왜 이런 관계를 장려했는지 알 법하다. 이처럼 '케미' 좋은 둘의 관계는 소설과 애니메이션을 거쳐 모바일게임 '페이트/그랜드 오더' 이벤트에서도 다룰 정도로 각별하다.
1위. 류 X 캔 (스트리트 파이터)
▲ 격렬한 권의 브로맨스 (출처: ‘스트리트 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한 남자들이 몸과 몸을 부딪히는 격투 게임이야말로 브로맨스가 꽃피기에 최적화된 토양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두 주인공 류와 켄은 동문수학한 사형제로서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우이자 호적수다. 이렇다 할 가족도 없이 초야를 떠돌며 수련에만 몰두하는 류가 그럭저럭 먹고 사는 것도, 북미 대부호의 아들인 켄이 여러모로 뒤를 봐주는 덕분이다. 혼자서는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류의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 또한 쾌활하고 긍정적인 켄의 몫.
류가 동아시아 이곳저곳을 방랑하는 동안 켄은 북미에 정착해 자주 만나기는 어려워졌지만, 악의 조직 샤돌루가 음모를 꾸밀 때면 한달음에 달려와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참고로 류의 트레이드 마크인 새빨간 머리띠는 켄이 쓰던 댕기를 선물한 것인데 일본에서 붉은 끈(紅線)은 연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스트리트 파이터’가 십여 편씩 이어지는 동아 류에게 여자친구 하나 생기지 않는 이유는 그의 마음에 자리잡은 켄의 존재감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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