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오버워치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2탱 2딜 2힐 역할 고정 규칙이 적용된 것이다. 3탱 3힐, 일명 고츠조합 이라는 극단적인 메타가 여러 번의 밸런스 패치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운영진이 1년 전부터 준비해 오던 이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역할 고정이 도입된 초창기에는 많은 유저가 이 변화를 반겼다. 이 패치 덕분에 1년 가까이 유지되던 메타가 급변했고,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을 선택해서 경쟁전에 임할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 원하지 않는 역할군을 플레이해야 하는 경우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더 이상 팀원끼리 얼굴을 붉혀가며 조합을 맞춰야 할 일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해당 패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역할 고정 패치의 황금기는 한여름 밤의 꿈 마냥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유저들이 패치에 적응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역할 고정 도입 이후 오버워치의 인기는 이전보다 더욱 떨어졌다. 국내 PC방 점유율은 8%에서 6%대까지 떨어졌으며(게임트릭스 기준), 트위치 평균 시청자 수 역시 4만~5만 명 대에서 2만 명 미만으로 집계되고 있다. 게임 출시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일까?
조합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한 역할 고정
역할 고정은 많은 유저가 탱커와 힐러를 기피하는 상황을 자아냈다. 역할 고정 룰 도입 이후 오버워치는 딜러의 기량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따라서 경기의 결과가 정해지고 있다. 안 그래도 수동적인 플레이가 강제되던 탱커 영웅은 패치 이후 더욱 수동적으로 플레이할 수 밖에 없게 됐으며, 힐러는 헤드샷이나 콤보 한 방에 의문사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탱커와 힐러의 플레이 만족도가 바닥까지 떨어지게 되면서 많은 유저가 딜러만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할군 별 선호도가 극단적으로 차이나다 보니 딜러군 매칭 대기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게 됐다. 이전엔 경쟁전 기준 아무리 길어도 5분 내로 매칭이 잡혔지만, 지금은 낮은 티어에서도 15분 이상이 우습게 걸리며, 마스터 이상의 고티어에서 딜러를 플레이하려면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물론 탱커로 플레이하면 1분도 안 걸려서 매칭이 잡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현재 메타 특성상 탱커는 플레이 하는 재미가 현저히 떨어진다. 하고 싶은 역할을 하자니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게임을 빠르게 즐기자니 게임 하는 맛이 안 나는 진퇴양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역할 고정이 오버워치 특유의 조합 갈등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할 고정이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게임 시작 시 유저들끼리 조합을 맞추기 위해 필요 이상의 갈등을 겪어야 한다거나, 하기 싫은 영웅을 억지로 골라야 하는 경우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작 역할 고정이 도입되고 유저들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군만 하다 보니 2탱 2딜 2힐이란 구색만 맞춰질 뿐 게임에 이길 수 있는 제대로 된 조합을 맞추는 경우는 더욱 적어졌다.
이를테면 예전엔 상황과 상관없이 한 가지 캐릭터만 플레이하는 원챔 유저나 악성 트롤 유저가 게임에 참여하더라도 나머지 5명이 유동적으로 조합과 역할군을 변경해가며 열세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 보니 한 명의 악성 유저로 인해 합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악성 유저 한 명으로 인해 힘겹게 잡힌 한 판의 게임이 엉망이 되는 상황에 유저들의 불만은 계속 치솟고 있다.
3탱 3힐보다 더욱 고착화된 메타에 e스포츠 인기도 하락
역할 고정으로 인해 더욱 다양한 전략이 나온 것도 아니다. 수비적으로 변한 오버워치 메타 특성상 사용하기 좋은 캐릭터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한정된다. 그나마 딜러는 선택의 자유가 넓은 편이지만, 탱커는 오리사와 시그마가 아니면 사실상 승리를 기대하기 힘들며, 힐러 영웅군에선 오리사 시그마에 어울리는 바티스트가 고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현상은 상위권 티어로 갈수록 더욱 굳어진다.
이는 오버워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던 조합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결과를 낳았다. 역할 고정이 없던 시기에는 3탱 3힐이 우세라 하더라도 이를 뒤집기 위해 다양한 조합을 시험해보고 대처하는 것이 가능했다. 실제로 역할 고정이 도입되기 직전에 유행하던 조합은 3탱 3힐의 변형인 2탱 솜브라, 3탱 솜브라 등이 있었으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 1탱 3딜, 4딜 2힐 같은 파격적인 조합이 나오기도 했었다. 실제로 오버워치 리그 팀인 상하이 드래곤즈는 이 1탱 3딜 조합으로 3탱 3힐의 절대 강자였던 밴쿠버 타이탄즈를 꺾고 2019시즌 스테이지 3 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역할이 고정되면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전략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특히, 다양한 전략으로 메타를 선도하고 파훼법을 구상해야 하는 프로 경기에서 이 같은 제약은 메타를 더욱 고착화 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오버워치 리그에 역할 고정이 처음으로 적용된 2019시즌 스테이지 4 당시 상위 팀이 사용한 조합은 메이, 위도우메이커, 오리사, 로드호그, 아나, 메르시로 전부 똑같았다. 시그마가 추가된 오버워치 리그 2019시즌 플레이오프부터는 리퍼, 둠피스트, 시그마, 오리사, 모이라, 루시우가 매판 똑같이 등장하고 있다.
결국, 이제 프로 경기에서도 이전만큼의 다양한 전략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오버워치 해설가인 '용봉탕' 황규형이 개인 유튜브를 통해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역할 고정이 적용됐음에도 불구하고 궁극기 운영 위주의 게임 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대회 기준으로 봐도 모두가 똑같은 것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도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이며, 2020시즌에 대한 대중의 기대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결현재 오버워치는 역할 고정으로 인해 일반 유저는 물론 e스포츠에까지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 모든 문제가 단순히 역할 고정 하나로 인해서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에 걸맞는 밸런스 패치가 수반되거나 상황에 따라 1탱 3딜 2힐 같은 변형 조합도 가능하게 마련했다면 이러한 사태는 예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버워치 운영진은 역할 고정 도입 당시는 물론 그 이후에도 이렇다 할 대대적인 밸런스 패치를 가하지 않고 있어 문제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역할 고정 이후 오버워치의 인기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오버워치처럼 기본적인 완성도가 높고 팬이 많은 게임은 언제든지 다시 반등할 여지가 있다. 유저 눈높이에서 진행되는 발 빠른 밸런스 패치와 다양한 영웅이 등장한다면 오버워치는 언제든지 예전만큼의 인기를 누릴 수 있다. 오버워치가 하루빨리 해결책을 찾아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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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에서 모바일게임과 e스포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게임만 하는 동생에게 잔소리하던 제가 정신 차려보니 게임기자가 돼 있습니다. 한없이 유쾌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담백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남기고 싶습니다.bigpie1919@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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