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임이 축구팀이라면, 게임 캐릭터는 축구선수다. 신들린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 한두 명이 팀을 승승장구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팀이 망하면 선수도 따라 망하기 십상이다. 물론 실제 축구라면 소속팀이 망해도 능력 있는 선수는 손쉽게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만, 게임과 캐릭터는 부자 관계 이상의 끈끈한 사이이기에 그것도 쉽지만은 않다.
결국, 소속팀이 망해버린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지극히 한정적이다. 게임과 관계 없이 캐릭터 사업으로 제 2의 인생을 개척할 것이 아니라면, 임대 형식을 빌어 다른 게임에 콜라보 참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임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런 경우는 단발성 출연에 그치는 데다, 해당 팀 성골들의 텃세까지 견뎌야 하기에 꽤나 험난한 길이다. 소속팀이 망해서 바깥으로만 떠도는 불쌍한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보았다.
TOP 5. 나름 공포 일인자였는데, 사일런트 힐 ‘삼각두’와 ‘간호사’
과거, 사일런트 힐은 호러게임 리그 최강 팀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2015년, 사일런트 힐즈 개발이 전격 취소되면서 시리즈의 맥이 뚝 끊겨버렸다. 다른 미디어믹스에서라도 큰 성공을 거뒀다면 그쪽으로라도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영화를 제외하면 성적들이 절망적인지라 그것도 요원해졌다.
이렇게 본진이 쇠락하면서, 놀래킬 사람이 없어진 사일런트 힐 캐릭터들도 외부 게임으로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다. 최근 데드 바이 데드라이트에서는 공포의 대상 삼각두가 살인마로 참전했는데, 데바데 살인마라는 게 늘상 생존자들에게 능욕당하는 역할임을 감안하면 꽤나 슬픈 장면이다. 간호사 크리쳐 같은 경우는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한 수많은 게임 할로윈 의상으로 오마쥬되기도 했는데, 근육질 남자들이 저 옷을 입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 조금 눈물이 난다. 현재 원년 멤버들이 다시 뭉쳐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다시 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니만큼, 이 눈물 도 조만간 그치지 않을까 싶다.
TOP 4. 내 싸움의 끝은 어디에 있나, 열혈고교 ‘쿠니오’
테크노스 재팬의 대표작인 열혈 시리즈. 피구부 주장이 됐다가, 축구부가 됐다가, 농구부가 됐다가, 아이스하키와 육상, 운동회를 넘나들다가, 옆 학교와 싸우고, 시대극 주인공이 되곤 하는 만능 청소년 쿠니오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으로, 패미컴 시절 가히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테크노스 재팬 부도 이후 열혈 시리즈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물론 아틀라스를 거쳐 아크시스템웍스 등으로 유통 판권이 넘어가며 지속적으로 기존작 리메이크 및 후속작이 나오고는 있지만, 리버시티 걸즈 정도를 제외하면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하는 모습에 오랜 팬들도 상당수 떠나가 버린 상태다. 이에 쿠니오를 비롯한 열혈 캐릭터들은 게임빌 프로야구로 임대를 떠나 그 곳에서 활약 중이다.
TOP 3. 내 시체를 밟고 가라, 록맨X ‘엑스’와 ‘제로’
록맨 클래식 시리즈로부터 100년 후, ‘엑스’의 연대기를 다룬 록맨 X 시리즈는 진지한 주제와 발전한 게임성 등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사업상의 이유 등으로 인해 제때 시리즈를 완결짓지 못한 채 지지부진 이어가는 와중 인기가 크게 식었고, 온라인화 실패 등을 기점으로 시리즈 자체가 쇠퇴해 버렸다. 최근 록맨 시리즈가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X 시리즈에 대한 후속작 이야기는 전혀 없다.
결국 주인공 엑스와 제로는 끊임없이 외부로 돌아다니며 아르바이트를 뛰는 처지에 이르렀다. 특히 제로의 경우 근접 캐릭터라는 특성을 살려 타츠노코 vs 캡콤이나 마블 vs 캡콤 3, 프로젝트 크로스 존, 마블 vs 캡콤 인피니트, 스매시 브라더스 시리즈 등에 활발하게 출전해 이제는 주무대가 헷갈릴 지경이다. 주인공 엑스의 경우 다른 게임에 파츠 형태로만 등장하는 굴욕을 맛보다, 얼마 전 마블 vs 캡콤 인피니트에 정식 등장하며 설움을 달랬다. 소년가장 두 명에게 축복이 있길!
TOP 2. e스포츠 떡밥에 꿈틀, 버추어 파이터 ‘아키라’
버추어 파이터가 게임업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3D 폴리곤을 게임에 사용하는 모범사례를 제시해 본격적인 3D 게임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권을 비롯한 수많은 3D 대전격투게임의 시초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작 본진은 초토화 상태인데, 2010년 ‘버추어 파이터 5 파이널 쇼다운’ 이후 10년 넘게 신작 소식이 전혀 없어 ‘죽은 시리즈’로 불리고 있다.
본진이 망하면서, 버추어 파이터 캐릭터들은 열심히 타 게임과 임대 계약을 맺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DOA 5에는 아키라를 비롯해 파이, 사라, 잭키 등이 출전했으며, 특히 주인공 유우키 아키라는 캡콤과 반다이남코, 세가 캐릭터들이 총출동한 ‘프로젝트 크로스 존’ 시리즈나 ‘전격문고 파이팅 클라이맥스’ 같은 작품에서도 외주를 뛰었다. 실로 눈물 나는 행보인데, 최근 세가가 ‘버추어 파이터 X e스포츠’라는 의문의 티저를 공개하며 다시 희망의 빛이 비췄다. 과연 버파 캐릭터들이 돌아갈 새 집이 공개될까?
TOP 1. 3의 저주 빨랑 풀어요! 하프 라이프 ‘고든 프리맨’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영원한 주인공, 고든 프리맨. 그는 차원을 넘나들며 외계인과 싸우고, 동면에서 깨어난 후에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 영웅이다. 먹지도 쉬지도 자지도 않고 싸워서 하프라이프 시리즈를 명작으로 만들었건만, 3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밸브 구단주에 의해 십수년 째 선수로 뛰지 못했다. 최근 VR 구장에서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나오며 아주 잠깐 까메오 출연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치욕의 십수 년, 고든 역시 열심히 알바를 뛰었다. 물론 그를 절대 놔주지 않는 밸브 구단주 때문에 스팀 구장에서만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파이널 판타지 15 로열 에디션 스팀판 특전에 코스튬으로 깜짝 등장하더니, 레니게이드 옵스 스팀 특전에서는 아예 캐릭터 자체가 툭 튀어나왔다. 그 외에도 메트로 2033이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세계관으로 제작된 공식 게임 등에도 까메오로 살짝 흔적을 비춘 적이 있다. 이쯤 되면 슬슬 본진 복귀할 타이밍일 듯 한데, 악덕 구단주가 얼른 3의 저주를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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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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