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해외 게임사들은 재치 있는 콜라보를 꽤 많이 진행한다. 오버워치 루시우 시리얼이나, 드래곤 퀘스트 호빵 같은 것들 말이다. 과거엔 게이머이자 게임 기자로서 이런 제품들을 볼 때마다 매번 부러웠었는데, 이제 아니다. 게임하며 씹는 껌 ‘껌은사막’, 사막의 열기로 구운 김 ‘김은사막’, 사막 같은 머릿결에 부드러움을 ‘감은사막’, 사막의 열기를 잠재울 쿨 사각 드로즈 ‘검은사각’ 등 어디 내놔도 안 부끄러울(사실 팬티는 조금 부끄럽다) 콜라보 제품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체 이 제품들을 기획한 사람은 누구고, 무슨 약을 했길래 이런 생각을 했을까? 게임메카는 장장 1년여 간의 대시 끝에 드디어 그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첫인상은 평범한 직장인 같았지만, 개그맨처럼 더 웃긴 소재를 짜내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참고로 이번 인터뷰는 오프라인 대면이었지만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진행했다.
Q. 일단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A. 펄어비스 전략파트너십팀에서 국내와 해외 파트너십을 담당하고 있는 김안나다.
Q. 기사 댓글로 ‘펄어비스 제휴 담당자가 대체 무슨 약을 한 걸까?’라는 반응이 있었다. 신고하지 않을 테니 무슨 약을 했는지 알려 달라?
A. 약은 안 한다. 끊은 지 1년 됐다.
Q. 약도 안 했는데 그럼 이런 약 빤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 호구조사 좀 해보자. 좋아하는 음악, 가수, 게임, 즐겨 보는 콘텐츠, 취미… 뭐 아무 거나 얘기해 보라.
A. 즐겨 듣는 음악은 빌보드 팝송이나 국내외 랩 음악. 노래방 18번은 아델과 에미넴 곡. 게임은 캔디크러시나 어몽 어스, 폴 가이즈 같은 거 한다. 유튜브는 먹방 같은 것 조금 보고, 나이는 비밀이다.
Q. 뭔가 듣자하니 ‘역시’ 라는 부분은 없어 보인다.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하시는 건가?
A. 사실 드립들이 아주 이상한 건 아니지 않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다.
Q. 펄어비스의 콜라보 행보는 껌은사막으로 시작됐다. 대체 뭘 하다 나온 생각인가?
A. 우리 팀장님이 평소에 “검은사막? 껌은사막? 껌이 사막인가? 하하하하” 라는 농담을 했는데, 팀원들이 모여서 그거 가지고 뭔가 해보자며 실체화(?)를 추진했다.
Q. 그거 놀림 아닌가... 팀원 전체가 만들었다고?
A. 껌은 함께 만들었고, 그 이후 김, 샴푸, 팬티 등은 내가(강조) 주도했다.
Q. 구체화는 어떻게 했나?
A. 처음엔 어차피 안 될 것 같은데 연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우리 팀 자체가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고 외부 미팅 다니고 하는 조직이라 ‘한번 얘기만 해 봐’ 라며 껌 회사들에 연락을 돌렸다. 그 중 해태제과에서 좋은 반응이 나왔다.
Q. 다른 업체들은?
A. 오케이 한 곳이 없었다. 답변이 없는 곳도 있었고, 대형 업체들은 생산이 들어가면 몇 개월 전부터 제조 공정을 만들기에 갑자기 콜라보를 진행하자고 하면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 계획도 1년 단위로 짜고.
Q. 해태제과 측 관계자 반응은 어땠나? 그 분들도 이런 건 처음이었을 텐데….
A. 그래서 수량을 좀 적게 진행했다. 그분들도 리스크를 감수한 셈이다. 그나마 편의점 등에서 게임 콜라보 마케팅을 좀 하지 않나. 이런 것 정도를 예상하셨던 것 같다.
Q. 해태에서 만드는 껌이 되게 많은데, 왜 은단껌이었나?
A. 해태 측에서도 브랜드마다 마케팅이 잡혀 있었고 제품 프린팅도 다 돼 있는데, 은단껌이 바로 가능한 제품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은단껌이 해태제과 껌 중에 매출 탑이라고 한다.
Q. 사실 은단껌이란 게 일반인들이 폭넓게 좋아하는 제품은 아니지 않나. 나도 사먹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A. 근데 은근히 은단껌만 씹는 분도 많더라. 재밌는 점은 평소 은단껌을 즐겨 찾지 않는 분들도 껌은사막을 구매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껌은사막이 출시된 달에 상당한 은단껌 매출 증가가 있었고, 오프라인 소매점에서 주로 나가던 제품을 온라인으로 대량으로 사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Q. 껌은사막이 은단껌의 매력을 전파했다는 것인가.
A. 그럴지도?
Q. 껌은사막 로고는 디자인 담당 부서에서 만들었을 텐데, 그 분한테 껌은사막 로고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A. 처음엔 ‘으에?’ 라는 반응이었다. 잘 설명드렸더니 기존 로고를 사용해서 잘 만들어 주셨다.
Q. 껌은사막에 대한 사내 반응은 어땠나?
A. 매우 좋았다. 다들 ‘이게 뭐지’, ‘이런 걸 했네’라며 즐거워 하셨다. 대부분 긍정적이어서 좀 신기했다.
Q. 개인적으로는 검은사막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친숙하게 만든 일등공신 같은데?
A. 실제로 검은사막은 남성적인 하드코어 MMORPG 느낌이 강한데, 껌은사막과 그 이후 제품들은 게임 커뮤니티 외 맘카페에도 올라오고, 게임 안 하는 친구들도 신기해하며 보내주고… 게임 안 하는 분들도 검은사막의 존재를 알고 한 번쯤 보게 만든 것 같다.
Q. 혹시 회사에서 상 안 줬나?
A. 그런 시스템이 없어서인지 안 줬다. 격려와 칭찬만 해주셨다.
Q. 이쯤에서 정경인 대표님께 한 마디.
A. 팀원 모두 은근 기대하면서 (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Q. 아무튼, 껌은사막 이후 1년이 지나도록 후속작이 없어 1회성 행사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사막의 열기로 구운 김은사막이 나왔다. 언제부터 준비한 건가?
A. 껌은사막 당시부터 김은사막도 함께 준비했었다. 이후 껌은사막 반응도 좋아서 후속작이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김 파트너를 찾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음식 제조업계가 아무래도 IT나 게임쪽보다는 보수적이고, 김 같은 음식은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다 보니 잘 모르는 게임과 자칫 잘못 협업했다가 이미지 타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을 이해시키고 아이디어를 설득하는 데 조금 한계가 있었다.
Q. 껌은사막과 김은사막 간의 공백 1년이 그거였나?
A. 그렇다. 정말 많은 업체들에 연락하고 거절당했다. 네이버에 김 제조사 쳐서 나오는 곳은 다 연락한 것 같다. 그렇게 1년 간의 연락 끝에 결국 광천김에서 수락하셨다.
Q. 해태제과는 그나마 어린이 관련 기획도 많이 한 곳이지만, 광천김은 비교적 콜라보에 익숙치 않았을 것 같다. 당시 광천김 쪽 반응이 어땠나?
A. 일단 대표 메일로 제안서를 보냈는데, 그걸 보시고 바로 연락이 와서 한번 얘기라도 해보자고 해서 미팅을 잡았다. 그 자리에서 껌은사막을 설명드렸다. 이런 식으로 콜라보를 하니 이런 효과가 있었다고.
Q.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했나?
A. 김이란 제품은 주로 여성들이나 주부들이 구매를 하지만, 김을 먹는 사람들은 전연령이다. 즉, 이번 콜라보가 구매층을 넓히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설명드렸다. 실제로 그 효과도 상당했고. 이 부분을 이해해주셔서 협업이 빨리 됐다.
Q. 그런데, 광천김 하면 얼마 전 강다니엘 닮은 회장님 아들 사진을 패키지에 인쇄해 화제가 된 곳 아닌가?
A. 저희랑 콜라보 하고 나서 바로 그걸 진행하셨다. 그걸 보자마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맘에 쏙 들었다. ‘저 분들도 우리 과였어!’ 같은 느낌?
Q. 순수한 김 회사를 타락시킨 그런 느낌이겠다.
A. 하하하.
Q. 세 번째 콜라보인 감은사막으로 넘어가자. 사실 본인도 감은사막이라는 걸 생각해보긴 했는데, 과일 감을 생각했었다. 추석 명절쯤 곶감세트 같은 걸로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샴푸라니?
A.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자연스럽지 않나?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든다. 껌 나왔을 때도 웃겼는데 김이 나오니 더 웃겼고, 그것보다 더 재밌는 걸 해야겠다는 압박감이 있었거든.
Q. 개그맨들이 아이디어 회의 하듯이? ‘사내 기대가 우리에게 쏠렸어!’ 같은 그런 건가?
A. 맞다.
Q. 샴푸 회사가 참 많은데, 스웨거와 제휴를 진행한 이유는?
A. 사전에 사내 콘텍포인트가 있던 업체였다. 헤어왁스로 인지도도 꽤 있는. 그래서 다른 일로 얘기하다가 콜라보레이션 얘기가 나왔고, 어떤 제품들이 있냐 보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디어 회의가 이루어졌다.
Q. 샴푸 모델 하면 찰랑거리는 머릿결 모델이 나오는 것이 국룰인데, 왜 감은사막 모델은 격투가인가? 아무리 봐도 왁스 바른 머리거나 막 잠에서 깬 머린데?
A. 저 샴푸의 특징이 탈모 샴푸다. 격투가를 보면 머리숱이 되게 많은데, 그걸 강조하고 싶었다.
Q. 아하! 난 외부 압력이 있었는 줄 알았다. 그 해에 격투가 전승 시스템이 추가돼서 사업팀에서 촌지를 찔러줬나 싶었다. 펄어비스 판 프로듀스101인가 하는 의심까지 했는데.
A. 정말 깊게 들어갔구나. 그냥 단순히 머리숱 풍부한 사람을 찾다 보니 결정된거다.
Q. 감은사막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사각이 출시된 걸 보니 스웨거 측에서 첫 콜라보에 어지간히 만족했나 보다. 솔직히 검은사각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누구 아이디어인가?
A. 사실 스웨거 측에서 제안했다. 회의 과정에서 언더웨어 제품이 나왔고, 처음엔 검은빤스로 갈까 했다. 그런데 집에 가는길에 스웨거 대표님이 전화가 와서 “안나님, 검은사각 어떨까요?”라고 아이디어를 주시더라. 이거다 싶었다.
Q. 검은사각쯤 되니까 슬슬 펄어비스 콜라보에 중독될 것 같다. 지금 또 뭐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
A. 나도 중독됐다. 계속 나오긴 해야 할텐데, 솔직히 검은사각이 너무 셌다.
Q. 맞다. 그거 뛰어넘을 게 나오긴 쉽지 않아 보인다.
A. 이것이 우리의 엔드게임인가? 슬슬 은퇴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아이디어 고민하느라 살도 빠진 것 같다.
Q. 그럼 지금 진행 중인 건 없나?
A. 준비는 항상 하고 있다. 국내와 글로벌 투 트랙으로 제휴를 진행 중인데, 글로벌 차원에서 브랜드 이미지와 맞는 큰 차원의 콜라보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검은사각 처럼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콜라보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아마 곧 깜짝 놀랄 것이 발표될 것이다
Q. 뭔지 힌트 좀 달라.
A. 안됨.
Q. 흥이다. 혹시 좋은 드립을 떠올렸는데, 현실적 여건 때문에 상품화되지 못한 것도 있나?
A. 사실 검은사각이 통과됐는데 뭐가 안 되겠는가. 스스로 자른 건 없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계속 시도를 한다. 다만 파트너를 못 찾았을 뿐. 앞서 말했듯 김은사막 파트너 찾는 데 1년 걸렸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꽤 많지만, 놓진 않고 계속 찾아보려고 한다.
Q. 혹시 역으로 콜라보 제안이 들어온 것도 있나?
A. 있다. 기사도 나가고 유머자료처럼 돌기도 해서 인지도가 생긴 것 같다. 콜라보 해보고 싶으신 분들이 연락을 먼저 주셨다. 다만, 우리만의 내부 기준이 있긴 하다. 유저들이 얼마나 좋아할 것인지가 그 기준이다. 너무 끼워맞추기나 게임 유저들과 동떨어진 제품은 지양하려 한다.,
Q. 나도 관련 아이디어가 좀 많은데 어떤지 검토해달라.
A. 환영이다.
Q. 검은치맥, 흑맥주와 검은색 블랙치킨을 콜라보 한 세트메뉴다.
A. 좋다.
Q. 검은사람, 차콜이나 숯 관련 마스크팩이다. 얼굴에 바르면 검어지는 것이다.
A. 맙소사. 검은사람 너무 하고 싶었는데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완전 좋다!
Q. 갈은사막, 갈아만든 음료와 콜라보 어떤가.
A. 오오!
Q. 액세서리 브랜드와 제휴한 금은사막은?
A. 에이, 그건 주변에서 엄청 많이 들은거다
Q. 테마형 술집 검은주막은?
A. 강력히 끌린다. 코로나만 아니면 해보고 싶다
Q. 외국 유저들을 노린 블랙 디저트는 어떤가? 아니면 국내나 일본 대상으로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제품 제휴도 괜찮을 듯 하다.
A. 이미 마음 속에 있는 아이들이다.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다. 좋은 제휴 파트너들이 보고 연락 주셨으면 좋겠다.
Q. 아쉽겠지만 아이디어는 여기까지다. 혹시 검은사막 외 붉은사막이나 도깨비나 플랜8도 이런 제품들로 탄생할 수 있을까?
A. 게임이 나오면 당연히 진행할 것이다. 지금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분명히 기회는 있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검은사막 관련 콜라보 제품을 기다려 주시는 유저분들께 한 마디.
A. 저는 이 일을 너무 재밌게 하고 있다. 특히 댓글 같은 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김은사막 때는 11번가 상품 페이지 댓글들이 쭉 올라왔는데, 너무 재밌고 창의적이더라. 감사한 마음 뿐이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 해주시면 좋겠다.
Q. 정말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정경인 대표님께 한마디 더?
A. 코로나19 풀리면 팀원 전체에 고기 한 번 사 달라. 한우 투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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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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