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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言]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 자신을 마주하라, 아포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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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피스 타이틀 (사진출처: 아포피스 텀블벅 페이지)
▲ 아포피스 타이틀 (사진출처: 아포피스 텀블벅 페이지)

'아포피스99942'라는 소행성이 있다. 2004년 발견된 이 소행성은 6, 7년 주기로 태양계를 돌며 지구를 지나가는데, 천문학자들은 2029년에 정지위성보다도 가까이 접근해 2.7%의 확률로 지구에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의 명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준하는 길이의 이 행성이 지구의 인력에 휘말려 추락할 때 발생하는 피해는 대륙 하나의 초토화를 기본적으로 전제한다고 하니, 실로 두려울 만한 이야기다.

2.7%의 확률로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그 2.7%의 확률이 실체화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멸망을 앞두고 일면식도 없는 이와 마지막을 준비하려는 사람과의 대화로 진행되는 인디게임 ‘아포피스’는 그 과정에서 천천히 자신을 알아가고, 기록하고, 스스로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죽음과 삶이라는,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담담하게 게임으로 풀어낸 ‘팀 아포니머스’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멸망을 앞둔 낯선 만남

가상의 인물과 채팅을 통해 7일 간 미리 유서를 기록해보는 챗봇 서비스이자 게임인 ‘아포피스’는 오래 전부터 소행성 아포피스를 쫓으며 유서를 주고받을 단 한 사람을 찾고 있던 ‘아포니머스’와의 대화로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아포니머스’와 핸드폰으로 채팅을 통해 대화를 진행하고, ‘아포니머스’의 방을 둘러보게 된다. 그렇게 7일 간 그와 함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대화를 나누고 그를 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7일간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유저는 그렇게 작성된 자신의 유서를 볼 수 있게 된다.

게임 내에 챗봇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사진출처: 아포피스 텀블벅 페이지)
▲ 게임 내에 챗봇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사진출처: 아포피스 텀블벅 페이지)

아포피스의 스토리는 정수연 기획자의 경험에 뿌리를 둔다. 정 기획자는 과거, 불안장애와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그래서 당시 그는 진지하게 지구가 멸망해 갑자기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 했다. 지금이야 누가 그런 음모론을 믿겠냐는 생각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무서워 했다. 그러다 한 번도 원하는 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몇 개월 간 버킷리스트를 쓰고 그것을 모두 달성했다. 그 경험을 통해 삶은 유한하고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래서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포피스' 속 글과 대화 시나리오에는 이 경험이 절절히 녹아들었다.

정 기획자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죽음이란, 또는 유한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더해, '그 속에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물음을 팀원들과의 다양한 대화를 통해 정제하고, 변화시켜 ‘아포피스’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좋은 대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포피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솔한 대화다 (사진출처: 아포피스 텀블벅 페이지)
▲ 아포피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솔한 대화다 (사진출처: 아포피스 텀블벅 페이지)

죽음을 직면할 필요성

팀 아포니머스라는 이름도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났다. 원래 아포니머스는 ‘아포피스’ 내에 있는 NPC, 유저와 1 대 1로 삶의 마지막 대화를 하는 등대지기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이는 아포피스(Apophis)와 익명(Anonymous)의 합성어인데, 마땅히 정해두지 않았던 팀 이름을 고민하다 ‘우리가 아포피스를 만든 사람이니까 동시에 아포니머스들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아예 팀 아포니머스로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직면을 위한 지지’는 팀 아포니머스의 핵심 가치다. 아포니머스는 유저들이 멸망을 가정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볼 때 알게 되는 이미 포기했거나 혹은 원하기만 했던 것에 눈을 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득 혼자라는 막막함을 느낄 때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메시지다. 삶의 밝은 면이든, 어두운 면이든, 죽음을 통해 삶을 마주하는 당신을 아포니머스는 계속해서 지지하겠다고도 덧붙였다.

▲ 아포피스의 배경이 되는 등대는 존재만으로 지표가 되는 구조물이다 (사진출처: 아포피스 텀블벅 페이지)

‘아포피스’는 2021년 12월 27일부터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시작해 한 달여 만에 100명이 넘는 후원자의 관심을 끌었다. 오는 3월 1일에는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정식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천천히 매무새를 가다듬는 이 게임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 여담이지만 2021년 초, 이미 NASA는 아포피스99942가 향후 100년 간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없다고 발표했다. 거기에 2022년 초에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2029년 접근을 기회로 삼아 소행성 탐사를 계획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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