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한국) 팬들에게 있어 이번 2022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은 e스포츠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아닐 수 없다. LCK에 출전한 모든 팀들이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8강에 안착하더니, 기어이 결승전을 LCK 내전으로 장식하게 된 것이다. 라이벌이라고 불렸던 LPL(중국)을 압살하고, 1부리그의 지위를 되찾으며 한 해에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달성한 셈이다. 이 기세는 가히 2015년부터 2017년까지 LCK의 전성기에 필적할 만한 명예를 얻게 됐다.
정말 흥미로운 점은 2017년 결승전 이후 5년 만에 성사된 LCK 내전 롤드컵 결승전이 여느 때보다 멋진 서사와 훌륭한 사연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T1과 DRX 모두 사전 배당률 3위 내에 있는 팀이 아니었으며, 팀 내에 롤드컵에 처음 진출한 로열로더가 후보가 존재하고, 더불어 LCK를 대표하는 베테랑 또한 양 팀에 포진해 있다. 누가 우승하던 이번 롤드컵의 주제곡인 STAR WALKIN'와 너무나도 어울리는 결과가 나온다. 4강 내용을 간단하게 톺아보고 오는 6일에 있을 결승을 예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LPL 다운!!!! 중국팀 모두 압살하고 5년 만에 결승 올라온 T1
T1이 징동게이밍(JDG)를 꺾고 2017년 이후 5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8강에서 RNG를 만나 3 대 0으로 대승을 거두더니 4강에서도 LPL 팀을 만나 승리를 거둔 것이다. 1세트까지만 해도 잔 실수가 많이 나와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내주며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2세트부터는 높은 체급과 노련한 운영을 앞세워 징동을 꺾었다. 특히 T1은 4세트에선 치고 받고를 반복했던 이전과 달리 30 대 7이라는 믿을 수 없는 스코어로 적을 압살했다.
이번 4강에서 T1의 수훈 선수는 단연 '페이커' 이상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세트와 3세트에서 자신의 시그니처픽이라 할 수 있는 라이즈를 뽑아 말 그대로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 챔피언 활용을 선보였다. 적팀은 물론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현란한 운용이었다. 이와 더불어 바텀 듀오 '구마유시' 이민형과 '케리아' 류민석의 활약도 눈부셨다. 라인전에서부터 적을 완벽하게 찍어 눌렀으며, 필요한 순간마다 클러치 플레이를 성공시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반면, JDG는 탑 라이너 '369' 바이자하오와 정글 '카나비' 서진혁을 제외하면 모든 인원이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저 둘만큼은 4세트를 제외한 모든 세트에서 T1에게 밀리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나, 다른 인원은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특히나 JDG의 바텀 듀오는 LPL의 1번 시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낮은 체급을 보여주며 팀의 패배에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결국 JDG는 LPL의 수준 하락을 증명하며 그대로 중국행 리턴 티켓을 끊게 됐다.
멈추지 않는 데프트의 댄스, 계속되는 DRX의 미라클 러닝
DRX는 멕시코 시티에서 열렸던 플레이인 스테이지부터 4강까지 쉬지 않고 업셋에 업셋을 이뤄가며,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냈다. 그런데 이것조차 모자라서 올해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합쳐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젠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도 진출했다. 이전 경기에서 패패승승승이라는 역스윕을 보여주더니, 이번 경기에선 패승승승을 보이며 또 한 번 기적을 써내려갔다. 4시드를 받은 팀 최초로 롤드컵 결승에 진출했다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써내려 나간 것은 덤이다.
이번 시리즈 승리의 최대 공신은 이번 월즈에서 팀 내 가장 큰 기복을 보여줬던 '킹겐' 황성훈이었다. 자신의 시그니처 픽이자 별명 '마스터 오른'에 걸맞는 오른 운용으로 '도란' 최현준을 수차례 막아 세웠으며, 한타에서도 빠지지 않고 활약했다. 대회 내내 자잘한 실수가 많았던 '표식' 홍창현은 상대 정글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이득을 뽑아냈고, 이번 대회 최고의 미드이자 태풍의 눈 '제카' 김건우는 체급으로 유명한 '쵸비' 정지훈을 뛰어넘는 폼을 보여줬다.
반면에 젠지는 자신들의 장기인 체급과 라인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며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이번 시즌에 치른 경기 중에서 가장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자평한 '쵸비' 정지훈은 4세트에선 적의 기세에 눌려 완전히 멘탈이 나간 모습을 보여줬으며, 다른 팀원들도 모두 올해 볼 수 없는 저점을 보여줬다. 그나마 '룰러' 박재혁이 전성기의 편린을 보여주며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팀원들은 의지조차 꺾인 듯 무력했다.
불사대마왕의 귀환 VS 9년 만에 처음 결승 진출
이번 LCK 내전이 가지는 의미는 정말 남다르다. T1과 '페이커' 이상혁은 5회 롤드컵 결승 진출, 5년 만의 결승 진출이란 기록을 세웠으며, DRX는 위에서 말했듯 플레이인 팀, 4시드 팀 최초의 롤드컵 결승 진출과 '베릴' 조건희의 3회 연속 월즈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완성했다. 더 나아가서 마포고등학교 출신 선수 '페이커' 이상혁과 '데프트' 김혁규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뜻밖의 동창회를 하게 됐다. 참고로 '페이커' 이상혁은 5년 만의 결승 진출이지만, '데프트' 김혁규는 9년 만에 데뷔 첫 롤드컵 결승 무대를 밟게 된다.
각 팀이 우승할 시 달성하게 되는 기록도 굉장하다. T1이 우승하게 되면 롤드컵 역사상 최초로 4회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써 내려가게 되며, '페이커' 이상혁은 역대 최고령 롤드컵 우승자가 된다. 더불어 '제우스' 최우제는 처음 진출한 롤드컵에서 우승하며 로얄로더를 달성하게 되고, '케리아'는 역대 최연소 롤드컵 우승 서포터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반대로 DRX가 우승하게 되면, 팀 창단 이래 첫 롤드컵 우승팀이 됨과 동시에 LCK 네 번째 롤드컵 우승팀이 배출된다. 더불어 세계 최초로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시작한 팀이 우승을 달성하는 사례를 만들게 된다. '베릴' 조건희는 서로 다른 팀에서 우승한 두 번째 선수가 되며, 다른 팀원들 모두 처음으로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제카' 김건우와 '주한' 이주한은 롤드컵 로열로더도 완성하게 된다. 특히나 '데프트' 김혁규는 데뷔 후 3,505일 만에 롤드컵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누가 더 전력상 우위에 있는지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T1이 좀 더 유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T1의 경우는 모든 라인이 자체적으로 게임을 캐리할 수 있을 만큼 걸출한 폼을 보여주고 있지만, DRX는 종종 흔들리는 폼을 보여준 바 있기 때문이다. 만약 DRX가 이긴다면 미드 도장 깨기를 하고 있는 '제카' 김건우가 '페이커' 이상혁을 큰 차이로 찍어 누르고 게임을 집도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다만, '페이커' 이상혁의 폼도 만만치 않게 좋다. 특히 뇌지컬을 이용한 운용이나 플레이 메이킹 능력 등은 오히려 더 고평가받고 있다.
예상 전력과는 별개로 두 팀 모두 절정의 폼에 다다른 것은 명확하다. '페이커' 이상혁은 다시금 우승컵을 들어올릴 기회를 얻었고, '데프트' 김혁규는 자신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마무리할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혹자는 '페이커' 이상혁의 별명인 불사대마왕과 그의 사천왕에 맞서 시련을 극복해 온 DRX 용사들의 여정이라는 동화 같은 스토리가 완성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이 동화가 누구의 신화로 엔딩을 맞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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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에서 모바일게임과 e스포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게임만 하는 동생에게 잔소리하던 제가 정신 차려보니 게임기자가 돼 있습니다. 한없이 유쾌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담백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남기고 싶습니다.bigpie1919@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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