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극한의 상황과 마주하거나, 오래 전 과거의 자신과 비교할 때 특히 그러하다. 본 기자의 경우 최근 친한 지인들로부터 어딘가 타락했다거나, 흑화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는데, 고된 회사생활로 눈빛이나 언행이 다소 부정적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리파인드 셀프: 성격 진단 게임(Refind Self: Personality Test Game, 이하 리파인드 셀프)’을 플레이 하게 된 이유도 스스로 성격이 전과 비교해 좀 변했는지 궁금해서다. 근래 유행하는 MBTI는 검사해도 매번 같은 결과를 내기만 했고(본 기자는 INFP가 아닌 적이 없다), 일단 검사 과정이 재미가 없다. 그런데 게임 플레이를 통해 성격을 진단한다면 적어도 MBTI보다는 즐거울 것 같았다. 그렇게 플레이한 리파인드 셀프는 성격 진단 시스템뿐만 아니라 스토리와 전달력 모두 우수한 훌륭한 게임이었다.
행동과 선택에 기반한 게임플레이 방식의 성격 진단
리파인드 셀프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성격을 진단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플레이어는 여자아이 로봇이 되며, 그녀를 창조한 박사의 죽음과 함께 게임이 시작된다.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이 성격 판단 근거로서 작용하고, 이 때마다 왼쪽 위 하트가 조금씩 차오른다. 하트가 100%가 되면 게임이 완료되며, 그간 한 행동을 바탕으로 성격이 도출된다.
실제 해보니 게임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이 성격 측정에 반영됐다. 예를 들어 게임 시작 직후 박사의 묘지를 관찰하거나, 게임에 나오는 해안가를 계속해서 걷는 등 객관적으로 성격 진단에 유효한 행위는 당연하게 포함된다. 그러나 잠긴 문을 다시 클릭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특정 장소를 방문하는 행위 등 다소 사소하게 보이는 행동들로도 하트가 차오른다. 게임을 만든 박사는 ‘무심코 하는 행동이야말로 네 성격이 숨어있어’라고 설명해준다.
행동 외에 다양한 선택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한 안드로이드는 ‘양을 그려줘’라고 부탁하는데, 순순히 요구를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을 달라고 하거나, 그런 것은 스스로 하라고 말하는 선택지도 제공된다. 재미있는 점은, 선택지를 고르고 나면 다른 플레이어가 한 선택의 비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른 플레이어와 계속해서 유사한 선택을 하거나, 혹은 계속해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성격 분석의 일환이다.
리파인드 셀프에는 다양한 미니게임도 제공된다. 예를 들면 타워 디펜스, 포켓몬스터 느낌 턴제 전투, 커피 만들기, 양 세기, 플랫포머 등이다. 이들을 플레이하는 방식 역시 행동으로 기록된다. 예를 들어 디펜스게임을 하다 보면 공격력, 탄창, 재장전 속도 중 하나를 강화할 수 있는데, 이때 선택도 하나의 행동으로서 분석에 활용된다.
총 플레이타임은 1시간 이내지만, 선택이나 행동이 빠르다면 30분 만에도 엔딩을 볼 수 있다. 게임을 처음 클리어하면 새로운 기능이 해금되고 스토리도 진전되지만, 실제 플레이하는 부분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그래서 길게 잡아도 4시간 정도면 게임 대부분을 경험하게 되는 만큼 볼륨은 다소 빈약하다. 반면 게임플레이 경험은 강렬한데, 매 순간 집중해서 진지하게 선택에 임하게 되고, 그만큼 심력도 소모하게 된다. 물론 이 또한 매 순간 진지한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날카로운 성격 진단 정확도와 다양한 엔딩
하트 100%를 채우면 성격 진단이 완료되고 게임이 클리어된다. 이후 스토리와 연계된 간단한 보스전을 치루지만, 이는 엔딩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보스전이 끝나면 성격에 따른 엔딩이 나오고, 이후 행동과 성격 분석 보고서가 출력된다.
이렇게 나온 성격이 실제 플레이어 성격인지는 차치하더라도, 행동 분석은 매우 날카롭다. 본 기자의 경우 첫 성격 검사에서는 ‘성직자’ 성격이 나왔다. 이후 다른 컴퓨터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려고 보니 스팀 클라우드 세이브가 연동되지 않았다. 당황해서 다시 한번 성직자 성격을 얻기 위해 다소 급하게 게임을 진행했다. 거의 모든 선택을 동일하게 한 뒤 받은 성격은 ‘러너’였다.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는 행동파 성격을 지칭하는데, 급했던 게임플레이가 정확하게 반영된 셈이다.
게임 엔딩을 처음 보게 되면 가장 적합한 성격과 보충하는 성격 둘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클리어 하고 나면 숨겨진 성격 하나를 알 수 있었고, 기자의 경우 ‘집사’였다. 세 번째 엔딩을 보고 나면 자신과 가장 먼 성격을 알 수 있었고, 이 부분에서 놀랐다. 본 기자의 경우 ‘광대’였는데, 광대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고르는 성격이라고 설명된다. 실제로 지나치게 황당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으려는 본인과 가장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이처럼 행동에 기반한 성격 진단은 생각보다 타율이 높았다.
한편 3회차를 마치고 나면 세이브 데이터를 지우기 전까지는 해당 성격으로 고정된다. 새로 게임을 플레이 하더라도 기존에 저장된 성격이 바뀌지는 않으며, 성격에 따른 다양한 엔딩은 볼 수 있다. 이는 의도적인 설계로 보인다. 어드벤처 장르인 만큼 첫 게임플레이는 정보나 선입견이 없어 가장 진심으로 임할 것이다. 그러나 이후엔 다양한 엔딩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실제 성격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게이머도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초기 3회 게임플레이를 통해 게이머의 진짜 성격을 알아내고, 고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독특하면서도 찜찜한 세계관, 인간은 어디에?
성격 진단이 목표긴 하지만, 막상 리파인드 셀프를 시작하면 스토리와 세계관에 상당히 몰입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부연설명 없이 리파인드 셀프 세계에 던져진다. 로봇과 기계와 안드로이드로 이루어진 세상을 탐험하면서 플레이어는 과연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게 된다. 서정적이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배경음악은 덤이다.
게임은 액자식 구성을 띄고 있다. 세계관이 있고, 그 세계관을 기반으로 성격 진단 게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중 구조로 되어있고 생략도 많아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말 그대로 ‘던져진’ 느낌을 받는다. 박사는 왜 죽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내자인 박사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눈에 비춰지는 미지의 세계는 어딘가 삭막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을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고 로봇과 안드로이드만 있으며, 모험하다 만난 캐릭터들은 어딘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만난 안드로이드는 박사님이 진짜 죽은 것인지 묻고, 연구소 지하의 관리형 로봇은 박사님이 큰 계획을 세웠다며 혼잣말을 한다. 다만 자세하게 설명은 해주지 않아 궁금증만 커져간다.
다만 게임은 세계관에 몰입하는 것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게임에서는 주기적으로 ‘성격 진단 중’ 이라는 문구, 차오르는 하트 등, 박사의 안내 프롬프트 등을 통해 몰입을 방해한다. 정보들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일부 미니게임, 캐릭터 대화, 도서관 문서에 정보들이 나오지만, 이들을 아무리 읽어도 세계관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선택과 행동 기반 게임플레이도 스토리 파악을 다소 난해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행동들은 한번 하고 나면 되돌리거나 반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다리를 놓으면 위치를 바꿀 수 없고, 미니게임을 완료하면 이번 회차에서는 다시 할 수 없다. 또 모든 행위가 하트를 차오르게 만드는 만큼, 지나친 탐색은 자칫 엔딩으로 이어진다.
어딘가 찜찜한 스토리는 엔딩에서도 이어진다. 성격진단이 끝나면 아무런 설명 없이 플레이하던 로봇에게 성격 프로그램이 주입된다. 그리고 로봇은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달려가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며 보스전을 시작하고 결말을 맞는다. 엔딩을 보고 난 뒤 박사 역시 고맙고 아쉽다는 말을 할 뿐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성격 진단에 뒤쳐지지 않는 훌륭한 스토리를 가진 리파인드 셀프
리파인드 셀프는 사실 체계적인 행동 분석 시스템이 포함된 스토리게임이다. 우선 플레이 하면서여자아이 로봇과 박사가 마을에서 겪은 추억들을 경험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기리는 듯한 전반적인 분위기, 고요하고 아름다운 배경음이 합쳐지면서 게임은 다소 호흡이 긴 힐링게임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플레이어는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되고 이에 따라 엔딩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데 2회차 엔딩을 보고 나면,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플레이어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엔딩과 무관하게 주인공 여자아이 로봇은 비슷한 결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엔딩을 세 번 보게 되면, 비로소 플레이어는 컷신을 통해 게임의 전말을 파악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성격 진단 게임이 필요했던 이유, 가장 중요한 세계관 설정, 박사의 죽음 등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게임을 초기화 한 뒤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보면 처음 만나는 로봇 대사부터 복선이 넘친다. 왜 게임 이름은 ‘리파인드 셀프(Refind Self)’일까? 왜 성격 진단이 필요한가? 왜 행동을 바탕으로 성격을 설계해야 했을까? 나는 누구인가?
리파인드 셀프는 플레이어에게 진지하게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순간을 제공한다. 또한 플레이와 엔딩, 스토리텔링을 통해 주제의식도 전달한다. 성격 진단을 만든 박사는 게임 초반부 “무심코 하는 행동에 인간다움이 있다”고 말한다. 게임은 실외기를 뒤지거나, 점을 보거나, 사람을 돕는 등 모든 행동에 인간다운 가치를 부여하고 성격으로 변환한다. 이를 통해 다른 수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이 제시했던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진다.
리파인드 셀프를 플레이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성격은 어떤지, 또 가장 먼 성격은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게임 이면에 놓인 감동적인 이야기는 엔딩을 본 뒤에도 긴 여운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질문지에 답을 체크하는 지루한 MBTI에 질렸다면 이 리파인드 셀프를 추천한다. 만약 첫 게임플레이에서 세계관에 매력을 느꼈다면, 엔딩을 3번 보길 강하게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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