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뽀로로 친구들의 바라밤 댄스 (영상 출처: 유투브)
좋은 콘텐츠에 대한 갈증은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창작자의 고민이다. 게임산업도 마찬가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유력한 IP라면 공룡기업부터 소규모 스타트업까지 눈은 번쩍, 귀를 쫑긋하는 곳이 바로 이 바닥이다.
최근 재미있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에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유명 캐릭터 디자이너가 게임업계로 이주해왔다는 것.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냐 하면 전 국민의 48%, 혹은 51% 정도는 이 캐릭터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라고.
2002년 탄생 직후 근 10년 가까이 국내 캐릭터 산업을 쥐고 흔드는 유일무이한 독재자, 바로 뽀로로의 아빠 최상현 디자이너다. '뽀롱뽀롱 뽀로로'의 모든 것을 디자인한 최상현 디자이너가 지난 3월 게임 디자이너로 전직을 선언했다. 그의 처음 둥지를 튼 곳은 넥슨도 NHN 한게임도 아닌 일본계 글로벌소셜게임기업 GREE 코리아였다.
펭귄에 태권브이까지 만들더니 이제는 모바일게임으로
최상현 디자이너의 이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대학 시절에는 비보이 동아리에 들어 프로팀까지 활동하고, 그래피티에 재미를 들여 부산 최초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해외 유명 잡지에 이름을 올렸다. 산업디자인이 전공이었지만, 학교 내에서는 전혀 자신과 관련이 없는 공대나 심리학, 아동 교육, 의상학과의 수업을 들으며, 학교 밖에 나가서도 신명나게 놀았다. 댄스팀 활동에 이벤트 조명기사로 일하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로 상통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일들을 줄기차게 해온 것이다.
하지만 공통으로 담고 있는 이야기는 같다. 모두 자신이 신나고 더불어 타인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 여기에 이제 게임이 더해졌다. 누군가를 즐겁고 신나게 하는데 게임만 한 게 또 어디 있으랴. 최상현 디자이너의 전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행보다.
게임메카는 GREE 코리아에서 데뷔작 ‘로스트인스타즈’를 당당히 게임스컴과 도쿄게임쇼에 선보이고, 또 다른 타이틀 개발에 들어간 최상현 디자이너를 만나보았다.
▲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운다고 말하던 최상현 디자이너
게임메카: 과거가 정말 화려하다. 생뚱맞게 보이기도 할 정도인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런 다양한 이력이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하다.
최상현 디자이너 (이하 최상현): ‘최상현’이라는 사람을 표현할 때 ‘신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내가 해서 즐겁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을 했고, 단순히 주어진 것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애를 쓰면서 놀았다. 당연히 득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생각하는 반경, 활동하는 영역 안에서 창작한다. 많은 것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뽀로로의 성공을 보면, 솔직히 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이직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최상현: 아직 정신연령이 6살 수준이다. 정신연령이 어려서 그런지 아직도 신나는 일,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성미다. 뽀로로를 만든 이후에 '선물공룡 디보'를 제작했고, 그리고 ‘로보트 태권 브이’로 옮긴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디자인하던 사람들은 다 의아해했었다. 뽀로로 만들던 사람이 로보트를 만들 수 있을까하고. 이제는 게임에 옮겨왔을 뿐이다. 다 디자인이라는 베이스는 같지만, 아웃풋이 많이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다.
막상 들어오니 어떤가?
최상현: 디자인 기간만 보면 애니메이션은 장거리 달리기, 게임이 중거리 달리기 정도다. 이제 템포에 익숙해졌다. 애니메이션이 아주 압축적인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면, 게임은 여러 가지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해서 그중에 나를 대변하는 캐릭터 하나에 절대 시간을 투입하는 방식인 것 같다.
▲ GREE 코리아에서 만든 MORPG '로스트인스타즈'는 현재 개발 중으로 2013년 내 출시 예정
▲ 최상현 디자이너가 담당한 분야는 몬스터 디자인이라고
▲ 뽀로로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
일본계 글로벌 기업을 선택했다. 국내 기업과는 다른 부분이 있는지?
최상현: ‘글로벌’이라는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이왕에 옮길 거라면 큰 판에서 놀자는 생각에 GREE에 왔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또 들어와 보니 판이 너무 컸다(웃음). 작업할 때 매번 글로벌하게 생각해야 한다.
뽀로로는 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물론 부모의 신뢰까지 받는 대한민국 유일한 콘텐츠다. 이유가 뭘까.
최상현: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는 절대 악과 선이 존재한다. 기본적인 대립구도를 갈라서 내 편과 네 편을 만든다. 이게 보통인데 뽀로로에는 편 가르기가 없다. 어른이 보기에도 내용적인 측면에서 나쁜 이야기가 없다. 뽀로로, 패티, 포비 전부 착하다 보니 싸우는 장면이 없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캐릭터가 없다.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가르칠 수 있는 캐릭터다. 디자인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정서적인 발달 부분에서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최근 게임산업에서도 '왜 한국에서는 훌륭한 IP가 나오지 않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만든 사람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최상현: 한국 캐릭터산업에도 분명 세계시장에서 싸울 경쟁력이 있다. 뽀로로, 마시마로, 뿌카 모두 글로벌하게 흥행했다. 사람들이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할 뿐이다. 하지만 쉽게 나올 리가 있나. 좋은 캐릭터가 디자이너 한 명이 만드는 게 아니다. 뽀로로가 운이 좋아 글로벌 히트친 것처럼 보이겠지만, 오랜 연구와 실험이 있었기에 얻은 결과다. 뿌린 게 있어야 거두는 게 있는 법 아닌가. 투자하지 않는 환경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문화 콘텐츠에 돈을 쓰는 걸 상당히 아까워하는 분위기다. 반면, 뽀로로는 신기하게도 타겟에서 벗어나 있는데, 비결이 따로 있을까.
최상현: 소비자 영역에 대한 확대가 절실하다. 뽀로로는 처음부터 상품화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디자인이다. 어린아이를 보고 볼을 잡아 보고 싶은 느낌, 실제로 만져보고 싶은 느낌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이는 전 세대 공통으로 통하는 친근함이다. 친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모두에게 통한다.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라도 결국 시청권을 결정하는 사람, 제품을 사주는 사람은 부모다. 아이 세대와 더불어 부모의 호감도를 연구하고 생각을 모을 필요가 있다.
▲ 볼을 잡아당기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움! (사진 출처: 디즈니 아시아 채널)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꼽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
최상현: 디자이너는 딱딱한 사람이면 안 된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세모와 동그라미에 대한 비유를 많이 해준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에게 주는 지시사항은 이런 것이다. 세모를 그려달라고 말하면서 동그라미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동그라미와 절묘하게 섞인 삼각형을 만들면 된다. 중요한 건 어느 정도 비율로 섞이고 어떻게 각을 완만하게 만들 것이냐는 문제다. 디자인은 상품이다. 상품은 누구 한 명을 위한 기증품도, 예술작품도 아니다. 불특정 다수가 보고 좋아해야 한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최상현: 현업에서 뛰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 회사에 소속돼 일하다 보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손에서 일감을 놓고 관리직에 머무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십, 육십 환갑이 다되더라도 계속 디자인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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