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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카’ 김태곤 이사와 역사의 정원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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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 비를 뒤로 하고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수요일 12시, 게임기자가 박물관을 찾기에는 다소 어리둥절한 시간이었지만 만나야 하는 사람이 이 곳에 있다. 낭만적인 하얀 눈도 아니고, 퍼붓는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겨울 비에 박물관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 예년보다 좀 더 따뜻한 겨울날씨였지만 비가 오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늘하게 느껴졌다.

지난 겨울 매서운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못’이 멀리 보인다. 요즘 같은 추위에는 얼어붙을 일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나선형의 회색 계단을 밟아나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단체관람객과 아주머니 약간, 입구에서 시끄럽게 수다를 떠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고요한 분위기다. 아직은 방학 전이라 어린 친구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안으로 들어오니 따뜻한 조명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입구에서 우산을 털어버리며 휴대폰을 꺼냈다(참고로 현재 상설전시관 입장료는 무료다). 지금쯤 도착하셨을까? 박물관 입구에서 소개 팜플렛과 지도를 주섬주섬 챙기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도착하시면 연락 주세요. 박물관 입구에서 팜플렛 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자 전송 버튼을 누리고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는 동안 전화가 걸려왔다.

“김기자님, 어디세요? 저희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있어요.”

재빨리 짐을 챙겨, 박물관 입구에서 오늘 만나려던 사람의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엔도어즈 김태곤 개발이사를 만났다. 지난 7월 남한산성 인터뷰 이후 반년 만에 가지는 인터뷰 자리지만, ‘오랜만’이라는 인사는 어색하다. 바로 지난밤이었던 16일 저녁, 2008 대한민국게임대상에서 수상자로 나온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엔도어즈의 MMORPG ‘아틀란티카’가 국무총리상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 게임개발을 총괄한 김태곤 개발이사는 개발자가 뽑는 상이라는 ‘우수개발자상’을 받는 ‘겹 경사’를 누렸다.

 ▲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엔도어즈 김태곤 개발이사

게임대상 우수개발자상 ‘아틀란티카’ PD 김태곤 이사를 만나다

시상식 이후에 만난 엔도어즈 조성원 대표는 “최우수상을 받은 것보다 김태곤 이사가 우수개발자상을 받은 것이 더 기쁜 일”이라는 말로 2관왕의 소감을 밝혔다. 축하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김 이사는 시상식에 함께 참석한 아내와 딸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더 기뻤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김태곤 이사와 본격적인 박물관 탐방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인터뷰는 게임대상 수상식 전에 기획되었지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처럼 어느새 분위기는 수상인터뷰가 되어버렸다.

 ▲16일 2008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우수개발자상을 받은 김태곤 이사의 모습

원래의 기획의도라면 인터뷰는 ‘아틀란티카’ 서비스 1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업데이트 내용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2종의 신규 직업 추가, 전 서버 통합 무술대회, 중원던전 여인국의 추가, 등 새로운 콘텐츠로 소개할 내용도 많았으나 박물관에 온 만큼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역사와 게임 전반에 대한 김 이사의 생각으로 옮겨져 갔다. ‘아틀란티카’의 게임 내용이 전세계의 문명과 그 유적이 배경이 되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역사와 게임의 이야기가 경계 없이 오고 갔다.

“김 이사님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와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몇 해 전에 개관하자마자 와보고는 상설전시장에 들어온 것은 두 번째인데요.”

“저는 몇 번 왔습니다. 딸아이를 데리고도 와보았고, 얼마 전에는 엔도어즈 개발팀끼리 다시 한번 와서 보고 갔어요.”

“평일에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네요. 제가 개관하자마자 왔을 때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관람하기조차 힘든 분위기였거든요.”

“비가 와서 그런 것보다는 늘 사람이 없어요(웃음). 역사만이 아니라 고고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혼자서라도 가끔 와봅니다. 사실 저도 그냥 도자기보다는 무기박물관 같은 게 더 재미있어요.”

발길 닿는 대로, 가까운 삼국시대 전시장부터 들어가 보게 되었다. 토기부터 무기, 갑옷이나 장식품 등 이전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던 유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살스러우면서 때로는 야하기까지 한 고대인들의 토기부터, 과연 저런 걸 몸에 두르고 다닐 수 있었겠나 싶은 강철갑옷, 눈부시게 화려한 삼국시대의 금관까지,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관람은 즐거웠다.

김 이사는 ‘임진록’, ‘거상’, ‘군주온라인’, 최근의 ‘아틀란티카’까지 역사를 큰 줄기를 따라 게임을 개발한 온 만큼, 관람 내내 기대 이상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박물관 벽에 거대하게 그려진 삼국시대 당시 영토범위와 세력구도를 보며 질문을 던져보았다. (혹시라도 역사적 사실에 대해 틀린 부분이 있다면, 말한 바 그대로 옮기지 못한 기자의 허물임을 미리 밝혀둔다.)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나라는 어디세요?”

”한국 사람 중에서 고구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고, 저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도 좋아해요. 그리고 최근에는 백제에 관심이 많이 가요. 한 때는 고구려를 침공할 정도로 전성기를 보내기도 하고, 중국이나 일본과도 활발하게 교류한 나라에 예술도 발달했죠. 게다가 집 근처에 유명한 백제 유적지가 있죠.”

 ▲ 김이사의 전공은 전자공학이지만, 역사에 대한 에정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역사에 반전이 있다면 게임에는?

김태곤 이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송파구’는 ‘한성백제’로 불리는 백제의 옛 도읍지에 해당했다. 그가 종종 딸과 자전거 산책을 나가는 올림픽 공원 근처의 ‘풍납토성’ 역시 유명한 백제 유적지에 해당한다. 개발사인 엔도어즈도 송파구에 있으니, 그의 생활과 백제 유적지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셈이다. 사실 생활 속에 찾아보면 이러한 유적지가 찾기 드문 것은 아니다. 역사를 소재로 다룬 게임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역사 혹은 그 유적과 한 호흡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라에 가장 매력을 느끼고 친근하게 생각해요. 이 지도에서 보면, 가장 작은 나라였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것도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죠.”

“네, 보시다시피 박물관에도 고구려 관련 유물은 별로 없죠. 고구려의 영토가 중국 대륙까지 뻗어나간 상황에서 지금 남아있는 유적은 거의 위쪽에 있으니까요. 이렇게 위세를 떨쳤던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역사의 반전입니다. 역사는 반전이 있어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지금 게임계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 같은 반전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삼국시대, 지금부터 천 년의 세월은 더 거슬러올라간 당시의 이야기지만 낯설지 않았다. 멀리 중국의 당나라, 페르시아, 인도까지 문명을 교류했던 삼국과 치열하고 혼란스러웠던 고대시대를 통일했던 신라. 정말 게임업계에서도 이 같은 반전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 조금 늦었지만 석굴암 던전이 이번에 추가됩니다. 아무리 설정이라도 부처님이 몬스터가 되어 공격받아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어떻게 하셨나요?”

“미리 말해드리면 재미없잖아요. 해보세요.”

“음, 그러면 석굴암 본존불 주변에 나한상이 있잖아요. 그래서 (미리보기라 생략)~했을 것 같아요.”

“하하하, 딱 맞추셨네요. 게임 기획하셔도 되겠습니다.”

훈훈하지만, 썰렁한 덕담이 오갔다. 유별난 기자덕분에 졸지에 박물관 가이드가 되었지만, 김태곤 이사의 하루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김 이사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퇴근 후 서재에서 자기 전 잠깐 동안 ‘아틀란티카’를 즐기는 동안이다.

 ▲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주로 고대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아틀란티카’가 대상을 받지 못한 이유, 진정한 승부는 세계무대

아무리 자신이 개발한 게임이라도 회사에서조차 마음 놓고 게임을 즐기기는 어렵다. 10분 간격으로 그의 확인이나 결제가 필요한 보고서나 일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아틀란티카’의 업데이트 개발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유럽 서비스 등 누적된 일만도 산더미다.  ‘아틀란티카’를 개발하는 인력만 120명이 넘어간다. “빨리, 빨리”를 외치는 그의 심정이 조금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반년 전쯤에 제가 ‘아틀란티카’에 몇 점이나 주실 수 있겠냐고 여쭈어봤잖아요. 그 때는 80점이라고 말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어,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여전히 8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꽤 높은 점수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만점은 줄 수 없고…아, 이래서 대상을 못 받았군요(웃음).”

“상 받아서 기분 좋으신 것 같아요.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결과에 만족하세요?”

“당연히 상 받고 싶고, 기분이 좋죠. 엔도어즈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8등신 캐릭터의 풀 3D MMORPG였는데, 이 정도 결과를 얻은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온도 상 받을만하죠. 저라면 그렇게 초대형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가져갈 수 있을까? 확실히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다음에는 정말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어울리는 게임 개발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다음에도 역사를 소재로 다루실 생각이세요?”

“네, 계속 해야죠.”

김태곤 이사는 게임에 대한 진정한 승부는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해외진출에서 갈릴 것이라고 보았다. 박물관을 거슬러 올라가 미륵불 반가사유상의 특별전시관에 도달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암흑 한가운데에 흐릿한 조명을 받은 약 1미터 정도 되는 크기에 미륵불이 앉아있었다. 슬며시 머금은 미소,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 같기도 하고, 그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오묘하다. 맞은 편에 놓인 자리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소리가 나지 않은 암흑 공간에서 바라보는 단 하나의 상(像)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기자가 산통을 깨는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분위기가 꼭... 게임 속 던전에 들어온 것 같네요(웃음).”

“던전이라, 그런 것도 같네요(웃음). 전시 분위기가 아주 좋아서 여기 들어와 쉬곤 하죠.”

“한 백 년쯤 뒤에는 지금 게임으로 즐기는 것들을 마치 놀이동산에 간 것처럼 실제로 던전에 들어가 칼 들고 몬스터랑 싸울 수도 있겠어요.”

“백 년이 안 걸릴 지도 몰라요. 닌텐도의 체감게임기 Wii를 생각해보면요.”

‘삼국지’와 ‘대전략’을 밤을 새워 즐기고, 고고학자가 쓴 유적 발굴 이야기에 가슴이 설레던 소년은 자라서 결국 역사를 소재로 만든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다. “모범생 이미지가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이사는 “(자신도 지겨워서)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안경부터 벗기 위해) 라식수술까지 예약했다가 수술 직전에 취소했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안경을 벗고 귀걸이를 한 발랄한(!) 이미지의 김태곤 이사라, 일단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올해 우수개발자상도 받으셨고, 개발팀을 늘려가면서 참 많은 개발자들을 뽑으셨잖아요. 개발자의 자질에 가장 중요한 게 인내와 창의성이라고 들었어요. 만약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성실하지만 창의력이 부족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창의력은 뛰어난데 성실성이 부족해요. 누굴 뽑으시겠어요?”

나름 회심의 질문이라고 던졌다. 김태곤 이사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둘 다 뽑아요.”

“아, 그건 반칙인데(웃음).”

“각자 적성에 맞는 분야를 맡겨야죠. 마구 튀는 친구를 게임 밸런스를 맡길 수 없잖아요. 성실한 친구는 밸런스 같이 침착한 대응이 필요한 부분을, 창의력이 좋은 친구는 새로운 게임기획을 맡기죠. 예전에는 저도 그랬어요. 한 사람을 뽑아서 ‘왜 너는 이걸 못 하느냐’고 했죠. 하지만, 이제는 각자의 적성이 맞는 분야에 배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아틀란티카`의 서비스 1주년을 앞두고 그는 보다 넓은 세계 시장을 생각 중이다.

게임과 역사, 그리고 인터뷰가 끝난 뒤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많은 시간이 지났고, 오전에 들어왔던 박물관 입구가 보였다. 맑은 하늘은 아니었지만, 짧은 비가 지나간 박물관의 풍경은 오전보다 좀 더 맑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인터뷰 마무리에 김태곤 이사는 역사와 게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게임에 역사를 넣는다고 해도, 역사 그대로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도만 넣는 거죠. 정말 중요한 것은 게임 자체의 재미이고, 역사는 게임의 사이사이를 메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다더라’ 정도죠. 궁금한 사람은 스스로 더 찾아보게 되겠죠.”

역사는 반복된다. 인터뷰도 반복된다. 우리는 반복된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몇 번이고 확인한다. 말과 행동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일 년 전에 했던 말과 오늘의 말은 얼마나 같고 또 다른가.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게임을 개발했을까? 대화는 일방적인 질문과 답변이 아니다.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쌓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터뷰가 누군가의 진심과 생각을 공유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의 지층, 켜켜이 쌓여있는 먼지와 시간 사이에서 빛나는 하나를 찾아내는 작업. 역사도, 게임도, 인터뷰도, 긴 인내와 번쩍이는 순간의 싸움이다. 나는 그것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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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어즈
게임소개
'아틀란티카'는 SRPG의 전투 방식을 온라인에 맞게 최적화한 AMO(Advanced Multiple Operation) 시스템을 채용한 전략 RPG다. 플레이어는 최대 9명의 용병을 고용, 조작하여 전략적이고 ...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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