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블리자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블리자드 게임을 해보지 않나요?”
그렇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쯤 간다는 군대가 아니라, 게임 이야기다. 블리자드 코리아 신임 대표이사 오진호 사장은 블리자드 코리아 입사 계기에 대해 위와 같이 대답했다. 삼성물산, SK그룹 구조조정추진 본부, 옥션 전략기획 실장 등 대기업과 컨설팅 전문회사를 두루 거친 오진호 사장이 4년 전 선택했던 것은 게임업계, 그것도 블리자드였다.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라는 이미지에 막연한 동경을 가진 것은 그 역시 여느 게이머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블리자드 코리아 입사 이후에 진짜 블리자드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첫 일년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블리자드 코리아 입사 이전에 그는 청바지는 단 한 벌 밖에 없는 전형적인 대기업 ‘비즈니스맨’이었다. 3년 6개월의 시간 동안 옷장 속 청바지가 열 벌이 된 것은 변화의 작은 증거일 뿐이다.
양복 입은 ‘대기업맨’이 청바지 열 벌을 갖추기까지
“요즘에 제가 정장을 입고 오면 사람들이 왜 정장을 입고 오냐고 묻습니다. 블리자드를 입사하고 나서 청바지가 늘었어요. 제가 정장이 열 벌 이상이 있었는데 거미줄이 생길 정도로 입는 일이 적어졌습니다(웃음). 게임업계에 들어와서 흰 머리와 주름은 더 늘었지만, 생각이나 복장은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죠.” 보수적이고 체계적인 대기업에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게임회사로의 이동은 그의 복장이 아니라 생각까지 변화시켰다. 청바지를 입은 임원진의 모습은 예전의 그라면 상상조차 쉽지 않았다. 오진호 대표는 올해부터 블리자드 코리아의 설립부터 함께 한 한정원 지사장의 뒤를 이어 블리자드 코리아를 맡게 되었다. |
그가 지금까지 블리자드 코리아에서 해 온 것은 국내 마케팅 및 전략 수립. 강한 카리스마에 직관적인 한정원 지사장(現 블리자드 북아시아 총괄 대표)와 비교하면 오진호 대표는 부드러운 분위기에 분석적인 경영인이다. 컨설팅 전문가답게 그는 블리자드 코리아의 사업 전략을 분석하고 체계화시킨 장본인이다.
오진호 대표의 철학, ‘철저한 분석으로 고객을 이해’
“시장을 대하는 제 철학은 고객을 잘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온 뒤부터 일년에 적어도 2번, 전문 리서치기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시장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합니다. 물론 내부 CS, CM팀을 통해 얻은 운영 정보 및 이벤트 결과, 감상에 대한 정보도 많이 반영합니다.”
덕분에 마케팅 비용은 줄었지만, 효과는 더 늘어났다는 것이 오진호 대표의 설명이다.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잘 할 수 있었다.”라는 것.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고객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로 서비스 4주년을 맞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아직 성장하고 신규 유저를 확보하는 단계다. 하지만 한국은 성장을 떠나서 안정화하는 단계라는 것이 그가 분석을 통해 얻은 결과. 신규 유저보다 기존 유저들에게 다양한 도전과제와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의 ‘이해와 분석’은 직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는 요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블리자드 코리아 직원들과 1:1 미팅을 하고 있다. 그는 직원 역시 자신의 ‘내부고객’이라고 말했다.
“한 번 식사를 하면 2시간씩 걸리고, 사전 정보도 받습니다. 일종의 자기소개서처럼 커리어와 자신의 장, 단점, 요구사항, 질문사항 같은 것을 받고 메모를 해두죠. 외부 고객들처럼 내부 고객에게도 개개인에게 확실한 도전과제를 주고, 성과만큼 보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리자드 코리아 전체 직원이 300명인데, 사장이 되고부터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 시간의 30~40%를 직원들에게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코리아 오진호 대표이사, 그는 철저한 시장분석과 직원 1:1미팅을 통해 전략을 구상한다. 고된 일이지만 그는 "회사만이 아니라 내게도 도움되는 일"이라고 의의를 부여했다. |
전 직원들과 1:1 점심 미팅, “직원들은 내 고객”
오진호 대표는 미국 본사로 출장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마이크 모하임 대표, 폴 샘즈 수석부사장과 긴 시간 동안 자유롭게 시간을 나눌 수 있었으며, 이것은 블리자드 공통의 문화라고 말했다. “위, 아래는 있지만 벽이 없는 문화” 오 대표가 생각하는 블리자드 문화다.
블리자드 코리아가 일구어낸 성과는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호드와 얼라이언스로 나뉘어 100만 공격대를 먼저 모집하는 진영에게 혜택을 주는 프로모션은 국내에서 나온 것으로 북미에 적용되었다. 2007년 전세계 최초로 ‘스타크래프트2’를 공개한 월드와이드인비테이셔널(WWI)의 시작 역시 한국이었으며, 미국 밖에서 벌어진 네 번의 행사 중에 세 번이 한국에서 개최되었다. 그는 당시 WWI 이벤트 총괄 책임을 맡아 직접 헤드폰과 마이크를 끼고 현장을 지휘했다.
“본사에서는 개발자와 그 가족들이 180여명이 넘게 왔고, 미국 밖에서 있는 행사에 그 정도 규모의 인원이 참석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죠. 기억할 수 없는 아찔한 사고도 많았습니다(웃음). 지나간 일이지만, 스타2 공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한국이다 라고 생각했죠. 설득할 필요도 없었고, 본사에서도 한국시장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워크래프트 오프라인 이벤트로 시작했던 WWI는 어느새 세계적인 게임이벤트가 되었다. 올해 개최 예정지나 시기는 미발표된 상황. 사진은 2007년 서울 잠실에서 개최된 WWI 모습 |
전 세계 어느 나라 블리자드를 가도 한국 사람은 있다
이미 한국은 중국을 포함하여, 태국, 마카오, 대만 등 북아시아의 허브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이 성과는 아시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진호 대표의 설명이다.
“블리자드 코리아의 이벤트 결과만이 아니라 블리자드 코리아 직원들도 본사에 많이 스카우트되어 갔습니다. 사실 대만이나 중국만이 아니라 북미, 유럽 등 세계 어느 나라의 블리자드를 가도 한국 사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열정적인 한국 게이머들과 한국 직원들의 능력이 인정받은 사례다.
블리자드는 올해 `스타크래프트 2`의 출시와 새로운 배틀넷의 공개 등 또 한 차례의 화려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블리자드 코리아의 선장 역할을 맡은 오진호 대표의 어깨는 무겁다. 그는 한국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투기장’이나 토너먼트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단순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 사장 직속 기구로 e-스포츠팀을 따로 운영하면서 프로리그 활성화나 스폰서십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저들의 원성을 샀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내 ‘겨울손아귀 호수’의 접속 지연(랙) 현상에 대해서도 조만간 해결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사 개발진들이 최우선 과제로 개발 중이며, 거의 해결단계에 와 있다고 전했다.
▲ 출시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MMORPG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두 번의 확장팩을 출시하며 안정적인 게임시스템에 새로운 콘텐츠까지 추가하고 있다. |
스타크래프트2 출시, “역시 블리자드” 역사적 이벤트 될 것
가장 궁금해하는 ‘스타크래프트 2’ 출시에 대해서는 블리자드 사람답게 오진호 대표 역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시기를 정해놓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완성도가 나오고 개발자들이 준비되어야 출시한다.”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공개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출시 역시 “누가 봐도 역시 스타크래프트다, 역시 블리자드”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역사적인 출시를 하겠다고 말했다. 출시 자체가 또 하나의 이벤트가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으로 여운을 남긴 것. 새로운 배틀넷 역시 그 동안 아쉽던 부분을 대거 보완하여 출시와 전후하여 최종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블리자드 코리아는 외국계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게임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한국 시장에 공헌할 만한 사업을 고려 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에 하나가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 초기단계라서 구체적으로 말씀할 수는 없지만, 한국 사회에 공헌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009년은 그 원년입니다.”
▲ 2007년 WWI를 통해 공식적으로 첫 공개된 스타크래프트 2, 새로운 배틀넷과 함께 베타테스트를 예고하며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 한 번의 ‘스타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대기업에서 게임회사로, 다시 정장에서 청바지로 갈아입은 오진호 대표. 블리자드는 복장만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변화시켰고, 다시 그 변화는 블리자드 코리아의 다음 걸음의 시작이 되었다. 언제나 게이머들을 가장 두근거리게 만드는 게임회사, 블리자드의 또 다른 변화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또, 한번 역사는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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