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야기의 방점. 패 온라인에서 찍겠다"
이 시대 이야기꾼 야설록. 개발과 이념의 그늘에 가려 삼류신세를 면치 못했던 한국 이야기 산업을 20년간이나 올곧이 지켜온 사람이다. 엄마 몰래 보던 만화책에서, 담배연기 매캐한 대본소용 무협지에서…, 그의 이야기는 이어져 왔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야기도 진화를 거듭했다. 80년대 무협소설로 등장하더니, 90년대 만화스토리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지금은 온라인 게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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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서초동에 위치한 예당온라인 개발사에서 그를 만났다. 예당온라인 상임고문이란 다소 낮선 직책의 그는 MMORPG ‘패 온라인’ 개발작업에 한창이다. 그의 작업실부터 이야기꾼의 향기가 느껴졌다. 게임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기록한 메모들이 작업실 벽면에 빼곡히 채워져 있다. “너무 가까이서 찍지 마세요. 아직 공개할 수 없는 내용도 있으니까요(웃음)” 그는 다양한 예시와 사례를 들며 인터뷰를 이끌었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단호하게, 그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
먼저 80년대 만화방부터 지금의 온라인게임까지 한국 이야기가 머물렀던 자리를 짚어보았다.
80년대 무협 시대, 이야기의 정체성을 고민하다
- 80년대 만화 대본소는 한국의 이야기 산업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습니까?
“당시 대본소는 독서실 겸 휴게실 역할을 했죠. 현실의 짐을 놓고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 심지어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숨어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만화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무협이나 만화가 대중들에게 익숙해지게 됐죠”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이야기 산업은 싹을 띄웠다. 하지만 자유로운 상상력보다 맹목적 애국심을 원했던 시절이었다. 개미같이 말잘 듣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다. 만화나 무협지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현실도피용 저질문화 쯤으로 치부됐다.
그는 “상상력의 암흑기에 그래도 이야기의 불씨를 이어간 곳이 만화대본소였다”고 말했다. 한국 무협지의 전성기도 이때다. 중국 무협소설을 번역하는 작업에서 시작한 한국 무협소설은 80년 중반부터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무협으로 진화한다.
▲ 20년간 한국의 이야기 산업을 주도했던 그는 예당온라인과 함께 MMORPG 패온라인 개발하고 있다 |
- 서양의 판타지 문학, 중국의 무협소설 등 해외에선 스토리 산업이 중요한 문화적 가치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스토리 산업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너무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당장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앞에 주어진 현실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현실적인 생각 때문에 `미래의 꿈`이나 `상상의 이야기`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스토리 산업이 크지 못한 이유 같습니다. 미래의 꿈보다는 눈앞의 빵이 중요하니 ‘스토리’가 소외받을 수 밖에 없죠. 먹을 게 아니니까요(웃음)”
- 한국과 중국 무협소설은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당시 한국 작가들이 쓴 무협소설은 ‘국적불명의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장소는 분명 중국인데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한국 작가들은 중국무협을 번역하는데 그치지 않고 창작을 가미했습니다. 그것이 동양판타지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연세대 응용통계 학과에 입학한 그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재적을 당했다. 소일거리로 쓰기 시작한 무협소설이 대박이 난 것이다. 그는 처녀작 ‘강호야우백팔뇌’로 화려하게 등단했다.
금강, 사마달, 서효원과 함께 `4대 무협천왕`으로 불리며 명성을 누렸다. 내놓는 작품마다 인기가 치솟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는 출판사 ‘뫼’를 설립해 후배양성에 힘썼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무협소설은 태생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 그의 집무실엔 패온라인의 세계관을 담은 메모와 기록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
- 당시 한국 무협소설의 근본적인 고민은 무엇입니까?
“당시 무협작가라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번씩 해 보았던 것 같아요. 나는 한국 사람인데 어찌 중국의 야사나 역사만 써야할까? 또, 그것이 독자들에게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인다는 게 그 당시 작가들의 고민이었죠.”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비단 무협작가들 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음악, 영화, 문학 등 제도권 문화도 수많은 아류와 표절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야설록을 비롯한 한국의 이야기꾼들은 이런 고민 속에서 80년대를 보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 이야기의 물줄기는 또 한번 바뀐다. 만화가 등장한 것이다.
90년대 만화 시대, 이야기의 홍수에서 변화를 꿈꾸다
80년대 중반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할 즈음, 칼칼한 최루탄 연기와 함께 한국의 이야기 산업도 격변기를 맞이했다. 이야기의 대세가 소설에서 만화로 넘어간 것이다. 대본소에서 무협소설의 비중이 줄고 만화의 인기가 높아졌다. 덕분에 만화스토리에 대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는 발 빠르게 만화스토리 작가로 전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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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만화가 무협소설을 앞지르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82년 만화가 이현세 씨의 ‘공포의 외군구단’이라고 할까요. 보물섬에 연재된 ‘공포의 외인구단’은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작품 이후 허영만, 고행석, 박봉성 같은 걸출한 만화가들이 등장했고 더 많은 스토리가 요구됐습니다. 당연히 작가가 필요했고 이런 수요를 무협소설가들이 채우기 시작했죠. 한때 만화스토리의 80% 이상을 무협작가들이 쓴 적도 있습니다” - 무협작가들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80년대 이전의 만화는 길어봐야 5편이하의 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현세, 박봉성 시대로 들어가면서 짧게는 20권, 길게는 100권 이상의 장편이 유행했습니다. 긴 호흡의 장편에 익숙한 무협작가들과 궁합이 맞은 것이죠. |
그 당시 무협작가들은 무협지 작가라는 작은 범위보다 스토리작가라는 큰 틀에서 활동한 사람들입니다”
- 무협소설가에서 만화스토리 작가로 전업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무협이든 만화든 처음부터 어떤 장르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손에 칼이 들려 있으면 무협지고, 손에 레이저 총이 들려있으면 SF고, 손도끼를 들고 있으면 조폭물이 되는 겁니다. 결국 쓰는 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쥐고 있는 도구가 다를 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같죠”
만화는 그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다. 무협의 틀을 벗어난 그는 전쟁, SF, 판타지, 역사물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을 썼다. ‘아마게돈’, ‘남벌’같은 걸출한 히트작도 이때 나왔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 문화이슈가 됐다. ‘아마게돈’이 연재된 만화잡지 `아이큐점프`를 월 40만부 이상 팔렸고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게임도 제작됐다.
▲ 야설록 작가가 스토리를 맡은 아마게돈과 남벌은 만화 전성기에 한 획을 그었다 |
그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실패 원인에 대해 “23권짜리 장편을 한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압축하다보니 내용의 비약이 너무 심했다”며 “게임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신문에 연재된 ‘남벌’은 때마침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한일관계의 뜨거운 이슈가 됐다.
90년대 말, 그는 한국의 이야기가 또 한번 꿈틀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온라인 게임을 접한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날로그 시대와는 개념조차 다른 디지털의 세계로의 변화. 온라인게임은 한국 이야기 산업의 또 하나의 시험대였다.
온라인게임 시대, 리니지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와우에서 확신을 얻다
“아들과 리니지란 게임을 했는데 정말 충격이었죠. 소설이나 만화로 표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첫 만남이었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을 물어보자 그는 “외계 별에 불시착한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말했다. 리니지에 매료된 그는 곧장 마니아가 됐고 게임을 손에 놓아본 적이 없단다. “게임은 창작의 영감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도 되고요(웃음)”
하지만 온라인게임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협소한 지면에만 안주해 있던 한국 이야기 산업은 디지털의 방대한 세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영도, 이우혁 등 당대의 최고의 이야기꾼들이 게임 개발에 도전했지만 번번히 쓴잔을 마셨다. 포스트 리니지를 외치며 기세등등하게 나왔던 ‘드래곤라자 온라인’은 서비스를 접었고, ‘퇴마록 온라인’은 개발이 중단 됐다.
▲ 온라인게임 시대로 접어든 2000년대. 그는 리니지에서 가능성을 보고 와우에서 확신을 얻었다 |
이번엔 야설록 작가도 조심스러웠다. 무대포로 이현세 작가에게 찾아가 시놉시스를 내놓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편, 온라인 게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없는 한국 온라인게임은 ‘노가다 게임’, ‘현질게임’으로 평가절하되기 일쑤였다. 온라인게임과 이야기는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 게임 개발로는 다른 작가들보다 후발주자입니다. 결정적으로 게임 개발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첫째 리니지를 보고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란 게임을 하면서 그 가능성은 확신으로 바뀌었죠. 게임에서 스토리가 승부수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 말입니다. 와우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패 온라인, 동양판타지를 아우르다
그는 예당 온라인과 함께 ‘패 온라인’ 개발을 시작했다. 주위에선 게임을 잘 모르는 원작자가 이것저것 간섭만하다 실패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는 주변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패 온라인’ 개발에 전념했다.
그는 아예 회사로 들어가 개발자들과 동거동락했다. 함께 밤을 세고, 함께 술도 마시고, 함께 고민했다. 이야기만 파고든 그가 게임의 복잡한 알고리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몇 년간 겪어오니 이제는 팀원들과 한 가족이 됐단다. 그는 ‘패 온라인’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동양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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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온라인의 동양판타지는 게이머들에게 다소 낮선감이 있습니다? “동양은 무협이라는 세계관이 너무 뿌리 깊게 자리 잡다보니 무협 이전의 세계관은 무관심합니다. 그 시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패 온라인은 동양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그 작업을 하기 위해 중국, 일본, 한국의 신화와 역사를 수집해 다양한 형태로 게임에 녹였습니다” 게임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직접 화이트 보드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패 온라인에서 추구하는 동양판타지에 대해 “고대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흥미로운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
“BC 3000년경 고대 아시아는 엄청난 문명의 변혁기를 맞았죠. 지금도 밝혀지는 사실들입니다. 이런 시기를 작가적 상상력과 게임의 재미로 풀어 놓은 게임이 패 온라인입니다”
- 최근 중국 유저들 사이에서는 게임 속 치우천왕이 한국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심합니다.
“치우천왕을 놓고 국가 논쟁하는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치우가 있었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4,700년 전, 문명의 여명기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 같은 국가개념이 없을 때였죠. 게임 안에서도 중국, 일본, 한국이라는 국가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캐릭터의 복장에서 각 나라의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정도죠.
- 패 온라인이 추구하는 동양판타지의 핵심은 무었입니까?
"나는 이 게임에 대해 한 가지 재미있는 가정, 즉 ‘고대 동양인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라는 미스터리를 가미했습니다. 이 게임은 고대 동아시아의 비밀을 풀어가는 `퍼즐게임`입니다. 중국역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한국역사를 내세우려는 것도 아닙니다”
▲ 게임속 치우천왕을 놓고 국가논쟁 하는 자체가 어불성설. 치우가 살았던 시절엔 국가 자체도 없었다 |
- 게임을 둘러싼 역사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을 뿐 국수적인 입장으로 몰아가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동양 판타지일 뿐입니다”
- 작가적 상상력을 어떤 방식으로 게임에 표현했나요.
“예를 들어 치우와 헌원이 전쟁을 하는 배경이니 각 종족별로 전쟁 퀘스트가 바탕에 깔립니다. 또 하나는 모든 종족들이 하나의 거대한 악의 근원과 싸워나가는 스토리가 나옵니다. 이런 큰 맥락을 짚어주는 것이 `전설 퀘스트` 입니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를 추가하면서 전체적인 내용을 완성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는 `패 온라인`의 완성시기를 오픈 후 3년으로 잡고 있다. 6개월에 한번씩 대규모 패치를 하고, 3달마다 2개의 필드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24개의 필드와 72개 존이 추가된다. 마지막 필드는 `탁록`으로 설정했다.
“탁록은 치우와 헌원이 싸웠던 마지막 전쟁터입니다. 패온라인의 대미를 장식하게에 딱 맞는 필드죠”.
소설에서 만화로, 지면에서 게임으로, 그의 이야기는 항상 변화를 즐겼다. 그 속도가 더디든 빠르던 상관없다. 중요한 건 우리시대 이야기의 중심에 항상 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늘 시대의 유행이 됐고 이슈를 낳았다.
‘아마게돈’, ‘남벌’에서는 현실과 미래를 넘나드는 스펙터클을 이야기했고, 소설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는 역사의 아픔까지 아울렀다. 그는 20년 이야기의 방점을 `패 온라인`에서 찍으려 한다. 그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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