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위 정하는 남자]는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목적지의 명소를 중심으로 동선을 짜면 수월하다고 하죠. 아무래도 명소 주변으로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고, 교통을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니까요. 물론 이름 없는 시골길을 걸으며 바람이나 쐴 요량이라면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역시 모처럼 떠나는 여행에 명소가 빠지면 섭섭하겠죠?
우리는 흔히 풍광이 아름답거나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장소를 ‘명소’라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중국 자금성,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페루 마추픽추 등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히죠. 물론 현실을 비추는 거울인 게임 속 세계 또한 개발자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멋들어진 요새, 궁궐, 마천루가 즐비합니다. ‘매스 이펙트’의 시타델, ‘언차티드’의 샴바할라, ‘바이오쇼크’의 콜롬비아까지… 뭐 이루 다 말할 수 없죠.
게임에 마련된 명소들은 장엄한 풍경으로 유저들의 환성을 사기도 하지만, 간혹 개발자의 의도와 달리 철저히 외면 받기도 합니다. 어쨌든 게임 내에선 무엇이든 최소한의 실용성이 받쳐줘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반면에 순전히 유저들에 의해 발굴되어 명소로 이름을 올리게 된 독특한 장소도 있는데요. 심지어 개발자도 예상치 못한 게임 속 ‘이색’ 명소 TOP5, 함께 보시죠.
5위 던바튼 도서관(마비노기), 유저가 직접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공간
▲ 미남 마법선생 '스튜어트'가 머물고 있는 던바튼 도서관
5위는 ‘마비노기’ 주요 도시 ‘던바튼’ 한편에 자리한 도서관입니다. 마법선생 ‘스튜어트’에게 초급 마법을 이것저것 배울 수 있고, 수정구슬을 통해 게임 내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용무가 없는 곳이죠. 그러나 교통의 요지인 ‘던바튼’에 유저가 몰리며 사실상 ‘마비노기’의 수도로 승격되자, 썰렁하던 도서관에도 훈기(?)가 불어오게 됐습니다.
도서관의 장점은 일단 넓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있는 ‘스튜어트’ 외에는 신경 쓰이는 NPC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덕분에 남의 방해 없이 자기들끼리 회합을 가지려는 유저들이 열람실에 삼삼오오 모여들곤 합니다. 물론 그냥 마을 광장에 둘러 앉아도 되지만 너무 소란스럽고 ‘던찐(던바튼 일진)’들도 무섭잖아요. ‘던바튼’ 특유의 랙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죠.
▲ 광장이 공개적인 행사에 어울린다면 도서관은 사적인 회합에 적격이다
도서관에 모인 유저들은 독자적인 룰(?)에 따라 마피아를 하거나, 두근거리는 단체 미팅을 즐깁니다. 서로간의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만큼 다른 채팅이 섞이지 않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던 거죠. 시스템의 보조 없이도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미니게임을 창안하고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모습은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지극히 ‘마비노기’스러운 도서관 풍경이 아닐 수 없군요.
4위 왕녀의 방(다크 소울 1), 어둠 속에 빛나는 크고 아름다운 힐링스팟
▲ 이분이 바로 크고 아름다우신 '그위네비아' 왕녀님이다
4위는 ‘다크 소울 1’에서 신들의 도시 최심부에 마련된 ‘왕녀의 방’입니다. 문자 그대로 태양의 왕녀 ‘그위네비아’가 머무는 처소로, 몬스터에게 썰리고 함정에 치이며 삶의 희망을 잃어가던 주인공이 따스한 환대를 받는 거의 유일한 장소죠. 비록 이곳에 오기까지 숱한 죽음을 겪어야 하지만, 크고 아름다운 ‘그위네비아’의 미소를 한번 보고 나면 그간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진답니다. 그야말로 유저가 꼽은 최고의 힐링스팟이라 할 수 있죠.
여기서 크고 아름답다는(…) 묘사는 특정 부위에 대한 성적 농담이 아닙니다. ‘그위네비아’는 태생이 거인족인데다 태양의 힘까지 받아서 몸집이 거의 집 한 채 정도거든요. 물론 이 와중에 어딘가가 더욱 거대하긴 합니다만 꼭 그런 엄한 이유로 ‘왕녀의 방’이 명소인 것은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흠, 어쨌든 빛을 등지고 있어 그 무언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필히 조명 마법을 챙겨가시길.
▲ 그냥 들여보내 주면 '다크 소울'이 아니지, 반갑게 맞아주는 보스들
다만 컨트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왕녀의 따스한 품이 아니라 차디찬 바닥과 접견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불행히도 ‘왕녀의 방’ 앞에는 ‘다크 소울’ 최악의 보스로 이름 높은 ‘용사냥꾼 온슈타인’과 ‘처형자 스모우’가 버티고 있죠. 어쩌면 끔찍할 정도로 강력한 두 보스를 쓰러트린 직후이기에 ‘그위네비아’가 더욱 반가운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를 만난다면 우선 조명 마법을 사용한 후 승리의 ‘태양 만세’ 포즈를 취해봅시다.
3위 자살 바위(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아도링 팬의 마지막 무대
▲ 이름과 달리 '엘더스크롤 4' 최고의 타살 명소인 '자살 바위'
3위는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에 타살(…) 명소인 ‘자살 바위’입니다. 맵 북동쪽으로 꾸역꾸역 올라가다 보면 누가 봐도 뛰어내리기 딱 좋을 만한 형태로 절벽 위에 비스듬히 솟아있죠. 게임 내에서 주인공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형 중 하나로 저 멀리 ‘임페리얼 시티’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워낙 경관이 좋다 보니 스크린샷이 그럴싸하게 잘 나오는 훌륭한 포토존이기도 한데요. 참고로 여기 유니크 ‘트롤’이 나오니 셀카 중에는 뒤치기에 주의하시길.
당장 이름부터가 ‘자살 바위’이니 꼭 뛰어내려야만 할 것 같죠. 장담하건대 여기 도달한 유저 대부분이 한번쯤은 무작정 중력을 몸을 맡겨봤을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게임에서 떨어져 죽는 게 뭐가 재미있겠어요. 남을 떨어뜨리는 쪽이 100배는 더 재미있죠. 이쯤 되면 아마 다들 ‘자살시킬’ NPC가 누가 있나 고민에 빠졌을 겁니다. 걱정 붙들어 매시길, 우리에게는 ‘아도링 팬’이 있답니다.
▲ 자유 낙하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웃어보이는 '아도링 팬'
‘아도링 팬’은 아레나에서 그랜드 챔피언이 되면 반강제적으로 만나게 되는 요정족 꼬마입니다. 자신을 주인공의 열렬한 팬이라며 자꾸 귀찮게 구는데 촉새마냥 시끄러워서 게임이 힘들 지경이죠. 동료로 받아줘 봐야 전투도 운반도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녀석이지만, 그나마 마지막으로 빛날 수 있는 무대가 준비되어 다행입니다. ‘아도링 팬’을 ‘자살 바위’로 인도하여 원하는 무기나 마법으로 그의 최후를 화려하게 장식해주세요.
2위 말하는 섬 선착장(리니지), 모험가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던 옛 교두보
▲ 말하는 섬 선착장, 한 때 수많은 모험가가 이곳을 거쳐갔다
2위는 이제는 추억의 장소가 되어버린 ‘리니지’ 속 ‘말하는 섬’ 선착장입니다. 지금이야 파리만 날리는 누추한 장소이지만, 과거에는 본토행 선박에 오르려는 모험가들로 북적이던 명소 중에 명소였죠. 당시에는 ‘은기사 마을’조차 없어 모든 캐릭터가 ‘말하는 섬’에서 생성됐습니다. 본토 진출을 꿈꾸며 기량을 쌓는 초보들에게 선착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였던 셈이죠.
허수아비와 오크, 셀로브를 넘어 ‘말하는 섬’ 최강의 몬스터인 세 장로를 때려잡는데 성공한 유저는 누구나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소위 본토라 불리는 ‘글루디오’행 선박은 정기적으로 ‘말하는 섬’에 정박하는데, 워낙 대기자가 많아서 줄을 서지 않으면 탈 수가 없었죠. 다른 캐릭터를 통과할 수 없는 ‘리니지’ 특성상 혼잡한 와중에 유저들 틈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지만, 그때는 그저 모험가들의 후끈한 ‘열기’라 여겼죠.
▲ 초보 모험가들이 본토 진출을 꿈꾸며 몸을 실었던 '글루디오'행 정기선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다섯 명 이상 모이면 반드시 쓰ㄹ... 일탈을 즐기는 무리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일부 고레벨 유저는 선착장을 관리한다며 초보들을 학살하고 통행세를 요구하기도 했죠. 시비가 붙은 유저끼리 즉석에서 PK(Player Killing)를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해 줄서기가 그리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이후 거듭된 업데이트로 온갖 편리한 이동수단이 추가되어 더는 수고스럽게 정기선을 타는 사람은 없어졌지만, 가끔은 그 소란스러움이 그리워지네요.
1위 서부 몰락지대(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12년 전통의 와돋이 명소
▲ 동부왕국 끝자락 '서부 몰락지대'의 살풍경한 모습
1위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서부 몰락지대입니다. ‘워크래프트’ 1, 2편의 무대인 동부왕국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평야지대로 한때는 ‘밴클리프’가 지배하는 도적단 소굴로 악명이 높았죠. 본래 얼라이언스 소속 초보들이나 가끔 오가던 지역이었지만, 단 한 가지 이유로 매년 수많은 유저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답니다. 바로 ‘아제로스’의 태양은 서쪽에서 떠오른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옛말에 ‘이러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고 하는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해는 정말로 매일 서쪽에서 뜹니다. 즉, 대륙 서편에 서부 몰락지대야말로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그 어느 곳보다도 먼저 맞이할 수 있는 해돋이 명소인 셈이죠. 마침 근사한 등대도 하나 세워져 있어 더욱 분위기가 납니다. 일종의 게임 속 동해 정동진이랄까요?
▲ 밝아오는 신년 첫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져보자
서부 몰락지대는 연말마다 신년 첫해를 보려는 유저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오프라인의 온갖 연락을 물리치고 꿋꿋이 게임에 접속한 진성 ‘와우저’만이 가슴 벅찬 ‘와돋이’를 감상할 수 있죠. 재미있는 점은 워낙 명소이다 보니 호드 유저까지 이곳으로 ‘와돋이’를 와서, 두 적대 세력이 잠시 어색한 공존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뭐, 일반 서버라면 나름 훈훈하게 넘어가겠지만 만약 전쟁서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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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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