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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집순이었던 내가 눈 떠보니 지스타 온 신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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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란 무엇일까요? 파티보다 게임이, 친구보다 애착인형이, 쇼핑보다 배달음식이, 피시방보다 플스가 좋은 것이 바로 집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바로 접니다. 이런 저에게도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게임메카 신입기자로서 부산에서 열리는 지스타 2022에 팀원들과 4박 5일 취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더 나아가 집 근처에서 근 5년간 벗어난 적이 없는 저에게는 꽤 가혹한 미션이었습니다. 집순이가 나가기엔 너무 먼 타지인데다, 아싸 중 아싸에게 보통 이상의 사회성을 요구했거든요. 여러 가지 생각에 출장날이 다가올수록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내가 단체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떡하지?’, ‘숙소 침대는 어떻게 생겼을까?’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지스타 출장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집순이가 경험한 오픈월드 신세계

대망의 출장날, KTX를 타서 자리에 앉는 순간 잠에 든 후 눈을 떠보니 부산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수영구의 한 돼지국밥집에서 수육백반을 시켰습니다. ‘와, 부산 국밥은 이렇게 생겼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먹은 국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긴장으로 뻣뻣해진 몸은 수육을 전부 받아내지 못했고, 결국 조금 남기고 말았습니다. 근 1년간 음식을 남긴 것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부산 도착 첫날 먹었든 수육국밥. 국물에 수육을 넣어 먹으면 꿀맛입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부산 도착 첫날 먹었던 수육국밥. 국물에 수육을 넣어 먹으면 꿀맛입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어쨌거나, 밥을 먹은 이후 지스타 D-1의 현장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 미션을 받았습니다. 잘 해야 합니다. 잘 해내서 팀원들에게 무능하지 않은 막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제 결심을 비웃듯, 벡스코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나올 때 카메라 배터리를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바보 같으니! (._.

다행이도, 같이 간 선배의 천사 같은 마음씨로 두 명이서 카메라 하나를 나눠 쓰게 됐습니다. 한 명이 카메라를 사용하면 나머지 한 명은 휴대폰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지스타 오픈 하루 전 벡스코 사진을 찍고, 전야제가 열리는 해운대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서 저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름답게 펼쳐진 밤바다와 해운대 빛축제 속에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진 위메이드 야외 부스, 그리고 그 가운데 서있는 나. 낭만이라는 게 이런 걸까요? 좀처럼 집 밖에 나가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처음으로 일이 아니라 사적으로 휴대폰 카메라에 풍경을 담아봤습니다. 운동 부족으로 한참을 헉헉댔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픈월드 게임만큼 아름다운 이 풍경이 제 추억 속에 남는다는 것이 큰 영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중한 경험은 집순이가 이번 지스타 출장을 어느 정도 즐기는 계기가 됩니다.

해운대에서 열었던 위메이드 야외부스 전경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해운대에 열린 위메이드 야외부스 전경 (사진: 게임메카 촬영)

팀장님 Pick! 맛있는 먹거리

숙소로 돌아오니 부산 명물 가래떡 떡볶이와 만두, 오뎅과 물떡, 돈가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팀장님의 픽이기 때문에 꽤 믿을만한 음식들입니다. 팀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떡볶이는 가히 환상의 맛이었습니다. 오뎅 국물까지 시원하게 마시고 보니, 선배기자들 앞에서 절제하지 않고 마구 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창피해졌습니다. (사실 아무도 제가 얼마나 많이 먹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식탁을 보니 음식이 싹 비워져 있더군요.

집순이로서 사회생활을 거의 등지다시피 해왔던 저에게도 나름의 사회생활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나대지(?) 않는다.
둘째, 튀지 않는다.
셋째, 절제한다.

이 사항들을 잘 지키면 어느 무리든 무탈하게 조용히 섞일 수 있다고 자부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떡볶이 사건(아무도 사건이라 생각하지 않지만)으로 인해 먹는 것에 관해서는 이 규칙들을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역시 음식은 눈치 안 보고 맛있게 먹는 게 최고죠. XD

이후 출장 일정에서도 보쌈, 회, 아구탕, 피쉬앤칩스, 치킨, 곱창전골 등 맛있는 음식들을 계속해서 접했습니다. 기대에 응해서 모두 다 깨끗하게 비워냈는데, 제 인생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냐면, 이 후에 집에 돌아가서 체중을 재보니 2키로가 늘어있더라구요. 다이어트, 안녕~




▲ 참고로 먹으러 간 게 아니라 일하러 간 겁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수평을 맞춰야 해, 수평을

고백하자면, 살면서 딱히 사진을 예쁘게 찍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게임메카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DSLR을 접했을 때, 제게는 촬영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똥손 보유자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죠. 지스타 2022의 막이 오른 후 처음 취재를 가서 찍어온 사진을 보시고, 팀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평을 맞춰야 해, 수평을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저는 사진을 찍을 때 수평을 맞추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았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면서 애타게 수평부터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뇌에 과부하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정도가 수평이지? 바닥 라인에 맞춰야 하나 벽에 그려진 무늬에 맞춰야 하나? 사람이 똑바로 서있는데 왜 기울어져 보이는 걸까? 그나저나, 수평이 뭐지?

사실 워낙 정신이 없었기에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바닥과 벽에 그려진 선의 라인을 따라 나름대로의 수평을 맞췄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수평에 집중하다 피사체가 잘 나오지 않은 사진도 많았습니다. 사진 문제는 지금도 저에겐 어려운 숙제입니다. 언젠가 수평마스터가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이건 수평이 맞춰진 사진일까요?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수평이 안 맞아 혼난 예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인생 최초의 게임 전시회 체험기

초중고 시절 재미없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생 때는 집순이 생활을 물씬 즐긴 저는 게임 전시회나 쇼 등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26년 인생 참 재미없게 살았네요. 이런 저에게 지스타는 새로운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먼저, 신입 기자로 일하면서 프레스룸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게임메카 기자 전소하’ 명찰을 달고 프레스룸에 입장하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수많은 기자 분들이 무서운 표정으로 쉴 새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맞다 나도 기자지’ 깨닫고는 일찍 도착한 선배가 잡아주신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에 앉고 보니, 기자가 됐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 목에 걸린 프리패스 명찰과 P의 거짓 캐릭터들 자랑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제 자리를 잡았으니 취재를 하러 가야 합니다. 기자 명찰을 달고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입장권 팔찌 없이도 명찰만 보여주면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묘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명찰 프리패스는 그 날 하루 중 가장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현장으로 들어가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호러게임 팬인 저는 크래프톤의 칼리스토 프로토콜을 체험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엔 타 매체 기자님도 같이 있었기에 번갈아가며 시연을 했는데, 둘 다 어려운 난이도에 죽음을 거듭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너무 죽으니 나중엔 죽을 때마다 배를 잡고 웃기까지 했습니다. 시연이 끝나고 서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졌는데요, 처음 뵙는 분과 이토록 빠르게 친밀감을 느낀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지스타 전시장 이곳저곳 돌아보니 예쁜 캐릭터가 참 많았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난생 처음으로 게임 캐릭터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게임 캐릭터 뿐 아니라 예쁜 코스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코스어들의 화려한 쇼를 감상하다 보니 기사 쓸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쁜 언니들은 이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예쁜 캐릭터들과 찰칵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예쁜 캐릭터들과 찰칵 (사진: 게임메카 촬영)

나약한 소심이, 사회성 기르기

게임 시연도 하고 기사도 쓰다 보니 취재 일정은 금방 지나가고, 어느 새 마지막 업무만이 남았습니다. 바로 지스타 회장을 가득 매운 일반인 코스어들에게 촬영 허가를 맡은 뒤, 촬영하고 사진 게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코스어들이 굉장히 많았기에 쉬운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사회성 바닥(+똥손)인 집순이에게는 지금껏 가장 어려운 임무였습니다.

그래도 임무를 대충 할 수는 없는 법. 눈 딱 감고 멋진 코스어들을 졸졸 따라다니다 잠시 쉬는 기색이 보이면 바로 가서 사진 촬영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두 팀의 코스어 사진을 찍고 나니, 하루 치 사회성을 모두 사용해버린 듯한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앉아있으니,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냥 코스어들이 와서 찍어 달라고 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이 소심함을 고칠 수 있을까?, 엄마 보고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약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 인생은 폭풍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 내가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비장하게 일어나서 여기저기 발로 뛰며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업무를 끝내고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내가 해냈어!’ 나약했던 제가 한 층 성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뿌듯함을 안고 서울로 복귀하기 위해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며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돌아섭니다. 이제 저는 취재가 두렵지 않습니다. 설령 두렵더라도, 대담하게 풀어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더해서 일상에서도 집에만 있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며 경험도 쌓고, 폼 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할 것입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집에 들어온 순간, 다시 영락없는 사회성 바닥 집순이가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내년에도 보자, 부산역!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또 보자, 부산역! 내년에는 성장한 내가 돼있기를 바라며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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