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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zip] 게임 아이템 가격, 법으로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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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 현금거래는 게임사 약관에만 금지일 뿐 개인 간 거래는 법적으로 허용된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게임 거래소에서 게임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샀다가 게임사가 아이템을 환수했다"
"게임 계정을 거래했다는 이유로 게임사로부터 계정 정지를 당했다"

MMORPG를 오래 즐겨온 유저라면 몇 번쯤 들어보았을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많은 게임사들은 이용약관에 게임 아이템 및 계정 현금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했다고 판단된 유저에 대해 게임 아이템 환수 및 계정 정지 등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게임사 약관에 따른 것일 뿐,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것이 모두 불법은 아닙니다. 국내에서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는 '작업장'으로 대표되는 사업으로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개인 간 거래는 합법입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획득했고 이 아이템을 베팅에 사용할 수 없다면, 이를 현금으로 판매하거나 구매하더라도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닙니다.

아울러 아이템 거래 중 문제가 발생했다면 법원을 통한 권리구제, 즉 소송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게임에 관련된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금전적 손해를 회복하기 위한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바로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이 어느 정도 금액인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실제 소송에서 법원이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 계정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이전에 관련 형사소송 판결을 받은 경우

먼저 살펴볼 사례는 민사소송에 앞서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입니다. 사기 사건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즉, 경찰과 검찰 수사를 통해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 가격을 확인한 경우라고 할 수 있죠. 

형사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된 피해 금액은 민사소송에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는데요, 피해자로서는 본인이 직접 조사해야 할 일을 수사기관이 대신해 준 셈이 됩니다. 거기다 민사소송에서도 형사 판결에서 인정한 사실은 대부분 인정되기 때문에 소송 진행에 매우 유리해집니다.

하지만, 형사 판결의 피해 금액이 항상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하급심에서는 게임사 약관 규정, 게임 아이템 시세 특이성 등을 이유로 가해자 즉,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상당 부분 제한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소개해 드리고 싶은 판례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올해 2월 8일에 선고된 민사소송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앞서 판결이 나온 형사소송에서 게임 아이템에 관련해 1억 2,325만 6,600원 상당의 피해를 보았다고 인정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형사소송에서 인정된 금액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인데요. 민사에서는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피해액 일부, 즉 게임 아이템 가격의 절반인 6,162만 8,300원만 인정됐습니다.

▲ 형사판결 후 진행된 민사소송에서는 피고 책임이 50%만 인정됐다 (자료출처: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판결문)

법원이 가해자 책임을 50%로 제한한 이유는 '판례상의 책임제한'이라는 법리(법률의 원리) 때문인데요. 책임제한이란, 특정한 상황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 끼친 손해를 전부 배상하면 오히려 공평의 이념이나 형평성을 해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책임을 일정 부분제한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위 판례에서는 ① 해당 게임이 계정이나 아이템 양도나 매매를 금지하고 있는 점, ② 피해 아이템 거래 가격이 엄격하게 입증되지 않은 점, ③ 게임 아이템 시세가 변동성이 높고 이 사건 이후 아이템의 거래 가격이 많이 하락한 점 등을 근거로 가해자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절반만 인정했습니다. 사건 당시 피해자가 손해를 본 아이템 가치는 1억 2,325만 6,600원이 맞지만, 법원이 보기에 공평하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절반인 6,162만 8,300원만 배상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셈이죠.

다만,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인 원고가 본인이 피해를 입은 아이템 가치에 대한 근거 자료를 상세히 수집해 법원에 더 명확히 입증했다면 판단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민사소송에서 게임 아이템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형사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경우

위에서 살펴본 사례는 형사소송에서 유죄판결을 이미 받은 판례인데요, 게임 아이템 및 계정 거래 중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모두 범죄행위가 인정되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범죄로 인정되지 않거나, 경찰에 신고해도 과정이 복잡하고 피해 금액도 비교적 소액인 경우가 많아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고소가 진행되지 않은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피해복구를 해주지 않으면 곧바로 민사소송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입증책임이라는 법리에 따라 피해자가 본인이 입은 피해를 모두 입증해야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때, 법원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계약서 존재 여부입니다. 요즘 많은 게임 거래 중개 사이트에서는 소정의 비용을 받고 전자 계약서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전자 계약서에는 보통 계약 상대방의 인적 사항, 계약 금액, 계약 일자 등 소송에 필요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에 가격이 높은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을 거래할 때는 꼭 전자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법원에서는 거래 당사자 사이에 계약서가 존재하고 계약서 내용대로 계좌이체 등 입금내역이 확인된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계약서 내용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따라서 계약서가 있다면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 거래 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계약서에 적힌 피해 금액을 인정해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소송에 큰 도움이 됩니다.

거래 중개 사이트 수수료를 절감하고자 커뮤니티 게시판, 카카오톡 등을 통해 직거래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 경우에는 카카오톡 채팅이나 문자 등을 통해 계약 중요 내용 즉, 상대방 인적 사항, 계약 금액, 돈을 지급하는 방법 및 일자 등을 구체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 거래하는 아이템에 대한 가격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계약서가 있다면 소송에서 피해금액을 입증할 증거로 쓸 수 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만약, 개별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에 대해 문자 등 글로 기록된 금액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에는 마지막 방법으로, 원고가 여러 거래 사이트 시세를 조사하고,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 시세를 법원에 제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수원지방법원에서 2020년 1월 22일에 선고된 민사소송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인 원고가 형사고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인데요. ① 원고가 피고 게임 계정(거래 당시 89레벨 경험치 20%)을 650만 원에 구매했고, ② 피고가 거래일로부터 약 5달 뒤, 원고의 본인인증 요청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계정을 회수했으며, ③ 이에 원고가 계정 구매 금액 650만 원, 원고가 구매했던 계정에 포함되어 있던 게임 아이템 가격 5,652만 원, 원고가 5개월 간 계정을 육성하면서 상승한 계정 가치 950만 원(회수 당시 89레벨 경험치 90%), 합계 7,252만 원을 피고에게 손해배상으로 청구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가 청구한 것 중, ① 계정구매 금액 650만 원은 모두 인정했으나, ② 원고 계정에 있었던 게임 아이템 가치는 원고가 주장한 5,625만 원 중 절반 정도인 2,635만 원만 인정했고, ③ 원고가 5개월 가량 계정을 육성시킨 비용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때 아이템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 활용한 근거가 아이템 거래 사이트 시세입니다. 각 아이템의 시세를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삼아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 아이템 거래 사이트 시세를 근거로 아이템 가액이 인정된 판례 (자료출처: 수원지방법원 판결문)

구체적으로 소송에서 어떤 증거가 제출됐는지, 법원이 증거 중 어떤 것을 토대로 이러한 판단을 했지는 판결문만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게임 아이템 및 계정 거래 관련 판례를 찾아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법원에서 인정하는 아이템 가치는  유저 생각보다 굉장히 낮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가의 게임 아이템 및 계정 거래를 할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항목을 정해서 계약서나 문자 등으로 거래 내용을 남겨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위 사건에서는 원고가 피고와 계정 거래 당시, "손해배상에 있어서 계정 가치는 경험치 10%당 100만 원, 혹은 계정 육성을 위해 사용한 유료 아이템 가액 중 다액으로 정한다"와 같은 특약을 계약서에 넣어뒀다면, 법원이 이를 근거로 삼아서 계정을 육성하면서 상승한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3. 거래 불가 아이템의 경우

계정 귀속 아이템, 각인 아이템, 교환 불가 아이템 등 게임마다 명칭은 다양하지만, 많은 게임에는 거래소 등에 등록할 수 없고 개인 간 거래를 막아둔 소위 '거래 불가 아이템'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템에 대해서는 법원이 어떻게 아이템 가격을 판단할까요? 

거래 불가 아이템은 거래 가능한 동급 아이템보다 가치가 낮지만, 게임 계정 거래에서는 경우에 따라 가격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소위 '리니지 라이크'라 불리는 게임에서는 이벤트를 통해 복구 가능한 교환 불가 아이템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은 한결같습니다. 당사자 사이에 합의되지 않은 교환 불가 아이템은 그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은 일각에서는 불합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앞에서도 잠시 말했지만 게임 아이템 거래와 관련한 민사소송에서는 피해를 주장하는 자, 즉 원고가 본인이 얼마만큼의 피해를 보았는지 법원에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법률적인 용어로는 입증책임, 혹은 증명책임이라고 하죠.

그런데, 거래 불가 아이템은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되지 않으면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법원 입장에서 알 방법이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거래할 수 없는 아이템이라 거래소에 시세도 없고, 게임사에 확인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거래 불가 아이템이 문제가 된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된 게임사 답변 (자료제공: 강정목 변호사)

위 자료는 거래 불가 아이템이 문제가 된 소송에서 문제의 아이템 가치를 게임사에게 문의한 내역을 증거로 제출한 것입니다. 게임사에서는 운영정책 및 약관에서 아이템 현금거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금가로 환산할 수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죠. 이 상황에서 법원은 거래 불가 아이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도 없기 때문에, 원고가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며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값비싼 거래 불가 아이템이 포함된 계정을 거래하게 된다면 더욱 더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위 사건에서 계약서에 "계정 거래 금액 2,000만 원 중 +8 나이트발드 양손검(각인)은 200만 원으로 정한다"라는 특약이 기재되었다면 원고 청구가 받아들여져서 승소했을 가능성이 높았겠지요.

게임 아이템 및 계정 거래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오랜 기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판매자로서는 본인 계정을 정당한 대가를 받고 팔고 싶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로 게임을 시작하려는 구매자 입장에서는 계정 육성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충분히 성장한 계정을 구매해서 들어가려는 마음이 들 수 있지요.

이러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실제로 수많은 거래가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고, 상당한 규모의 게임 아이템 및 계정 거래 사이트들이 사업자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등 법 제도하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아이템 및 계정 거래 문제는 여전히 거래 당사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거래 불가 아이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일반인 관점에서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죠.

게임 관련 거래가 양성화되고, 게임 아이템을 사고파는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거래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 첫 번째로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를 금지'하는 게임사들의 해묵은 약관이 현재 게임 유저들의 거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 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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