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결혼 후에 너무 게임만 하고 집안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남편이 모바일게임에 월급보다 많은 돈을 써서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어요”
최근 이혼 사건을 진행하면서 잊을만 하면 한 번씩 꼭 들리는 말이 바로 위와 같은 배우자의 게임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근래 들어 게임을 즐기는 연령대가 높아지다 보니 부부 관계를 정리하는 이혼소송에서도 종종 게임이 소송 과정에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게임을 많이 즐기는 것을 이유로 과연 이혼할 수 있을까요? 배우자의 과도한 게임 이용을 이혼사유로 주장한 소송 판례를 살펴보고, 이 사실이 법적인 이혼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법에서 인정하는 이혼사유
먼저, 재판상 이혼을 할 수 있는 사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재판상 이혼사유를 법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다른 이유로는 재판상 이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은 민법 제 840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본인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배우자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는 이유는 1~5호엔 해당되지 않고, 마지막 제 6호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만 게임을 어느 정도로 해야 이 이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정해놓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개별 사건에서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기에 판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에서는 이혼 소송에서 게임이라는 주제가 등장한 몇 가지 판례를 살펴보면서 과연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것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법에서 정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배우자가 휴대폰게임 비용 등으로 수백만 원이 넘는 과도한 지출을 한 경우
첫 번째로 살펴볼 사례는, 최근 8월에 광주가정법원에서 선고된 2022드단1177호 판례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배우자가 휴대폰게임, 노래방 유흥비 등으로 수백만 원이 넘는 과도한 지출을 한 것이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남편인 피고가 노래방 유흥비, 휴대폰게임 비용으로 수백만 원 이상을 쓰는 등으로 다툼이 잦았고, 결국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피고의 이러한 행동을 민법에서 정한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위 소송에서 재판부는 일단 피고에게 부부간 갈등을 유발한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원고 역시 갈등을 조율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만으로는 이혼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에 피고도 원고를 상대로 반소(소송 중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동일한 재판 절차에서 새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원고와 피고는 이혼하게 되었지만, 피고가 휴대폰게임 비용 등으로 과도한 지출을 한 것은 이혼사유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필요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게임에만 과도하게 몰두하며 많은 돈을 지출한 경우
두 번째로 살펴볼 2022년 10월에 선고된 대전가정법원 사건 또한 위 사건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마찬가지로 원고는 피고가 게임에만 과도하게 몰두하며 게임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 문제 등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됐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이혼 및 위자료 등을 청구했습니다.
이 소송에서도 재판부 판단은 첫 번째 판례와 비슷합니다. 피고가 게임에 과도한 돈을 지출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단지 그 사실만으로는 혼인관계가 파탄난 책임이 피고에게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에서는 피고의 게임에 대한 과도한 지출만이 아니라 원고와 피고가 서로의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을 혼인관계가 파탄난 주된 이유로 보았고, 이에 따라 원고와 피고 모두의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원고와 피고 서로가 상대의 과도한 게임이용을 혼인 파탄 사유로 주장한 경우
앞서 살펴본 판례에서 알 수 있듯, 단순히 배우자가 게임을 과도하게 몰입하거나 게임에 많은 돈을 지출한 행위만으로는 재판상 이혼사유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물론 게임에 빠져 배우자를 유기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파산에 이를 정도로 많은 돈을 지출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단순히 게임을 일반적인 수준에 비해 많이 한다거나 수백만 원 가량의 지출을 한 것만으로는 혼인이 파탄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살펴볼 2022년 6월에 선고된 수원가정법원 여주지원 판결을 보면 이 경향에 대해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가 다른 남자와 교제를 하면서 부정행위를 한 점, 게임을 하느라 가사나 자녀 육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 등을 주장하며 혼인 파탄 책임이 피고에게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대로 피고는 원고가 성추행, 성매매 등 문제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혼인 파탄의 책임이 원고에게 있다며 맞섰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재판부가 원고와 피고 주장 중에서 중점적으로 판단한 것은 게임 이용이 아니라 부정행위 여부였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원고는 피고의 부정행위를 증거를 통해 입증했으나, 피고는 원고의 성추행, 성매매 등을 전혀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고의 잘못으로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른 것으로 보며 피고가 원고에게 위자료 2,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배우자의 과도한 게임 이용을 입증하기 어려운 실무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판결문을 보면 재판상 이혼사유를 판단할 때 배우자의 과도한 게임 이용은 부정행위나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 등과 비교하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이혼과 게임
필자가 처음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곳은 이혼 전문 사무실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이혼소송 업무를 배울 당시 제출되는 서면에서 게임이 언급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아 개인적으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단, 위에서 소개해 드린 판례에서 살펴보았듯 단순히 배우자가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거나 게임에 많은 돈을 지출한 것만으로는 재판상 이혼사유로 인정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는 단순히 법률적인 측면에서 살펴본 것에 불과하며, 함께 생활하는 다른 배우자에게는 남편 혹은 아내의 게임에 대한 집착이 이혼을 결심할 정도로 대단히 큰 고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은 즐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다만 성숙한 성인이라면 함께 생활하는 배우자와 가족들을 배려하며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에서 자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혼소송에서 제출되는 서면에 '게임'이라는 단어가 앞으로 점차 사라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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